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은 마음의 기호-맹자요의孟子要義

성품은 마음의 기호-맹자요의孟子要義

저자: 정약용
출판사: -
등록일: 2000-08-08
정조의 총애, 그러나 긴 유배생활

조선 후기 실학의 집대성자로 불리는 정약용은 1762년(영조 38년)에 태어나서 정조, 순조 시기를 거쳐 1836년(헌종2년)까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살았다. 정약용의 자는 미용(美鏞) 또는 송보(頌甫)며 호는 사암(俟菴), 다산(茶山), 당호는 여유(與猶)다. 영조 38년인 1762년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군 조안면 능내리(마현)의 양반집안에서 태어났다. 7세 경에 이미 역법과 산술에 능통했고 10세 때는 경전과 역사와 시를 본격적으로 공부해 시문집을 내기도 했다. 12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5세에는 풍산 홍씨와 혼인한 이후 부친이 호조좌랑이 되자, 서울에 살면서 이가환과 자형인 이승훈 등을 통해 성호 이익의 학문을 접하고 성호의 실학을 배웠다.

22세에 진사가 돼 성균관에 들어갔고, 23세 때 이벽 등과 어울리면서 천주교 서적을 보고 신자가 됐다가 27세 쯤에 돌아섰지만, 남인 집안에 천주교에 연루된 친인척들이 많아 평생 고통과 좌절을 겪었다. 28세 때 대과에 합격해 벼슬길에 오르면서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수원성 축성 때 설계와 감독을 맡기도 하고 경기 암행어사가 되기도 했다. 34세 때 잠시 금정찰방으로 좌천된 것을 빼고는, 정조가 세상을 떠나 물러날 때까지 요직을 거쳤는데, 상당히 높은 지위인 형조참의(정3품 당상관)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순조가 즉위하면서 1800년(40세)에는 노론과 남인의 당쟁이 격화돼 천주교 탄압사건인 신유사옥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셋째 형 정약종과 이승훈이 참수형을 당하고, 다산도 장기로 유배당했다가 같은 해 큰 형의 사위인 황사영의 백서 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소환돼 취조를 받고 강진으로 유배당했다. 그러나 강진 유배 생활 18년이 죽은 시간이 아니었던 것은 그 기간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강학과 연구와 저술에 전념했기 때문이다.

그의 저서는 경집 232권, 문집 260여권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데, 대부분 유배기간에 지은 것들이다. 57세 가을에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와서 이듬해 법률서인 《흠흠신서》 등을 저술했지만, 60세 이후 만년에는 심신의 기력을 잃어 눈에 띄는 학문적 활동을 하지 못하고 75세에 세상을 떠났다.





성품은 선(善)을 좋아하는 정감

다산은 경학, 예학, 경세론을 중심으로 역사, 지리, 언어, 풍속, 의학, 농업, 기기, 군사, 축성, 시문학까지 독자적인 학문세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그는 학문의 중심을 6경4서 중심의 경학과, 일표이서(一表二書, 곧《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중심의 경세론에 뒀다. 그래서 그는 경학은 자기 수양을 위한 것이고, 경세론은 천하와 국가를 위한 치인(안인)의 학문이며, 이 둘을 갖춰야 본말이 다 갖춰지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선진 시대에 공자가 제시한 수기(修己)와 치인(治人, 곧 安人)을 자신의 학문의 내용으로 삼았다는 것을 뜻한다.

경학을 보면, 다산은 태극, 이기, 음양, 오행 등을 주로 논하는 우주론이나 성즉리설에 기초한 인성론 등에 집착하는 성리학의 관념적 틀을 깨뜨리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주자의 경전해석체계를 벗어나 탈주자학적 입장을 명확히 하고, 선진의 공자와 맹자가 제시한 경전의 본래 정신을 재확인하는 관점을 취했다. 결국 그가 추구하는 경학은 전통에 대한 관념적 해석을 극복하고 실제 인간의 정감과 사회적 현실을 중시하는 것이다.

다산은 하늘관[天觀]에서, 천을 리(理)가 아닌 상제(上帝)나 신명(神明)으로 파악하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정감이 수양의 필수조건이라는 관점을 취했다. 그리고 인성론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성품을 리의 본체가 아니라 선을 좋아하는 정감인 기호(嗜好)라고 파악했다. 또한 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인 마음의 자주권를 확인하고, 도덕성을 인간의 선천적 본질이 아닌 실천의 결과며 후천적으로 성취된 것으로 파악하는 실천적 도덕론을 확립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을 토대로, 내 마음을 미뤄 남의 마음을 이해함으로써 인을 실천하는 것이 수양의 기본조건임을 강조했다.

