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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막심 고리키 지음 | -
어머니(Мать)

막심 고리키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미하일 블라소프: 열쇠공. 닐로브나의 남편이자 파벨의 아버지.

펠라게야 닐로브나: 파벨의 어머니. 평생 남편의 매질과 술주정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살다가 아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이해하고 혁명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파벨 블라소프: 노동자. 사회주의 사상을 습득하고 공장 내 혁명 조직을 만들어간다. 불굴의 의지와 실천력을 겸비하고 최후까지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

안드레이: 파벨의 동지. 친절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의지가 굳고 끝까지 파벨과 같은 길을 간다.

나타샤: 부유한 가문 출신이지만 집과 부모를 떠나 혁명 활동에 투신한 지식인. 교사.

사샤: 귀족 출신의 엄격한 여성 혁명가. 파벨에게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연기와 기름냄새, 공장의 새벽, 그들은 그렇게 살아갔다

이른 아침 매캐한 연기와 기름 냄새에 전 노동자 지구의 새벽. 공장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부시시 일어나 미처 피로가 풀리지 않은 몸을 이끌고 감옥처럼 생긴 거대한 공장을 향해 놀란 바퀴벌레처럼 걸음을 재촉한다. 붉은 햇살이 창가에 걸리는 저녁 무렵 공장은 다 태우고 남은 재인 양 사람들을 토해낸다. 기계는 사람들의 근육에서 생산에 필요한 힘을 남김없이 빼앗았다. 사람들은 또다시 하루를 그렇듯 흔적 없이 지워버리고는 무덤 같은 집으로 돌아간다.

틀에 박힌 일상에서 가슴 속에 쌓인 불만을 풀어낼 길이 없는 사람들은 술에 취해 미친 짐승처럼 싸우고 때려 부쉈다. 미하일 블라소프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미하일은 솜씨 좋은 열쇠공이고, 건장한 노동자였지만 평생을 쥐꼬리만한 일당으로 살아왔다. 불평불만으로 가득찬 미하일은 공장의 감독에게 말대꾸하기 일쑤였고, 이제 늙어서 곧 쫓겨날 지경이었다. 미하일은 주위 사람들과 싸움을 밥먹듯이 했고 욕을 입에 달고 다녔다. 아내 펠라게야 닐로브나에게도 욕질은 예사였고 툭하면 주먹이 날렸다. 펠라게야는 말없이 남편을 받들고 어떻게든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옷으로 남편의 화를 달래려 했지만 하루라도 남편에게 얻어맞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아들 파벨 역시 아버지의 화풀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파벨이 열 네 살 되던 해 하루는 아버지가 그의 머리를 움켜쥐고 거칠게 쥐어박으려 하자 파벨은 두 손에 망치를 움켜쥐고 대들었다. “건드리지 마세요.” 아버지는 잠깐동안 아들을 쳐다보고 나서 아내에게 말했다. “좋아... 이젠 나한테 돈벌어 오란 소리 말아. 이제 저 놈이 먹여 살릴 테니까.” 이 일이 있고 난 후 미하일은 전처럼 아들과 아내를 때리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술에 취해 고주망태가 되기 일쑤였다.

미하일은 병들어 앓다가 어느 아침 공장의 사이렌 소리가 울릴 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죽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파벨은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왔다. 그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고 어머니에게 소리쳤다. “저녁 밥 줘, 빨리! 그리고, 나 담배 피울 거야, 아버지 파이프 이리 내놔요!” 어머니는 아들의 머리를 가슴에 안고 땀이 배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면서 조용히 말했다.“얘야, 네가 그러면 안돼. 난 어떻게 살란 말이냐. 네 에비는 평생 술만 마시고 나를 때려댔다. 이제 너마저 이 에미한테 그러겠다는 말이냐?” 어머니의 두 뺨에서 천천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파벨은 오랜 세월 동안 힘든 노동에 시달리고 아버지에게 얻어터져 망가진 어머니의 몸과 수척한 볼을 따라 흘러내리는 어머니의 눈물을 바라보았다.

