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철학

사물의 철학

저자: 함돈균
출판사: 세종서적
등록일: 2015-03-31


함돈균 지음

세종서적 / 2015년 2월 / 304쪽 / 15,000원




▣ 저자 함돈균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일찌감치 공부와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으나, 국문학자가 되기보다는 ‘인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대학원에서 훌륭한 스승 밑에서 공부하고, 2006년 문학평론가의 길에 들어서면서 첨예한 사유의 모험과 표현의 실험, 깊이 있는 인문정신의 종합이 문학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로서 한국문학사의 전위의 계보 탐색과 비평이론 연구를 하고 있으며, 문학평론가로서 한국문학에 관한 문학비평과 다양한 인문적 글쓰기, 강의를 해오고 있다. 한편 ‘책상 위의 인문학’을 사회적 공공성과 시민적 가치를 담보한 인문운동으로 확대하자는 생각에서 선배 인문학자들과 함께 ‘실천적 인문공동체 시민행성’을 만들었다. 시민행성 공동대표로서 학생, 작가, 교사, 인문학자 등 다양한 인문 주체들과 함께 계층, 직업, 지역, 세대, 종교, 민관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인문기획과 사회연대의 모델을 발명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Short Summary


‘사물(事物)’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일단 어떤 특정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물리적 실체라고 규정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렇게 규정하고 나면 이때부터 오히려 감당하기 힘든 질문이 제기된다. 대체 실체란 무엇인가. 영어에서 ‘실체’는 라틴어 어원에 이어진 ‘substance’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의미를 헤아려보자면 어떤 것의 ‘바닥을 지지하고 있는 것’ 정도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런 서양식 어원 풀이는 사물에 대한 입체적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사물의 ‘바닥에 내재한’ 불변하는 어떤 것이 과연 있는가. 이런 접근 방식에서 난점은 사물을 단지 물리적 대상, 자연과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여기는 데서 나온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에게 사물이 갖는 ‘의미’, 인간과 사물이 맺는 ‘관계’에 관한 몰인식이다.



그런 점에서 철학자 하이데거가 사물을 ‘도구’라는 영역으로 제한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도구 연관들이 맺는 의미의 그물망으로 본 것은 탁월한 관점 전환이었다. 그에 따르면 도구는 무언가를 ‘위해(um zu 쓸모)’ 만들어졌으며, 도구가 지시하는 쓸모들이 모여 쓸모 연관성의 그물을 만들고, 그 그물망 자체가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들의 삶의 목적(의미)을 드러낸다. 인간과 인간들이 모여 만든 사회와 문명은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쓰일 수 있는 다른 도구들을 ‘곁에’ 두며(발명하며), 다른 도구들의 연계망을 만든다. 사물은 도구이며, 도구는 도구가 이루려는 목적을 지시하고, 그 목적이 곧 그/그들의 ‘세계’이다.



더 간명한 것은 ‘사물(事物)’이라는 한자어가 환기하는 의미의 차원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사물은 일, 사건, 사태를 뜻하는 ‘사(事)’와 물리적 대상을 뜻하는 ‘물(物)’의 결합으로 되어 있다. ‘물(物)’이 정적이며 물리적인 단일성과 공간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사(事)’는 동적이고 시간적이며 관계적인 양상ㆍ사태를 포함한다. 사물은 특정 공간을 점유하는 물리적 대상이지만, 시간ㆍ장소ㆍ상황에 따라, 또 누가 그것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체로 변한다. 사물은 인간과 삶의 의미를 포괄하는 ‘관계’의 매개물이기도 한 것이다.



사물에는 변하는 면과 변하지 않는 면이 있다. 같은 쓸모를 가지고도 사회와 문명에 따라 다른 모양의 사물이 만들어지기도 하며, 인류의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전혀 모양이 변하지 않은 완고한 보수성을 지닌 사물도 있다. 쓸모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간혹 그 쓸모가 일반적 효용성과는 전혀 다른 차원을 지시하는 사물도 있다. 사르트르는 인간과 사물(도구)의 존재 방식을 구분하면서, 사물의 본질(쓸모/목적)은 존재하기 이전에 정해진다고 했지만, 보기에 따라 이 견해를 반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사물 중에는 쓸모에 실패함으로써 존재하게 된 역설적인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또 사물 중에는 아주 간단하게 생겼지만 그 모양새 자체만으로 한 시대와 문명의 깊은 무의식을 드러내는 ‘증상’ 같은 것도 있다. 사물의 주인이 인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떤 사물의 경우 그것은 인간 힘을 빌려 바로 지금 여기 ‘나타난(태어난)’ 것일 수도 있다.



