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소풍

프라하, 소풍

저자: 전선명
출판사: 북노마드
등록일: 2014-10-21


전선명 지음

북노마드 / 2014년 6월 / 256쪽 / 12,800원




▣ 저자 전선명


경주에서 나고 자랐다.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인형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남편과 함께 체코 프라하에서 1년 넘게 머물며 구석구석을 누볐다. 오래된 물건과 그림책에 관심이 많아 잡화점, 문방구, 벼룩시장을 즐겨 찾았으며, 매일 소소하게, 끊임없이 프라하 여기저기로 긴 소풍을 다녀왔다. 현재 Creative Asian Network ‘ubies’에 소속되어 있으며, 주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고 있다.




Short Summary


계절이 바뀌기 직전, 이른 아침에 일어나 어제와 다른 공기 냄새가 느껴지면 내 마음은 낯선 곳으로 멀리 떠나곤 했다. 다행히 프라하에는 마음만 먼저 보내지 않을 수 있게 됐다. 결혼식을 단출하게 치르고, 몇 년간 애써 모은 얼마 안 되는 전 재산만 믿고 ‘진짜로’ 떠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른을 눈앞에 둔 그때, 문득 서른이 넘은 자신이 ‘어른’이 되어 날 맞이해줄 일은 없으리란 깨달음이 찾아왔다. 불안한 마음과 달리 몸은 저 혼자 느긋했다. 모든 일에 시큰둥한 채 출퇴근을 반복하고, 기계적으로 컴퓨터만 두드리는 달팽이 한 마리가 바로 나였다. 반면 인형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남편은 꽤 오랫동안 유학을 꿈꿔왔다. 유학 계획은 점차 구체적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우리는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둘이 함께 떠나기로 했다.



여기서 나의 역할은 ‘유학 가는 남편을 따라가는 여자’였다. 공부를 하겠다거나, 내조를 확실히 하겠다는 계획도 없었다. 그저 ‘삼십대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시작해보자’라는 흐릿한 이정표만 저 너머에서 흔들거렸을 뿐이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이국에서의 생활이 아니라, ‘시작’이었던 것이다. 체코어 수업은 가을부터 시작이었다.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닌데 프라하의 루지네 공항은 텅 빈 듯 조용했다. 소독약 냄새가 섞인 낯선 공기가 밀려왔다. 체코라는 땅이 예전부터 간직해왔을 오래된 냄새. 남편은 어마어마한 우리 짐은 뒤로한 채 유모차를 힘겹게 옮기던 아기 엄마를 살갑게 도와주고 있었다. ‘서양인들은 그런 친절을 부담스러워 한다고.’ 그를 말리는 내 표정을 읽은 체코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 남편은 지금 굉장히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순식간에 인정머리가 없는 여자가 돼버린 나는 멋쩍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싶었다.



“Jake je jizdne?”(야케 예 이즈드네?)

“얼, 마, 입니까?”

숙소 주소를 건네주며 연습한 체코어를 제대로 읊어보기도 전에 택시 기사는 이미 우리 짐을 차에 싣고 있었다. 공항을 떠나 도심으로 향하는 택시의 창밖은 짙고 습한 어둠으로 가득했다. 남편은 한참 동안 컴컴한 창밖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저 너머에 동화 속에 나오는 예쁜 중세 도시가 있을 걸 생각하니 들뜬다고 했다. 그러나 거대한 트렁크와 배낭을 줄줄이 매달고 장시간 비행하느라 지친 나는 어쩐지 시큰둥한 상태였다.



체코에 오기 위해 준비했던 기나긴 시간들이 어둠 위로 천천히 떠올랐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결혼식을 하고, 체코어학교를 알아보고 등록하고, 속을 바짝 태우다 못해 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고난의 연속이었던 비자 신청까지. 그 모든 과정을 거쳐 마침내 여기, 지금, 이 택시에 앉아 있는 것이 신기했다. 갑자기 기사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알 수 없는 충동으로 그에게 짤막한 인사말을 건넸지만 돌아오는 냉랭한 반응이란. 태어나서 처음 와보는 새로운 땅, 대답 없는 낯선 사람 곁에서 나는 왜인지 담담한 동시에 막막해졌다. 그리고 이유 없는 시간이란, 0킬로그램짜리 시간이란 없을 거라고,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가능할 거라고 믿고 싶어졌다.




▣ 차례


Prologue_ 프라하의 이방인



1 프라하의 여행자처럼


호텔 ‘집’에서 / 프라하 거리를 걸었던 첫날 / ‘동유럽’이란 이름의 어떤 정서

동독에서 온 티세트 / 체코어의 맛 / 안녕, 루츠카 / 페트르네 잡화점

얀 슈반크마이에르 감독의 안뜰, 흐라드찬니 언덕

체코의 국민 예술가, 요셉 라다의 고향 마을 산책

체코의 핫도그 /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들



2 프라하의 생활인처럼


아호이! 누슬레의 그 집 / 기름과 설탕이 불러일으킨 향수

프라하응용미술대학 오픈데이 / 맥주는 곧 ‘마시는 빵’ / 바이에른 차 한 잔

극단 ‘크레프스코’ / 오래된 장난감에 새겨진 빛바랜 시간들

블타바 강에서 짧은 수상여행을 / 야로미로바 쌍둥이 잡화점

단골이 되고 싶은 헌책방 밍구스



3 프라하의 학생처럼


체코만의 나무 장난감 / 간이매점에서 만난 애니메이션 작품들

프라하 벼룩시장은 여기! / 수제 마리오네트 공방 ‘마리오네티 트루흘라르’

카페에 가다 / 여름 데생 교실 / 할아버지 누드모델 / 페트쥔 언덕의 여름

슈코다를 타고 떠난 교외 여행 / 메르쿠르 교통박물관에서 만난 추억 한 조각

국경을 넘어 폴란드로 / 숲속의 전차 / 블타바의 가을 섬



4 프라하의 예술가처럼


진짜 인형극을 보고 싶다면 / ‘두더지’는 ‘크르텍’ / 문방구에 가다

영화 <다락방에서>의 주인공들을 만나다 / 체코의 예술가들

체코의 배우와 함께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다



Epilogue_ 프라하의 새벽 여행자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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