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 지음
불광출판사 / 2010년 10월 / 212쪽 / 13,800원
▣ 저자 혜초
혜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승려로 704년에 태어나 719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의 광주에서 인도 승려 금강지를 만나 밀교를 배우던 중 그의 권유로 20살의 젊은 나이에 구법 여행을 떠난다. 4년 동안 인도,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일대를 답사하고 중국 쿠처를 거쳐 장안으로 돌아온 혜초는 그 여정을 기록하여,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긴다. 그 후 다시 스승 금강지와 함께 밀교 경전을 연구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787년 입적했다고 전해진다.
혜초가 남긴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은 1908년 프랑스 학자 폴 펠리오(Paul Pelliot)가 중국 둔황 석굴에서 처음 발견하였다. 6,000자 남짓한 적은 분량으로, 세 권으로 된 원본을 축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교에 관한 내용뿐 아니라 정세 지리 풍속 언어까지 기록되어 있어 고대 동서 교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완벽한 저술의 형태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고전문학이며, 8세기 인도, 중앙아시아에 관한 유일한 기록이다.
▣ 역자 지안
1947년에 태어나 1970년 출가했다. 통도사에서 벽안 스님에게 불도의 길을 배운다. 통도사 강원 강주를 비롯해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고시위원 및 역경위원장을 역임했다. 35년간 교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쓰는 중이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종립 승가대학원장으로 승가 교육에 매진하고 있으며, 반야불교학당과 반야경전교실을 개설하여 많은 재가 불자를 위한 교학 교육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기신론 강의』, 『신심명 강의』, 『기초경전해설』, 『보현행원품 강의』,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다』 『처음처럼(초발심자경문)』 등과 역서로는 『대반니원경』, 『대승기신론강해』,『왕오천축국전』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글자 그대로 천축의 다섯 나라를 순례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견문록이자 여행기이다. 또한 구법의 길을 떠나 곳곳을 순례한 수행자의 구도기이다. 이 책이 쓰인 때는 무려 1,200여 년 전인 8세기였지만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세기 초이다.
1908년 프랑스의 탐험가이자 동양학자인 펠리오가 중국 돈황의 막고굴(莫高窟)에서 『왕오천축국전』을 발견하였다. 막고굴은 천불동 석굴이라고 불리듯 석굴을 파고 그 안에 불상을 모셔 놓고 예배와 기도를 드리던 곳으로 지금까지 대표적인 불교 유적지로 남아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왕오천축국전』은 30,000여 점에 달하는 돈황 문서 가운데 하나로 막고굴 안의 장경동(藏經洞)에서 발견된 것이다. 저자인 혜초(慧超)가 신라 사람으로 밝혀진 것은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되고 7년이 지난 1915년 일본의 불교학자 다카쿠스 준지로에 의해서다. 그 이전에 혜초는 중국의 밀교승으로 불공 삼장의 제자였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그가 『왕오천축국전』을 지은 저자로 신라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그의 생애는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하였다.
혜초는 신라 성덕왕(聖德王) 3년, 즉 서기 704년(일설에는 700년)에 태어나 787년에 중국 오대산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에서 입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출생지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열여섯 살인 719년에 당나라로 들어갔다고 알려졌다. 그는 당나라에 들어가 당시 인도에서 들어와 있던 밀교의 거장 금강지를 광주에서 만난다. 금강지는 중국 밀교의 초조(初祖)가 되었는데, 크샤트리야 계급 출신으로 나란타사의 적정지(寂靜智)를 따라 출가하였다.
혜초가 금강지를 만난 것은 금강지가 중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때였다. 혜초는 719년 중국에 갔고 금강지는 720년에 중국에 왔다. 혜초는 스승 금강지의 권유로 723년 광주를 떠나 인도로 들어갔다. 금강지가 인도에서 건너온 바닷길을 거꾸로 역방(逆方)하여 인도에 들어갔다고 알려져 있다. 그 후 약 4년간 혜초는 고아주에서 해로로 먼저 동천축으로 들어가 중천축, 남천축, 서천축, 북천축을 지나 카슈미르 재방으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북부로 해서 러시아 영인 중앙아시아를 경유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국의 신강성으로 들어와 727년 11월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가 있던 구자(龜玆: 현재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쿠차)를 거쳐 장안에 돌아왔다.
