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머니

저자: 막심 고리키
출판사: -
등록일: 2000-07-04
새벽녘 러시아 들판을 걸어가는 빈털털이

어린 페쉬코프는 끈적이는 진흙더미 위에 서서 아버지의 관이 내려진 구덩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덩이의 밑바닥에는 물이 차 있고, 개구리들도 있었다. 두 마리는 벌써 누런 관 뚜껑 위에 기어올라와 있었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수건에 머리를 파묻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이 무덤 속으로 흙을 퍼 넣기 시작했다. 개구리들이 관 위에서 튀어 올라 구덩이 벽 쪽으로 도망쳤지만, 흙덩어리가 개구리들을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만 가자."

외할머니가 말했지만 페쉬코프는 떠나고 싶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페쉬코프의 손을 잡고 공동묘지를 빠져 나오면서 물었다.

"넌 왜 울지 않니? 울었어야 했는데."

페쉬코프와 할머니는 마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마차 속에서 페쉬코프가 물었다.

"개구리들이 기어 나올 수 있을까?"

외할머니가 대답했다.

"아니, 나오지 못할 거다. 주여 저들을 도우소서!"



{W: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는 어릴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외할머니 손에 양육된다. 학교라고는 초등학교 2년을 겨우 구경했을 따름이다. 어려서부터 넝마주이나 신발가게 점원, 제도사 견습공, 식당 접시닦이, 성상화가의 견습공 등으로 생계를 꾸리며 {W:세상 속으로}나왔다

어린 페쉬코프가 세상에 나와 지방 소도시 니즈니 노브고로드와 볼가강 연안의 도시와 농촌에서 체험한 러시아는 출구 없는 암울한 세계였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묻힌 무덤 속에서 기어 나오려고 몸부림치던 개구리들, 그러나 현실의 가혹한 힘에 의해 다시 무덤 속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개구리들이 처한 현실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린 페쉬코프는 그 개구리들을 지켜보았고, 그렇게 러시아 현실을 체험했다. 사회의 밑바닥을 전전하면서 페쉬코프가 보고 느낀 것은 19세기 말 봉건적 차르 체제가 해체되면서 새로 등장한 자본주의하의 러시아였다. 봉건적 신분의 질곡에서 풀려났으나 자본주의 경제질서 속에서 '돈'이라는 더욱 가혹한 족쇄를 차게 된 빈민과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의 황폐해가는 인간성과 무의미한 일상을 체험하면서 페쉬코프는 무기력과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건강하고 낙천적인 인간애를 확신하면서 왜 그들의 삶이 그럴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던졌고, 점차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인식해갔다.

