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혼의 장미, 부활하는 생명
고대 동방에서는 무덤가에 {W:예리혼}의 장미를 놓았다고 한다. 가시가 잔뜩 난 이 꽃은 사해(死海)아래쪽 시나이 산자락, 자갈밭에만 사는데,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수천 리 떨어진 곳에 수백년간 죽은 듯 마른 듯 있다가도 물을 만나면 언제든 다시 잎을 내고 꽃을 피운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그래서 고대 동방의 사람들은 그 꽃을 불멸과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믿음의 증표로 여겼던 것이다.
세상에 죽음은 없다
언젠가 존재했던 한.
이별도, 상실도 없다
내 영혼과 내 사랑과 내 기억이 있는 한.
이반 부닌은 망명 후 펴낸 자신의 단편집에 '예리혼의 장미' 이야기를 서문으로 붙였다. 조국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의 남쪽 외딴 지방에서 망명객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자신의 불우한 삶 속에서, 그래도 꺼지지 않는 생명의 희망을 노래한 것이다. 조국을 잃고 살아간 그 자신이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언제나 목말라하던 예리혼의 장미였을까.
1933년 러시아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반 알렉세이비치 부닌는 1870년 오랜 전통을 가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가 자란 중부 러시아의 아룔 지방은 이름 없는 꽃들로 뒤덮인 언덕과 물결치듯 출렁이는 밀밭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에서 어린 부닌은 광할한 러시아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유난히 발달한 오감으로 만끽하면서 예술가로서의 감수성을 키웠다.
자유로운 사고와 섬세한 감성을 지닌 부닌에게 규격화된 제도는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중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몰래 호머의 《일리아드》를 읽다가 교장선생님께 들켜 야단을 맞게 되자 자신이 어린아이가 아니므로 그에 어울리는 대접을 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정도로 자의식 또한 강했다. 결국 그는 스스로 학교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뒀다. 그의 예술적 자질을 키워준 것은 학교도, 잘 짜여진 교육도 아닌,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이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과 달리 현실은 점점 어려워졌다. 영락(榮落)하는 집안 현실과 비참한 삶을 영위해 가는 농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닌은 귀족도 농민도 모두 다를 바 없는 사람임을 느낀다.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사랑할 뿐'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도 차츰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러시아인의 어두운 내면을 본다.
당연히 부닌이 그려낸 러시아의 모습이 19세기 말의 많은 리얼리즘 작가들이 그려낸 긍정적이며 밝고 희망찬 러시아의 모습과 거리가 있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존재에 대한 의문은 부닌으로 하여금 죽음과 사랑, 삶과 자연을 천착하게 했다.
망명객으로서의 쓸쓸한 삶
그가 문학 활동을 하던 시기는 '은세기'로 불리던 러시아의 새 문예부흥기였다. 이 시기에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그룹을 만들어 문학 강령을 발표하고, 서로 경계를 만들며 새로운 시대의 기수임을 자처했다. 부닌도 초반에는 고리키가 주축이 된 리얼리즘 계열의 문학서클 '수요일'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곧 부닌은 이들이 가진 문학적 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어떤 사상이든 그것을 위해 예술이 복무해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부닌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말해주는 대신 우리가 사는 모습을 거짓없이 보여주는 것이 작가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부닌에게 1917년 혁명은 러시아인이 갖고 있던 어두운 내면이 표출된 야만의 상징으로 느껴졌다. 과거를 철저히 부정하고 유구한 문화를 송두리째 짓밟는 혁명의 현실을 부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에게 혁명은 반문화적 폭력일 뿐이었다. 결국 그는 1920년 오데사를 통해 프랑스로 망명하고, 그후 죽을 때까지 둥지 없는 방랑생활을 했다.
그러나 망명객을 보는 유럽 지성의 시선은 차가왔다. 혁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그들에게 망명객은 자신의 안일만을 위해 조국을 등진 '비겁한' 사람일 뿐이었다. 이미 고향을 잃은 아픔을 감수한 부닌에게 이런 시선은 또다른 심리적 고통을 안겨줬다. 낯선 나라를 떠돌며 심리적, 경제적, 정치적 고통을 겪던 부닌은 193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이때 그의 나이 53세, 망명지 프랑스에 정착한 지 십여 년이 지난 후였다.
