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맹가 지음 | 책세상
들어가는 말지금으로부터 약 2천 5백여 년 전 이른바 '중국'땅에서는 새로운 문명관이 태동하고 있었다. ('중국中國', 이른바 천하세계의 중앙국가라는 국호는 사실상 20세기 초 '중화민국' 혹은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근대국가가 출범하기 전까지는 중국 역사에서 공식적으로 국호로 채택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족은 물론 주변의 이민족들 역시 유사이래, 중원을 차지한 국가를 '중국'이라고 당연하게 불러왔다.) 이 새로운 문명관은 인간의 이성과 의지, 그리고 인간의 도덕률이 적어도 인간의 삶과 인간 공동체를 주체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세계관을 들고 나왔다. 이후 지성사는 이 문명관에 대해 합리적이고 세속적이며 인본적이라는 평가를 내렸고, '유가儒家'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지금 모든 인류가 '공 선생님', 곧 '공자孔子'라고 부르는 한 선각자에게서 시작되었다. 이후 이러한 공자 사상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이것이야말로 천하를 구원하는 구세의 도라고 인식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 장본인이 스스로 공자를 사숙私淑했다고 자처하는 맹가孟軻(기원전 372~기원전289년)이다. 우리에게는 '맹자孟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맹가는 공자보다 백여 년 뒤인 전국戰國시대를 살았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春秋시대가 주周나라를 중심으로 한 예禮적 봉건질서가 붕괴되기 시작한 시기라면 전국시대는 아예 봉건질서의 미덕은 흔적도 없고, 부와 무력만을 앞세우는 약육강식의 풍토가 천하에 만연된 시기였다. 맹가는 천하를 구제할 통일 방안을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공존을 지향하는 정치에서 찾았다. 맹가에게 정치의 목적은 위민爲民과 보민保民에 있으며, 실천 방법은 '양민養民'과 '교민敎民' 곧 백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도덕적으로 교육하는 민본주의 원리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 정치로서 인간이 자신의 이성과 도덕적 의지로 실천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였다. 이것이 인정仁政 또는 왕도정치王道政治이다.
《맹자》는 인본적이고 평화적인 문명을 구축하기 위해 물질주의와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고대 동아시아 세계의 지적 고뇌를 대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 2천 5백여 년 동안 동아시아 세계가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맹자》는 당대에 맞게 재해석되면서 새로운 지적 원천을 제공해왔다. 이 책에서는 《맹자》 열네 편 가운데 〈양혜왕〉·〈공손추〉·〈만장〉·〈진심〉 각 상·하 여덟 편을 번역했다. 《맹자》의 핵심 메시지가 왕도정치론에 있고 이상의 여덟 편은 특히 왕도정치의 개요, 성립, 전개양상, 변동원리 등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을 개진하고 있다고 판단되어 선택된 것이다.
제1장 양혜왕 (상)맹자가 양혜왕梁惠王(맹가 당시 전국구웅戰國九雄 중 하나였던 위魏나라의 혜왕惠王<기원전 370~ 335년 재위>이다. 위나라의 수도가 대량大梁이었는데 이 때문에 양이라는 말이 붙었다)을 만났다.
