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천적 지식인의 삶,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
정두희 지음
아카넷/2001년 11월/351쪽/10,000원
▣ 저 자 정두희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전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 교환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 초기 정치지배세력 연구』『조선 시대 대간 연구』『미국에서의 한국사 연구』『하나의 역사, 두 개의 역사학』, 논문으로는「조선 초기 지리지의 편찬」「조선 건국초기 통치체제의 성립과 그 역사적 의미」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조광조(趙光祖)는 34세가 되던 중종 10년 8월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으며, 38세이던 중종 14년 11월에 일어난 기묘사화로 희생되었다. 그가 공적으로 활동한 기간은 만 4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4년 동안 조광조는 당시의 조선 왕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세조와 연산군을 거치면서 퇴색되었던 유교 이념을 다시금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다 했다.
저자는 바로 이 4년 동안에 조광조가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조광조는 체계적인 저술을 남기지 않았지만, 현재 전해지는 그의 문집에는 중종 10년 그가 알성문과에 응시할 때의 책제(과거 시험 문제)와 그에 대한 그의 대책문(답안)이 있다. 이 때의 알성시에서 중종은 재위 10여 년 동안 온갖 노력을 하였음에도 아직도 국가의 기강과 법도가 서지 못하는 까닭을 물었다.
국왕의 신임과 사림들의 공론의지 이외에는 자신의 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권력 기반이 없었던 조광조의 실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후 사림 정치가 구현되는 16세기 중기 이후 조선 사회에서 마치 유교 이념의 구현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쳤던 순교자처럼 존경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죽음으로 그가 추구하던 개혁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이후 조선 왕조의 유교 문화가 독창적인 발전을 이룩하는 데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가 취한 방향은 옳았을 뿐 아니라 계속 살아 남았던 것이다.
▣ 차 례
제1장 서론
제2장 중종 초 반역과 모반의 정치사
제3장 조광조의 등장
제4장 조광조의 알성시 대책문
제5장 폐비 신씨의 복위 문제에 대한 논쟁과 조광조
제6장 단종의 어머니 권씨 왕후 소릉의 복권
제7장 정몽주와 김굉필의 문묘 배향
제8장 소격서 폐지 논쟁에 나타난 조광조와 중종의 대립
제9장 돌아올 수 없는 길
제10장 중종 13년 5월의 대지진과 군자·소인 논쟁
제11장 현량과 : 이념과 현실의 갈등
제12장 기묘사화와 조광조
제13장 조광조의 복권과정과 16세기 조선의 성리학
제14장 실천적 지식인의 삶,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부록 : 조광조의 알성문과(謁聖文科) 시험 답안
정두희 지음
아카넷/2001년 11월/351쪽/10,000원
▣ 저 자 정두희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전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 교환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 초기 정치지배세력 연구』『조선 시대 대간 연구』『미국에서의 한국사 연구』『하나의 역사, 두 개의 역사학』, 논문으로는「조선 초기 지리지의 편찬」「조선 건국초기 통치체제의 성립과 그 역사적 의미」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조광조(趙光祖)는 34세가 되던 중종 10년 8월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으며, 38세이던 중종 14년 11월에 일어난 기묘사화로 희생되었다. 그가 공적으로 활동한 기간은 만 4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4년 동안 조광조는 당시의 조선 왕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세조와 연산군을 거치면서 퇴색되었던 유교 이념을 다시금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다 했다.
저자는 바로 이 4년 동안에 조광조가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조광조는 체계적인 저술을 남기지 않았지만, 현재 전해지는 그의 문집에는 중종 10년 그가 알성문과에 응시할 때의 책제(과거 시험 문제)와 그에 대한 그의 대책문(답안)이 있다. 이 때의 알성시에서 중종은 재위 10여 년 동안 온갖 노력을 하였음에도 아직도 국가의 기강과 법도가 서지 못하는 까닭을 물었다.
국왕의 신임과 사림들의 공론의지 이외에는 자신의 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권력 기반이 없었던 조광조의 실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후 사림 정치가 구현되는 16세기 중기 이후 조선 사회에서 마치 유교 이념의 구현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쳤던 순교자처럼 존경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죽음으로 그가 추구하던 개혁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이후 조선 왕조의 유교 문화가 독창적인 발전을 이룩하는 데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가 취한 방향은 옳았을 뿐 아니라 계속 살아 남았던 것이다.
▣ 차 례
제1장 서론
제2장 중종 초 반역과 모반의 정치사
제3장 조광조의 등장
제4장 조광조의 알성시 대책문
제5장 폐비 신씨의 복위 문제에 대한 논쟁과 조광조
제6장 단종의 어머니 권씨 왕후 소릉의 복권
제7장 정몽주와 김굉필의 문묘 배향
제8장 소격서 폐지 논쟁에 나타난 조광조와 중종의 대립
제9장 돌아올 수 없는 길
제10장 중종 13년 5월의 대지진과 군자·소인 논쟁
제11장 현량과 : 이념과 현실의 갈등
제12장 기묘사화와 조광조
제13장 조광조의 복권과정과 16세기 조선의 성리학
제14장 실천적 지식인의 삶,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부록 : 조광조의 알성문과(謁聖文科) 시험 답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