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밑바닥

저자: 막심 고리키
출판사: -
등록일: 2000-07-04
버릴 수 없는 신념, 떠나지 않는 문제...

고리키는 편집실에서 젊은 작가 {w:자먀친}이 수학과 천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고리키였지만 학교라고는 초등학교 문턱에만 겨우 가 봤고 오직 독학으로 글을 깨쳤으니, 공학도 출신의 이 젊은 작가가 가진 뛰어난 과학 지식이 그저 놀랍고 신기하고 부럽기만 했다. 풋내기 작가인 자신에게 이렇게 사심 없이 매혹된 대작가를 바라보다가 자먀친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선생님. 제가 새로운 소설 하나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환상소설이죠. 먼 미래에 일어나는 일인데요. 행성 사이를 비행하던 우주비행선이 갑자기 고장이 나서 추락하게 됐습니다. 우주선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죠. 그런데 그 추락이라는 것이 2년이나 걸리는 겁니다. 선생님, 2년 후에는 어쩔 수 없이 모두 죽게 되는 그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고리키의 얼굴이 짐짓 못마땅하게 굳었다. 자먀친이 재차 답을 요구하자 고리키는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꼭 대답해야 하겠나? 어떻게 대답하길 바라나? 좋아, 처음에는 모두 공포에 떨고 어쩔 줄 몰라 하겠지. 그러나 일주일 뒤에 그들은 아주 조용하게 면도를 하기 시작할 것이고, 책을 쓰고, 그래, 심지어는 이십 년은 더 살 것처럼 행동하겠지. 그래야만 하지, 반드시, 그래야만 해. 우리가 완전히 망가져 버리지 않는다고 믿어야만 해. 그렇지 않다면 우리네 인간사란 어떤 가망도 없을 것이네."

아무런 해결책 없이 추락하는 비행선.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그 죽음은 2년 후에 일어난다.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고리키는 이에 대해 마지못해하면서 자신의 바람을 말했다, 어두운 표정으로. 그리고 고리키는 평생 그렇게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으려고 노력했다. 인간에 대한 이같은 낙관적인 믿음을 지키려는 신념은 고리키 문학의 큰 줄기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간 현실에 대한 어두운 직시, 비행선 속의 사람들이 공포와 이기심에 사로잡혀 완전히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으로 변해버리고 비행선은 완전히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냉엄한 현실 인식이 고리키의 내면에서 두렵게 자라나고 있었다. 고리키는 그런 염려와 불안을 떨치기라도 하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한번 흔들고는 "그래야만 해, 반드시. 그렇게 믿어야만 해"라고 강하게 말했다.

페쉬코프와 고리키, 두 영혼의 역사

{W: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 는 어릴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외할머니 손에 양육된다. 학교라고는 초등학교 2년을 구경했을 따름이다. 어려서부터 넝마주이나 신발가게 점원, 제도사 견습공, 식당 접시닦이, 성상화가의 견습공 등 스스로 생계를 꾸리며 {w:세상 속으로} 나왔다. 어린 페쉬코프가 세상에 나와 지방 소도시 니즈니 노브고로드와 볼가강 연안의 도시와 농촌에서 체험한 러시아는 출구 없는 암울한 세계였다. 사회의 밑바닥을 전전하면서 페쉬코프가 보고 느낀 것은 19세기 말 봉건적 차르 체제가 해체돼면서 새로 등장한 자본주의하의 러시아였다. 봉건적 신분의 질곡에서 풀려났으나 자본주의 경제질서 속에서 '돈'이라는 더욱 가혹한 족쇄를 차게 된 빈민과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의 황폐해 가는 인간성과 무의미한 일상을 체험하면서 페쉬코프는 무기력과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건강하고 낙천적인 인간애를 확신하면서 왜 그들의 삶이 그럴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던졌고, 점차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인식해 갔다.

1892년 단편 <마카르 추드라>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고리키가 탄생한다. 기존 문학에서 다루지 않았던 민중의 생활상을 애정을 담아 사실적으로 그린 고리키의 단편들은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문학을 기다리던 19세기 말 20세기 초 러시아와 세계 문학에 신선한 목소리였다. 여러 단편에서 자신이 체험한 러시아 현실과 삶의 모습을 그리면서 일약 러시아 대표작가가 된 고리키는 중편 <첼카쉬>, 희곡 《밑바닥》을 통해 대가 반열에 올랐고, 장편 《어머니》를 통해 프롤레타리아 작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고리키는 평생 깊은 우정을 나눈 레닌을 비롯해 혁명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러시아 혁명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지켜보면서 그것은 자신이 꿈꿨던 혁명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러시아의 전제주의에 맞서 싸웠던 고리키는 이번에는 혁명 과정에 나타난 볼셰비키의 잔혹함을 가차없이 비판했고 이 때문에 소비에트 정권과 갈등을 일으켰다. 결국 이탈리아로 망명했지만 사회주의 정권과 서유럽 파시즘 정권의 갈등 속에서 불가피하게 다시 소련으로 귀국했다. 스탈린의 초청으로 귀국한 고리키는 '소련 작가 동맹'의 초대 의장으로 추대됐고 소련 문학의 아버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로서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 시기 고리키의 복잡한 내면과 문학세계, 정치적 태도 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쟁이 있다. 그러나 고리키가 후기에 보여준 복잡한 내면의 풍경은 이미 희곡 《밑바닥》에 잘 드러나고 있다. 《밑바닥》은 단순히 사회 하층민의 생활을 고발한 것이라기보다 '고리키'의 철학과 자연인 '페쉬코프'의 성품을 모순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이미 고리키의 창작과 정치 활동에서 드러나는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여러 특징을 잘 이해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고리키 문학을 현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동굴 같은 지하실에 위치한 빈민합숙소에 여러 계층 출신의 부랑자들이 뒤엉켜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 욕을 해대고 싸움을 하며,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알콜중독에 걸린 배우, 몰락한 귀족, 도박꾼, 도둑, 죽어가는 여인...

그런 어느 날 루카라는 늙은 순례자가 찾아온다. 루카는 죽어가는 안나에게 죽음 뒤에는 편안한 안식이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따뜻하게 위로해 준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에 걸린 배우에게는 무료 자선병원에서 알코올 중독을 고칠 수 있으니 노력하면 다시 훌륭한 배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도둑인 페펠에게는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말고 사랑하는 나타샤와 시베리아로 가서 새 삶을 찾으라고 일러준다. 절망과 포기 속에 살아가던 합숙소 사람들은 따뜻하고 온화한 말로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루카 노인에게 호감을 느낀다. 안나의 앓는 소리는 줄었고, 배우는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제 합숙소에는 뭔지 모를 새로운 기운이 감도는 것 같다. 그러나 루카 노인이 나타나기 전에 합숙소 사람들에 군림했던 사친은 루카의 말이 모두 거짓이며, 연약한 인간을 기만하는 독약에 불과하다고 비난하고 나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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