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오천축국전
혜초 지음 | 불광출판사
왕오천축국전
혜초 지음
불광출판사 / 2010년 10월 / 212쪽 / 13,800원『왕오천축국전』
부처님의 열반지, 구시나국
한 달 걸려 구시나국에 도착했다. 부처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신 곳이다. 성은 이미 황폐해져서 사람 사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자리에 탑을 세워 두었는데 스님 한 분이 그곳을 청소하면서 물을 뿌리고 있다.
해마다 팔월 초파일이 되면 비구와 비구니 그리고 도인과 속인들이 탑 있는 곳에 모여 크게 공양을 베푸는 행사를 치른다. 탑 상공에는 깃발이 걸려 있는데 그 수가 많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깃발을 쳐다본다. 이 날을 맞아 발심을 하는 자가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이 탑의 서쪽에 이라발저라는 강이 있다. 강물이 남쪽으로 이천리 밖으로 흘러 항하(恒河, 갠지스 강)으로 들어간다. 이 탑 주위 사방으로 사람이 잘 가지 않는 곳에 거칠게 우거진 숲이 있다. 탑으로 예배를 하러 가는 자들이 무소나 호랑이에게 해를 입기도 한다고 한다. 이 탑 동남쪽 삼십리에 절이 하나 있다. 사반단사라는 절이다. 사람들이 공양을 올리면 탑에 두는데 청소하는 스님의 몫이 되어 의복과 음식 등, 탑에 바쳐진 것을 가져다 먹고 입는다.
최초의 설법지, 피라날사국
어느 날 피라날사국에 도착했다. 이 나라 역시 황폐했다. 왕도 없었다. 구륜 등 다섯 비구의 소상(塑像)이 탑 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 당간(幢竿) 위에 사자상이 있다. 당간은 매우 화려하다. 다섯 사람이 함께 안을 다섯 아름 정도 되지만 새겨진 문양이 섬세하다. 탑을 세울 때 당간도 함께 만들었다. 절 이름은 달라작갈라이다. 여기도 외도들이 있다. 옷을 입지 않고 몸에 재를 바른다. 대천(大天)을 섬기는 이들이다.
혜초의 여행기에는 몇 월 며칠이라는 날짜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 순례를 하면서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피라날사국 즉 바라나시에 가는 데 여러 날이 걸린 어느 날 도착했다고 하였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바라나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초전법륜지(初轉法輪地)인 녹야원(鹿野苑)이 있는 도시이다. 갠지스 강 서쪽에 있는 이 도시는 현재 베나레스라 불리고 있는데, 고대 인도의 16국 가운데 카시의 수도였던 곳으로 힌두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혜초보다 약 100년쯤 먼저 이곳을 방문하였던 중국의 현장은 천사(天祠) 즉 힌두 사원이 100여 개가 되고 옷을 입지 않은 알몸에 재를 바르는 외도가 10,000여 명이 된다고 『대당서역기』에서 기록하고 있다.
오천축의 풍습
옷 입는 복장, 언어, 풍속, 법률은 천축의 다섯 나라가 서로 비슷하다. 오직 남천축국 시골 백성들의 말은 차이가 있어 다르다. 그러나 관리들이 쓰는 말은 중천축국과 다르지 않다. 천축의 다섯 나라 법에는 사람 목에 칼을 씌우거나 몽둥이로 때리거나 감옥에 가두는 일이 없다. 죄가 있는 자에게는 죄의 경중에 따라 벌금을 물게 하고 형벌이나 죽이는 일은 없다. 위로는 국왕에서부터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수렵에 나가서 매를 놓아 짐승을 잡게 하거나 사냥개를 달리게 하는 등의 일을 보지 못했다.
길에는 비록 도적들이 많으나 물건만 빼앗고 사람을 놓아주며 해치거나 죽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물건을 빼앗기지 않으려 하다가는 곧잘 상해를 당한다. 당이 무척 더워 초목이 늘 푸르며 서리나 눈이 내리는 일이 없다. 먹는 것은 멥쌀과 미숫가루, 빵, 곡식가루, 우유로 만든 식품, 수락 등이다. 간장은 없고 소금은 있다. 모두 흙으로 만든 솥을 사용하여 밥을 지어 먹으며 무쇠 가마 등은 없다.
백성들에게 특별한 부역이나 세금은 없다. 다만 밭에서 나는 곡식을 거두어 다섯 섬을 왕에게 바친다. 왕이 사람을 보내 운반해 가고 땅 주인이 보내는 일은 하지 않는다. 백성들은 가난한 사람이 많고 부자는 적다. 왕과 관리 집안이나 부유한 사람들은 상 하의의 옷 한 벌을 입고, 다른 사람들은 하의만 입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천 반 조각 정도를 몸에 걸친다. 여자들도 그렇게 한다.
