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어

논 어

저자: 공자
출판사: -
등록일: 2000-07-06
상등의 인간은 붓으로 죽인다

용감하고 완력이 세기로 유명한 자로가 공자가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는 풍문을 듣고 찾아가서 배움을 청했다. 그런데 다짜고짜 공자는 저쪽에 있는 우물가에 가서 물 좀 떠오라는 것이었다. 자로는 조금 황당했지만 어쩌나 볼 겸 우물가로 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호랑이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자로는 속으로 공자가 자신의 힘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단숨에 호랑이를 때려잡았다. 호랑이를 때려잡긴 했지만 초면에 만난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 공자가 아주 괘씸하게 생각됐다. 그래서 우물물을 한 대접을 뜨고 또 주변에 있는 커다란 돌을 집어들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공자를 시험해서 시원치 않으면 바로 때려 죽이리라 생각하면서... 돌을 뒤에 숨기고 공자에게 물을 갖다 바치며 물었다.

"선생님, 사람을 무엇으로 죽입니까?"

물을 마시며 공자는 아주 느긋하게 대답했다.

"제일 하등의 인간은 돌로 쳐서 죽인다."

자로는 하마터면 뒤에 숨긴 돌을 떨어뜨릴 뻔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중등의 인간은 무엇으로 사람을 죽입니까?"

"그거야 말로 죽이지."

"그럼 제일 상등의 인간은 뭘로 사람을 죽입니까?"

"붓으로 죽인다."

자로는 그 자리에서 공자의 제자가 됐다.

온건하고 개량적인 지식인의 한 상징

공자(B.C 551-449)는 춘추시대 말기의 대사상가로 유가학파(儒家學派)의 창시자다. 그의 이름은 구(丘)이고 자(字)는 중니(仲尼)인데, 공자 혹은 공부자(孔夫子)라고 하는 것은 그를 높여 부른 것이다. 공자의 조상은 은나라 후예인데 공자는 노나라 창평향 추읍(지금의 산동성 곡부)에서 나이 차가 아주 많이 나는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가난해서 창고지기나 목축을 한 일도 있다고 하며 나중에 조국 노나라에서 대사구(大司寇), 지금으로 치면 법무장관에 해당하는 벼슬을 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이 그를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을 무시하지 않는 균형잡힌 사상가로 만들었다. 한번도 벼슬한 적이 없는 맹자의 사상이 다소 이상주의적으로 흐른 것과 비교한다면 이 점 한층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공자는 생의 대부분을 인(仁)에 입각한 정치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천하를 주유했으며 말년에 고향에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고 기존의 고전을 정리, 편찬하는 활동에 종사했다. 이런 점에서 공자는 동양에서 온건하고 개량적인 지식인의 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논어》를 통해 보면 공자는 대략 두 가지 얼굴을 드러낸다. 하나는 항상 공경스런 태도로 조심하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소탈하면서도 대범한 모습이다. 전자가 관직에 있을 때의 공자의 얼굴이라면 후자는 관직을 벗어 던진 후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관직에 있을 때 항상 조심한 것은 조정(朝廷)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인 동시에 잘못하면 생명마저 위태로운 곳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공자의 두 모습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모두 귀감이 되지만 후자의 얼굴이 훨씬 사랑스럽다.

논어,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책

《논어》는 흔히 공자(孔子)의 '논어'라 하듯 공자의 어록(語錄)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공자의 말이나 그가 제자들이나 당시의 위정자들 혹은 은자(隱者)들과 나눈 단편적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공자 스스로 이런 대화를 녹음하거나 메모해 기록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 작가가 일관되게 쓴 것도 아니다.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논어》는 제자들이나 제자의 제자들에 의한 "편차 (공자의) 어록"이다. 논어의 논(論)은 편차 혹은 편집의, 어(語)는 어록 혹은 언론의 의미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복된 내용도 있고 위작 시비도 있다. 편찬 연대를 두고 여러가지 논란이 있지만 대략 전국시대 중기에 공자의 제자들이나 제자의 제자들에 의해 편찬됐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그러니 엄격하게 말하면 《논어》는 하나가 아니고 공자도 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논어》는 춘추 전국시대에 씌어진 많은 제자서(諸子書)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유교를 국교로 채택했던 서한(西漢) 시대에 존중되기는 했으나 오경(五經)의 하나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책은 지금 전해지는 형태도 아니었다. 《제논어 齊論語》, 《노논어 魯論語》, 공자 고택의 벽에서 나온 《고논어 古論語》의 세 종류의 형태로 달리 전해오다 서한 말에 장우(張禹)라는 사람이 《노논어》를 중심으로 최초의 교정본을 만든다. 지금 전해지는 《논어》는 기본적으로 이것이다. 동한(東漢) 이후 정현(鄭玄)이 이를 기초로 정본을 만들었으나 지금은 흩어져 집본만이 존재한다.