당나라로 돌아온 혜초는 다시 스승 금강지의 밑에서 밀교를 연구하였다.
만년에 혜초는 오대선 건원보리사에 들어가 예전에 하던 『대교왕경』한역본을 필수하다가 입적하였다. 그가 입적한 해를 780년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또 787년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왕오천축국전』은 혜초가 중국 남부의 광주(廣州)에서 배를 타고 남지나해를 통해 인도 동부로 들어가 지금의 바이샬리(본문의 폐사리국)에서 나체 수행자를 본 것을 시작으로 천축에서 여행이 시작된다. 원래 천축이라는 말은 고대 중국 사람들이 인도를 지칭한 말이었다. 인도를 동 서 남 북과 중앙으로 나누어 다섯 천축국이라고 한 것이다. 지금 전하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내용이 완전하지 않고 빠진 부분이 많은 결본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누락된 앞부분과 뒷부분의 내용을 알 수 없다. 그런 이유로 혜초의 순례도정기의 자초지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전해지는 내용대로 도정을 살펴보면 먼저 동천축에서 불교 성지들을 참배하고 중천축에서 남천축으로, 그리고 서천축으로 갔다가 북천축으로 이동하는 순서로 다섯 천축국을 순례한다. 그런 다음 혜초는 서역으로 가 대식국(大寔國 아랍)의 페르시아까지 갔다가 중앙아시아의 몇몇 호국을 둘러보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구자국을 거쳐서 중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기간이 4년이 걸렸는데, 723년에서 727년까지이다. 이 기간 동안에 40여 개의 나라를 방문하면서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하였다.
▣ 차례
일러두기
해제
『왕오천축국전』
01. 나체 외도를 보다
02. 부처님의 열반지, 구시나국
03. 최초의 설법지, 피라날사국
04. 마하보리사
05. 중천축국
06. 오천축의 풍습
07. 네 개의 큰 탑
08. 달밤에 고향 길 바라보니
09. 노래를 잘 하는 서천축국 사람들
10. 북천축의 사란달라국
11. 설산 너머 작은 나라 소발나구달라국
12. 절과 스님이 많은 탁사국
13. 중현(衆賢)의 고향, 신두고라국
14. 용지(龍池)가 있는 가라국
15. 토번의 관할 아래 있는 세 나라, 대발률국·양동국·사파자국
16. 설산 계곡에 있는 토번국
17. 남자들이 모두 머리를 깎고 사는 소발률국
18. 해마다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여는 건타라국
19. 왕이 삼보를 공경하는 오장국
20. 불교를 믿는 구위국
21. 대승불교를 믿는 람파국
22. 산에 나무가 없는 계빈국
23. 재를 잘 올리는 사율국의 왕과 수령
24. 군사력이 강한 범인국
25. 가죽 외투를 입고 사는 토화라국
26. 교역을 좋아하는 파사국
27. 살생을 좋아하며 불법을 모르는 대식국
28. 보물이 많이 나는 대불림국
29. 근친 혼인을 하는 호국(胡國)
30. 왕이 두 사람인 발하나국
31. 발하나국 동쪽에 있는 골돌국
32. 절도 스님도 없는, 돌궐족이 사는 곳
33. 객수(客愁)를 달랬던 호밀국
34. 약탈을 일삼는 식닉국
35. 중국 군사가 진을 치고 있는 총령진
36. 소륵국에도 중국 군대가 있다
37. 안서대도호부가 있는 구자국
38. 육식을 하지 않는 우전국
39. 안서에 도착하다
40. 속치마를 입는 오기국
『일체경음의』 「혜초왕오천축국전」
01. 해제
02. 『일체경음의』 「혜초왕오천축국전
불광출판사 / 2010년 10월 / 212쪽 / 13,800원
▣ 저자 혜초
혜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승려로 704년에 태어나 719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의 광주에서 인도 승려 금강지를 만나 밀교를 배우던 중 그의 권유로 20살의 젊은 나이에 구법 여행을 떠난다. 4년 동안 인도,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일대를 답사하고 중국 쿠처를 거쳐 장안으로 돌아온 혜초는 그 여정을 기록하여,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긴다. 그 후 다시 스승 금강지와 함께 밀교 경전을 연구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787년 입적했다고 전해진다.
