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세네프의 생애
이반 알렉세이비치 부닌 지음 | -
아르세네프의 생애(Жизнь Арсеньева)
이반 알렉세이비치 부닌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알렉세이 아르세네프: 화자. 조국 러시아를 떠나 남프랑스에 살고 있는 작가로 자신의 유년, 청년 시절을 회상한다.
알료샤 아르세네프: 삶과 죽음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소년으로 화자의 어린 시절.
리카: 알료사의 연인. 사교적 모임을 좋아하는 그녀는 알료샤와 잦은 충돌을 겪지만 알료샤를 진정으로 사랑한다.
아버지: 크림전쟁에도 참여했던 귀족으로, 현실감각이 없어 기울어가는 가세를 바로 잡지 못하고 함께 영락해간다.
어머니: 매우 감상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가족을 위해 끊임없이 신에게 기도한다.
그레고리 아르세네프: 주인공의 형으로 매우 혁명적인 사상을 지녀 유형에 처해진다.
안헨: 알료샤의 첫사랑
바스카코프: 알료샤의 가정교사. 알료샤에게 예술에 대한 꿈을 심어준다.
1장 글을 쓰는 것은 삶을 얻는 것
씌어지지 않은 세상사는 어둠에 덮여 무기억의 관 속에 잠겨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시작과 끝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자신의 시작, 즉 탄생의 시간을 알지 못했더라면 자신의 죽음 또한 예견할 수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죽음이 있음으로 해서 인간은 더욱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그 진실을 찾아 나는 기억 속에 남은 최초의 기억을 더듬어 시간여행을 떠난다.
모든 인간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왠지 모를 슬픔을 느끼게 만든다.
적막 속에서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방은 내게 언제나 본원적 고독을 느끼게 했다. 무작위로 떠오르는 기억의 편린들은 내 가슴을 죄는 듯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든다. 점차 내 시야로 사람들이, 어머니, 아버지, 유모의 얼굴들이 들어오면서, 내 삶에 가족이 들어온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갔던 최초의 도시여행은 내게 어른이 되어 보았던 후푸왕의 피라미드보다 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그 설렘과 흥분, 천 리처럼 길게 느껴지는 여정 그리고, 반짝이는 검은 빛깔과 자극적 냄새의 새로 산 구두약은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창살이 달린 커다란 노란색의 집 창문에 선, 죄수, 도둑, 살인마 등으로 불리는 사람을 봤다. 그들에게서 나는 뭔가 무시무시하지만 매혹적이기도 한 동화 같은 신비로움을 느꼈다.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떠올리면 사랑한다는 것의 두려움, 그것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에 몸서리쳐진다. 다른 누구와도 구별되는 특별한 이였던 어린 시절의 어머니와 지금 저 멀리 러시아의 벽지, 차가운 땅 속에 묻혀 있을 어머니는 내게 다시금 인간의 길과 하늘이 정한 길 사이의 간격을 느끼게 한다. 어린 나는 우엉과 엉겅퀴 사이를 헤집으며 자연이 벌여놓은 식탁을 만끽한다.
수난 주일을 엄숙히 보내고 다가온 신선한 삶의 생기는 비온 뒤 밭에서 흙 묻은 무우를 뽑아 먹을 때의 그것이었다. 내 세계는 마굿간으로, 가축우리로, 창고로, 절벽으로, 점점 넓어져갔다.
아침은 “사모바르!”라고 외치는 아버지의 목소리로 시작됐다. 나는 어서 벚나무로 달려가 새들이 쪼아댄, 태양에 익은 버찌를 먹을 기쁜 생각에 잠을 깼다. 다른 것도 있었지만 기억하고 싶지도, 기억할 수도 없었다. 그런 어느 날 정오 나는 형 니콜라이와 함께 온 처녀 사쉬카를 보면서 가슴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햇빛에 검게 그을린 건강한 그들의 아름다움, 그들의 미소가 내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삶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한 목동의 죽음을 듣게 된 나는 ‘시체’라는 말에 전율을 느꼈다.
왜 그렇게 내가 처음 듣는 말이었는데도 무서웠을까? 그럼 내가 이미 그 말을 언젠가 알았다는 것인가?
나는 의식적 삶의 영역으로 접어들게 됐다. 어느날 내 앞에 바스카코프라는 사람이 등장했다. 그는 가정교사로서 사람의 삶에는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 잔혹하고도 비열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내게 예술가가 되고픈 꿈을 심어줬다.
