1
이 나라 북변의 장강-
칠백 리 압록강 푸른 물에
저녁해 비꼈는데
황혼을 담아 싣고
떼목이 내린다 떼목이 내린다.
뉘의 눈물겨운 이야기
떼목 위의 초막에 깃들었느냐?
뉘의 한많은 평생 모닥불에 타서
한줄기 연기로 없어지느냐?
≪물피리 불며 울며 굴러갈 제
강 건너 천리길을 이미 떠난 몸
재 넘어 천리길을 이미 떠난 몸
재 넘어 구름 따라 끝없이 간다
에헹 에헤요 끝없이 가요≫
왜 저 노래 저다지 슬프단 말가,
이 땅의 청청 밀림 찍어내리거니
그 노래 어이 슬프지 않으랴!
이 나라의 집집은
대들보 터지고 기둥이 썩어져도
그 미끈한 만년대목으로는
놈들이 향락의 향연 베풀거니
그 노래 어이 슬프지 않으리!
2
황혼도 깊어지고
물결도 차지고
서늘한 밤바람
강가에 감돌아돌 무렵
강 건너 바위 밑에서 휘-익
휘파람소리 나더니
떼목에서도 모닥불이 번뜩번뜩
내려가던 떼목이 돌아간다 돌아간다
머리는 저편 강가에
꼬리는 이편 강가에-
삽시간에 이루어진 떼목자리,
초막에서 나온 두 사람
나는 듯 이편으로 달려온다
한 사람은 떼목군
다른 사람은 철호,
그담 강 저편 바위 밑에서
군인들이 달려나온다
달려나와선 떼목으로
압록강을 건너온다-
빨치산부대 압록강을 건너온다.
산밑에 그들이 숨었을 때
그 떼목다리도 간데없고
출렁-처절썩-
찬 물결만 강가에 깨어지는데
멀리선-
≪띄우리라 띄우리라
배를 무어 띄우리라
떼를 무어 띄우리라!≫
3
빨치산들이 압록강을 건너왔다-
일제가 짓밟은 이 땅에
살아서 살 곳 없고
죽어서 누울 곳 없고
모두 다 잃고 빼앗겼으니
물어보자 동포여!
가슴 꺼지는 한숨으로
이 강 건너 이방의 거친 땅에
거지의 서러운 첫걸음 옮기던 그날-
그날부터 몇몇 해 지났느뇨?
강 위에 밤안개 젖은 안개 떠돈다-
이 강 넘은 백성의 한숨이나 아닌가
물줄기는 솟아서 부서지고 또 부서지고-
이 강 넘은 백성의 눈물이나 아닌가
오오- 압록강! 압록강!
허나 오늘밤엔 그대 날뛰라
격랑을 일으켜
쾅-쾅 강산을 울리라.
이 나라의 빨치산들이
해방전의 불길을 뿌리려
그대를 넘어왔다-
애국의 심장을 태워 앞길 밝히며
의지를 갈아 창검으로 높이 들고
이 나라의 열사들이
조국땅에 넘어섰다.
압록강! 압록강!
격랑을 치켜들고
쾅-쾅- 강산을 울리라!
거창한 가슴을 한껏 들먹이며
와-와- 격전을 부르짖으라!
4
골짜기에 끼여우는 H시에
밤 열한 시…
고로에 먼지 찬 하루나절 지났다고
시민들도 잠자리에 들고
서로 다투고 서로 속이던
가가들도 문 걷어닫고
늦도록 요리집에서 야지러지던
매춘부의 웃음도 끊어지고
소경의 곯아빠진 눈자위같이
그 창문도 어둑해지고
거리를 휩쓸며
≪구사쓰요이도코≫ 부르던 놈도
이층집 문을 차며
≪요보야로!≫ 욕하다 들어가버리고…
밤 열한 시…
영림창 뒤통
빈민굴 어느 구석에선가
떼목에 치여 죽었다는 사나이를
거적에 싸서 방구석에 놓고
온 저녁 목놓아 울던 여인의 사설도 그치고
오뉴월 북어인 양 벌거숭이 애들
뼈만 남은 젊은이들
꼬부라진 늙은이들-
모두 다 웅크리고 늘어져
쿨-쿨- 잠들어버린
밤 열한 시…
5
밤 열한 시…
거리엔 인적이 끊기고
전등만 누렇게 흐르고-
주재소 교번순사도
꺼덕꺼덕 졸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남녀 두 사람
주재소 문간에 나타났다-
여인은 사나이를 끌고
사나이는 여인에게 끌리우고.
≪이 연석 들어가자!≫
여인의 짜증내는 소리
≪하…어…찌…라…고…≫
사나이의 혀 까부라진 소리
≪웬일이야!≫ 순사 골낸다
들어선 남녀를 흘기며
≪나리님 저놈이 술값을…≫
≪허… 내 우스워서…
허허허… 나리님두 우습지?≫
≪이놈 어딘 줄 알고 웃어?
내 앞에서 감히 웃어?≫
순사 단걸음에 다가서며
주먹을 쳐들자
그놈의 가슴에 총부리 대인다.