위나라의 하안(何晏)의 《논어집해》가 지금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주석서로 고주(古注)라 한다. 특히 송대 주희(朱熹: 朱子)는 《예기》의 한 편이었던 《대학》, 《중용》 그리고 《맹자》와 함께 묶어 사서(四書)라 해 매우 중시했다. 그리고 이들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주석[新注]을 달았다. 그런데 이 주석본은 원·명·청 시대에 과거(科擧) 시험의 모범적 교재로 채택됨으로써 다른 학파의 책들과 구별되는 '성경'의 지위에 오르게 됐다.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말하자면 관료가 되기 위한 교과서 역할을 한 것이다.


▣ 《논어》의 내용 구성                              

논어에는 체계가 없다. 따라서 논어를 간략하게 소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기도 하고, 의미도 그다지 없다. 논어는 학이(學而), 위정(爲政), 팔일(八佾), 이인(里仁), 공야장(公冶長), 옹야(雍也), 술이(述而), 태백(泰伯), 자한(子罕), 향당(鄕黨), 선진(先進), 안연(顔淵), 자로(子路), 헌문(憲問), 위령공(衛靈公), 계씨(季氏), 양화(陽貨), 미자(微子), 자장(子張), 요왈(堯曰)해서 모두 20편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편장의 처음 두 글자를 딴 것이지 별다른 뜻이 없다.

다시 말하면 '학이'편이라 해서 학문에 관련된 말이 집중적으로 나오거나 '위정'편이 해서 정치에 관한 언급이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굳이 내용을 분류하자면 대략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개인의 인격 수양에 관련되는 교훈

2. 사회적 윤리에 관련되는 교훈

3. 정치론

4. 철학론

5. 제자들과 동시대인들을 상대로 사람에 따라 가르침을 달리한 문답

6. 문인이나 고인 혹은 동시대인들에 대한 비평

7. 공자 자신의 술회

8. 공자의 일상생활과 공자에 대한 제자들의 존숭과 찬미



이들 중에서 처음 두 가지 사항에 관한 것이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나머지가 3분의 1를 차지한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논어》는 기이한 책이다. 첫 장을 넘겨 조금 읽어보면 별 내용도 아닌 것 같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겠는가?... 이런 식이다. 나이를 먹어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고 또 느꼈음직한 말들로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이같이 아주 평범한 말들이 체계도 없이 불쑥불쑥 이어진다. 공자와 제자, 공자와 당시의 위정자들과의 대화도 있다. 그러나 왜 그런 대화를 나누게 됐는지 배경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또 대화하는 방식도 선문답 같은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라는 자공(子貢)의 물음에 공자는 "괜찮기는 하나, 가난한 가운데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자공은 "《시경》에서 '자르는 듯, 다듬는 듯, 쪼는 듯, 가는 듯이 한다'고 했는데, 이 말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두고 한 것이겠죠?"라고 화답한다. 이에 공자는 "자공아, 비로소 너와 《시경》을 논할 수 있게 됐구나. 지난 일을 일러 줬더니 앞으로 올 일을 이해하는구나" 대화 자체가 아주 시적이다. 그래서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주석을 달았으며 지금도 많은 해설서가 나온다. 서양의 고전에 비견하자면 성경과 같은 책이 바로 논어다. 여화(余華)라는 중국의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고 성경과 같은 작품을 쓰고 싶다고 대답하면서 그러나 자신은 그런 작품은 몇 백 년이 흘러도 쓸 수 없을 거라고 덧붙인 적이 있다. 이 말은 아마도 논어에도 그대로 해당될 것이다. 송나라 때의 정자(程子)는 "논어를 다 읽은 후에 전혀 아무런 일이 없는 사람도 있으며, 읽은 후에 그 중의 한 두 구절을 터득하고 기뻐하는 자도 있으며, 다 읽은 후에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며, 다 읽은 후에 자기도 모르게 손발이 춤추는 사람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참으로 논어의 논어다움을 잘 드러낸 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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