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전》은 어떤 책인가?
《수호전》은 900여 년 전인 북송(北宋) 말기의 휘종 때 실제 존재했던 송강(宋江)과 그 무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송서(宋書)》라는 역사책을 비롯한 몇몇 기록들을 보면 송강 무리의 행적에 대한 짤막한 언급들이 있는데, 이들의 이야기가 발전하여 오늘날의 《수호전》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수호전》이 역사소설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송강이 실존하기는 했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이나 사건은 민중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가공된 것이기 때문이다. 《수호전》에는 36명의 두목과 72명의 소두목이 등장하지만, 역사책에는 '송강이 36명을 데리고 여기저기를 휩쓸었다'라고만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대송선화유사(大宋宣和遺事)》라는 이야기책에 적힌 36명 속에는 송강이 들어 있지 않은가 하면, 다른 기록이나 이야기에서는 36명 속에 송강이 들어 있기도 하다. 또 역사책들을 보면 36명의 두목 가운데 몇 명만이 부스러기 기록이 남아 있을 뿐, 나머지 사람들은 그 실존 여부도 확인할 수 없다. 즉 송강과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두목이 소설적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지면서 '36'이라는 숫자가 채워진 것이다. 그리고 72명 소두목의 경우, 역사서에서는 언급조차 하고 있지 않으니, 이들은 '108'이라는 불교적 숫자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인물들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는가?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부터 도시가 발달하여 도시 서민들이 보고 듣고 즐기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수호전》도 마찬가지였다. 남송 때부터 민간에서 만들어져오던 이야기들이, 원나라 말에서 명나라 초기에 이르는 시기에 집대성되어, 한 편의 작품으로 정착된 것이 지금 우리가 보는 《수호전》이다. 작중의 개개 인물들에 관한 다수의 단편적 영웅담들이 소설이나 연극의 형태로 먼저 존재했었고, 이것들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장편소설이 만들어진 것이다. 《수호전》의 전반부가 개개 인물들이 펼치는 독립적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는 듯한 구조를 가진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진정한 작가는 누구?
이 작업을 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으로는 시내암(施耐庵)과 나관중(羅貫中)이 거론된다. 나관중과 시내암이 각각 독립적인 작업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나관중이 만든 것을 시내암이 수정했다거나, 시내암이 쓰기 시작한 것을 나관중이 이어썼다는 등 여러가지 주장이 있다. 어느 말이 옳은지 아직 정확히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수호전》을 집대성한 사람으로는 시내암이 더 많이 이야기된다. 그러나 누가 집대성하였는가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국의 고전소설 대부분이 민간에서 유행하는 이야기를 문장력 있는 한 사람이 정리한 결과이고, 그렇다면 진정한 작자는 다수의 민중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전 소설에는 민중들의 생각이 물씬 배어 있는데, 《수호전》은 특히 그러하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시진(柴進)과 같은 귀족 출신도 있지만, 대부분 농어민, 수공업 기술자, 상인, 하급의 무관이나 문관 등의 중하층 출신이며, 초인적인 완력과 넘치는 기개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신분이 도둑이어서 빼앗고 죽이고 불사르는 잔인함을 서슴지 않지만, 때로는 남다른 정의감을 보이면서 부패한 탐관오리나 귀족층에 맞서기도 한다. 부패한 정치와 탐관오리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소박한 희망이 《수호전》에 반영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호전》이 지금까지도 민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 왜 '수호' 이야기가 유독 널리 사랑받으면서 발전할 수 있었을까?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작품의 발전을 자극했다고 말해진다. 수호 이야기가 만들어진 남송부터 원나라 말까지의 기간은 중국이 북방의 유목민족에게 시달리거나 지배당한 시기였다. 북송은 늘 거란족이 세운 요(遼)나라의 침략에 시달려왔는데, 이어서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의 침략을 받아 천하의 반을 빼앗기고 남쪽으로 밀려났으니, 이것이 남송의 시작이다. 금나라의 압박이 계속되자 송나라는 몽고족이 세운 원(元)나라와 연합하는데, 중국에 들어온 몽고족은 금나라를 쫒아낸 다음 아예 송나라까지를 멸망시키고 중원을 차지해버린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늘 백성들에게 고통이 전가되게 마련이고, 당시에도 도탄에 빠져 도둑이 되는 자가 많았다고 한다.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이들에게 양산박의 도적들이 '영웅'으로 보였을 것이라는 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실제 작품을 보아도, 대부분의 인물들은 나름대로의 정의와 의리를 지키다가 강호로 나서게 됐고, 양산박에 모인 뒤에는 관군조차도 어찌해볼 수 없는 위용을 자랑한다. 그리하여 작품 속의 그들은 도둑이 아닌 '녹림호걸(綠林豪傑)'로 칭송되었으니, 민중들의 입을 통해 그들의 '영웅적인' 모습이 한껏 부풀려진 것이다. 그리고 통치층의 무능에 대한 불만과 중원 회복에 대한 염원도 영웅의 출현을 바라게 했을 것이니, 이러한 심리도 《수호전》이라는 영웅소설의 발전을 도왔을 것이다.
