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맹자

저자: 맹가
출판사: 책세상
등록일: 2006-01-06
맹가 지음 / 안외순 옮김

책세상 / 2005년 5월 / 214쪽 / 5,900원




▣ 저자 맹가 (孟軻)


맹가는 전국시대에 지금의 산동성 연주부 추현 지역에 있는 소국 추나라에서 태어났다. 학문을 중시한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맹가는 열다섯 무렵 노나라로 유학을 떠나 공자의 학문을 익혔으며, 그중에서도 내면적 수양을 중시하던 중자와 자사 계열을 공부했다. 당시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준으로 온갖 쟁탈을 일삼던 전국시대의 한복판에 있었고, 지식인들은 양주의 위아주의, 묵적의 겸애주의 같은 극단적인 이기주의나 이타주의 사상에 탐닉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순적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두 가지 노력을 전개하게 된다. 스스로 천하를 주유하면서 당대 최고 권력자들을 만나 자신의 주장을 설득시키고, 그릇된 학설이라고 판단되는 타학설들을 체계적으로 비판하는 한편 유가학설을 체계화하고 심화했다.



천하주유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맹가는 먼저 고국 추나라의 목공을 만나 자신의 주장을 설득시키고자 했으나 목공이 결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할 수 있는 통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고국을 떠나게 된다. 맹가는 이후 정치적 동반자를 찾아 이 나라 저 나라를 옮겨 다니며 왕도정치를 설파했다. 결국 자신의 사상을 현실 정치에서 실현시키는데 실패한 맹가는 이후 남은 20여 년의 생에 동안 만장을 비롯한 제자들을 교육하면서 그들과 함께 <맹자>를 저술했다.




▣ 역자 안외순


전통의 재전유 관점에서 한국정치사, 한국정치사상, 유가정치사상을 연구해왔다. 주요 논문으로〈대원군 집정기 권력구조에 관한 연구〉,〈송시열과 한국 보수주의의 기원〉,〈유가적 군주정과 서구적 민주정에 대한 조선 실학자의 인식〉,〈정약용의 사상에 나타난 서학과 유학의 만남과 갈등〉,〈19세기 말 조선에 있어서 민주주의 수용론의 재검토〉등이 있고, 『근역서화징』과 『김택영의 조선시대사 한사경』등을 공역했다. 전통시대 한국정치사, 한국정치사상의 체계 수립을 주요 학문적 과제 중 하나로 삼고 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이화여대, 서강대, 서울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Short Summary


지금 중국 산동성 추현에 있는 맹가의 고택에는 그의 업적과 위상을 기리는 '아성전 亞聖殿'이 세워져 있다. '아성'이란 말 그대로 성인에 버금가는 사람, 곧 공자에 버금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진실로 맹가가 없었다면 공자의 지적 후예들이 오늘날과 같은 '유가'라는 독립된, 그리고 유구한 역사를 지니는 유가 문명을 일궈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세간에서 유가의 별칭을 '공맹사상孔孟思想'이라고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자의 학문을 체계화하고 집대성하는 데 있어서 맹가는 사십대에 접어들면서 이미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로 부각되었던 것 같다. 기원전 331년부터 2년 간 제나라 평륙과 임나라를 유람한 그는 기원전 329년 마흔 넷이 되던 해 드디어 제나라 수도 임치로 가서 선왕을 만나게 된다. 사실 제나라 선왕은『맹자』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맹자』에 나오는 군주와의 대화 가운데 70퍼센트 이상이 선왕과의 대화이다. 끝내 사양하기는 했지만 외국인으로서는 최고의 관직이라 할 수 있는 객경 직책을 역임한 것도 제나라에서였다. 그러나 당시 선왕은 끝내 패도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고 맹가는 왕도론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선왕이 죽자 맹가와 제나라와의 인연은 끝이 났다. 이후 7~8년 동안 맹가는 그야말로 정치적 동반자를 찾아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하게 된다. 맹가의 천하주유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맹가는 이후 현실 정치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일은 완전히 그만두었다. 대신 남은 생에 20여 년 동안 만장을 비롯한 제자들을 교육하면서 그들과 함께 34,685자의 『맹자』를 저술했다. 인간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학설과 사상도 직접적인 정치 못지 않다. 맹가에게 모든 천하 사람의 행복을 담보하는 정치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잘 조화된, 다시 말해서 가족도 있고 국가도 있는[有父有君] 정치였다. 이것은 바로 인정 혹은 왕도정치에서 구현된다. 말년을 교육과 사상계 평정 노력으로 보내던 맹가는 기원전 289년 여든넷의 나이로 고향에서 세상을 떠났다.




▣ 차례


들어가는 말

제1장 양혜왕 (상)

제2장 양혜왕 (하)

제3장 공손추 (상)

제4장 공손추 (하)

제5장 만장 (상)

제6장 만장 (하)

제7장 진심 (상)

제8장 진심 (하)

해제 - 왕도정치, 조화로운 공존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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