물감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온몸이 떨려왔다. 아침부터 밤까지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원초적인 연보라빛으로 변해가는 파란 하늘을 보면서 몇 시간이고 서 있었다. 그 하늘 한 조각은 한낮의 더운 해를 등지고, 마치 푸르름 속에서 목욕하는 듯이 나무꼭대기 사이로 비쳤다. 그것은 하늘과 땅의 빛깔이 가진 진실로 성스러운 의미를 느끼게 했다. 삶이 내게 준 것을 되돌아볼 때 나는 이 순간이 내 생애에 가장 중요한 한 순간임을 안다. 연보라빛 푸른 하늘, 나뭇가지와 잎사귀 사이로 보이는 그 파란 하늘을 지금 죽어가며 이렇게 기억한다.
돈키호테를 읽으며 나는 내가 중세의 어느 열렬한 가톨릭 신자였다고 생각했다. 기사들의 성과 로빈슨 크루소는 내가 그들의 시대에 속해있었음을 느끼게 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조국’을 느꼈다. 나를 열광시키는 것은 또한 푸쉬킨과 고골리였다. 푸쉬킨의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는 이후 내 문학수업에 영향을 줬다. 이 모든 것을 나는 감각이 이끄는 대로 느끼고 행동했다.
카멘카에서 보낸 마지막 겨울 나는 심한 병을 앓았다. 그리고 두달 후 크리스마스에 어린 여동생 나쟈의 죽음을 겪었다.
나는 문득 깨닫는다. 나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하는 존재며 나쟈가 그렇게 가버렸듯, 나 또한 그럴 수 있음을, 그리고 모든 이 땅의 사물들, 생명이 있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육체가 있는 것도 모두가 죽게 된다는 것, 썪어지고, 나쟈의 입술을 뒤덮었던 그 검푸른 빛으로 변하게 되리라는 것이다.나쟈의 죽음을 겪은 그 해 겨울을 나는 성자전을 읽으며 신에 매달려 보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새로운 봄의 향기, 그 젊음과 자유, 신선함이 내게 새로운 공기를 숨쉬게 했다. 그 해 8월 나는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입학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입학 전까지 나는 3주 동안의 꿈 같은 휴가를 가졌다. 8월 말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사냥에 나섰다. 곧 있을 가족과의 이별, 내 유년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2장 사회주의자 형 그레고리의 유형
카멘카마을을 떠나 김나지움이 있는 도시로 왔다. 나는 상인 로스토프체프의 집에서 하숙생활을 시작했다. 그 집에서 동급생 글레보치카를 만났다. 사생아라는 소문이 있던 글레보치카는 마치 작은 짐승처럼 웅크리고 앉아 눈치를 살피는 등 평범하지 않았다. 밀과 가축을 중개하는 집주인 로스토프체프는 말수가 아주 적고, 행동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에 규칙을 정해 자신에게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지키도록 했다. 자신이 상인이며, 건실한 시민이라는 것을 몹시 자랑스러워하는 로스토프체프는 러시아를 풍미한 러시아적인 것에 대한 오만함이었다.
무엇을 자랑스러워하냐고? 그것은 물론 우리들이, 로스토프체프들이, 러시아인, 진정한 러시아인이라는 것이며,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 소박한 우리들의 삶, 순박한, 그런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삶은 진정한 러시아적 삶이며 그보다 더 나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왜냐면 소박한 것은 다만 겉으로만 그럴 뿐이다. 실제론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 풍요로운 삶이다. 그런 삶은 본원적인 러시아의 이상이다. 러시아는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도 풍요롭고, 강하며, 올바르고 영광스러운 나라다.
이런 생각은 로스토프체프만의, 그가 살고 있던 도시만의 풍조가 아니라 전러시아적인 생각이었다. 어른이 된 나는 스스로 묻는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죽어갈 때, 그 오만함은 어디갔던가?” 하고.
김나지움 생활은 그럴 수 없을 만큼 지루했다. 하루가 지나고, 일 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아침부터 밤까지 분주히 움직이며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세상에 참여하지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 괴로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저녁 길에서 마주친 여인은, 그 밤 분수와 물보라, 군악대의 음악소리, 그리고 담배향과 어우러져 그 후 담배향을 맡을 때마다 풋사랑의 설렘으로 그 순간의 소리와 정경을 떠올리게 했다.
