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강호성 지음
스타북스 / 2006년 11월 / 351쪽 / 15,000원
▣ 저자
이준구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교육학과를 거쳐 일본 스쿠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대학에서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다. 홍익대학교 학보사 주간과 전국대학신문협의회 회장, 대한교육연합회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는「조선조 말기의 근대화에 있어서」, 「전환기의 한국사회에 관한 연구」등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교육학과 한국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해왔다. 또한 1956년 〈조선일보〉에 《우리아기》로 문단에 데뷔해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아동문학 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국제펜클럽과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인간학회 회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와 사상』, 『사회사상사』, 『현대논리학』, 『한·일 양국의 근대화와 교육』, 『코스모스 피는 길』, 『독서와 논술』, 『철학아 놀자1,2』등이 있다.
강호성 조선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후, 배낭여행을 통해 접한 일본문화에 호기심을 갖게 된 계기로 다시 외국어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 문화대학에서 일 년간 수학하였다. 일본에 있는 동안 한·일 비교문화에 대한 글을 잡지사에 기고하였고, 귀국 후 번역 일을 하다 잡지사에 근무하면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상하였다. 현재는 KBS구성작가를 시작으로 출판기획과 함께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 Short Summary
조선시대 선비들 역시 높은 관직에 있을수록 많은 청탁과 뇌물의 유혹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가족보다 백성들의 마음과 끼니를 걱정했던 청백리들도 있었다. 이 책은 그러한 청백리들의 이야기를 나열한다. 성종이 청렴의 표본으로 삼았던 양관을 시작으로, 공신전을 백성들에게 되돌려 주었던 김신국, 공물을 바치는 백성의 수고로움을 생각하여 평생 초 한 자루를 쓰지 않고 등잔불 아래서 『지봉유설』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해냈던 이수광, 그리고 서른일곱 번이나 사직서를 올려 영의정 자리에서 물러났던 정태화 등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주지할 바는 이러한 청백리들의 이야기를 통해 '참다운 청백정신이란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점이다.
흔히 청백리라고 하면 개념은 덮어놓고 '가난한 관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설령 세끼 밥을 다 먹고 살면서라도 관리로서 대체(大體)와 소절(小節)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세 끼를 굶으면서 도선(徒善)만 하는 관리보다는 오히려 더 큰 청백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체는 공적인 일이고 소절은 개인 간의 사사로운 인정이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 사이라 하더라도 소절보다 대체를 앞세우면 그것이 청백리인 것이다. 그것은 조선시대 식자들의 벼슬관이기도 했다. 즉 장사꾼이 장사를 하되 남을 속여서 제 이익만을 챙긴다면 비리가 되듯이, 나라 일을 하는 관리도 비록 입신을 위해 벼슬길에 올랐을지라도 사(私)보다 자신이 처해 있는 공도(公道)를 먼저 생각하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당시 선비들의 사상이었다.
옛날 사람들도 가문을 빛내고 이름을 떨치는 일을 바랐지만 벼슬이 높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즉, 집안에 정승이나 판서가 몇 사람 나왔다는 것보다 홍문관 대제학이 몇 사람 나왔다거나 교리 아무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것을 훨씬 명예스럽게 생각했다. 벼슬의 품계로는 영의정이나 판서가 높았지만 대제학이나 교리는 세상이 다 알아주는 청직이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관리의 급료라는 것이 형편없어서 나라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는 요새말로 '국물'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임금들은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청백리를 뽑아 표창하고 왕조의 기록 위에다 영원히 이름을 올려 추앙하도록 하였으니 관리들은 한 번쯤은 모두 다 '청백리록'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기를 꿈꿨다. 더욱이 파란만장한 당쟁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삼가고 욕심을 자제하는 청백정신이 요구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평생 청백정신을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몸, 이름, 출신, 은퇴가 허물이 없다면 충효와 문자와 덕업도 온전하다 하였다. 큰 벼슬을 한 대신이나 고매한 학문의 업적을 남긴 유학의 거장들도 젊어서는 재기와 야망에 불타 덕업을 실행하기가 어렵고, 늙어서는 노욕이 끈질기게 붙어 다녀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다. 즉 어느 쪽이 되었건 욕심을 버리지 않고서는 남에게 덕업을 온전히 끼치기가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일말의 욕심이 없다면 살아갈 목표도 없을 것이다. 목표를 향해 달리기 위해서는 욕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 욕심의 둘레가 어디까지 미치느냐에 따라 사람이 성실하게도, 악하게도 되는 것이니, 청백정신이란 덮어놓고 가난하게만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소명감을 높이 의식하는 정신이라 할 것이다.