부닌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비겁자로 낙인 찍힌 수많은 러시아 망명객들의 삶에 객관적인 명분을 준 동시에 러시아에서도 마침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자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노벨상 시상식 장소에서 조국 러시아의 국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후 소련으로부터 여러 번 귀국을 제안받지만 부닌은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고, 1953년 파리에서 그 쓸쓸했던 삶을 마감했다. 형이상학적 주제를 미학적 문체로
러시아 문학사에서 미학적 스타일리스트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부닌의 산문은 예술적인 완성도 측면에서 세계문학사상 매우 높게 평가받는다. 〈가벼운 숨결〉, 〈일사병〉,〈깨끗한 월요일〉,〈미차의 사랑〉,〈파리에서〉 등의 작품은 간결하고 절제된 언어구사와 주제와 구성의 완벽한 일치로 지금까지도 러시아 작품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인간 본연의 문제, 특히 사랑과 죽음에 대한 탐미적 묘사는 러시아 문학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다.
그에게 노벨상의 영광을 가져다준 장편소설 《아르세네프의 생애》는 존재의 시작과 끝이라는 매우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을 다루지만 이런 주제는 부닌의 필치 속에서 서정적이면서도 투명한 언어로 '가볍게' 묘사돼 그 주제가 가진 무거움을 벗는다. 부닌의 주인공이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 맡는 것을, 독자들도 마치 직접 느끼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혀 자연스럽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 속에 몰입하게 된다. 이런 심미적 현장감이야말로 바로 부닌의 작품이 가진 현대성이다.
20세기 러시아 작가 가운데 가장 비정치적이었던 부닌은 역설적이게도 두 번이나 정치적 상황의 변화를 지칭하는 문학적 기호 역할을 했다. 하나는 흐루시초프 시절 소련 내에 소개된 유일한 망명작가로 해빙기 무드를 상징하는 역할을 했고,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이때부터 시작된 부닌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인 것이었다.
단순히 정치적 지형의 변화를 떠나, 부닌이 창조한 예술적 세계의 보편성과 진정성은 현대인들의 마음을 울린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꽃을 피워줄 물을 만날 희망을 품고 뜨거운 태양을 견디는 '예리혼의 장미'는 미래의 '독자(讀者)'를 기다리는 시인의 애달픈 마음으로 묵묵히 글을 썼던 부닌의 또다른 이름인지 모른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화자인 알렉세이 아르세네프는 망명작가로 프랑스 남부에 살고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 러시아 시골에서 보낸 아름다운 시간에 대한 기억을 세상에 남기기 위해 그 시절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르세네프의 어린 시절은 '사모바르'라 외치는 아버지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가문은 비록 과거의 빛나는 영광을 잃고 가난에 빠져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르세네프는 자신이 유서깊은 가문의 자손임을 자랑스러워한다. 가난에 괴로워하기에 주인공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집, 마당, 창고, 안뜰을 거쳐서 동구 밖 골짜기로 넓어져 가는 주인공의 세상은 신비로운 모험의 장소였다.
자유로이 세상을 호흡하는 주인공이 겪는 목동과 여동생의 죽음은 세상의 또 다른 신비, 죽음을 경험하게 한다. 남다른 감성을 가진 주인공은 이들의 죽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결국 인간은 모두 죽게 된다니, 피할 수 없는 죽음이 호시탐탐 우리를 기다린다니,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부질없는 일이 아닐까 그는 이런 생각에 빠진다.
그러나 세상에는 죽음으로 인해 더 빛나는 삶의 아름다움도 존재하는 법, 주인공은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키워가며 푸쉬킨, 고골리, 레르몬토프에 이르는 불멸의 대열에 함께 할 꿈을 꾼다. 김나지움에 입학하지만 규격화된 삶을 참을 수 없었던 아르세네프는 자퇴를 하고 시골로 돌아가 독학하며 문학수업을 시작한다. 더 넓은 세상을 꿈꾸던 아르세네프는 고향을 떠나 러시아 대륙 여행을 시작한다. 고대 러시아의 잔재들을 보며 시간에 대한 인식을 넓혀가던 중 아룔에서 아르세네프는 운명의 상대, 리카를 만나게 되는데.....
