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박의 108호걸 -수호전 제1편-
작자미상 지음 | -
수호전(水滸傳)
작자 미상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고구: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 건달로 지내다가 우연히 휘종의 총애를 받게 되어 출세가도를 걷게 되는 탐관오리. 늘 강호의 호걸들을 괴롭힌다.
사진: 사가촌이라는 마을에 사는 부자의 아들. 생업보다는 무예에 더 관심이 많으며 의협심이 강한 청년. 녹림호걸들과 사귀다가 관에 쫓기게 되고, 고향을 떠나 강호로 나선다.
노달: 제할이라는 벼슬을 지낸 무관 출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력과 괄괄한 성품을 지녔는데, 불쌍한 여인 김취련을 구하다가 살인을 저지르게 돼, 벼슬을 버리고 강호를 떠도는 생활을 시작한다.
108 마귀 인간 세상으로 풀려나다
송나라 인종(仁宗)이 통치하던 어느해 봄, 서울에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게 됐다. 조정에서는 죄인을 사면하고 세금을 경감하며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등 여러 조치를 취했지만, 전염병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이렇게 되자 범중엄(范仲淹)이라는 신하가 상소를 올렸다.
“지금 하늘이 내린 재앙이 휩쓸어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사한천사(嗣漢天師, 한나라의 장도릉이 창시한, 중국의 민간에서 널리 신봉되고 있는 도교의 지도자. 사한천사는 하늘을 대신한 스승이라는 뜻)를 급히 불러들여 나천대제(羅天大祭)를 올리면 전염병이 사라질 것 같습니다.”
천자는 그의 의견에 따라 대장군 홍신(洪信)을 용호산(龍虎山)으로 파견하여 천사를 불러오도록 했다. 홍신은 용호산 상청궁(上淸宮)에 이르자 우선 천사의 행방부터 물었다. “천사님은 성품이 고고하고 맑아서 바깥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용호산 정상에 있는 암자에서 홀로 정진하시며, 이곳으로는 내려오지 않습니다. 저희들은 감히 그분에게 범접할 수 없으므로, 장군께서는 이곳에 계시면서 차차 방법을 의논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다급해진 홍신은 빨리 천사에게 연락하라고 재촉했지만, 여전히 갑갑한 대답만을 할 뿐이었다. “천사께서 산마루 암자에 묵고 계시기는 하지만, 도술이 비범하시어 그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저희도 어디로 사람을 보내야 모셔올 수 있는지 모릅니다. 장군께서 정성을 다하시면 나타나실 것입니다. 목욕재계하시고 소박한 옷을 입으신 다음 시종도 거느리지 마시고, 몸소 조서를 지니고서 임금이 내리신 향을 피우면서 걸어 올라가신 다음 예를 갖추어 간청하셔야만 천사를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날 홍신은 도사들이 말한 차림새로 천사를 찾아 산을 올랐다. 칡덩굴을 헤치고 등덩굴을 휘어잡으면서 2, 3리 가량을 걸었더니, 벌써 발목이 시큰하고 다리가 후들거리며 숨이 턱까지 차 올랐다. 바로 이때 저편 으슥한 골짜기 쪽에서 일진광풍이 불어오더니 눈에서 불을 뿜어나올 것 같은 호랑이가 벽력 같은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다. 호랑이는 혼신을 덮치지는 않고, 한동안 잡아먹을 듯 노려보기만 하면서 홍신의 주위를 돌더니 훌쩍 뒷산 비탈로 사라졌다. 사색이 되어 나무 밑동에 쓰러져 있던 홍신은 호랑이가 사라지자 사람 살리라고 악을 썼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위아래 서른여섯 개의 이는 딱딱 소리를 내며 맞닿고, 가슴은 마치 여남은 개의 두레박이 우당탕투당탕 서로 부딪치며 요동하듯 두근거리고, 온몸은 중풍을 맞은 사람처럼 뻣뻣하며, 두 다리는 싸움에 진 수탉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호랑이가 사라진 지 한참이 지나서야 떨리는 몸을 겨우 일으킨 홍신은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향로를 집어들고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4,50보도 가지 않아 다시 스산한 바람에 실린 독기가 확 풍겨왔다. 정신을 가다듬고 바라보니, 우수수 흔들리는 대나무와 등덩굴 속에서 기둥만큼 굵고 눈처럼 새하얀 구렁이가 쑥 기어나왔다. 홍신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는데, 구렁이는 어느새 그의 앞까지 기어와 있었다. 똬리를 틀더니 싯누런 두 눈으로 쏘아보면서 입을 쩍 벌린 채 혀를 날름거리며 홍신의 얼굴에 독기를 뿜어댔다. 질겁을 한 홍신은 혼백이 몸을 떠나가는 듯했는데, 구렁이는 한참 동안이나 그를 노려보더니 산 아래로 사라졌다. 구렁이가 사라진 뒤, 홍신이 자신의 몸을 살펴보니 콩알만한 소름이 온몸에 돋아 있었다.