《수호전》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수호(水滸)'는 '물가'라는 뜻이다. 즉 '수호전'이란 '물가에서 벌어진 이야기'라는 뜻인데, 《수호전》에서의 물가는 '양산박(梁山泊)'을 말한다. 양산박은 중국의 산동성(山東省) 서남부에 있는데, 황하와 가까우며 양산의 아랫자락에 위치한 호수 지역을 말한다. 《수호전》에 의하면 양산박의 넓이는 사방 팔백 리에 이른다고 했는데, 108호걸들의 산채가 있는 장소이며, 이들의 주된 활동 무대이기도 하다. 역사책들이 "양산박에는 본래 도적이 많았다." "양산박의 어부들은 보통 도적 노릇을 했다." 등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보면, 이 곳의 지형이 녹림호걸들의 근거지가 되기에 적합했던 것 같다. 소설 속에서는 왕륜이 처음 자리를 잡아 산채의 주인이 됐고, 그후 조개를 거쳐 송강이 산채의 주인이 된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송나라 인종(仁宗)이 통치하던 어느해 봄, 서울에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게 되자, 조정에서는 대장군 홍신을 용호산으로 파견하여 천사(天師)를 불러오도록 하였다. 용호산 상청궁에 이른 홍신은 천사가 이미 서울로 출발했음을 알고, 용호산 유람에 나섰다. 한곳에 이르니 색다른 전각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곳은 108 마왕을 가두어놓은 곳이었다. 궁금증이 발동한 홍신은 여러 도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전각을 열었다.
텅빈 전각 한 가운데로 돌거북 위에 세워진 비석이 하나 보였고, 비석에는 알 수 없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다시 비석 뒤쪽을 보니 "홍(洪)을 만나 열리리라"라고 쓰여져 있었는데, 이것을 보고 의기양양해진 홍신은 아예 비석도 파헤치라고 명령했다. 도사들이 간곡히 말렸지만, 홍신이 끝내 고집을 부려 비석을 넘어뜨리고 돌거북을 들어낸 다음, 다시 밑을 파 들어가니 사방 10미터가 넘는 돌판이 드러났다. 홍신이 그 돌판마저 들어내게 하니,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가 나타났다. 그런데 별안간 구덩이 속에서 '우르릉 쾅쾅' 세상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무서운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시커먼 구름이 솟구쳐오르는 것인데......
《수호전》은 900여 년 전인 북송(北宋) 말기의 휘종 때 실제 존재했던 송강(宋江)과 그 무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송서(宋書)》라는 역사책을 비롯한 몇몇 기록들을 보면 송강 무리의 행적에 대한 짤막한 언급들이 있는데, 이들의 이야기가 발전하여 오늘날의 《수호전》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수호전》이 역사소설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송강이 실존하기는 했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이나 사건은 민중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가공된 것이기 때문이다. 《수호전》에는 36명의 두목과 72명의 소두목이 등장하지만, 역사책에는 '송강이 36명을 데리고 여기저기를 휩쓸었다'라고만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대송선화유사(大宋宣和遺事)》라는 이야기책에 적힌 36명 속에는 송강이 들어 있지 않은가 하면, 다른 기록이나 이야기에서는 36명 속에 송강이 들어 있기도 하다. 또 역사책들을 보면 36명의 두목 가운데 몇 명만이 부스러기 기록이 남아 있을 뿐, 나머지 사람들은 그 실존 여부도 확인할 수 없다. 즉 송강과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두목이 소설적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지면서 '36'이라는 숫자가 채워진 것이다. 그리고 72명 소두목의 경우, 역사서에서는 언급조차 하고 있지 않으니, 이들은 '108'이라는 불교적 숫자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인물들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는가?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부터 도시가 발달하여 도시 서민들이 보고 듣고 즐기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수호전》도 마찬가지였다. 남송 때부터 민간에서 만들어져오던 이야기들이, 원나라 말에서 명나라 초기에 이르는 시기에 집대성되어, 한 편의 작품으로 정착된 것이 지금 우리가 보는 《수호전》이다. 작중의 개개 인물들에 관한 다수의 단편적 영웅담들이 소설이나 연극의 형태로 먼저 존재했었고, 이것들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장편소설이 만들어진 것이다. 《수호전》의 전반부가 개개 인물들이 펼치는 독립적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는 듯한 구조를 가진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진정한 작가는 누구?