왕이 말했다. "어르신께서 천 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우리나라에 이익이 되겠군요."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 만일 정의를 나중에 생각하고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면 서로들 빼앗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仁하고서 자기 어버이를 버리는 사람은 없고, 의로우면서 자기 군주를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인의만을 말씀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양혜왕이 말했다. "과인은 나라에 마음을 다 쏟고 있소. 하내河內 지역에 흉년이 들면 그곳 백성을 하동河東으로 이주시키거나 하내에 곡식을 보냈소. 또 하동 지역에 흉년이 들어도 똑같이 했소. 이웃 나라의 정치를 살펴보니 과인처럼 마음을 쓰는 자가 없소. 그런데도 이웃 나라의 백성이 더 줄지 않고 과인의 백성이 더 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맹자가 대답했다. "(백성들로 하여금) 농사철을 어기지 않게 하면 곡식을 이루 다 먹을 수 없습니다.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연못에 넣지 않게 하면 물고기와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습니다. 도끼와 자귀(손도끼)를 가지고 제철에만 산림에 들어가게 하면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습니다. 곡식, 물고기,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고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어야 백성들로 하여금 살아 있는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데 후회가 없도록 할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데 후회가 없도록 하는 것이 왕도王道의 시작입니다. … 그런데 개, 돼지가 사람이 먹을 양식을 먹어도 단속할 줄 모르고,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어도 창고를 열 줄 모르며, 사람이 굶어 죽을 때 '내 탓이 아니라 흉년(年事) 탓이다'라고 하신다면, 사람을 찔러 죽이고서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 병기가 그랬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왕께서 죄를 흉년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천하의 백성들이 (위나라로) 올 것입니다."
양혜왕이 말했다. "(우리) 진晉나라(위 나라의 전신. 진晉나라 대부들의 세력이 커지면서 스스로 나라를 창업했는데, 그것이 각각 한韓, 조趙, 위 세 나라이다. 양혜왕의 나라는 그중 위나라였다. 그런데 이 세 나라는 각기 정통성을 주장하는 경쟁국이었다)가 천하에 막강한 것은 어르신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그러나 과인의 재위 기간에 동쪽으로는 제齊나라에 패전하여 장자長子가 전사했고, 서쪽으로는 진秦나라에 7백 리에 달하는 땅을 잃었고, 남쪽으로는 초楚나라에 치욕을 당했습니다. 과인은 이것을 부끄러워하고 전사한 자를 위하여 한번 설욕하고자 합니다.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영토가 사방 백 리만 되어도 왕도를 펼칠 수 있습니다. 만일 왕께서 인정仁政을 베푸셔서 형벌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적게 거둔다면 백성들은 기꺼이 밭 갈고 김 매는 한편 장정들이 여가에 효孝·제悌·충忠·신信을 닦아서, 들어가서는 부모형제를 섬기고 나가서는 어른과 상관을 섬길 것입니다. 그런 다음 이들로 하여금 몽둥이를 만들어 진나라와 초나라의 견고한 병정들과 예리한 병기를 치도록 하면 됩니다. 저들은 백성들의 농사철을 빼앗아, 밭 갈고 김 매어 부모를 봉양하는 일을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에 왕께서 가서 바로잡으신다면 누가 왕과 대적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인자에게는 맞설 사람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물었다. "덕이 어떠해야 왕도정치라 할 수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보민保民으로 왕도정치를 펴면 능히 막을 자가 없습니다." "과인 같은 사람도 보민할 수 있습니까?""할 수 있습니다. 신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왕께서 (집무 보는 대청) 당상에 앉아 계시는데, 그 앞으로 소를 끌고 당하로 지나가는 자가 있었답니다. 그것을 보신 왕께서 '소가 어디로 가는가?' 하고 물으셔서 (소를 끌고 가던 자가) '흔종(鍾:새로 만든 종의 갈라진 틈을 소의 피로 메우는 의식)에 쓰려고 데려갑니다'라고 답하니, 왕께서 '놓아 주라. 그놈이 두려워 벌벌 떨며 죄 없이 사지死地로 가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 했습니다. 이리하여 (그 자가) '그러면 흔종을 폐지하오리까?' 하니, (왕께서)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는가? 양으로 대신 바꾸라' 했답니다. 과연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마음이면 왕도를 행하기에 족합니다. 그런데 왕께서 만약 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것이 측은했다면 어찌 소와 양을 구분했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했다. "이것이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요? 재물이 아까워 소를 양으로 바꾸게 한 것이 아니건만 당연히 백성들은 나더러 재물을 아꼈다고 하겠군요!"