혜초가 남긴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은 1908년 프랑스 학자 폴 펠리오(Paul Pelliot)가 중국 둔황 석굴에서 처음 발견하였다. 6,000자 남짓한 적은 분량으로, 세 권으로 된 원본을 축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교에 관한 내용뿐 아니라 정세 지리 풍속 언어까지 기록되어 있어 고대 동서 교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완벽한 저술의 형태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고전문학이며, 8세기 인도, 중앙아시아에 관한 유일한 기록이다.
▣ 역자 지안
1947년에 태어나 1970년 출가했다. 통도사에서 벽안 스님에게 불도의 길을 배운다. 통도사 강원 강주를 비롯해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고시위원 및 역경위원장을 역임했다. 35년간 교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쓰는 중이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종립 승가대학원장으로 승가 교육에 매진하고 있으며, 반야불교학당과 반야경전교실을 개설하여 많은 재가 불자를 위한 교학 교육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기신론 강의』, 『신심명 강의』, 『기초경전해설』, 『보현행원품 강의』,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다』 『처음처럼(초발심자경문)』 등과 역서로는 『대반니원경』, 『대승기신론강해』,『왕오천축국전』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글자 그대로 천축의 다섯 나라를 순례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견문록이자 여행기이다. 또한 구법의 길을 떠나 곳곳을 순례한 수행자의 구도기이다. 이 책이 쓰인 때는 무려 1,200여 년 전인 8세기였지만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세기 초이다.
1908년 프랑스의 탐험가이자 동양학자인 펠리오가 중국 돈황의 막고굴(莫高窟)에서 『왕오천축국전』을 발견하였다. 막고굴은 천불동 석굴이라고 불리듯 석굴을 파고 그 안에 불상을 모셔 놓고 예배와 기도를 드리던 곳으로 지금까지 대표적인 불교 유적지로 남아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왕오천축국전』은 30,000여 점에 달하는 돈황 문서 가운데 하나로 막고굴 안의 장경동(藏經洞)에서 발견된 것이다. 저자인 혜초(慧超)가 신라 사람으로 밝혀진 것은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되고 7년이 지난 1915년 일본의 불교학자 다카쿠스 준지로에 의해서다. 그 이전에 혜초는 중국의 밀교승으로 불공 삼장의 제자였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그가 『왕오천축국전』을 지은 저자로 신라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그의 생애는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하였다.
혜초는 신라 성덕왕(聖德王) 3년, 즉 서기 704년(일설에는 700년)에 태어나 787년에 중국 오대산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에서 입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출생지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열여섯 살인 719년에 당나라로 들어갔다고 알려졌다. 그는 당나라에 들어가 당시 인도에서 들어와 있던 밀교의 거장 금강지를 광주에서 만난다. 금강지는 중국 밀교의 초조(初祖)가 되었는데, 크샤트리야 계급 출신으로 나란타사의 적정지(寂靜智)를 따라 출가하였다.
혜초가 금강지를 만난 것은 금강지가 중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때였다. 혜초는 719년 중국에 갔고 금강지는 720년에 중국에 왔다. 혜초는 스승 금강지의 권유로 723년 광주를 떠나 인도로 들어갔다. 금강지가 인도에서 건너온 바닷길을 거꾸로 역방(逆方)하여 인도에 들어갔다고 알려져 있다. 그 후 약 4년간 혜초는 고아주에서 해로로 먼저 동천축으로 들어가 중천축, 남천축, 서천축, 북천축을 지나 카슈미르 재방으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북부로 해서 러시아 영인 중앙아시아를 경유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국의 신강성으로 들어와 727년 11월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가 있던 구자(龜玆: 현재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쿠차)를 거쳐 장안에 돌아왔다.
