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07년 11월 / 414쪽 / 13,000원
▣ 저자 강준만
강준만은 사회문화 비평가이자 논객으로서, 그의 눈과 귀는 우리 사회를 향해 열려 있고 가슴은 하고 싶은 말로 가득하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한국 사회와 역사, 한국인과 커뮤니케이션한다. 그의 커뮤니케이션은 경계를 뛰어넘고 편견과 도식주의를 지양하며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실들, 주장들을 한데 모아 현재화하는 과정이다. 학문의 신비주의에 갇혀 있는 지식을 대중화하고 독단적인 주장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요 저서로는 『한국 현대사 산책』(전18권), 『대중문화의 겉과 속』(전3권), 『한국인 코드』, 『한국인을 위한 교양 사전』, 『한국 생활 문화 사전』,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쿨 에너지』 외 다수가 있다.
▣ Short Summary
러일전쟁에서 한국군 해산까지를 다룬 『한국 근대사 산책 4』에 이어 『한국 근대사 산책 5』는 '교육구국론에서 경술국치까지'가 주요 무대다. 이로써 『한국 근대사 산책 1~5』에서 전개된 '개화기 편'은 마무리된다. 518년 동안의 조선 역사가 끝난 1910년 8월 29일, 그날 거리 표정은 어떠했을까? 그날 경복궁에는 일장기가 걸렸고 일제는 병합을 축하하는 대대적인 행사를 벌였으며 등불행렬은 시가를 누볐다고 한다. 반면 한국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병합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연쇄 자결이 이어졌지만 그날의 종로 거리는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일상을 잃지 않았고' 실제 조용했다고 한다. 일제에 모든 실권이 넘어간 상황이라 체념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병합 전부터 일제의 철저한 단속으로 소란을 피우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민중들에게는 망국이 단지 착취의 주체가 바뀐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점도 추측할 수 있다.
오늘날의 맥락에서 조선의 마지막 역사를 읽으며 이렇게 된 원인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망국의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한다. 식민사관은 부정부패와 사대주의, 당파싸움 등 우리 민족의 결점에서 찾는다. 반면 민족사관은 식민사관에 대한 반발로 일제의 침략이라는 외부 원인을 더 강조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동전의 양면처럼 명암(明暗)의 양면을 다 보고 끌어안자는 뜻'을 전하며, 명암 이론이야말로 두 사관을 모두 넘어서는 '제3의 길'이라 믿는다. 아울러 제3의 길에 대한 하나의 사례를 주목한다. 여기에는 식민사관과 민족사관이 '역사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자기 성찰이 빠져 있다'고 보며 조선 망국의 원인을 '자기 성찰'을 담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첫째, 문명사적 전환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지성의 빈곤'이다. 둘째, 위정자들이 소국의식과 변방의식에 사로잡혀 외교정책의 결정권을 주도하지 못했고 그 결과 '외세 활용에 있어 실패했다'는 것이다. 셋째, 정치적 분열과 갈등을 조정·통합할 수 있는 정치 리더십이 부재하여 '국내 역량 결집의 실패'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넷째, 지도층의 근시안적 식견으로 부국강병을 위한 제도개혁이 지체됐고 인재 양성 제도가 부실하여 '제도화가 실패했다'는 요지다. 저자는 바로 이 네 가지 요소가 현재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검증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강조한다.
1장은 정미7조약과 군대 해산으로 한국의 국권이 거의 탈취된 때 다시 점화된 애국계몽운동의 불길이다. 정치활동이 금지된 상황에서 취해진 새로운 민족운동의 방법으로 교육구국운동이 펼쳐졌다. 2장은 국채보상운동의 좌절 요인과 유산을 살핀다. 국채보상운동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자율적인 여성운동의 효시이며 또한 기부문화의 효시로 평가된다. 3장은 치열하게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던 한말 의병운동의 족적과 오늘날에도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의병운동의 성격을 논한다. 4장은 망국의 위기가 고조되면서 자강(自强)이 생존의 문제로 부각된 당시, 조선 지식인들을 사로잡았던 양계초의 사상을 소개한다.
5장은 이토 히로부미의 처단으로 공판장에 선 안중근의 당당함과 그를 만든 모성 리더십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이와 달리 매국 경쟁에 앞장섰던 일진회의 모습도 비교해 볼 수 있다. 6장은 망국 직전의 생활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최고의 오락 여가활동이었던 영화에의 열광과 창덕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어 새로운 가정오락으로 등장시킨 일제의 이면도 읽을 수 있다. 일제는 동물원을 드나드는 이들에게 조선 왕조에 대한 박제된 기억과 식민통치를 체념적으로 수용하도록 각인시켰다. 7장은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끝으로 '고종과 대한제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접할 수 있다.