▣ 차례
임금이 행색도를 청렴의 표본 삼다 ― 양관
뛰어난 수완으로 나랏일 돌보다 ― 이서
판서 위세 부린 아들을 꾸짖다 ― 홍언필
만조백관이 인정한 청문으로 들어가다 ― 조사수
죽은 조상은 손자의 일을 모른다 ― 김신국
낙방자의 답안지에서 급제자를 뽑다 ― 이문원
구멍난 부들방석도 조심스럽다 ― 이시백
얼룩진 비단치마에 포도그림으로 갚다 ― 홍수주
공신전 반환하고 백성에게 돌려주다 ― 이해
죽을 각오로 바둑판을 쓸어버리다 ― 김수팽
걸인청으로 빈민을 구제하다 ― 이지함
단벌 옷 빨아 알몸에 관복만 입고 외출하다 ― 김덕함
돈 보기를 흙처럼 하다 ― 이약동
벼슬에 연연하지 않는다 ― 이황
대의를 위해 핏줄도 잘라내다 ― 백인걸
한 밥상에 두 고기 반찬을 올리지 않는다 ― 민성휘
초 한 자루로 백성의 수고로움을 알다 ― 이수광
손님에게 술 대신 간장 탄 냉수 대접하다 ― 이탁
나이 칠십 동안 무명이불만 고집하다 ― 장응일
평생을 옷 하나, 이불 하나로 살다 ― 신흠
돗자리를 짜서 생계를 잇다 ― 이시원
왕자도 엄한 법규로 다스리다 ― 홍흥
관기의 유혹을 뿌리치다 ― 송인수
잣은 높은 산에 있고 꿀은 백성의 집 벌통 안에 있다 ― 정붕
서른일곱 번 영의정 사표를 내다 ― 정태화
철저하게 청탁을 제거하다 ― 임담
죽마고우의 명태 한 마리도 받지 않는다 ― 이후백
색과 투와 득을 계로 삼다 ― 오운겸
한평생 나물과 오이로 연명하다 ― 조원기
죽음을 초연히 받아들이다 ― 정광필
스타북스 / 2006년 11월 / 351쪽 / 15,000원
▣ 저자
이준구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교육학과를 거쳐 일본 스쿠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대학에서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다. 홍익대학교 학보사 주간과 전국대학신문협의회 회장, 대한교육연합회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는「조선조 말기의 근대화에 있어서」, 「전환기의 한국사회에 관한 연구」등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교육학과 한국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해왔다. 또한 1956년 〈조선일보〉에 《우리아기》로 문단에 데뷔해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아동문학 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국제펜클럽과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인간학회 회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와 사상』, 『사회사상사』, 『현대논리학』, 『한·일 양국의 근대화와 교육』, 『코스모스 피는 길』, 『독서와 논술』, 『철학아 놀자1,2』등이 있다.
강호성 조선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후, 배낭여행을 통해 접한 일본문화에 호기심을 갖게 된 계기로 다시 외국어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 문화대학에서 일 년간 수학하였다. 일본에 있는 동안 한·일 비교문화에 대한 글을 잡지사에 기고하였고, 귀국 후 번역 일을 하다 잡지사에 근무하면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상하였다. 현재는 KBS구성작가를 시작으로 출판기획과 함께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 Short Summary
조선시대 선비들 역시 높은 관직에 있을수록 많은 청탁과 뇌물의 유혹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가족보다 백성들의 마음과 끼니를 걱정했던 청백리들도 있었다. 이 책은 그러한 청백리들의 이야기를 나열한다. 성종이 청렴의 표본으로 삼았던 양관을 시작으로, 공신전을 백성들에게 되돌려 주었던 김신국, 공물을 바치는 백성의 수고로움을 생각하여 평생 초 한 자루를 쓰지 않고 등잔불 아래서 『지봉유설』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해냈던 이수광, 그리고 서른일곱 번이나 사직서를 올려 영의정 자리에서 물러났던 정태화 등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주지할 바는 이러한 청백리들의 이야기를 통해 '참다운 청백정신이란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점이다.