이 책 제목이 ‘도구의 철학’이 아니라 ‘사물의 철학’인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룬 것들은 사전적 정의나 범주로 보자면 예외 없이 모두 도구다. 그러나 나는 이 사물들의 쓸모의 차원에 종속된 도구(만으)로 대하지 않았다. 이 문명의 도구들을 자연도 인공적 대상도 아닌 그 사이에서 출현하고 유동하며 인간과 관계 맺는 사물의 차원에서 만났다. 세계 지성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 중 하나가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서 남곽자기가 들었던 땅의 온갖 구멍들 속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바람소리에 관한 묘사인데, 나는 이 인공적 사물들을 남곽자기와 비슷한 기분으로 만나곤 했다.



현대시의 한 모델이 된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낙원의 인공성(『인공 낙원』)에 관해 얘기하곤 했는데, 인공이 사실상 자연이 된 오늘의 도시인에게 인공 사물과 자연 사물을 구분해서 사고하는 것이 어쩌면 더 작위적인 것은 아닌가. 게다가 오늘날 도구 중에는 이미 아주 힘이 세져서 쓸모와 목적에 관한 인간의 의지와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진화하고 있는 사물들도 많지 않은가.



보르헤스 소설 『알렙』에 보면 작은 구슬이 나온다. 그 구슬에는 세계의 모든 관경이 겹치지도 않고 축소되지도 않은 채 깃들어 있다. 하나이면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그것은 ‘신(神)’적인 것의 비유일 수도 있고, 한 떨기 꽃에서 우주를 보는 불교의 화엄(華嚴) 우주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비평적 글쓰기를 하면서 ‘시적인 것’에 관해 늘 생각하며 사는 나에게 그것은 종교적 신비주의 이전에 어떤 시적 순간에 관한 이미지다. 비평적 태도에는 지성의 논리가 결부될 수밖에 없지만, 사물에 깃든 시간의 깊이와 타자의 그림자와 이미지가 발산하는 신비함과 조우할 수 없다면 비평은 메마른 합리주의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그것은 시뿐만 아니라 사물에서도 마찬가지다. 벤야민이 잘 보여주었던 태도처럼 비평가에게 시의 신비와 사물의 신비는 구별되지 않는다.



최근 한 훌륭한 실천적 스승으로부터 ‘경천(敬天)ㆍ경물(敬物)ㆍ경인(敬人)’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은 비평가에게도 필요한 윤리가 아닌가. 이렇게 사나워진 세상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의 평범한 사물들과 지극하게 만나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사람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사람과 문명의 가장 반짝이는 얼과 예민한 증후가 거기에 깃들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물들이 내게 그러했던 것처럼, 독자들에게도 이 사물들과의 조우가 일상 속에서 열리는 다른 시간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차례


Prologue 사물에 대하여



chapter 01 새로운 생각을 시작하기 좋은 시간 〔ㄱ~ㄹ〕


가로등 / 거울 / 검은 리본 / 검은색 가죽부츠 / 경첩

계산기 / 고가도로 / 골대 / 과도 / 구둣주걱

남자의 양말 / 내비게이션 / 냉장고 / 넥타이

달력 / 담배 / 대야 / 도로표지판 / 도마

레고 / 리어카 / 립스틱



chapter 02 평범한 물건은 어떻게 철학을 선물하는가 〔ㅁ~ㅂ〕


마스크 / 마이크 / 말하는 로봇 / 망원렌즈

맨홀 / 면도기 / 명함 / 문 / 물티슈

반지 / 배달통 / 백팩 / 버스 / 벨 / 벽

보자기 / 복권 / 부채 / 블랙박스



chapter 03 당신이 상상하는 것처럼, 사물은 놀랍다 〔ㅅ~ㅇ〕


생수 / 선글라스 / 셀카봉 / 손수건 / 쇼핑카트 / 스냅백 / 스마트폰 케이스

스카프 / 스케이트 / 스타킹 / 스탠드 / 스펀지 / 시스루 / 신호등

야구공 / 양산 / 연등 / 연필 / 우산

원탁 / 의자 / 이어폰 / 인터넷



chapter 04 사(事)+물(物): 마음의 사건, 너머의 쓸모 〔ㅈ~ㅎ〕


자 / 자동문 / 자동차 전조등 / 자명종 / 자전거 / 장갑 / 장화

젓가락 / 주사위 / 지퍼 / 축구공 / 칠판

카드 / 카메라 / 크로노그래프 시계 / 크리스마스트리

타이어 / 테이크아웃 커피잔 / 텐트 / 트렌치코트

팝콘 / 포스트잇 / 포클레인

후추통



Epilogue /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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