그해 늦가을 첫 서리가 내릴 무렵, 나는 뭔가를 알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의 매혹됐다. 고대의 수도원처럼, 뭔가 오래된 것을 생각하면 그것을 시로 표현하고 싶다는 시적 상상에 빠졌다. 수도원을 돌아 도시로, 가난하고 더러운 거리를 따라 내려오면 가죽을 무두질하는 집들이 들어서 있는 낡고 오래된 곳, 이런 곳을 바라보며, 뭔가 동화같은 이야기를 짓고 싶었다.
아버지는 카멘카를 팔고 바투리노로 이사하면서 마치 부자가 된 듯, 도시에 올 때마다 최고급 호텔에 머물곤 했다. 이때가 우리 가족에게 경제적 걱정이 없었던 마지막 시기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날 보러 왔고, 함께 서커스를 구경하기도 하고 미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몹시 추운 겨울이었다. 주현절의 추위는 아득한 고대 러시아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밤이 되면 칠흑같이 검은 하늘에 오리온성이 반짝였고, 이튿날 아침 거리는 무척 미끄러웠다. 청명한 대기 속에 도시 전체는 집집마다 내뿜는 알싸한 연기에 뒤덮였고, 길 가는 사람들 발걸음 소리와 썰매가 지나가며 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 어느 날 교회 앞에서 바보 거지였던 두냐가 죽었다. 도시 전체가 마치 그녀가 왕족인 듯 장례를 치러줬다.
그리고 생애 최초의 무도회가 있었다. 어여쁘게 차려입은 아가씨들, 그들의 하얀 장갑과, 가벼운 무도화, 하얀 깃털장식들, 검은 빌로드 스카프, 실크 리본,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황홀경에 빠뜨렸다. 무도회가 끝난 후에도 나는 오랫동안 그 날의 느낌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3학년이 되고 나는 수업시간에 몰래 『일리야드』를 읽다가 교장 선생님께 들켰다. 교장선생님의 훈계에 내가 어린 아이가 아니니까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했다. 이 시기에 나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우 성장해 있었다.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을 잘 이해했으며 주위 사람들에 대해 조금은 오만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4학년 9월 즈음에 나는 바딤 로푸힌이라는 녀석과 사귀게 됐다. 자신이 귀족임을 매우 뻐기고 다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가 먼저 다가왔다는 것에 으쓱해져서 그와 다니기 시작했다. 그를 통해 날랴를 알게 됐다. 그녀는 좋은 가문 출신의 여학생이었지만 그 분방한 몸가짐으로 내게 ‘남성’을 느끼게 만들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곧 다른 곳으로 떠났고, 내겐 엄청난 일이 생겼다. 형 그레고리가 체포된 것이다.
‘사회주의자‘라는 말만으로도 신비로움을 일으켰던 그때, 전도가 유망하던 형은 ’고통받는 인민을 위해 자신을 바쳐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둔하리만치 현실과 유리된 채, 현실을 경멸하고, 이성이나 계산없이, 혹은 보이지 않게 서두르지 않고, 행동하려 하지 않는 러시아의 항거자, 저항자들, 혁명가들이란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이것이 평범한 일상을 거부하고 뭔가 흥미진진하고 스릴 넘치는 삶을 갈망하는 러시아인의 특성이라 생각했다. 오랫동안 수배생활을 하던 형은 이웃의 밀고로 체포돼 유형을 갔다.
그로부터 1년 후 나는 김나지움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비로소 청년이 된 것이다. 나는 영락한 귀족의 자손으로 태어나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은 현실에 절망했지만 푸쉬킨의 시에서 친근한 뭔가를 느끼며 내 영혼이 진동함을 느꼈다.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와 있는 내게, 아버지는 “영혼과 삶의 시가 네게 내린 하늘의 의지”라고 말한다. 그 무렵 형 그레고리는 시베리아가 아닌 바투리노로 유형을 오게 돼 새롭고도, 자유로운 열의 넘치는 내 수업이 시작됐다. 나는 ’제2의 푸쉬킨 혹은 제2의 레르몬토프가 되길 꿈꿨기에‘ 그들의 초상화를 보며 혈육의 정을 느꼈다. 이해 여름 나의 또다른 형 니콜라이가 결혼을 했다.