맹자가 말했다. "상심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을 행하는 방법입니다. 즉 소는 보았고 양은 미처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군자는 날짐승이나 들짐승이 살아 있는 것을 보면 그 죽은 것을 차마 보지 못합니다. 죽으면서 애처롭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면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합니다."
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마음이 왕도에 부합한다는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백성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군주께서) 은혜를 베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왕도를 행하지 못하는 것은 하시지 않는 것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 않는 것과 못하는 것의 정황은 어떻게 다릅니까?" "태산泰山을 옆에 끼고 북해北海를 뛰어넘는 것을 사람들에게 '못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실제로 못하는 것이지만, 나뭇가지를 꺾는 것을 '못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하지 않은 것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왕도를 행하지 않는 것은 태산을 끼고 북해를 건너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왕께서 왕도를 행하지 않는 것은 바로 나뭇가지를 꺾는 것과 같은 종류입니다. … 왕께서는 이 점을 헤아리소서. 그리 하지 않고 군대를 일으켜 군사와 신하들을 위태롭게 만들고, 제후들과 원한을 맺어야 왕께서는 마음이 시원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했다. "아닙니다. 내 어찌 그것을 시원하게 여기겠습니까? 크게 목적하는 바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왕께서 크게 목적하는 바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왕이 웃으면서 말하지 않았다. "지금 온 천하 땅 가운데 천 리나 되는 강국이 아홉 나라인데, 제 나라도 그중 하나입니다. … 이제 왕께서 정치를 펴고 인을 베풀어 천하의 벼슬하는 자들이 모두 왕의 조정에서 벼슬하고 싶게 만들고, 경작하는 자들이 모두 왕의 들판에서 경작하고 싶게 만들며, 장사꾼들이 모두 왕의 시장에 물건을 저장하고 싶게 만들고, 여행하는 자들이 모두 왕의 길로 다니고 싶게 만든다면 온 천하에서 자기 군주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모두 왕께 달려와 하소연하려 할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나는 어두워서 그 경지까지 나아갈 수 없습니다. 원컨대 부자께서 나의 뜻을 도와 나를 밝게 가르쳐주소서. 내 비록 불민不敏하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 "밝은 군주는 백성의 생업을 제정해주되, 반드시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족하게 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건사하기에 족하게 하여, 풍년에는 1년 내내 배부르고 흉년에는 사망을 면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런 다음 백성들을 선하게 만들었으니, 그런 까닭에 백성들이 따르기 쉬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백성의 생업을 제정해주되,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부족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건사하기에 부족하여, 풍년에도 1년 내내 고생만 하고 흉년에는 사망을 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부족하여 걱정하니 어느 겨를에 예의를 차리겠습니까? 왕께서 이(왕도정치)를 행하고자 하신다면 어찌 그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제2장 양혜왕 (하)제 선왕이 물었다. "탕湯 임금이 걸(하나라의 폭군)을 유배 조치하고, 무왕武王이 주紂(폭군. 은나라의 마지막 군주. 주지육림을 즐기고 달기에게 빠져서 폭정을 일삼다가 기원전 1100년경 무왕에게 천하를 빼앗겼다)를 벌했다는데, 그렇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전하는 책에 나와 있습니다."
"신하가 자기 군주를 시해해도 됩니까?"