그날부터 파벨은 점차 변해갔다. 얼굴은 더욱 수척해지고 눈빛은 엄격해졌으며 말수가 줄어들었다. 생활도 완연히 달라졌다. 그는 열심히 일을 했지만 다른 공장 사람들처럼 술을 먹거나 놀러 나다니지 않았다. 일요일이면 단정히 차려입고 어딘가에 다녀오곤 했다. 무슨 책인가 열심히 읽었고 책에서 뭔가를 베껴 쓰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공장 청년을 닮아가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지만 아들이 어딘가로 완강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렇게 2년 여의 세월이 흘러갔다.



어머니, 두려워 마세요

저녁을 먹고 난 후에 파벨이 창문 커튼을 내리고 구석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주저하면서 아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물었다. “도대체 뭘 읽고 있는 거냐?” 파벨은 가만히 어머니의 얼굴을 올려다 보더니 책을 밀어놓고 어머니를 앞에 앉히고는 준엄하게 말을 꺼냈다. “제가 읽는 책은 금서예요. 우리 노동자의 삶에 대해 씌어 있다고 금지된 책이예요. 발각되면 전 감옥에 갈 겁니다. 전 진실을 알고 싶어요. 우리의 삶이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왜 아버지는 그렇게 일하고도 비참하게 돌아가셨는지. 왜 어머니는 그렇게 사셔야만 했는지. 나는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 건지, 전 진실을 알고 싶어요.”

파벨은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어머니에게 다 말해줬다. 펠라게야는 아들의 말에서 뭔가 새롭고 이해할 수 없는, 서글프면서도 기쁜 감정을 느꼈다. “생각해보세요, 과연 어머니는 어떻게 사셨지요?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기만 하셨죠. 아버진 비참한 삶에 대한 분풀이를 어머니에게 해댄 거예요. 비참하게 살면서도 아버지는 그게 왜 그렇게 된 것인지 몰랐던 거예요. 아버진 공장이 두 개 있을 때부터 시작해서 삼십 년 동안 일했어요. 그런데 지금 공장이 일곱 개나 됐어요. 어머닌 도대체 살아오면서 조그만 기쁨이라도 있었던가요?”

펠라게야는 침통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녀의 가슴 속에 오래 전에 잠들어 버렸던 흐릿한 생각이 떠올랐다. 펠라게야는 젊었을 때 삶에 대해서 친구들과 이야기 해본 적이 있었지만 모두들 불평만 할뿐이었지, 자신들의 삶이 왜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그녀 앞에서 자신의 아들이 삶에 대해서, 자신과 어머니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아들에 대한 자부심과 두려움이 겹쳐지면서 어머니의 얼굴에는 미소와 눈물이 번졌다.

“이 세상에는 민중의 행복을 위해서 싸우다가 붙잡혀서 감옥에 가거나 유형을 간 사람들도 많아요. 전 그런 사람들을 보았어요.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예요. 어머니도 이제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어디를 다니는지 아셨어요. 전 어머니께 모든 것을 다 말씀드렸어요. 그러니 어머니, 어머니께서 절 사랑하신다면 제 길을 막지 말아 주세요.” 파벨은 어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파벨이 힘줘 말한 ‘어머니’란 말이 펠라게야에게 전율을 일으켰고 아들의 두 손에서 새롭고도 낯선 감정을 느꼈다. “제발 몸조심하거라... 많이 야위었구나...” 펠라게야는 도대체 무얼 조심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저 사랑스럽고 따스한 눈길로 아들을 바라봤다.

“마음대로 하거라. 난 말리지 않겠다.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다. 겁 없이 아무데서나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마라. 사람들을 조심해야 돼, 모두 서로를 미워하거든. 욕심과 질투로 살아간단다. 모두들 나쁜 일을 좋아하고 일러바치기 좋아해.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아마 그 사람들은 널 미워하고 파멸시킬 거야.” 어머니의 말을 듣고 파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맞아요. 사람들은 나빠요. 그런데 이 세상에 진실이 살아있다는 걸 깨닫고 나니 사람들이 훌륭해 보이지 뭐예요. 나도 어떻게 그런 마음이 들게 됐는지 몰라요. 어렸을 땐 사람들이 무서웠고 조금 커서는 내가 미워했지요. 그냥 미웠어요. 그런데 이젠 모든 게 달라졌어요.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다 진짜 죄가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서는 내 마음이 온화해졌어요...”