고대 동방에서는 무덤가에 {W:예리혼}의 장미를 놓았다고 한다. 가시가 잔뜩 난 이 꽃은 사해(死海)아래쪽 시나이 산자락, 자갈밭에만 사는데,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수천 리 떨어진 곳에 수백년간 죽은 듯 마른 듯 있다가도 물을 만나면 언제든 다시 잎을 내고 꽃을 피운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그래서 고대 동방의 사람들은 그 꽃을 불멸과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믿음의 증표로 여겼던 것이다.
세상에 죽음은 없다
언젠가 존재했던 한.
이별도, 상실도 없다
내 영혼과 내 사랑과 내 기억이 있는 한.
이반 부닌은 망명 후 펴낸 자신의 단편집에 '예리혼의 장미' 이야기를 서문으로 붙였다. 조국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의 남쪽 외딴 지방에서 망명객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자신의 불우한 삶 속에서, 그래도 꺼지지 않는 생명의 희망을 노래한 것이다. 조국을 잃고 살아간 그 자신이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언제나 목말라하던 예리혼의 장미였을까.
1933년 러시아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반 알렉세이비치 부닌는 1870년 오랜 전통을 가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가 자란 중부 러시아의 아룔 지방은 이름 없는 꽃들로 뒤덮인 언덕과 물결치듯 출렁이는 밀밭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에서 어린 부닌은 광할한 러시아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유난히 발달한 오감으로 만끽하면서 예술가로서의 감수성을 키웠다.
자유로운 사고와 섬세한 감성을 지닌 부닌에게 규격화된 제도는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중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몰래 호머의 《일리아드》를 읽다가 교장선생님께 들켜 야단을 맞게 되자 자신이 어린아이가 아니므로 그에 어울리는 대접을 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정도로 자의식 또한 강했다. 결국 그는 스스로 학교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뒀다. 그의 예술적 자질을 키워준 것은 학교도, 잘 짜여진 교육도 아닌,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이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과 달리 현실은 점점 어려워졌다. 영락(榮落)하는 집안 현실과 비참한 삶을 영위해 가는 농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닌은 귀족도 농민도 모두 다를 바 없는 사람임을 느낀다.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사랑할 뿐'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도 차츰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러시아인의 어두운 내면을 본다.
당연히 부닌이 그려낸 러시아의 모습이 19세기 말의 많은 리얼리즘 작가들이 그려낸 긍정적이며 밝고 희망찬 러시아의 모습과 거리가 있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존재에 대한 의문은 부닌으로 하여금 죽음과 사랑, 삶과 자연을 천착하게 했다.
망명객으로서의 쓸쓸한 삶
그가 문학 활동을 하던 시기는 '은세기'로 불리던 러시아의 새 문예부흥기였다. 이 시기에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그룹을 만들어 문학 강령을 발표하고, 서로 경계를 만들며 새로운 시대의 기수임을 자처했다. 부닌도 초반에는 고리키가 주축이 된 리얼리즘 계열의 문학서클 '수요일'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곧 부닌은 이들이 가진 문학적 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어떤 사상이든 그것을 위해 예술이 복무해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부닌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말해주는 대신 우리가 사는 모습을 거짓없이 보여주는 것이 작가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부닌에게 1917년 혁명은 러시아인이 갖고 있던 어두운 내면이 표출된 야만의 상징으로 느껴졌다. 과거를 철저히 부정하고 유구한 문화를 송두리째 짓밟는 혁명의 현실을 부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에게 혁명은 반문화적 폭력일 뿐이었다. 결국 그는 1920년 오데사를 통해 프랑스로 망명하고, 그후 죽을 때까지 둥지 없는 방랑생활을 했다.
그러나 망명객을 보는 유럽 지성의 시선은 차가왔다. 혁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그들에게 망명객은 자신의 안일만을 위해 조국을 등진 '비겁한' 사람일 뿐이었다. 이미 고향을 잃은 아픔을 감수한 부닌에게 이런 시선은 또다른 심리적 고통을 안겨줬다. 낯선 나라를 떠돌며 심리적, 경제적, 정치적 고통을 겪던 부닌은 193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이때 그의 나이 53세, 망명지 프랑스에 정착한 지 십여 년이 지난 후였다.