이 나라 왕이 매번 관아(官衙)에 나와 앉으면 수령들과 백성들이 모두 와서 왕을 에워싸고 사방에 둘러앉는다. 그리고는 어떤 문제에 대한 논쟁을 한다. 소송이 분분하여 매우 시끄럽지만 왕은 듣기만 하고 화를 내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천천히 '그대는 옳고, 그대는 옳지 않다'고 알린다. 그러면 백성들은 왕의 이 한마디 말을 듣고 결정하여 다시 더 이상 따지지 않는다.
왕과 백성들은 삼보(三寶)를 매우 공경하고 믿는다. 만약 스님 앞에 마주하게 되면 왕이나 수령들은 땅바닥에 앉고 평상에 앉지 않는다. 왕이나 수령들이 어디에 가고 올 때면 직접 안는 상(牀)을 가지고 다닌다. 목적지에 이르면 곧 자기의 상에 앉고 남의 상에는 앉지 않는다.
절이나 왕의 집이 모두 삼층으로 지어졌는데, 아래층은 창고로 쓰고 위 두 층에는 사람이 산다. 여러 큰 수령들의 집도 그러하다. 지붕은 평평하고 벽돌과 목재로 지었다. 그 밖의 집은 모두 초가집인데, 사막의 집처럼 배가 지붕의 한쪽으로만 내리게 되어 있고 또한 단층이다.
땅에서 나는 것은 모직물, 천, 코끼리, 말 등이다. 이곳에는 금과 은이 나지 않아 외국에서 들여온다. 낙타나 노새, 당나귀, 돼지 같은 가축도 기르지 않는다. 소들은 모두 흰 소인데, 10,000마리 중 어쩌다가 드물게 한 마리씩 검은 놈이 있다. 양과 말은 아주 적어 왕만이 200~300마리의 양과 60~70필의 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 밖의 수령과 백성은 모두 가축을 기르지 않는다. 오직 소만 즐겨 길러 젖과 수락 등의 식품을 얻는다. 토착 주민들은 착하여 살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 점포 안에는 짐승을 도살해서 고기를 파는 곳을 볼 수가 없다.
노래를 잘 하는 서천축국 사람들
다시 남천축국에서 북쪽으로 두 달을 가서 서천축국의 왕이 사는 성에 도착했다. 서천축국 왕도 500~600마리의 코끼리를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나는 산물로는 모직물과 천, 은, 코끼리, 말, 양, 소가 있고, 보리와 밀, 콩 등이 많이 난다. 벼는 아주 적고 주식(主食)이 빵과 보릿가루, 우유, 수락 등이다. 시장의 매매는 은전이나 모직물, 천으로 한다. 왕과 수령, 백성들은 삼보를 지극히 존경하여 믿는다. 절도 많고 스님들도 많으며 대승과 소승이 함께 행해지고 있다.
땅이 매우 넓어서 서쪽으로는 서해에 이른다. 이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노래를 잘 부른다. 다른 사천축국 사람들은 이 나라 사람만큼은 못 부른다고 한다. 또한 사람 목에 칼을 씌우거나 곤장을 치며 감옥에 가두고 사형에 처하는 형벌이 없다고 한다. 지금은 대식(大寔. 아랍)의 내침으로 나라의 절반이 파괴되었다. 오천축국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다닐 때 양식을 갖고 다니지 않고 가는 곳마다 구걸을 하여 얻어먹고 다닌다. 오직 왕이나 수령들은 출타할 때 스스로 식량을 싸가지고 다니며, 백성들의 것을 먹지 않는다.
설산 계곡에 있는 토번국
동쪽의 토번국(吐藩國, 티베트)은 순전히 얼어붙은 산, 눈 덮인 산과 계곡 사이에 있다. 이곳은 모직 천으로 천막을 치고 생활한다. 성곽이나 집이 없다. 사는 곳은 돌궐과 비슷하고, 물과 풀을 따라 이동한다. 이 나라 왕은 비록 한 곳에 거처하지만 성이 없다. 그저 털로 짠 모직으로 만든 천막에 의지해 살면서 일을 한다. 땅에서는 양, 말, 묘우(猫牛. 야크), 모포, 베 종류가 생산된다. 입는 옷은 털옷과 베옷, 가죽옷이며 여자들도 그렇다. 땅의 기후가 무척 추워 다른 나라와 다르다. 가정에서는 늘 보릿가루 음식을 먹고 가끔 떡과 밥을 먹는다. 국왕이나 백성들이 모두 불법을 알지 못하며 절도 없다.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는 거기에 누워 잠자기 때문에 침상이 없다. 사람들은 얼굴이 새까맣고, 흰 사람은 아주 드물다. 언어는 다른 나라들과 다르다. 옷에서 이( )를 잡아서 잘 먹는다. 털옷과 베옷을 입기 때문에 서캐와 이가 무척 많은데, 잡기만 하면 곧바로 입 속에 넣어 버리고 다른 데 버리지 않는다.