어느 날 파벨이 문을 나서며 말했다. “이번 토요일 시내에서 손님이 올 거예요.” 어머니는 당장에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 떨었다. 시내에서 온다는 사람들이 바로 자신의 아들을 그 위험하고 무서운 길로 인도하는 그 사람들이란 말인가. 그러나 토요일날 나타난 사람들을 보고 어머니의 마음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들은 조금도 무섭거나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청년들이었다.

안드레이는 어머니를 특히 안심시키는 친절하고 부드러운 청년이었다. 펠라게야는 그와 다정하고 기분좋게 이야기를 나눴다. 얼굴이 익은 몇몇 노동자가 들어왔고 끝으로 지친 표정의 처녀가 찾아왔다. 부자집에서 태어난 교사 나타샤라고 했다. 모두들 어머니에게 다정하게 대하고 가식없이 말을 건넸다. 그녀는 평생 그렇게 남에게 친절하고 예의를 갖춘 대접을 받은 적이 없었다. 왠지 모르게 그녀 자신도 어딘지 새 세상에 있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처녀가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했고, 모두들 귀 기울여 들었다. 어머니도 귀를 기울였으나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그저 이 젊은이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여겨볼 뿐이었다. 젊은이들은 열심히 토론했지만 어머니는 도대체 이 젊은이들이 무슨 일을 논의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정이 넘어서야 흩어졌다.

젊은이들은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파벨의 집에 모여들었고 그때마다 새로운 얼굴이 보였다.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모임을 불안하게 지켜보았다. 하지만 점차 이 젊은이들이 결코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안드레이와 나타샤, 사샤에게는 자식과 같은 친근함을 느꼈다.



아들을 위해, 아니 나 자신을 위해

파벨과 동지들은 비밀 인쇄소를 차리고 공장과 그 주변 지역에 열악한 노동현실을 고발하고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알리는 유인물과 소식지를 펴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파벨과 그의 동지들과 가까워지면서 자신도 어느덧 뭔가 많이 변했고 남들과는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불안함과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그러던 중 공장 주변의 늪지를 메워 새 공장을 만든다며 노동자들의 봉급에서 일정 금액을 공제하겠다는 회사의 방침이 공개됐다. 새 공장이 들어서면 노동자의 일거리가 많아지고 봉급도 오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기만적인 사장의 방침에 대해 파벨과 동료들은 파업을 통해 항거하려 했다. 그러나 수동적으로만 살아온 노동자들은 파업에 대해 찬반 양론으로 의견이 갈리면서 분열을 일으켰다.

파벨이 파업을 선동하는 연설을 한 저녁, 경찰이 파벨의 집을 덮쳐 체포해갔다. 어머니는 지난번에 있었던 가택 수색 때처럼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를 악물고 저항하려 했다. 파벨이 체포돼 끌려간 후 어머니는 눈을 감고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억울함과 자신의 무력감에 괴로웠다. “차라리 날 잡아갈 일이지, 이 짐승 같은 놈들...”

그렇게 잠 못 이루던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누군가가 조용히 창문을 두드렸다. 동지 예고르였다. 그는 파벨이 오래 갇혀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공장에 계속해서 유인물을 뿌리는 것이 파벨의 혐의를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기꺼이 그 일을 자신이 맡겠다고 나섰다. 그녀는 행상으로 가장해 공장에 유인물을 가지고 들어가 동료 노동자에게 전달했다. 많은 노동자들은 눈빛으로 어머니에게 우정과 동지애를 나타냈지만 이사이라는 사람은 이를 갈면서 악의적으로 위협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신도 무엇인가 아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는 것과 공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동지적인 눈빛을 접하면서 새로운 감동을 맛보았다. 어머니는 이제까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어깨를 힘차게 펴고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다닐 수 있었다.

파벨의 구체적인 혐의를 증명하지 못한 경찰은 파벨과 안드레이, 사샤를 비롯한 동지들을 모두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 파벨은 더욱 강해진 모습으로 감옥에서 돌아왔다. 어머니의 활약을 전해들은 파벨은 어머니를 끌어안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희를 크게 도와주셨어요. 이렇게 어머니와 제가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다니 정말 저는 행운아예요!”