이 작업을 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으로는 시내암(施耐庵)과 나관중(羅貫中)이 거론된다. 나관중과 시내암이 각각 독립적인 작업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나관중이 만든 것을 시내암이 수정했다거나, 시내암이 쓰기 시작한 것을 나관중이 이어썼다는 등 여러가지 주장이 있다. 어느 말이 옳은지 아직 정확히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수호전》을 집대성한 사람으로는 시내암이 더 많이 이야기된다. 그러나 누가 집대성하였는가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국의 고전소설 대부분이 민간에서 유행하는 이야기를 문장력 있는 한 사람이 정리한 결과이고, 그렇다면 진정한 작자는 다수의 민중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전 소설에는 민중들의 생각이 물씬 배어 있는데, 《수호전》은 특히 그러하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시진(柴進)과 같은 귀족 출신도 있지만, 대부분 농어민, 수공업 기술자, 상인, 하급의 무관이나 문관 등의 중하층 출신이며, 초인적인 완력과 넘치는 기개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신분이 도둑이어서 빼앗고 죽이고 불사르는 잔인함을 서슴지 않지만, 때로는 남다른 정의감을 보이면서 부패한 탐관오리나 귀족층에 맞서기도 한다. 부패한 정치와 탐관오리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소박한 희망이 《수호전》에 반영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호전》이 지금까지도 민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 왜 '수호' 이야기가 유독 널리 사랑받으면서 발전할 수 있었을까?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작품의 발전을 자극했다고 말해진다. 수호 이야기가 만들어진 남송부터 원나라 말까지의 기간은 중국이 북방의 유목민족에게 시달리거나 지배당한 시기였다. 북송은 늘 거란족이 세운 요(遼)나라의 침략에 시달려왔는데, 이어서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의 침략을 받아 천하의 반을 빼앗기고 남쪽으로 밀려났으니, 이것이 남송의 시작이다. 금나라의 압박이 계속되자 송나라는 몽고족이 세운 원(元)나라와 연합하는데, 중국에 들어온 몽고족은 금나라를 쫒아낸 다음 아예 송나라까지를 멸망시키고 중원을 차지해버린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늘 백성들에게 고통이 전가되게 마련이고, 당시에도 도탄에 빠져 도둑이 되는 자가 많았다고 한다.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이들에게 양산박의 도적들이 '영웅'으로 보였을 것이라는 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실제 작품을 보아도, 대부분의 인물들은 나름대로의 정의와 의리를 지키다가 강호로 나서게 됐고, 양산박에 모인 뒤에는 관군조차도 어찌해볼 수 없는 위용을 자랑한다. 그리하여 작품 속의 그들은 도둑이 아닌 '녹림호걸(綠林豪傑)'로 칭송되었으니, 민중들의 입을 통해 그들의 '영웅적인' 모습이 한껏 부풀려진 것이다. 그리고 통치층의 무능에 대한 불만과 중원 회복에 대한 염원도 영웅의 출현을 바라게 했을 것이니, 이러한 심리도 《수호전》이라는 영웅소설의 발전을 도왔을 것이다.
《수호전》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수호(水滸)'는 '물가'라는 뜻이다. 즉 '수호전'이란 '물가에서 벌어진 이야기'라는 뜻인데, 《수호전》에서의 물가는 '양산박(梁山泊)'을 말한다. 양산박은 중국의 산동성(山東省) 서남부에 있는데, 황하와 가까우며 양산의 아랫자락에 위치한 호수 지역을 말한다. 《수호전》에 의하면 양산박의 넓이는 사방 팔백 리에 이른다고 했는데, 108호걸들의 산채가 있는 장소이며, 이들의 주된 활동 무대이기도 하다. 역사책들이 "양산박에는 본래 도적이 많았다." "양산박의 어부들은 보통 도적 노릇을 했다." 등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보면, 이 곳의 지형이 녹림호걸들의 근거지가 되기에 적합했던 것 같다. 소설 속에서는 왕륜이 처음 자리를 잡아 산채의 주인이 됐고, 그후 조개를 거쳐 송강이 산채의 주인이 된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송나라 인종(仁宗)이 통치하던 어느해 봄, 서울에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게 되자, 조정에서는 대장군 홍신을 용호산으로 파견하여 천사(天師)를 불러오도록 하였다. 용호산 상청궁에 이른 홍신은 천사가 이미 서울로 출발했음을 알고, 용호산 유람에 나섰다. 한곳에 이르니 색다른 전각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곳은 108 마왕을 가두어놓은 곳이었다. 궁금증이 발동한 홍신은 여러 도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전각을 열었다.
텅빈 전각 한 가운데로 돌거북 위에 세워진 비석이 하나 보였고, 비석에는 알 수 없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다시 비석 뒤쪽을 보니 "홍(洪)을 만나 열리리라"라고 쓰여져 있었는데, 이것을 보고 의기양양해진 홍신은 아예 비석도 파헤치라고 명령했다. 도사들이 간곡히 말렸지만, 홍신이 끝내 고집을 부려 비석을 넘어뜨리고 돌거북을 들어낸 다음, 다시 밑을 파 들어가니 사방 10미터가 넘는 돌판이 드러났다. 홍신이 그 돌판마저 들어내게 하니,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가 나타났다. 그런데 별안간 구덩이 속에서 '우르릉 쾅쾅' 세상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무서운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시커먼 구름이 솟구쳐오르는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