홍신이 이런 곳으로 자신을 내몬 도사들을 욕하며 다시 길을 떠나려 할 때, 소나무 뒤에서 은은한 피리소리가 들리더니 동자 하나가 황소를 옆으로 타고서 쇠피리를 불며 나타났다.
머리를 두 갈래로 따고 푸른 옷을 걸쳤으며,
허리에는 풀띠를 두르고 발에는 너덜너덜한 짚신을 신었다.
해맑은 눈동자 새하얀 이는 티없이 깨끗한데,
검푸른 수염과 붉은 얼굴에는 한 점 속세의 때도 묻지 않았구나.
홍신이 말을 건넸지만 동자는 들은 체도 않더니, 여러 번 만에야 웃으면서 대답했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을 보면 천사를 만나러 온 모양이군요.” “목동에 지나지 않는 네가 어떻게 그것을 아느냐?” 홍신이 놀라 묻자 동자가 웃으며 말한다. “오늘 아침 천사께서 ‘천자께서 나를 동경(東京, 북송의 수도였으며 지금의 하남성 개봉開封을 말한다)으로 불러다가 전염병을 물리칠 수 있는 제를 지내게 하려고 홍장군을 보냈으니, 지금 학을 타고 가보아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쯤은 떠나고 안 계실 것 같으니 더 올라가지 마십시오. 산에는 맹수와 독충이 우글대서 자칫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동자는 이렇게 말하더니 피리를 불며 사라져버렸다. 가뜩이나 겁에 질려 있던 홍신은 천사가 이미 떠났다는 말을 듣고서는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홍신이 상청궁에 도착하여 여러 도사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들을 말하자, 도사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실은 그 목동이 바로 천사이시니, 장군께서는 좋은 기회를 놓치셨습니다. 그렇지만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천사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장군께서 서울로 돌아가시면 이미 제를 끝내셨을 것입니다.” 홍신은 그 말을 듣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이튿날 홍신은 용호산을 유람했는데 한 곳에 이르니 색다른 전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면에 붉은 벽이 둘러져 있고, 역시 붉은 색의 문에는 팔뚝만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는데, 그 자물쇠 위에는 붉은 도장이 잔뜩 찍힌 봉인 여남은 장이 더덕더덕 붙어 있었으며, ‘복마전(伏魔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궁금해진 홍신이 물으니 도사가 대답했다. “이곳은 마왕을 가둬둔 전각입니다. 당나라의 동현국사(洞玄國師)께서 마왕을 가두고 봉인했는데, 그후 역대 천사들께서 봉인을 추가했습니다. 마왕이 다시 세상에 나온다면 세상에 큰 화를 끼칠 것이므로, 8,9대를 내려오는 동안 아무도 열지 못하게 하였으며, 자물쇠에는 구리 쇳물을 부어 단단히 잠기도록 했습니다. 아무도 저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릅니다.”
궁금증이 발동한 홍신은 도사들의 만류를 뿌리치면서 기어이 문을 열게 했다. 봉인을 뜯어낸 다음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갔는데, 그 안은 몹시 캄캄했다. 횃불을 피우니 돌거북 위에 세워진 비석이 하나 보였고, 비석에는 알 수 없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다시 비석 뒤쪽을 보니 ‘홍(洪)을 만나 열리리라’라고 쓰여져 있었다. 이것을 보고 의기양양해진 홍신은 아예 비석 아래도 파헤치라고 명령했다. 도사들이 간곡히 말렸지만, 홍신이 끝내 고집을 부려 비석을 넘어뜨리고 돌거북을 들어냈다. 다시 밑을 파 들어가니 사방 10미터가 넘는 돌판이 드러났고, 돌판을 들어내니,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가 나타났다. 그런데 별안간 구덩이 속으로부터 ‘우르릉 쾅쾅’ 세상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무서운 소리가 울려나오더니, 먹장같이 시커먼 구름이 솟구쳐올랐다. 그것은 전각 한 모퉁이를 무너뜨리고 하늘로 회오리쳐 올라갔는데, 곧 이어 백여 줄기의 찬란한 금빛으로 변하여 사면팔방으로 흩어졌다.