"인을 해치는 자를 '도적[賊]'이라 이르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악[殘]하다'고 합니다. 잔악하고 도적 같은 사람을 '일개 필부'라 하는데, '일개 필부 주의 목을 베었다'는 말은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추鄒나라(맹자의 고국)가 노魯나라와 싸웠는데 (추나라) 목공穆公이 물었다. "우리 유사有司(담당 관직자) 가운데 죽은 자가 서른 세 명이나 되지만 백성들 중에는 죽은 자가 없습니다. 이들의 (죄를 물어) 목을 베자니 다 벨 수 없고, 목을 베지 않자니 상관들의 죽음을 질시하기만 하고 그들을 구원하지 않은 죄를 덮어버리는 것이 되는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흉년과 기근이 든 해에 군주의 백성들 가운데 노약자들이 도랑이나 구렁에 죽어 나뒹굴고, 수천 명의 청장년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떠나는 상황에서 군주의 창고와 곳집에는 곡기가 가득 차 있고 관청 창고에는 재화가 넘쳐나는데도 유사들 가운데 이를 아뢴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윗사람들이 태만해서 아랫사람들을 잔악하게 대했기 때문입니다. 증자曾子(공자의 제자. 본명은 증삼曾參. 특히 효를 강조함)가 '경계하고 경계하라.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 돌아가노니'라고 했습니다. 저 백성들이 지금에야 되갚은 것이니 군주께서는 탓하지 마소서. 군주께서 인정을 행하시면 백성들이 상관을 어버이처럼 여기고 어른을 위해 죽을 것입니다."
제3장 공손추 (상)공손추公孫丑(맹자의 제자. 성은 공손, 이름은 추. 정치에 재주가 있고 《주역》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가 물었다. "부자夫子(덕행이 높아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만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께서 제나라 경상卿相의 지위에 올라 도를 행할 수 있게 되셔서 (제나라가) 패도를 행하든 왕도를 행하든 괜찮은것 같습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마음을 움직이시겠습니까, 움직이지 않으시겠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아니다. 나는 마흔부터 부동심不動心이었노라." "부동심에 방법이 있습니까?" "옛날에 증자가 자양子襄(증자의 제자)에게 '그대가 용기를 좋아하는가? 내가 큰 용기에 대해 선생님(공자)께 들었는데, 스스로 돌이켜보아 정직하지 못하면 비록 갈관박褐寬博(아무렇게나 옷을 두른 천민)이라도 내가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스스로 돌이켜보아 정직하다면 천만 명이 있더라도 나는 대적하러 갈 것이라고 했다네'라고 말했다."
"감히 선생님의 부동심과 고자告子(본명은 고불해告不害. 유가·묵가·도가를 겸수했으며 인간 본성은 선악이 없다는 주장으로 맹가와 논쟁을 전개했다)의 부동심에 관하여 듣고자 합니다."
맹자가 말했다. "고자가 '말[言]을 이해하지 못할 때 마음[心]으로 알려 하지말고, 마음으로 알지 못할 때 기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말라' 했다네. '마음으로 알지 못할 때 기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말라'는 주장은 옳지만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 마음으로 알려 하지 말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네. 뜻[志]은 기를 통솔하는 것이고 기는 몸에 꽉 차 있는 것이니, 뜻이 우두머리요. 기는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뜻을 잘 간직하여 기를 해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감히 묻겠습니다. 부자께는 어떤 장점이 있습니까?" "나는 학설을 알고[知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르노라. 호연지기에서 말하는 기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세니, 바르게 길러 잘 기르고 해치지 않으면 천지 사이에 꽉 차게 된다. 또 그 기는 의, 도와 짝을 이루니, 그렇지 않으면 허해진다. 이 호연지기는 의가 많이 모여서 된 것이지 하루 아침에 의가 밖에서 엄습하여 취해진 것이 아니다. 행함에 마음으로 부족하게 여기는 것이 있으면 허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고자가 의를 안 적이 없다'라고 말한 것이니, 그가 의를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학설을 안다'고 하신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편벽된 학설을 상대로 그 가려진 바를 알고, 지나친 학설을 상대로 그 매몰되어 있는 바를 알고, 사악한 학설을 상대로 그 괴리된 바를 알고, 둘러대는 학설을 상대로 그 궁색한 바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학설들은) 마음에서 생겨나 정치를 해치고, 정치에 드러나 일을 해치게 된다."
맹자가 말했다. "힘으로 인仁을 가장하는 것이 패도覇道이다. 패도는 반드시 대국을 소유해야 한다. 덕으로 인을 행하는 것은 왕도王道이다. 왕도는 대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탕 임금은 70리로 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