당나라로 돌아온 혜초는 다시 스승 금강지의 밑에서 밀교를 연구하였다.
만년에 혜초는 오대선 건원보리사에 들어가 예전에 하던 『대교왕경』한역본을 필수하다가 입적하였다. 그가 입적한 해를 780년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또 787년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왕오천축국전』은 혜초가 중국 남부의 광주(廣州)에서 배를 타고 남지나해를 통해 인도 동부로 들어가 지금의 바이샬리(본문의 폐사리국)에서 나체 수행자를 본 것을 시작으로 천축에서 여행이 시작된다. 원래 천축이라는 말은 고대 중국 사람들이 인도를 지칭한 말이었다. 인도를 동 서 남 북과 중앙으로 나누어 다섯 천축국이라고 한 것이다. 지금 전하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내용이 완전하지 않고 빠진 부분이 많은 결본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누락된 앞부분과 뒷부분의 내용을 알 수 없다. 그런 이유로 혜초의 순례도정기의 자초지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전해지는 내용대로 도정을 살펴보면 먼저 동천축에서 불교 성지들을 참배하고 중천축에서 남천축으로, 그리고 서천축으로 갔다가 북천축으로 이동하는 순서로 다섯 천축국을 순례한다. 그런 다음 혜초는 서역으로 가 대식국(大寔國 아랍)의 페르시아까지 갔다가 중앙아시아의 몇몇 호국을 둘러보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구자국을 거쳐서 중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기간이 4년이 걸렸는데, 723년에서 727년까지이다. 이 기간 동안에 40여 개의 나라를 방문하면서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하였다.
▣ 차례
일러두기
해제
『왕오천축국전』
01. 나체 외도를 보다
02. 부처님의 열반지, 구시나국
03. 최초의 설법지, 피라날사국
04. 마하보리사
05. 중천축국
06. 오천축의 풍습
07. 네 개의 큰 탑
08. 달밤에 고향 길 바라보니
09. 노래를 잘 하는 서천축국 사람들
10. 북천축의 사란달라국
11. 설산 너머 작은 나라 소발나구달라국
12. 절과 스님이 많은 탁사국
13. 중현(衆賢)의 고향, 신두고라국
14. 용지(龍池)가 있는 가라국
15. 토번의 관할 아래 있는 세 나라, 대발률국·양동국·사파자국
16. 설산 계곡에 있는 토번국
17. 남자들이 모두 머리를 깎고 사는 소발률국
18. 해마다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여는 건타라국
19. 왕이 삼보를 공경하는 오장국
20. 불교를 믿는 구위국
21. 대승불교를 믿는 람파국
22. 산에 나무가 없는 계빈국
23. 재를 잘 올리는 사율국의 왕과 수령
24. 군사력이 강한 범인국
25. 가죽 외투를 입고 사는 토화라국
26. 교역을 좋아하는 파사국
27. 살생을 좋아하며 불법을 모르는 대식국
28. 보물이 많이 나는 대불림국
29. 근친 혼인을 하는 호국(胡國)
30. 왕이 두 사람인 발하나국
31. 발하나국 동쪽에 있는 골돌국
32. 절도 스님도 없는, 돌궐족이 사는 곳
33. 객수(客愁)를 달랬던 호밀국
34. 약탈을 일삼는 식닉국
35. 중국 군사가 진을 치고 있는 총령진
36. 소륵국에도 중국 군대가 있다
37. 안서대도호부가 있는 구자국
38. 육식을 하지 않는 우전국
39. 안서에 도착하다
40. 속치마를 입는 오기국
『일체경음의』 「혜초왕오천축국전」
01. 해제
02. 『일체경음의』 「혜초왕오천축국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