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1950년대
맺음시
동방의 줄기줄기를
선축인 양 한줌에 걷어쥐고
만리창공에 백발을 휘날리며
아득한 태고로부터
이 나라 풍상의 나날을 낱낱이 굽어
천산성악아, 백두산아!
오늘은 이 땅에 날이 밝아
오늘은 너의 천지에 채운이 서리우고
오늘은 너의 머리 위에
창창한 대공이 열렸거니
너, 백두야! 조선의 산아 말하라-
어떻게 떨어졌던 태양이
이 나라에 솟았느냐?
떨어졌던 태양이 다시 솟는 그때
네 누구를 맞이했느냐?
세기의 백발을 휘날리며
백두산은 대답한다-
≪여봐라!
내 말하노니 들으라!
두만강 물결이
포격에 솟아 구름을 헤치고
준령에 올라선 항일빨치산-
치명의 철화를 일제에게 내뿜을 때
떨어졌던 태양이
이 나라에 다시 솟았다!
내 머리 황홀한 흰빛에 휩싸이고
내 가슴속 갈피에서
푸른 기류 회오리쳐 일 제
내 그때-
동서에서 침략을 뒤부순,
온 누리에 빛을 준,
포연탄 위를 지나온
만고의 빨치산을 맞이했다.
내 그때-
이 나라 백성이 그렇게 그리던
나의 참된 아들-
나의 양심이고 나의 의지인
나의 신념이고 나의 희망인
나의 빨치산 김대장을 맞이했다
순선이도 꽃분이도 맞이했다.
내 그때-
골짜기와 골짜기, 집과 집,
거리와 거리, 광장과 광장들이
서로 읽히고 뭉치여 부둥켜안고
뛰고 춤추고 울고 노래부를 제,
자유의 기발, 만세소리, 환호소리로
넘치는 감격, 타오르는 애국의 백열로
하이얀 바다같이 뒤끓어 흐를 제
나도 만고에 없는 큰 숨으로
눌리웠던 허파에 대기를 한껏 들이그어
이 땅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나의 영생을 부르짖었다!≫
그러면 너 백두야
조선의 산아 말하라!
오늘은 무엇을 보느냐?
오늘은 누구를 보느냐?
세기의 백발을 휘날리며
백두산은 대답한다-
≪오늘은
무럭무럭 굴뚝에서 솟는
창조의 타는 노력을 본다
풍작에 우거진 자유의 전야를 본다.
역사의 대로에 거세게 올라선,
비약의 나래를 펼친
민주의 새 조선을 본다
오늘은
독립의 터를 닦는 인민을 본다
민전의 선두에 선 김대장을 본다.
오늘은
푸른 이념을 함빡 걷어안고
빛나는 민주 미래를 받들며
자라자라나는 인민의 바위-
모란봉을 본다!
또 저 삼각산 밑에서
반동의 무리 뒤엉켜 욱실거려도
테러의 미친 눈이 백주에 희번덕여도
민전의 싱싱한 외침에
남산 송백도 더 푸르러 빛나는 것을
내 오늘 역력히 본다≫
백두산은 이렇게 말하면서
의분을 못 참는 듯
장군봉에서 한 줄기 회오리바람을 휘잡아들어
채광이 어린 천지에 내려뿌린다.
허자 천지는 한가슴을 뒤집어내치며
하늘을 삼킬 듯 격파를 일으켜
바위를 치며 절벽을 들수신다!
천심을 울린다 지축을 떨친다!
세기의 백발을 추켜들고
북으로 찬란한 우랄산을 바라보며
곤륜산 히말라야산 너머
신생의 중국도 살펴보며
증오에 찬 추상을
태평양 거친 물과 부사산에 던지며
백두는 외친다-
≪너, 세계야 들으라!
이 땅에 내 나라를 세우리라!
내 천만 년 깎아세운 절벽의 의지로
내 세세로 모은 힘 가다듬어
온갖 불의를 짓쳐부수고
내 나라를,
민주의 나라를 세우리라!
내 뿌리와 같이 깊으게
내 바위와 같이 튼튼케
내 절정과 같이 높으게
내 천지와 같이 빛나게
세우리라-
자유의 나라!
독립의 나라!
인민의 나라!≫
백두산은 이렇게 외친다!
백성은 이렇게 외친다!
주석
맺음시 장편 서사시 『백두산』(조기천, 1947)의 마무리 시. 백두산을 의인화하여 해방과 새 나라 건설의 의지를 노래한다.
천산성악(千山聖嶽) 뭇 산 가운데 으뜸가는 성스러운 산. 백두산을 높여 부른 말이다.
채운(彩雲) 여러 빛깔로 물든 고운 구름. 상서로운 조짐을 나타낸다.
김대장 항일 빨치산 부대를 이끄는 '김 대장'. 작품은 이를 김일성으로 형상화한다. 뒤의 '순선이·꽃분이'는 함께 싸우는 인물들.
모란봉(牡丹峰) 평양에 있는 봉우리. 여기서는 자라나는 인민의 상징으로 쓰였다.
삼각산(三角山) 서울 북한산의 옛 이름. '남산 송백'과 함께 남쪽(남한)을 가리키며, 당시의 정치적 대립을 빗댄다.
백주(白晝) 환한 대낮.
부사산(富士山) 일본의 후지산(富士山). 일제·침략 세력을 가리키는 대상으로 등장한다.
추상(秋霜) 가을 서리. '추상같다'처럼 매섭고 엄한 기세를 비유한다.
심상·해설
흰 머리털을 휘날리는 거인처럼 의인화된 백두산이 다시 솟은 태양과 해방의 함성을 굽어보고, 천지의 물결을 일으키며 세계를 향해 새 나라 건설을 외치는 장엄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