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5년 5월 / 356쪽 / 15,000원
▣ 저자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 2011년에는 세간에 떠돌던 ‘강남 좌파’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냈고, 2012년에는 ‘증오의 종언’을 시대정신으로 제시하며 ‘안철수 현상’을 추적했다. 2013년에는 ‘증오 상업주의’와 ‘갑과 을의 나라’를 화두로 던졌고, 2014년에는 ‘싸가지 없는 진보’ 논쟁을 촉발시키며 한국 사회의 이슈를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생각의 문법』, 『인문학은 언어에서 태어났다』, 『싸가지 없는 진보』, 『미국은 드라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한국인과 영어』, 『감정독재』,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갑과 을의 나라』, 『증오 상업주의』, , 『아이비리그의 빛과 그늘』, 『룸살롱 공화국』, 『특별한 나라 대한민국』, 『전화의 역사』, 『한국 현대사 산책』, 『미국사 산책』 외 다수가 있다.
▣ Short Summary
전쟁터에선 오직 힘만이 정의다. 약육강식ㆍ우승열패ㆍ적자생존의 원리에 근거한 ‘사회 진화론’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적 전쟁도 다를 바 없다. 그런 힘의 관계를 가리키는 갑을 관계와 그 관계에서 벌어지는 갑의 못된 횡포, 즉 ‘갑질’은 도처에 만연해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수많은 ‘을’의 눈물로 가득 찬 ‘갑질민국’, 즉 ‘갑질 공화국’이다.” 그러나 갑질은 결코 많은 권력과 금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저지르는 게 아니다. 그건 상대적이거니와 다단계 먹이사슬 구조로 되어 있어 전 국민의 머리와 가슴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삶의 기본 양식이다. 즉, 이른바 ‘억압 이양의 원리’에 따라, 상층부 갑질의 억압적 성격은 지위의 고저에 따라 낮은 쪽으로 이양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갑질 공화국’ 탄생 비밀의 열쇠는 우리가 세속적 진리로 믿고 있는 속담에서 찾을 수 있다. 그건 바로 “개천에서 용 난다”다. 우리는 개천에서 난 용을 보면서 열광하는 동시에 꿈과 희망을 품는다.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보면서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확신마저 갖는다. 그리고 그런 확신은 충분한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국제사회에선 ‘개천에서 난 용’이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들은 세계 무대에서 선두를 달라며 맹활약하고 있다. 우리는 내부적으로도 수많은 용을 배출했고, 내 집안은 아닐망정 한두 다리만 건너면 ‘개천에서 난 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고성장의 시대가 끝나면서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거의 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 특히 진보 인사들이 더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세상’에 대해 개탄하면서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게끔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은 우리 사회에서 진보적 가치에 충실한 것으로 평가된다. ‘개천에서 난 용’의 대표 선수로서 이 모델의 열렬한 예찬론자인 전 서울대 총장이자 전 국무총리인 정운찬은 ‘공정 사회는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라고까지 주장했는데, 이를 진보적 견해로 평가하는 게 우리의 지적ㆍ정서적 풍토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단순한 속담이 아니다. 그건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모델이자 심층 이데올로기로서 무게와 중요성을 갖는다.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은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코리언 드림’의 토대지만, 동시에 사회적 신분 서열제와 더불어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왜곡된 능력주의, 즉 ‘갑질’이라는 실천 방식을 내장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세계 무대의 선두에서 맹활약하는 재벌 기업들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으며, 지금도 각종 특혜를 누리는 건 물론 중소기업을 착취하거나 쥐어짜는 갑질이 그들이 내세우는 경쟁력의 주요 근거가 되고 있다. 용의 반열에 속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좋은 직장에 다니는 보통 사람들의 고연봉도 다른 사람들의 저임금이라는 희생 위에서 가능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게다가 ‘개천에서 난 용’은 자신을 배출한 개천을 돌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데에 앞장선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건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의 사회적 기회비용이다. 이 모델은 개천의 모든 자원, 특히 심리적 자원을 탕진할 뿐만 아니라 전 국민으로 하여금 개인과 가족 차원에서 용이 되기 위한 ‘각개약진’에 몰두하게 만든다. 그로 인해 공동체와 사회는 와해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개천에서 사는 모든 미꾸라지가 용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이론적 면죄부를 앞세워 극소수의 용이 모든 걸 독식하게 하는 승자독식주의를 평등의 이름으로 추진하는 집단적 자기기만과 자해를 저지르고 있다. 우리는 모두 다 용이 될 수는 없으며, 용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하며, 용이 되지 못한 실패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좌절과 패배감을 맛봐야 하는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을 깨지 않는 한 지금의 과도한 지역 간 격차, 학력ㆍ학벌 임금 격차, 정규직ㆍ비정규직 격차와 그에 따른 ‘갑질’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선 용이 되려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말자. 그러나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을 공적 차원에서 장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기 전에 이제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에 근거한 ‘전쟁 같은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그로 인한 과거의 성공 신화는 인정하되, 이제 세상이 크게 달라졌다는 걸 깨닫고, 전쟁 같은 삶의 종전은 아닐망정 휴전이라도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문제가 무엇인지 그 정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이념적ㆍ정치적 선악善惡 이분법에 사로잡혀 남 탓만 하기에 바쁘며, ‘너희들 때문’이라고 하는 증오의 소용돌이에 갇혀 있다. 그 ‘너희들’을 굴종시키거나 제거함으로써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그런 증오의 대결도 해볼 만한 일이긴 하지만, 그건 결코 답이 아니다. 모든 문제의 주범은 ‘너희들’이 아니라 ‘우리’다.
▣ 차례
머리말_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을 깨야 산다
제1장 ‘갑질공화국’의 파노라마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아 나는 개가 아니었지”
“사회정의를 위해 무릎을 꿇게 했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경비는 사람 취급도 안 하죠, 뭐”
제2장 ‘갑질’을 가르치는 교육
“공부 안 할래? 너 엄마 죽는 꼴 보고 싶니?”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원세대생이 연세대생 행세할까봐 우려된다”
“지잡대와 SKY는 하늘과 땅 차이지”
“난 돈 보내는 기계지 아빠가 아니다”
제3장 지위 불안과 인정투쟁
“내 친구 알지? 걔 남편 이번에 승진했대!”
“우리가 한우냐? 등급을 매기게”
“럭셔리 블로거들을 보면 내 삶이 처량해진다”
“예쁜 친구의 SNS를 보다가 참지 못하고 성형을 했다”
제4장 갑과 을, 두 개의 나라
“왜 우리는 가진 것마저 빼앗기면서도 가만히 있는가?”
“실업자로 사느니 교도소 가겠다”
“정규직 때려잡고 비정규직 정규직화하자”
“‘지방충’들 때문에 우리도 취업이 어렵다”
맺는말_ ‘비교하지 않는 삶’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