프롤레타리아 작가 고리키의 외침

프랑스의 전기작가인 로맹 롤랑은 막심 고리키를 일러 "양 세기를 잇는 다리와도 같은 작가"라고 했다. 실제로 고리키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살았다. 하지만 이 말은 고리키가 단순히 양 세기에 걸쳐 살았다는 뜻이 아니다. 고리키는 구 러시아(전제주의 정권과 봉건적 러시아)와 신 러시아(러시아 혁명에 의해 사회주의 소련으로 변모한)의 역사적 격변을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그 역사적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서 결코 물러나지 않고 맞서 싸웠던 작가다. 따라서 그의 문학 속에는 러시아 사람들의 현실과 더불어 세계사적인 의미를 갖는 러시아 혁명과정이 깊게 배어 있다. 고리키의 문학이 19세기와 20세기, 봉건사회와 근대사회, 현대사회의 문제와 그 속에서의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 바로 그것이 그를 양 세기를 잇는 다리와도 같은 작가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고리키는 1892년 단편 <마카르 추드라>를 발표하면서 작가로 재탄생한다. 기존 문학에서 다루지 않았던 민중의 생활상을 애정을 담아 사실적으로 그린 고리키의 단편들은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문학을 기다리던 19세기 말 20세기 초 러시아와 세계 문학에 신선한 목소리였다. 여러 단편에서 자신이 체험한 러시아 현실과 삶의 모습을 그리면서 일약 러시아 대표작가가 된 고리키는 중편 <첼카쉬>, 희곡 《밑바닥》을 통해 대가 반열에 올랐고, 장편 《어머니》를 통해 프롤레타리아 작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고리키는 평생 깊은 우정을 나눈 레닌을 비롯해 혁명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러시아 혁명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지켜보면서 그것은 자신이 꿈꿨던 혁명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러시아의 전제주의에 맞서 싸웠던 고리키는 이번에는 혁명 과정에 나타난 볼셰비키의 잔혹함을 가차없이 비판했고 이 때문에 소비에트 정권과 갈등을 일으켰다. 결국 이탈리아로 망명했지만 사회주의 정권과 서유럽 파시즘 정권의 갈등 속에서 불가피하게 다시 소련으로 귀국했다. 스탈린의 초청으로 귀국한 고리키는 '소련 작가 동맹'의 초대 의장으로 추대됐고 소련 문학의 아버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로서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 시기 고리키의 복잡한 내면과 문학세계, 정치적 태도 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쟁이 존재한다. 그러나 고리키가 평생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새로운 삶을 꿈꿨다는 점, 그리고 그의 작품에는 그와 같은 열망이 살아 숨쉰다는 점, 러시아 현대사의 격렬한 소용돌이 속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싸워왔다는 점, 현실의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고자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처럼 고리키 문학은 역사적 사회적 진실과 인간적 진실의 탐구이며 그 투쟁의 기록이다. 동시에 그 투쟁의 한가운데서 성장한 작가의 풍부하고 복잡한 고뇌와 문제의식이 함께 담겨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주인공인 어머니 펠라게야 닐로브나는 평생 남편의 매질과 술주정을 견디며 살았다. 남편이 죽고 공장에 다니기 시작한 아들 파벨이 아버지처럼 일이 끝나면 술이나 먹고 싸움질을 해대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어느 날인가부터 파벨의 생활이 달라졌다. 밤에 나가 노는 횟수도 훨씬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휴일마다 어디론가 외출했지만 술도 안 마시고 멀쩡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 이즈음 어머니는 아들의 눈매가 훨씬 날카로워지고 심각해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들이 다른 공장 청년을 닮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어머니에게 다행한 일이었지만 아들이 무언가에 정신을 집중하고 어딘가 어두운 삶의 급류로부터 헤엄쳐 나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 까닭 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파벨은 어디선가 책을 가져와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을 땐 눈에 안 띄게 읽으려고 애썼고 다 읽은 책은 어딘가에 숨겼다. 책에서 뭔가를 베껴 쓰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감췄다.

아들의 행동거지도 달라졌다. 멋을 부리는 일이 없었고 그저 자연스럽고 편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겉모양이 한결 평범해지고 부드러워지자 어머니는 더욱 불안했다. 더구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예전과는 달랐다. 파벨은 어머니에게 깍듯이 존칭을 썼다. 어머니는 내심 기분이 좋았지만 아들에게서 진지하고 강한 무엇을 느끼면서 더욱 불안해졌다. 그렇게 어머니와 아들의 말없는 삶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을 나서며 파벨이 말했다.

"토요일에 시내에서 손님이 찾아올 겁니다."

"시내에서?"

되묻고 나서 어머니는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왜 그러세요, 어머니? 두려우세요?"

"그래, 두렵다. 평생 두려움 속에 살아 내 정신은 온통 두려움에 뒤덮여 있단다."

토요일까지 어머니는 공포에 벌벌 떨며 지냈다. 어떤 알지도 못하는 무서운 사람들이 집에 온다니... 어머니는 심장이 당장이라도 멎는 듯했다. 그들은 아들이 지금 가고 있는 바로 그 길을 가르쳐 준 바로 그 사람들인 것이다.

마침내 운명의 날이 되고, 어머니는 두려움 속에서 그들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어머니가 평생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부드럽고 유머가 넘치는 안드레이, 사랑스럽고 마음이 곧은 소녀 나타샤, 그리고 많은 공장 노동자들... 그들은 아무도 어머니를 위협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반신반의하면서 아들과 그의 동지들을 지켜본다.

파벨과 동료들에 대한 경찰의 감시가 조여왔다. 드디어 공장에서 소요가 발생하고 파벨의 집은 경찰의 수색을 받는다. 급박하게 상황이 전개되면서 아들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 그리고 경찰에 대한 적개심이 뒤섞인 채 어머니의 새로운 생활이 전개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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