그 겨울 나는 사촌 누나의 영지 바실리예프로 자주 책을 빌리러 갔다. 수마르코프와 안나 부니나, 제르쟈빈, 바츄쉬코프, 쥬코프스키 등의 책을 읽으며, 나는 처음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안고 꿈을 가꿔나갔다. 그 집에서 만난 안헨은 내게 첫사랑이 됐다. 이듬해 봄은 내 생애 가장 특별한 봄이었다. 하지만 나는 또 하나의 죽음을 맞았다. 바실리예프의 주인 피사레프의 죽음이었다. 3장 삶은 정념의 순간이거나 그 기다림의 시간
피사레프의 죽음을 보며 나는 죽음과 더불어 넘치는 생명의 기운을 느꼈다. 한 사람은 떠났지만, 삶은 새롭게, 더욱 커진 생명력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여전히 삶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고, 생명력이 넘치는 봄과 안헨과의 사랑이 있었다. 하지만 곧 안헨은 바실리예프를 떠났다. 안헨은 내게 여성의 몸이 가진 무게를 알게 해줬다.
그 부드러움, 세상과 삶과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달콤한 사랑의 고통을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게 전해주고 떠난 것이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안헨이 떠난 후, 나는 페테르부르그의 유명 잡지에 내 시가 개재된 것을 알았다. 내 나이 열다섯, 비로소 나는 완전한 성인이 된 것이다. 나는 세상을 더욱더 알고, 성인으로서 독립된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확신도 있었다. 나는 아르세네프가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내심 자랑스러워했다. 쥬코프스키 같은 훌륭한 시인의 후손이라는 것, 크림전쟁에 참여한 영광스런 가문의 자손이라는 것에 자긍심을 느꼈다.
그러나 현실 속의 나는 때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갈망하기도 하는 가난한 몰락귀족의 아들일 뿐이었다. 나는 살고 있는 고장도 한번 떠나보지 못했다. 이런 내게 자연은 친구 같았다. 어느 밤 정원을 산책하던 나는 불현듯 하늘의 달과 내가 서로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서서 달을 바라봤다. 달도 서서 나를 바라봤다. 강에는 물에 비친 하늘이 검푸른 심연처럼 떠있었고 그 하늘에는 머리를 날개죽지에 묻고 얕은 잠에 빠진 오리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완전한 침묵!..... 이렇게 우리는 정원을 함께 거닐었다
안헨에 대한 기억으로 나는 몹시 괴로웠다. 세상 모든 곳에 그녀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그녀는 차츰 ‘신화’가 됐다. 그녀의 모습은 이젠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면서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보편적인 이미지로 내게 남았다.
초여름 어느날 나는 잡지에서 나드슨의 죽음을 알게 됐다. 비록 그의 시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사후에 그가 누리는 영광에 매료됐다. 나도 그러한 영예를 누리고 싶었다. 그를 좀더 알기 위해 시내 도서관에 다녀오던 길에 마차를 타고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아가씨를 봤다. 그녀는 리자 비비코바라는 귀족 아가씨였다. 푹풍우 치는 밤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새로운 사랑이 왔음을 느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은 장난스러운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내 상상이 낭만적으로 그려낸 주위의 모습들, 무더운 유월의 한낮, 짙푸른 숲과 자스민 향기, 시원한 나무그늘. 현실은 보잘 것 없고 가난했지만 가난함으로 그런 것들은 오히려 빛이 났다. 반짝이는 낮의 생활과는 다른 밤이 있었다. 밤마다 나는 시를 썼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리자가 떠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땀을 흘리며 손에 못이 박힐 때까지 밭일에 몰두했다. 그렇게 여름은 가고 가을이 왔다. 이미 나는 여러 잡지에 시를 발표한 시인이 돼 있었다. 처음으로 원고료도 받았다. 이즈음 나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에 다시 사로잡혔다. 이런 내 생각을 더욱 굳어지게 한 것은 이반 안드레비치 발라빈이었다. 곡물상인인 그는 문학에도 일가견이 있어, 내 열망을 알아차리기라고 한 듯 살고 있는 곳을 떠나 더 넓은 곳을 경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바로 여행을 시작할 수 없게 됐다.
‘톤카’라는 하녀 때문이었다. 스무 살의 그녀는 결혼을 했지만 돈을 벌기 위해 남편이 떠나 혼자 살았다. 인디언 처녀를 닮은 그녀는 발을 굴리며 사모바르를 나르고, 야생의 냄새가 나는 검은 머리의 여자였다. 어느 겨울 저녁, 나는 그녀와 첫밤을 보냈다. 정신이 든 순간 뭔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과 함께 성취했다는 기쁨이 교차했다. 이때부터 내 삶은 혼란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