일을 하던 사람들은 괭이와 삽들을 내던지면서 달아나느라 바쁘고, 홍신 역시 얼굴이 흙빛이 되어 꽁무니를 빼었다. 도사가 그 뒤를 따라 오면서 우는 소리를 했다. “선대의 동현천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전각 안에는 천강성(天罡星) 서른 여섯과 지살성(地煞星) 일흔 둘, 합하여 108 마왕을 가두어두었다. 만일 그것들을 세상에 나가게 하면 반드시 하계의 생령들을 괴롭힐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장군께서 그것들을 내보내버렸으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이 말을 들은 홍신은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와들와들 떨었다. 그는 부랴부랴 산을 내려와 서울로 떠났는데, 자신이 한 짓을 입 밖에 내지 못하도록 일행을 단속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홍신이 서울로 돌아오니, 천사는 이미 전염병을 물리치고 용호산으로 돌아간 뒤였고, 홍신이 한 짓을 알 리가 없는 인종 황제는 큰 상을 내렸다.
고구는 휘종의 총애를 받고, 왕진은 고구의 미움을 받다
인종 황제 이후 세 번 황제가 바뀌어 철종(哲宗)이 즉위했다. 동경의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 부랑자로 살고 있는 자가 있었다. 늘 창술과 봉술 따위를 익히면서 세월을 보냈는데, 공 차는 재주가 특히 뛰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고구(高毬)라고 불렀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동궁(東宮)인 단왕(端王)의 시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단왕은 높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시종 건달들이 하는 짓까지 못하는 것이 없었고 늘 이런 놀이들을 즐기고는 했는데, 고구의 공차기 재주가 단왕 눈에 띄어 발탁된 것이었다. 그런데 고구가 단왕을 모신 지 두 달이 채 안되어 철종이 세상을 뜨자 단왕이 황제에 즉위하였으니, 그가 바로 휘종(徽宗)이었다. 총애를 듬뿍 받아오던 고구는 단왕이 황제에 즉위하자 그야말로 승승장구했고, 반 년도 채 못되어 궁정 수비대의 대장으로 임명됐다.
수비대에 부임하게 된 고구는 도착 즉시 부하들을 점호했는데, 무술 사범인 왕진(王進)이 보이지 않았다. 병을 앓고 있어서 참석할 수 없다는 보고서를 올렸다고 했지만, 고구는 이를 용인하지 않고 크게 화를 내며 호통쳤다. “허튼 소리다. 그놈이 관부에 저항하고 나를 얕보는 것이다. 틀림없이 병을 핑계로 집에 자빠져 있을 테니 당장 잡아들여라!”
기별을 받은 왕진은 하는 수 없이 병든 몸을 끌고 수비대로 갔는데, 그를 본 대장은 다짜고짜 으르렁댔다. “이놈, 네가 왕승(王升)의 아들놈이지? 네놈의 애비는 길바닥에서 얼치기 봉술로 사람들을 꼬여 약이나 팔던 놈이었으니, 너 따위가 무예를 알 리가 없다. 전임 대장이 눈이 멀어 네놈을 무술 사범으로 임명한 모양인데, 감히 나를 깔보고 점호를 안 받다니! 누구를 믿고 병타령을 하며 집에 자빠져 있었단 말이냐?”
대장은 급기야 왕진에게 매를 안기라고 명령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만류로 간신히 화를 모면한 왕진은 대장의 얼굴을 보고서는 소스라칠 듯 놀랐다. 다름 아닌 고구가 바로 대장의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수비대 문을 나서는 왕진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내 목숨이 위태롭구나. 대장이 누군가 했더니 이름난 망나니요, 공차기 노름꾼이었던 고구란 놈이구나. 이놈이 전에 까불다가 우리 아버지의 몽둥이에 거꾸러져서 서너 달 동안 움직이지도 못한 적이 있었는데, 여태 잊지 않고 있다가 지금 수비대 대장이 되었으니 앙갚음을 하려는 모양이다. 내가 하필이면 이놈의 부하가 되다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왕진은 집으로 돌아와 이날 겪은 일을 말하면서 육순이 넘은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모자가 상의한 결과, 그대로 있으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둘은 삼십육계 줄행랑이 상책이라고 생각하여, 전부터 왕진의 무술을 아껴왔으며 지금은 변방에 근무하고 있는 고관 한 사람을 찾아가기로 했다.
왕진 모자가 고구 몰래 길을 떠난 지 달포쯤 되는 어느날이었다. 걸음을 재촉하다가 밤이 늦어서야 묵어갈 곳을 찾기 시작했는데, 주막은 고사하고 마을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모자는 어떻게 밤을 보낼까 걱정하고 있는데, 멀리서 한 가닥 불빛이 반짝였다. 모자가 기뻐하며 숲속으로 찾아 들어가니 커다란 장원이 나타났다. 한참 대문을 두드려서야 하인 하나가 나타났는데, 주인에게 딱한 처지를 알리니 유숙을 허락해주었다. 이렇게 하여 왕진 모자는 그날 밤을 무사히 넘기게 됐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뜻밖에도 어머니의 가슴앓이가 도져 길을 떠날 수가 없었다.여행에 지쳐 고질병이 도진 것이었는데, 인정 많은 집주인은 어머니의 병이 나을 때까지 며칠 더 묵을 것을 허락해주었다.