▣ 차례
제1장 다시 타오른 애국운동의 불길
제2장 국채보상운동의 좌절과 유산
제3장 한말 의병운동의 종언
제4장 사회진화론 · 영웅숭배주의 · 문약망국론
제5장 애국과 매국의 몸부림
제6장 망국직전의 생활문화
제7장 518년 만에 멸망한 조선
맺는말 '조선왕조 500년 신화'를 넘어서
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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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사상사 / 2007년 11월 / 414쪽 / 13,000원
▣ 저자 강준만
강준만은 사회문화 비평가이자 논객으로서, 그의 눈과 귀는 우리 사회를 향해 열려 있고 가슴은 하고 싶은 말로 가득하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한국 사회와 역사, 한국인과 커뮤니케이션한다. 그의 커뮤니케이션은 경계를 뛰어넘고 편견과 도식주의를 지양하며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실들, 주장들을 한데 모아 현재화하는 과정이다. 학문의 신비주의에 갇혀 있는 지식을 대중화하고 독단적인 주장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요 저서로는 『한국 현대사 산책』(전18권), 『대중문화의 겉과 속』(전3권), 『한국인 코드』, 『한국인을 위한 교양 사전』, 『한국 생활 문화 사전』,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쿨 에너지』 외 다수가 있다.
▣ Short Summary
러일전쟁에서 한국군 해산까지를 다룬 『한국 근대사 산책 4』에 이어 『한국 근대사 산책 5』는 '교육구국론에서 경술국치까지'가 주요 무대다. 이로써 『한국 근대사 산책 1~5』에서 전개된 '개화기 편'은 마무리된다. 518년 동안의 조선 역사가 끝난 1910년 8월 29일, 그날 거리 표정은 어떠했을까? 그날 경복궁에는 일장기가 걸렸고 일제는 병합을 축하하는 대대적인 행사를 벌였으며 등불행렬은 시가를 누볐다고 한다. 반면 한국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병합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연쇄 자결이 이어졌지만 그날의 종로 거리는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일상을 잃지 않았고' 실제 조용했다고 한다. 일제에 모든 실권이 넘어간 상황이라 체념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병합 전부터 일제의 철저한 단속으로 소란을 피우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민중들에게는 망국이 단지 착취의 주체가 바뀐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점도 추측할 수 있다.
오늘날의 맥락에서 조선의 마지막 역사를 읽으며 이렇게 된 원인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망국의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한다. 식민사관은 부정부패와 사대주의, 당파싸움 등 우리 민족의 결점에서 찾는다. 반면 민족사관은 식민사관에 대한 반발로 일제의 침략이라는 외부 원인을 더 강조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동전의 양면처럼 명암(明暗)의 양면을 다 보고 끌어안자는 뜻'을 전하며, 명암 이론이야말로 두 사관을 모두 넘어서는 '제3의 길'이라 믿는다. 아울러 제3의 길에 대한 하나의 사례를 주목한다. 여기에는 식민사관과 민족사관이 '역사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자기 성찰이 빠져 있다'고 보며 조선 망국의 원인을 '자기 성찰'을 담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첫째, 문명사적 전환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지성의 빈곤'이다. 둘째, 위정자들이 소국의식과 변방의식에 사로잡혀 외교정책의 결정권을 주도하지 못했고 그 결과 '외세 활용에 있어 실패했다'는 것이다. 셋째, 정치적 분열과 갈등을 조정·통합할 수 있는 정치 리더십이 부재하여 '국내 역량 결집의 실패'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넷째, 지도층의 근시안적 식견으로 부국강병을 위한 제도개혁이 지체됐고 인재 양성 제도가 부실하여 '제도화가 실패했다'는 요지다. 저자는 바로 이 네 가지 요소가 현재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검증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강조한다.
1장은 정미7조약과 군대 해산으로 한국의 국권이 거의 탈취된 때 다시 점화된 애국계몽운동의 불길이다. 정치활동이 금지된 상황에서 취해진 새로운 민족운동의 방법으로 교육구국운동이 펼쳐졌다. 2장은 국채보상운동의 좌절 요인과 유산을 살핀다. 국채보상운동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자율적인 여성운동의 효시이며 또한 기부문화의 효시로 평가된다. 3장은 치열하게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던 한말 의병운동의 족적과 오늘날에도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의병운동의 성격을 논한다. 4장은 망국의 위기가 고조되면서 자강(自强)이 생존의 문제로 부각된 당시, 조선 지식인들을 사로잡았던 양계초의 사상을 소개한다.
5장은 이토 히로부미의 처단으로 공판장에 선 안중근의 당당함과 그를 만든 모성 리더십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이와 달리 매국 경쟁에 앞장섰던 일진회의 모습도 비교해 볼 수 있다. 6장은 망국 직전의 생활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최고의 오락 여가활동이었던 영화에의 열광과 창덕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어 새로운 가정오락으로 등장시킨 일제의 이면도 읽을 수 있다. 일제는 동물원을 드나드는 이들에게 조선 왕조에 대한 박제된 기억과 식민통치를 체념적으로 수용하도록 각인시켰다. 7장은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끝으로 '고종과 대한제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접할 수 있다.
▣ 차례
제1장 다시 타오른 애국운동의 불길
제2장 국채보상운동의 좌절과 유산
제3장 한말 의병운동의 종언
제4장 사회진화론 · 영웅숭배주의 · 문약망국론
제5장 애국과 매국의 몸부림
제6장 망국직전의 생활문화
제7장 518년 만에 멸망한 조선
맺는말 '조선왕조 500년 신화'를 넘어서
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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