정치의 근본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

이런 자기수양을 중심으로 하는 경학의 기초 위에서 치인(治人)을 지향하는 경세론이 펼쳐진다. 다산은 정치의 근본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을 의미하는 인(仁)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백성을 다스린다는 의미의 치인이란 권력자의 지배가 아니라, 인의 원리에 따라 자신을 실현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치(治)라는 글자는 다스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도리와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로 보고, 심지어 부모를 섬기는 것도 치인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는 사회적 신분 차이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래서 친소(親疎)와 귀천(貴賤)을 불문하고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하늘 앞에서 인간이 평등하다는 인간관을 주장했다. 또 사회제도와 신분계급의 모순을 개혁하는 것이 치자의 임무임을 역설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백성이 정치적으로 주체가 돼야 한다는 민권사상을 고취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 바로 그의 경세론의 대표적 저술인 '일표이서'다. 그는 일표이서에서 사회제도에 대해 세밀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해, 《경세유표》에서는 법의 본래정신이 예며, 예란 보편적 법칙과 인간적 정감에 합당한 것이므로, 결국 법은 공정성과 인간적 정감을 동시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형법에 대해 다루고 있는《흠흠신서》에서는, 재판의 근본은 하늘을 공경하고 인간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에 있으므로, 사건은 엄격하게 다루지만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목민심서》에서도 수령이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지, 백성이 수령을 위해 생긴 것이 아니라는 민본의 원리를 재확인해 근대 지향적인 성격을 뚜렷이 보여줬다.

요컨대, 다산은 사회현실에 관심을 갖는 실학에 철학적 근거를 확보해주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경학이었다. 그는 철학적 기초인 경향을 바탕으로 삼아 사회제도적 관심을 종합하고 체계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다산은 분명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 《맹자요의》 의 내용 구성

서설(序說)

1. 양혜왕(梁惠王)

2. 공손추(公孫丑)

3. 등문공(藤文公)

4. 이루(離婁)

5. 만장(萬章)

6. 고자(告子)

7. 진심(盡心)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다산은 6경4서를 중심으로 하는 경학이 수기(修己)의 공부에 해당하고, 그것이 실천을 위한 근거가 돼야 한다고 여겼다. 그의 육경사서학 가운데 하나인 《맹자요의》에도 다산 경학이 지닌 특색이 일관되게 담겨 있다. 다른 경전을 논할 때와 마찬가지로, 《맹자요의》를 써나가는 방식도 문제되는 텍스트의 항목을 들고 그에 대한 기존의 견해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주장을 '鏞案(나 정약용의 견해)'이라고 표시해서 나타냈다.

그런데 《맹자요의》는 기본적으로 《맹자》라는 경전에 대한 주석서다. 맹자의 사상은 성선설을 근본 출발점으로 한, '인의(仁義)'라는 실천윤리와 인정(仁政)을 통해서 세상을 경영해 백성을 구제하는[經世濟民]의 정치철학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그러므로 다산은 《맹자》에서 중시하는 문제를 그대로 받아들여 인심과 도심, 인성과 성선, 사단과 인의예지 등의 4덕에 대해 주로 다루고, 그밖에도 부동심, 지언(知言)과 양기(養氣), 양지양능, 인정(仁政)의 왕도, 그리고 정전법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러나 특히 경전 주석의 역사나 철학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 것은 다산의 심성론에 관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맹자요의》에서는 먼저, 사단과 인의예지를 해석하는데, 사단은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이런 사단을 시작으로 실천을 통해 인의예지라는 사덕을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성품이란 주자학에서 주장하듯 본연지성이나 기질지성이라 해서 이원적인 것이 아니라, 다만 마음의 기호일 뿐이며, 따라서 성선이란 우리 마음이 갖는 선을 좋아하는 기호, 곧 선에 대한 지향성을 뜻하는 것이라고 봤다. 그리고 선을 좋아하는 기호만으로는 선이 이뤄지지 않으므로 선을 선택하고 결단하는 마음의 자주권을 무엇보다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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