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 지음
소울메이트 / 2015년 3월 / 272쪽 / 15,000원
▣ 저자 류성룡
본관은 풍산이고, 자는 이현, 호는 서애다. 16세에 향시에 급제했고 25세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관직을 시작한 뒤, 여러 자리를 거쳐 1590년 우의정에 올랐다. 왜란에 대비해 형조정랑 권율과 정읍 현감 이순신을 각각 의주 목사와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했으며, 조선의 기존 방어체제인 제승방략 대신 진관제도를 주장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도체찰사로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했고 영의정이 되어 피난을 떠난 선조를 수행했으나 평양에 이르러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다. 평안도 도체찰사로서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함께 평양성을 수복한 뒤 충청ㆍ경상ㆍ전라 3도의 도체찰사가 되어 파주까지 진격했으며, 뛰어난 외교적 역량으로 명과 왜의 조선분할획책을 저지했다. 신분이 아닌 전문성과 실무능력을 중시한 인재채용정책을 주장했으며, 백성들을 위해 면천법ㆍ작미법 등의 각종 민생개혁정책을 만들었다. 1598년 북인의 탄핵을 받아 삭탈관직당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저술과 학문에 몰두했다. 1604년 다시 풍원부원군에 복직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1607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전쟁 후에 집필한 『징비록』, 『서애집』, 『신종록』, 『영모록』, 『운암잡기』 등이 전해진다.
▣ Short Summary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6년 7개월 중 만 5년간 정무를 보며 영의정과 4도 도체찰사직을 맡아 전쟁을 진두지휘하며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럼에도 그의 진면목을 기억하는 한국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순신을 천거한 재상, 피난길에 오른 선조를 수행한 영의정, 풍산 류씨의 걸출한 인물, 퇴계 이황의 제자인 성리학자 정도로만 우리에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국난을 맞아 애국과 위민의 가치를 잃지 않고 불철주야 나라를 위해 온몸을 바쳤던 류성룡의 활약상과 인간적 면모가 어떠했는지 여과 없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전란의 와중에 그는 과연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 그는 당시 탄핵론자들의 주장대로 명과의 외교와 일본과의 화의에 치중해 나라를 그르친 인물이었던가? 화려한 관직생활 뒤에 숨은 그의 인간적 면모는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여러 질문들을 떠올리며 류성룡이 남긴 말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이 책을 엮는 데 참고한 자료는 『서애집』, 『징비록』, 『선조실록』, 『선조수정실록』 등이다. 『서애집』은 류성룡이 죽은 지 27년 만인 1633년(인조 11)에 막내아들 수암 류진이 합천군수로 있을 때 해인사에서 간행한 시문집으로 권1ㆍ2는 류성룡의 연보다. 국보 제132호인 『징비록』은 류성룡이 직접 집필한 임진왜란 전란사로서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배경과 원인, 진행상황 등을 기록한 책이다. 조선 제14대 왕 선조의 재위 기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인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에서도 류성룡의 말을 가져왔다.
▣ 차례
엮은이의 말_ 진정한 리더십과 애민은 무엇인가
1장 곪아 있는 조선을 바꾸고자 직언하다
2장 임금이 떠나면 조선은 우리 소유가 아닙니다
3장 도성의 왜적을 일거에 소멸시켜야 합니다
4장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습니다
5장 나라를 구했지만 더 큰 시련이 시작되다
6장 나는 평생에 세 가지 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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