구문룡, 고향집을 불사르고 강호로 떠나다
6, 7일이 지나 어머님의 병이 다 낫자 왕진은 떠날 채비를 마치고 뒤뜰로 말을 살피러 갔다. 그런데 그 옆 공터에서 젊은이 하나가 웃통을 벗고서 봉술을 연습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은쟁반처럼 훤한 얼굴에 나이는 18, 9세쯤 되어보이는 그 젊은이는 온몸에 용무늬 문신을 새겨져 있었다. 왕진은 젊은이가 연습하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봉(棒)을 잘 쓰기는 한데 아직 빈 구석이 있어서 강한 적수를 이길 수는 없겠군.”
한참 연습에 열중하던 젊은이는 이 말을 듣자 버럭 화를 냈다. “당신이 누구기에 함부로 남의 솜씨를 비웃는 거요? 나는 지금까지 7, 8명의 유명한 스승들께 봉술을 배웠는데, 나하고 한번 겨루어보겠소?”
사태가 험악해지려고 하자, 마침 주인 노인이 나타나서 젊은이를 꾸짖어 진정시켰다. 노인은 그 젊은이가 자기 아들이라고 소개하면서, 왕진더러 봉을 쓸 줄 아느냐고 물었다. 왕진은 그렇다고 대답하고 나서, 젊은이에게 봉술을 가르침으로써 그동안의 신세를 갚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젊은이는 오히려 화를 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행색이 초라한 왕진이 믿기지 않았는지, 왕진과 겨루어본 뒤 자기보다 고수일 경우에만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고집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왕진은 젊은이와 솜씨를 겨루게 됐는데, 주인 노인은 아들이 다쳐도 좋으니 실력을 모두 발휘해달라고 부탁했다. 왕진이 봉을 골라잡고 자세를 갖추자, 젊은이가 봉을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왕진이 봉끝을 땅에 끌며 한쪽으로 살짝 피하니, 젊은이는 손에 든 봉을 풍차처럼 휘두르며 쫓아왔다. 이때 재빨리 돌아선 왕진이 봉을 번쩍 들어 다리를 겨누고 내리치니, 젊은이는 자신의 봉으로 그것을 막으려 했다. 순간 왕진은 봉을 도로 당기더니 어느새 젊은이의 가슴을 질렀다. 그러자 젊은이의 손에 들렸던 봉은 허공으로 날아가고, 젊은이는 벌렁 뒤로 넘어졌다.
왕진이 그를 부축해 일으키며, 다치지는 않았느냐며 미안해했다. 그러나 젊은이는 혼자서 툭툭 털고 일어나더니, 마당 한쪽에 있던 의자를 가져다 왕진을 앉히고서는, 절을 올리며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말했다. 이에 왕진은 자신이 동경 80만 수비대의 사범이었음을 밝혔고, 주인 노인은 아들더러 다시 절을 올리도록 시키고는 자기 집안 내력을 말했다. “이 동네는 3, 4백호 되는 집이 모두 사(史)씨 성을 가졌기 때문에 사가촌(史家村)이라고 부르지요. 내 아들놈은 어릴 적부터 밤낮 창이나 봉에만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제 에미는 이 때문에 화병이 나 죽고 말았지요. 나는 별도리가 없어서 저 하자는 대로 선생님들을 모셔다 무술을 배우게 했습니다. 그리고 솜씨 좋은 이를 불러다가 몸에다 아홉 마리의 용을 새겨주었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놈을 구문룡(九紋龍) 사진(史進)이라고 부른답니다. 이놈이 소원을 이루도록 잘 가르쳐주시면 사례는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날부터 사진은 18반 무예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는데, 반 년이 지나니 사진의 솜씨가 더 이상 가르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됐다. 그리하여 왕진 모자는 사진 부자와 작별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로부터 반 년 후, 사진의 아버지가 세상을 떴다. 사진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지 서너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하루는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다가 이길(李吉)이라는 사냥꾼이 집안을 엿보는 것을 발견했다. 사진은 일부러 그를 불러 왜 자기 집에는 사냥한 짐승을 팔러 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길은 자기가 다니는 소화산(少華山)에 6, 7백 명이나 되는 도적떼가 자리잡고 있어서 사냥을 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사진은 자기 마을도 도적떼의 분탕질에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곧 물소 두 마리를 잡고 좋은 술을 꺼낸 다음 사씨 일가를 모두 불러모았다. 그리하여 도적이 침입해오면 큰 목탁을 쳐서 서로에게 알리기로 약속했고,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 무기를 준비했다. 사진은 서둘러 대문과 담장을 수리하고, 요소요소에 큰 목탁을 매달았을 뿐만 아니라, 갑옷이나 무기 말 등까지도 점검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