흔히 청백리라고 하면 개념은 덮어놓고 '가난한 관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설령 세끼 밥을 다 먹고 살면서라도 관리로서 대체(大體)와 소절(小節)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세 끼를 굶으면서 도선(徒善)만 하는 관리보다는 오히려 더 큰 청백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체는 공적인 일이고 소절은 개인 간의 사사로운 인정이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 사이라 하더라도 소절보다 대체를 앞세우면 그것이 청백리인 것이다. 그것은 조선시대 식자들의 벼슬관이기도 했다. 즉 장사꾼이 장사를 하되 남을 속여서 제 이익만을 챙긴다면 비리가 되듯이, 나라 일을 하는 관리도 비록 입신을 위해 벼슬길에 올랐을지라도 사(私)보다 자신이 처해 있는 공도(公道)를 먼저 생각하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당시 선비들의 사상이었다.
옛날 사람들도 가문을 빛내고 이름을 떨치는 일을 바랐지만 벼슬이 높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즉, 집안에 정승이나 판서가 몇 사람 나왔다는 것보다 홍문관 대제학이 몇 사람 나왔다거나 교리 아무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것을 훨씬 명예스럽게 생각했다. 벼슬의 품계로는 영의정이나 판서가 높았지만 대제학이나 교리는 세상이 다 알아주는 청직이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관리의 급료라는 것이 형편없어서 나라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는 요새말로 '국물'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임금들은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청백리를 뽑아 표창하고 왕조의 기록 위에다 영원히 이름을 올려 추앙하도록 하였으니 관리들은 한 번쯤은 모두 다 '청백리록'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기를 꿈꿨다. 더욱이 파란만장한 당쟁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삼가고 욕심을 자제하는 청백정신이 요구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평생 청백정신을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몸, 이름, 출신, 은퇴가 허물이 없다면 충효와 문자와 덕업도 온전하다 하였다. 큰 벼슬을 한 대신이나 고매한 학문의 업적을 남긴 유학의 거장들도 젊어서는 재기와 야망에 불타 덕업을 실행하기가 어렵고, 늙어서는 노욕이 끈질기게 붙어 다녀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다. 즉 어느 쪽이 되었건 욕심을 버리지 않고서는 남에게 덕업을 온전히 끼치기가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일말의 욕심이 없다면 살아갈 목표도 없을 것이다. 목표를 향해 달리기 위해서는 욕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 욕심의 둘레가 어디까지 미치느냐에 따라 사람이 성실하게도, 악하게도 되는 것이니, 청백정신이란 덮어놓고 가난하게만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소명감을 높이 의식하는 정신이라 할 것이다.
▣ 차례
임금이 행색도를 청렴의 표본 삼다 ― 양관
뛰어난 수완으로 나랏일 돌보다 ― 이서
판서 위세 부린 아들을 꾸짖다 ― 홍언필
만조백관이 인정한 청문으로 들어가다 ― 조사수
죽은 조상은 손자의 일을 모른다 ― 김신국
낙방자의 답안지에서 급제자를 뽑다 ― 이문원
구멍난 부들방석도 조심스럽다 ― 이시백
얼룩진 비단치마에 포도그림으로 갚다 ― 홍수주
공신전 반환하고 백성에게 돌려주다 ― 이해
죽을 각오로 바둑판을 쓸어버리다 ― 김수팽
걸인청으로 빈민을 구제하다 ― 이지함
단벌 옷 빨아 알몸에 관복만 입고 외출하다 ― 김덕함
돈 보기를 흙처럼 하다 ― 이약동
벼슬에 연연하지 않는다 ― 이황
대의를 위해 핏줄도 잘라내다 ― 백인걸
한 밥상에 두 고기 반찬을 올리지 않는다 ― 민성휘
초 한 자루로 백성의 수고로움을 알다 ― 이수광
손님에게 술 대신 간장 탄 냉수 대접하다 ― 이탁
나이 칠십 동안 무명이불만 고집하다 ― 장응일
평생을 옷 하나, 이불 하나로 살다 ― 신흠
돗자리를 짜서 생계를 잇다 ― 이시원
왕자도 엄한 법규로 다스리다 ― 홍흥
관기의 유혹을 뿌리치다 ― 송인수
잣은 높은 산에 있고 꿀은 백성의 집 벌통 안에 있다 ― 정붕
서른일곱 번 영의정 사표를 내다 ― 정태화
철저하게 청탁을 제거하다 ― 임담
죽마고우의 명태 한 마리도 받지 않는다 ― 이후백
색과 투와 득을 계로 삼다 ― 오운겸
한평생 나물과 오이로 연명하다 ― 조원기
죽음을 초연히 받아들이다 ― 정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