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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꼴이 되다니
1920년대

이 꼴이 되다니

권환 · 1920년대
윤(尹)아 ─ 놈들이 가장 미워하고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윤아 네가 작년 10월 놈들의 손에 병신된 몸으로 누워있는 줄은 벌써 알았다마는 길이 멀고 일에 바빠 인제야 온 것을 용서하여다오 그러나 윤아! 우리는 정말 몰랐더니라 네가 이렇게도 무섭게 말못하게 된 줄을 네 몸이 이렇게도 부서지고 못 보게 된 줄은 윤아 ─ 작년 2월부터, 맵고 센 왜바람이 불어 수백명의 우리××[동지]들이 놈들의 쇠사슬에 매여갈 때 너도 그 중에 가장 용감하고 대담 무려한 투사의 한사람으로 염라궁같이 높고 무서운 몸집 경시청으로 들어가지 않았더냐 그 말을 우리 동지에게 들은 우리는 들고 있던 마치와 수군포를 떨어뜨리고 멀리 놈들의 치는 격금 소리를 귀기울이고 들었더니라 그리고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부르짖었더니라 그리고 일리 ─ 치의 “네가 만일 놈들의 미움을 받거든 네가 바른 길로 나아가는 가장 정확한 증거인 줄을 알아라”하는 말을 생각하였더니라 그리고 우리들의 배운 것 없고 비겁한 것을 자책하였더니라 그러나 윤아 ─ 네가 맞은 게 결코 혼자 맞은 게 아니다 너 아픈 게 결코 너 혼자 분한 게 아니다 우리 노동자 농민 전 계급의 맞은 게다 전 계급의 아픈 게다 전 계급의 분한 게다 윤아 ─ 네 가슴은 언제든지 화산(火山) 같이 타고 있으리라 그러나 네 신경(神經)은 또 언제든지 전선줄 같이 굳지 않느냐 쓰디쓴 웅담을 꾹꾹 씹어가면서 오는 그날을 몸달지 말고 기다려라 우리의 힘은 봄날의 풀잎처럼 자꾸 자라간다 홍수(洪水)같이 자꾸 밀고 간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그래서 앞에 자빠진 날에 영웅의 뜻을 저버리지 않을게다 윤아 ─ 그러면 잘 있거라 동지들의 사랑 속에 잘 있거라 우리는 일이 바빠 가야겠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고국에 돌아가면 네 이야기를 우리 수백만 노동자 대중에게 소리쳐 주리라 그래서 우리에게도 너 같은 담대 무적한 투사가 있었던 것을 우리는 ×[저]들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힘과 열을 지으란 일리 ─ 치의 말을 가르쳐 주마 윤아 그러면 잘 있거라 놈들이 가장 미워하고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윤아! ─ 1929. 5. 2. ×동지를 찾아보고

주석

일리―치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Vladimir Ilyich Lenin)을 가리킴. 부칭(父稱) '일리치'로 친근하게 부른 것.

경시청(警視廳) 일제강점기 일본·조선의 경찰 최고 기관. 항일 운동가들이 끌려가 고문받던 곳.

왜바람 일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뜻으로, 일제의 탄압을 비유한 말.

수군포 삽을 뜻하는 일본어 차용어('스콥', scoop)에서 온 노동 연장.

웅담(熊膽) 곰의 쓸개. 매우 쓴맛으로, 여기서는 쓰라린 고통을 견딤을 비유한다.

무려(無慮) 두려움이 없음. '대담무려'는 대담하고 거리낌 없음을 뜻한다.

×, [ ] 검열로 지워졌거나 후대에 복원한 부분. '동지', '저들' 등이 들어갈 자리.

심상·해설

고문으로 부서진 동지 '윤'의 병상 곁에서, 화산처럼 타는 가슴과 홍수처럼 밀려가는 계급의 힘을 외치며 다시 일어설 그날을 다짐하는 결연하고 비장한 장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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