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지음
서울셀렉션 / 2018년 11월 / 228쪽 / 16,000원
▣ 저자 안중근
1879년 황해도 해주 출생했다. 6세 때 서당을 다니며 학문을 익히기 시작했으나 학문보다 사냥에 뜻이 있어 명사수로 성장하였다. 16세 때 동학란이 일어나 황해도 지방에서 기세를 떨치자 부친과 함께 포수들을 모집, 동학군을 격파하였다. 17세 때 천주교에 입교하여 온 가족이 천주교 신자가 됐다. 27세 때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어 아버지와 상의하여 집안이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이사하고 그는 산뚱으로 갔다. 교육과 실력배양을 위해서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하였다. 29세 때 북간도를 경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들어가 그곳 청년회에 참가하였고 이듬해 의병 모집에 나섰다. 30세 때 대한의군을 조직하고 참모중장직을 맡았다. 31세 때 우덕순 등과 같이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계획하였고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와 가와카미 총영사, 모리 비서관, 다나카 만철이사 등을 살상시켰다. 32세 때인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동양평화를 부르짖고 순국하였다.
▣ 엮음 이영옥
안중근의사기념관 관장
▣ 역자
(영어) 손태수 : 성균관대학교 번역-TESOL대학원 번역학과 겸임교수
(일어) 신현하 : 국립경상대학교 사범대학 일어교육과 명예교수
(중국어) 김월배 : 하얼빈이공대학 한국학과 교수
▣ Short Summary
안중근의 평화 사상을 전하는 기록으로는 두 가지가 남아 있다. 안중근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자마자 법원장 면담을 요청하였고, 사흘 뒤에 이루어진 면담에서 자신이 구상하는 동양 평화 실현 방도를 말하였는데, 통역이 면담 내용을 기록하여 「청취서(聽取書)」라고 이름 붙인 것이 남아 있다. 다른 하나는 1910년 3월 18일경 자서전 『안응칠 역사』를 탈고한 뒤 바로 집필하기 시작한 「동양평화론」인데, 3월 26일 조기 사형 집행으로 「동양평화론」은 미완의 유고로 남았다.
이 책은 안중근의 평화 사상을 전하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동양평화론」과 「청취서」, 두 개의 원고를 묶어 한글, 영어, 일어, 중국어 등 4개 언어로 번역해 수록하고 있는데, 미완의 유고 「동양평화론」이 사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면, 「청취서」에는 그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 담겨 있다.
「동양평화론」은 세계 지성을 향한 성명서로 그 논설은 명쾌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미완의 글이지만 큰 울림을 준다. 그리고 안중근의 발언을 기록한 「청취서」에 담긴 동양 평화 전략(아시아 평화 공동체와 공용화폐, 공동 군대 창설 등)은 독특한 것으로, 당대 구미의 어느 지식인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며, 유럽연합 구상보다 반세기나 앞서는 것으로, 안중근의 높은 지식수준을 보여준다.
▣ 차례
(In Korean)
- 발간사
- 서문
-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청취서」
(In English)
- On Publishing Ahn Junggeun's Vision for Peace
- Foreword
- Ahn Junggeun’s “A Treatise on Peace in the East”
- “The Transcript of Ahn Junggeun's Interview”
(In Japanese)
- 發刊사
- 序文
- 安重根の 「東洋平和論」
-「聽取書」
(In Chinese)
- 發刊?
- 序文
- 安重根的 「東洋和平論」
-「?取書」
AppendixⅠ : 「동양평화론」원문
AppendixⅡ : 「청취서」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