소리도 못치고 두 눈 뒤집고
순사 방구석에 까무러질 제
여인은(그는 솔개골 꽃분이)
전신줄을 끊고
사나이는(그는 정치공작원 철호)
문 열고 손짓한다
문 열고 손짓하자-
바로 곁에서 신호의 총성
잠든 시가를 깨뜨린다
그담 잇달아 나는 총소리 총소리…
우편국에서도 총소리,
은행에서도 영림창에서도
어지러운 점선을 그으는
따-따-따-따- 기관총소리
쾅-쾅- 폭탄 치는 소리!
6
적은 반항도 못하고
죽고 도망치고-
유치장 지붕에선
삼단 같은 불길이 일어난다,
이곳저곳 관사에서도
놈들 집에서도
반역자들 집에서도
불길이 일어난다,
캄캄한 하늘을 산산이 윽물어 찢어
쪼박쪼박 태워버리며 불길이 일더니
만세소리 터진다
첨에는 몇 곳에서
다음에는 여기저기서-
눌리우고 짓밟힌 이 거리에
반항의 함성 뒤울리거니
암담한 이 거리에 투쟁의 불길 세차거니
흰옷 입은 무리 쓸어나온다-
머리 벗은 노인도 발벗은 여인도
벌거숭이 애들도.
절망이 잦아든 이 거리에
별천지의 화원인 양 불바다에
불꽃이 나부끼고
재생의 열망을 휘저어 올리며
불빛이 춤추는데
밤바다같이 웅실거리는 군중
높이 올라서 칼 짚고 외치는
절세의 영웅 김일성장군!
≪동포들이여!
저 불길을 보느냐?
조선은 죽지 않았다!
조선의 정신은 살았다!
조선의 심장도 살았다!
불을 지르라-
원수의 머리에 불을 지르라!≫
만세소리 집도 거리도 떨치고
화염을 따라 오르고 올라
이 나라의 컴컴한 밤하늘을
뒤흔든다 뒤울린다!
7
휘황한 불빛이 온 거리에 차 흐르는데
떨어지는 불꽃을 밟으며
혁명가 드높이 부르며
빨치산부대 거리를 떠난다.
그들을 전송하는 이 고장 사람들-
기막힌 이 거리에
한줄기 생의 빛 가져왔으니
≪잘 가라 영웅들이여
어느 때나 승리하라≫
그러나 그들이 떠나면
또 검은 거리, 눈물의 거리,
그러기에 울음으로 전송하누나-
≪잘 가라 영웅들이여
언제나 다시 만나리≫
뺨에서 흐르는 눈물
불빛에 피방울인 듯,
허지만 빨치산들의 부르짖음-
≪잘 있으라 동포여,
싸우라 동포여!
우리 다시 만나자
해방연에 독립연에 다시 만나자!≫
휘황한 불빛에 싸여
빨치산들이 어둠을 짓차며 뚫으며
처억처억 앞으로 나간다,
싸움의 길로-
처억-
처억-
처억-
주석
제6장 장편 서사시 『백두산』(조기천, 1947)의 여섯째 장. 압록강을 건넌 빨치산 부대가 국경 도시 H시를 습격해 불을 지르고, 김일성 장군이 동포에게 봉기를 호소하는 절정의 전투 장면이다.
북변(北邊)의 장강(長江) 나라 북쪽 변경을 흐르는 긴 강. 곧 압록강을 가리킨다.
떼목/뗏목 통나무를 엮어 물에 띄워 나르는 뗏목. '떼목군'은 그 뗏목을 부리는 일꾼이다. 벌목한 큰 나무가 일제의 향락에 쓰이는 수탈의 현장으로 그려진다.
초막(草幕) 풀이나 짚으로 지은 작은 움막. 뗏목 위에 얹은 임시 거처.
고로(高爐) 쇠를 녹이는 용광로. 여기서는 공장의 화로·노동을 가리킨다.
가가(假家) 임시로 지은 집이나 가게. '가겟집'.
영림창(營林廠) 일제가 압록강·두만강 유역의 산림을 벌채·관리하던 관청. 목재 수탈의 거점이다.
구사쓰요이도코 일본 민요 '구사쓰부시(草津節)'의 한 구절(草津よいとこ, '구사쓰는 좋은 곳'). 거리에서 행패 부리는 일본인을 나타낸다.
요보야로 일본인이 조선인을 멸시해 부르던 'ヨボ(요보)'에 욕설 'やろう(야로)'를 붙인 말. '이 조선 놈아' 정도의 비하 표현.
교번순사(交番巡査) 교대로 번을 서는 당번 순사.
연석 상대를 낮잡아 욕하는 말. '망할 자식' 정도의 뜻.
김일성장군 항일 빨치산 부대를 이끄는 주인공. 그동안 '김 대장'으로 불리다가 이 대목에서 이름이 명시된다.
심상·해설
황혼 진 압록강을 뗏목 다리로 건넌 빨치산 부대가 한밤 국경 도시 H시를 습격해 거리를 불바다로 만들고, 흰옷 입은 군중이 쏟아져 나와 만세를 외치는 가운데 김일성 장군이 봉기를 호소하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