부닌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비겁자로 낙인 찍힌 수많은 러시아 망명객들의 삶에 객관적인 명분을 준 동시에 러시아에서도 마침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자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노벨상 시상식 장소에서 조국 러시아의 국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후 소련으로부터 여러 번 귀국을 제안받지만 부닌은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고, 1953년 파리에서 그 쓸쓸했던 삶을 마감했다. 형이상학적 주제를 미학적 문체로
러시아 문학사에서 미학적 스타일리스트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부닌의 산문은 예술적인 완성도 측면에서 세계문학사상 매우 높게 평가받는다. 〈가벼운 숨결〉, 〈일사병〉,〈깨끗한 월요일〉,〈미차의 사랑〉,〈파리에서〉 등의 작품은 간결하고 절제된 언어구사와 주제와 구성의 완벽한 일치로 지금까지도 러시아 작품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인간 본연의 문제, 특히 사랑과 죽음에 대한 탐미적 묘사는 러시아 문학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다.
그에게 노벨상의 영광을 가져다준 장편소설 《아르세네프의 생애》는 존재의 시작과 끝이라는 매우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을 다루지만 이런 주제는 부닌의 필치 속에서 서정적이면서도 투명한 언어로 '가볍게' 묘사돼 그 주제가 가진 무거움을 벗는다. 부닌의 주인공이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 맡는 것을, 독자들도 마치 직접 느끼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혀 자연스럽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 속에 몰입하게 된다. 이런 심미적 현장감이야말로 바로 부닌의 작품이 가진 현대성이다.
20세기 러시아 작가 가운데 가장 비정치적이었던 부닌은 역설적이게도 두 번이나 정치적 상황의 변화를 지칭하는 문학적 기호 역할을 했다. 하나는 흐루시초프 시절 소련 내에 소개된 유일한 망명작가로 해빙기 무드를 상징하는 역할을 했고,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이때부터 시작된 부닌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인 것이었다.
단순히 정치적 지형의 변화를 떠나, 부닌이 창조한 예술적 세계의 보편성과 진정성은 현대인들의 마음을 울린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꽃을 피워줄 물을 만날 희망을 품고 뜨거운 태양을 견디는 '예리혼의 장미'는 미래의 '독자(讀者)'를 기다리는 시인의 애달픈 마음으로 묵묵히 글을 썼던 부닌의 또다른 이름인지 모른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화자인 알렉세이 아르세네프는 망명작가로 프랑스 남부에 살고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 러시아 시골에서 보낸 아름다운 시간에 대한 기억을 세상에 남기기 위해 그 시절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르세네프의 어린 시절은 '사모바르'라 외치는 아버지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가문은 비록 과거의 빛나는 영광을 잃고 가난에 빠져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르세네프는 자신이 유서깊은 가문의 자손임을 자랑스러워한다. 가난에 괴로워하기에 주인공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집, 마당, 창고, 안뜰을 거쳐서 동구 밖 골짜기로 넓어져 가는 주인공의 세상은 신비로운 모험의 장소였다.
자유로이 세상을 호흡하는 주인공이 겪는 목동과 여동생의 죽음은 세상의 또 다른 신비, 죽음을 경험하게 한다. 남다른 감성을 가진 주인공은 이들의 죽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결국 인간은 모두 죽게 된다니, 피할 수 없는 죽음이 호시탐탐 우리를 기다린다니,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부질없는 일이 아닐까 그는 이런 생각에 빠진다.
그러나 세상에는 죽음으로 인해 더 빛나는 삶의 아름다움도 존재하는 법, 주인공은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키워가며 푸쉬킨, 고골리, 레르몬토프에 이르는 불멸의 대열에 함께 할 꿈을 꾼다. 김나지움에 입학하지만 규격화된 삶을 참을 수 없었던 아르세네프는 자퇴를 하고 시골로 돌아가 독학하며 문학수업을 시작한다. 더 넓은 세상을 꿈꾸던 아르세네프는 고향을 떠나 러시아 대륙 여행을 시작한다. 고대 러시아의 잔재들을 보며 시간에 대한 인식을 넓혀가던 중 아룔에서 아르세네프는 운명의 상대, 리카를 만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