세월은 빠르게 흘러갔다. 복잡하고 파란만장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어머니는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할 만큼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겼다. 스스로 글쓰기를 배우면서 아들이 읽던 책을 읽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들과 동지들과 함께 하는 인간적인 교류가 기뻤다. 더구나 그녀는 점차 그들의 말을 알아듣고 자신의 말도 덧붙일 수 있었다. 자신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젊은이들을 보면 펠라게야는 뜨거운 힘이 가슴에서 넘쳐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는 우연한 기회에 현관에서 파벨과 사샤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당신이 깃발을 들 거예요?” 처녀가 조용히 물었다. “그래요.” “조직에서 결정된 건가요?” “그래요, 그건 내 의무예요.” “당신이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면... 생각해보세요. 당신과 안드레이는 중요한 인물이예요. 해야할 일이 많잖아요. 아마 오랫동안 유형을 받게 될 것이 뻔한데...” 어머니는 가슴에 얼음을 끼얹은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이렇게 애원하는 데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돼요. 당신이 그러다니? 그럼 안돼요.” “저도 인간이에요.” 그녀가 나직이 대답했다. “좋은 사람이지요, 당신은. 내겐 소중한 사람이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런 말을 해선 안돼요...”아들이 노동절 시위에 앞장설 계획이고 다시 체포될 것임을 알게 된 어머니의 마음은 무겁고 떨렸다. 그러나 파벨은 그런 어머니에게 도리어 역정을 냈다. 어머니에게까지 공연히 엄격하게 구는 파벨을 보고 안드레이는 파벨을 꾸짖었다. “어머니 앞에서 영웅심이나 발동하고... 너의 그 돼먹지 못한 영웅심은 반푼 어치도 안돼. 어머니의 영혼은 너보다 풍요로우셔...”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차를 내오면서 말했다. “봄 날씨가 왜 이리 추우니? 너무 추워서 얼어죽겠다.” 파벨이 안드레이의 충고를 받고 웃음을 띠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절 용서해주세요, 어머니! 전 참 바보 같아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주님이 함께 하실 거다. 네 인생은 너의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아 다오. 제 아들을 아끼지 않는 에미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 너희들 모두 내 혈육이나 마찬가지다. 그래, 네가 앞으로 걸어 나가면 다른 사람들이 네 뒤를 따를 거야. 모든 걸 내던지고 함께 나아가는 거야, 파벨!”

안드레이는 어머니와 파벨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짐짓 파벨을 나무라듯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전 파벨을 좋아해요. 하지만 파벨이 입고 다니는 조끼는 좋아하지 않아요. 저 녀석은 새 조끼를 척하니 입고서는 꽤나 마음에 드는지 배를 쑥 내밀고 사람들을 밀친단 말입니다. 좀 봐달란 듯이 말이지요. 정말 좋은 조끼라는 것은 알지만 도대체 왜 사람들을 미냔 말예요, 그러지 않아도 비좁은 데서.” 파벨과 어머니와 안드레이는 같이 웃었다.



마침내 대파업의 그날

5월 1일 노동절. 마침내 그 날이 왔다. 어머니도 거리로 나왔다. 길 양옆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길 저편에는 무장한 기마 경찰대와 군대가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동지 여러분!” 파벨의 맑고도 우렁찬 목소리가 터졌다. “우리는 우리가 세계의 주인임을 당당하게 선포합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깃발, 이성과 진실과 해방의 깃발을 높이 들었습니다!”

하얀 깃대가 허공에 불쑥 솟아올랐고 군중들이 삽시간에 파벨의 주위에 몰려들었다. 빨간 새가 비상하듯이 깃발이 나부끼면서 행렬은 대오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노동자 만세! 사회민주주의 노동당 만세! 전세계 노동자 만세!” 파벨의 외침을 따라 수백 명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어머니는 멀리 보이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그녀의 가슴에 거대하면서도 부드러운 불길이 솟아오르며 지난 과거의 암울한 찌꺼기, 순종의 고통스런 응어리가 녹아 내렸다. 안드레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선창하였다. “일어나세, 깨어나세, 노동자여! 투쟁으로 떨쳐 일어나, 굶주린 민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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