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지음
새빛 / 2016년 4월 / 256쪽 / 16,000원
▣ 저자 유창선
지난 20여 년간 활동해온 1세대 정치평론가이다. 연세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많은 방송에서 진행자도 지냈고 고정 출연을 해왔다. 또 많은 언론들에 고정 칼럼도 연재했고, 활발한 온라인 활동으로 대한민국 블로그어워드 대상과 아프리카TV대상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특히 아프리카TV에서 <유창선의 인문학 동행> 강좌 방송을 진행하여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는 세상을 사는 것은 원래부터 힘든 일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솔직히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어려울수록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나를 만들어나갈 것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정치보다도, 어떤 이념보다도 우선해야 할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며, 그를 위해 우리는 더 넓고 깊어져야 한다는 것, 저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것이다.
▣ Short Summary
우리 인간에게는 다른 어떤 생명체도 갖지 못한 많은 특권과 능력이 있다. 그 가운데서 으뜸은 생각하는 능력이다. 인간에게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을 가짐으로써 다른 동물들과 구분된다. 생각은 단순히 반응하는 능력을 말하지 않는다. 개나 고양이도 화를 낼 줄 알고 반가워할 줄 안다. 그러나 개나 고양이는 자신의 삶 전체를 생각하지 못한다. 태어남과 죽음을 자신의 삶 전체 속에서 이해하고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생물은 지구상에서 인간밖에 없다. 우리는 생각함으로써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나는 있다. 현존한다. 이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얼마 동안인가?”라고 묻는다. 그러고는 이렇게 대답한다. “물론 내가 생각하고 있는 동안만이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생각하기를 아주 그친다면, 그 순간 나는 존재하기를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를 『방법서설』에서 철학의 제1원리로 제시했던 것이다.
나는 과연 얼마나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물론 우리는 누구나 그리고 언제나 생각을 하며 산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어제 가족과 다투었던 불쾌한 일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직장 일이 잘 안 풀리는 데 대한 걱정도 계속된다. 하지만 그 많은 생각 가운데서 정작 나 자신을 향한 생각은 얼마나 될까.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스스로를 들여다볼 기회를 우리는 얼마나 가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생존하는 데 필요한 생각은 많이 하지만, 정작 나를 배려하는 생각은 부족한 것이 오늘 우리들의 삶이 아니던가. 나에게는 산다는 것이 그냥 습관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스스로 의미를 찾는 삶이 되지 못한 채 말이다.
더구나 우리는 많은 생각들을 외부에 의존하는 데 길들여지고 있다. 내가 사는 의미가 나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세속적 가치에 의해 이입된다. 부와 지위를 선망하거나 매달려있는 나의 생각은, 사실은 나의 것이 아니라 세상이 만들어 나에게 입힌 기성복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내 몸에 안 맞아도 억지로 입고 산다. 사회가 요구한 성공의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며 살아야 한다. 옷을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옷에 맞추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사실 지금 이것이 진짜 나의 삶이라 하기는 어렵다.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 인간으로서 갖고 태어난 그 엄청난 능력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죽어간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인간은 오랜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생각의 능력을 갖게 되었건만, 정작 내가 그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채 묵혀 두고 있다면 그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자신을 돌본다는 것이 자신의 사적인 욕망을 키우고 그것에 매달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언제나 자기가 서 있는 곳을 생각하며 돌아보는 노력은 소중하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며 정치적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도 정작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황폐화된 삶을 살게 된다. 그런 삶에서는 세상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기운이 나오기 어렵다.
사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고 했다. 종이를 자르는 칼에는 정해진 본질이 있다. 장인은 종이 자르는 기능을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는 방법에 따라 칼을 만든다. 따라서 칼의 본질은 종이를 자르는 일이다. 이때 종이 자르는 칼은 본질이 실존에 앞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는 다르다. 인간에게는 정해진 본질이 없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본성이라는 것은 없고 인간의 실존적 선택이 각자의 본질을 좌우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실존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떠맡는,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 “결국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과 다른 무엇이 아니다.” 카뮈의 말대로 “인간은 생긴 그대로이기를 거부하는 유일한 피조물”이다. 내가 나의 생각을 지배하는 주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 차례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_ 나는 내 생각의 주인인가
1장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2장 우리는 왜 불안한가
3장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4장 자존감, 삶의 마중물
5장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6장 고통에도 의미가 있는 걸까
7장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
8장 죽음을 기억하는 삶
9장 손잡을 수 있는 용기
에필로그_ 내가 만들어가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