산에 나무가 없는 계빈국
람파국에서 서쪽으로 산에 들어가 8일을 가 계빈국에 이르렀다. 이 나라도 건타라 왕의 관할 아래에 있다. 이곳 왕은 여름은 계빈에 있으면서 서늘한 곳을 따라 지내고, 겨울에는 건타라로 가서 따뜻한 곳으로 가 지낸다. 그곳에는 눈이 없고 따뜻하며 춥지 않기 때문이다. 계빈국은 겨울에 눈이 쌓여 날씨가 춥다.
이 나라의 토착인은 호족(胡族)이고 왕과 군사는 돌궐인이다. 옷 입는 복장과 언어, 음식은 토화라국과 대동소이하다. 남녀 불문하고 모두 모직 적삼과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 남녀의 복장이 차이가 없다. 남자는 모두 수염과 머리를 깎고, 여자는 머리를 기른다. 이 나라에서는 낙타, 노새, 양, 말, 당나귀, 소, 모직물, 포도, 보리와 밀, 울금향(鬱金香) 등이 난다.
나라 사람들이 삼보를 크게 공경하여 믿으며, 절도 많고 스님들도 많다. 백성들은 집집하다 절을 지어 삼보를 공양한다. 큰 성안에 사사사( 寺. 사히스)라는 절이 하나 있다. 이 절 안에서 부처님의 나계(螺 ) 골사리를 보았다. 왕과 관리들, 백성들이 매일 공양을 올리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소승이 행해지고 있다. 이 나라 사람들도 산속에서 살고 있는데, 산에 초목이라곤 없어 마치 산이 불에 탄 것과 같다.
가죽 외투를 입고 사는 토화라국
범인국에서 북쪽으로 20일 가서 토화라국(吐火羅國. 토카리스탄)에 이르렀다. 왕이 사는 성의 이름은 박저야이다. 그런데 지금은 대식(아랍)의 군사가 이곳을 진압해 있어 왕은 할 수 없이 동쪽으로 달아나 한 달 걸리는 포특산(蒲特産)에 가서 살고 있다. 그래서 대식의 관할 아래에 있게 되었다. 언어는 다른 나라들과 다르며, 계빈국의 언어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도 많다. 가죽 외투와 모직 옷을 입는다. 위로 국왕으로부터, 아래로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죽외투를 입는다. 이 땅에는 낙타, 노새, 양, 말, 모직, 천, 포도가 많으며 빵을 즐겨 먹는다. 땅이 추워 겨울에는 서리와 눈이 내린다. 국왕과 수령 및 백성들은 삼보를 매우 공경한다. 절도 많고 스님들도 많으며 소승법이 행해지고 있다. 고기와 파, 부추 등을 먹지 않으며, 외도를 섬기지 않는다. 남자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여자는 머리를 기른다. 이곳에는 산이 많다.
살생을 좋아하며 불법을 모르는 대식국
파사국에서 북쪽으로 열흘을 가서 산으로 들어가 대식국(大寔國)에 이르렀다. 대식국 왕은 본국에 살지 않고 소불림국(小佛臨國. 현재의 시리아)에 가서 산다. 이는 그 나라를 쳐서 정복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소불림은 다시 산이 많은 섬으로 갔다. 처소가 대단히 견고해서 이 때문에 간 것이다.
이 땅에는 낙타, 노새, 양, 말, 모직물, 모포가 나며 보물도 있다. 옷 입는 복장은 가는 모직으로 만든 헐렁한 적삼을 입고, 또 그 위에 한 장의 모직 천을 걸친다. 이것을 웃옷으로 한다. 왕과 백성의 복장은 한 가지로 다름이 없다. 여자도 헐렁한 적삼을 입는다. 남자는 머리를 깎으나 수염은 그대로 두며 여자는 머리를 기른다.
음식을 먹는 것은 귀천을 묻지 않고 다 같이 한 그릇에서 먹는다. 손에 숟가락과 젓가락도 들었으나 보기가 매우 흉하다. 자기 손으로 죽여 잡은 것을 먹어야 무한한 복을 얻는다고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살생을 좋아하고 하늘을 섬기거나 불법(佛法)을 알지 못한다. 나라 풍습에 무릎을 꿇고 절하는 법이 없다.
근친 혼인을 하는 호국(胡國)
대식국의 동쪽에는 여러 호국이 있다. 바로 안국(安國), 조국(曹國), 사국(史國), 석라국(石라國), 미국(米國), 강국(康國) 등이다. 비록 나라마다 왕이 있으나 모두 대식(아랍)의 관할 아래 있다. 나라가 협소하고 군사도 적어 능히 스스로 나라를 지키지 못하다.
이 땅에서는 낙타, 노새, 양, 말, 모직물 같은 것이 나며, 옷 입는 복장은 모직 적삼과 바지, 그리고 가죽 외투가 있다. 언어는 다른 여러 나라들과 다르다. 또한 이 여섯 나라는 천교를 섬기며 불법은 알지 못한다. 유독 강구에만 절이 하나 있고 스님이 한 명 있기는 하나, 그 또한 (불법을) 이해하지 못하며 공경하지도 않는다. 이들 호국에서는 모두 수염과 머리를 깍고 흰 털 모자를 즐겨 쓴다.
아주 나쁜 풍속이 있어 혼인을 근친(近親)간에 아무하고나 한다. 어머니나 누나나 누이동생을 아내로 삼기까지 한다. 파사국에서도 어머니를 아내로 삼는다. 그리고 토화라국을 비롯해 계빈국이나 범인국, 사율국 등에서는 형제가 열 명이든 다섯 명이든 세 명, 두 명이든 간에 공동으로 한 명의 아내를 취하며, 각자가 한 부인을 얻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공동으로 사는 집안이 파탄되는 것을 두려워해서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부터 변방의 이민족을 비하하여 오랑캐로 불러온 예가 있다. 이는 한족(漢族)중심의 우월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중화사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변방의 네 방향을 따라 동쪽은 동이(東夷), 서쪽은 서융(西戎), 남쪽은 남만(南蠻), 북쪽은 북적(北狄)이라 불렀다. 이것은 진나라 시황제(始皇帝)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국토의 경계선이 분명해지고 난 뒤부터 사용한 말이라고 한다. 원래 호(胡)라는 말은 서융의 융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으나 나중에는 서역의 별칭으로 쓰였다. 남북조 이후 서역 문물이 대거 중국으로 유입하면서 서역문물에 대해서는 호(胡)자를 붙여서 구별하였다.
절도 스님도 없는, 돌궐족이 사는 곳
호국(胡國) 이북은 북쪽으로는 북해에, 서쪽으로는 서해에, 동쪽으로는 중국에 이르며, 그 이북은 모두 돌궐족이 사는 지역이다. 이들 돌궐족들은 불법을 알지 못하며 절이나 스님들도 없다. 옷 입는 복장은 모직 외투와 모직 적삼이며 고기를 먹는다. 성곽을 거처로 하지 않고 전포로 천막을 쳐서 집으로 삼는다. 거주할 곳을 찾아다닐 때는 이 천막을 몸에 지니고 물과 풀을 따라 다닌다. 남자들은 모두 수염과 머리를 깎고 여자는 머리를 기른다. 언어는 다른 나라들과 같지 않다. 이 나라 사람들은 살생을 좋아하고 선악을 알지 못한다. 땅에서는 낙타, 노새, 양, 말 종류가 많이 난다.
이 장에서 말하는 북해와 서해는 아랄해와 지중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아랄해는 지금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두 나라의 영토에 걸쳐 있는 바다이다. 돌궐은 6세기 중엽부터 몽골 고원을 중심으로 흉노에 이어 두 번째로 통일된 유목제국을 세워 약 200년간 중앙아시아 일대를 장악했던 민족이다.
약탈을 일삼는 식닉국
호밀국 북쪽 산속에는 아홉 개의 식닉국(識匿國)이 있다. 아홉 왕은 각각 군사들을 거느리고 사는데, 한 왕만이 호밀 왕에게 예속되어 있고 나머지는 각자 모두 자립하여 다른 나라에 예속되어 있지 않다. 가까운 곳에 있는 두 굴에 사는 왕은 중국에 투항하여 안서(安西)에 사신을 보냈으며 중국과의 왕래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왕과 수령만이 모직 옷과 가죽 외투를 입고 나머지 백성들의 복장은 가죽 외투와 전포 적삼뿐이다. 이 땅은 매우 춥다. 설산에 살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과 같지 않다. 이 나라도 양, 말, 소, 노새가 있으며, 언어는 달라서 다른 나라들과 같지 않다. 왕은 늘 200~300명을 대파밀천(大播蜜川. 파마르 고원)으로 보내 장사하는 호족들이나 사신들의 물건을 약탈하도록 한다. 하지만 비단을 약탈해 얻게 되면 창고에 그대로 쌓아두고 못 쓰게 할 뿐, 옷을 지어 입는 법은 알지 못한다. 이곳 식닉국 같은 나라에는 불교가 없다.
육식을 하지 않는 우전국
안서(安西)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우전국(于전國)까지의 거리는 2,000리이다. 이곳에도 중국 군사가 많이 주둔하고 있다. 절이 많고 스님들도 많으며 대승법이 행해지고 있다. 육식을 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동쪽은 모두 당나라의 영토이다. (당나라에 관한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