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통의 죽음

당통의 죽음

저자: 게오르그 뷔히너
출판사: -
등록일: 200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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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힘과 혁명의식 옹호





게오르그 뷔히너는 1813년 헤센 공국의 다름슈타트 인근에 위치한 한 조그만 마을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뷔히너가 살았던 짧은 생애는, 독일에서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W:빈회의}가 성립된 1815년부터 1848년 3월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인 '3월 혁명 이전 시대 Vormarz'(1815-1848)였고, 그는 이러한 시대적배경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당시 독일은 수십 개의 소공국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군주들의 전제정치의결과 민중의 자유가 철저히 탄압되었고, 경제적으로 후진성을 떨쳐버리지 못한 상태에서 민중의 생활은 피폐해지고 있었다. 뷔히너는 이러한 상황에서 헤센의 폭압정치에 비판을 가하는 반면 지배계급에 의해 착취당하는 민중에게는 따뜻한 연민의 정을 느꼈다.

뷔히너는 자신의 시대를 물질적인 시대로 파악했다. 그리고 역사발전 과정을 규정하고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물질적 상황이라는 유물론적 입장이었다. 뷔히너는 물질적 궁핍이 제거될 때에 비로소 정신적 가능성이 펼쳐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적인 삶을 위한 기본조건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주도적인 혁명세력인 자유주의자들의 요구인 정치적 자유를 가장 시급한 일로 여기지 않았다. 뷔히너의 혁명운동의 목적은 정치적 자유뿐 아니라 민중의 물질적 평등을 이루는 사회적 변혁이었다. 그리고 민중의 물질적 상태의 변화를 위해서는 민중에게서 나오는 힘, 민중의 폭력의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강경하고 과격한 투쟁을 옹호했다.

1834년 3월에 뷔히너는 하층민들의 혁명 의식을 확인해보고 그들을 선동하기 위해 '헤센 급전'을 작성했다. 여기서 뷔히너는 헤센의 부패한 정치적 상황을 통계 자료를 제시하면서 궁정과 관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농민들에게 이에 맞서 투쟁하도록 촉구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헤센 급전'은 제대로 배포되기도 전에 배반자의 누설로 경찰의 손에 넘겨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뷔히너의 동지들은 체포되었고 뷔히너도 경찰의 추적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함으로써 그의 혁명 운동은 좌절되었다. 또한 뷔히너는 같은 해 기센에서 '인권 협회'를 설립했다. '인권 협회'는 뷔히너의 혁명관에 공감하는 몇몇 대학생과 수공업자들로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이념과 방법 면에서 급진적이고 과격한 혁명 운동을 추구하는 이 조직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낙후된 독일의 상황에서 그 이념을 수용하여 대중운동으로 이끌 만한 사회 집단이나 계급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뷔히너가 중심이 된 소규모의 비밀혁명조직인 '인권 협회'는 그의 망명과 동시에 와해되고 말았다.



현실을 토대로 한 사실주의의 기수

비록 24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기에 뷔히너는 《당통의 죽음》《렌츠》 《레옹세와 레나》《보이체크》이렇게 네 편의 작품밖에 남기지 못했지만, 그 속에 담긴 그의 예술정신은 전 유럽에서 사실주의의 기수로 높이 평가되어 오늘날까지 부단히 재조명되고 있다. 뷔히너는 그의 문학세계에서 이상주의를 배격하고 현실을 토대로 하여 새로운 시대적 관심들을 형상화하려고 했는데, 그의 이러한 미학관은 그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엿볼 수 있다.

"극작가란 제가 보기에 역사가와 다를 바 없습니다. (....) 극작가의 최대의 과업은 사실 그대로의 역사에 가능한 한 가까이 접근하는 일입니다. 작가가 쓴 책은 역사 자체보다 더 윤리적이어서도, 그렇다고 덜 윤리적이어도 안됩니다. 작가는 도덕 선생이 아니라 인물을 창안해내고 흘러간 시간을 다시금 소생시켜 줄 뿐입니다. 작가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서는 안되고 세상이 어떻게 존재해야 할 것인가를 묘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 이 세상이 어떻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아시고 만드셨을 것입니다. 전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1835년 7월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뷔히너는 혁명가와 작가로서 외에도 자연과학과 철학에서도 두각을 드러냈고 우수한 논문을 쓰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티푸스로 인한 짧은 삶 때문에 그는 여러 방면에서의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특히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한 것이 우리에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의 미학관에 따라 쓴 네 개의 작품들에서 훌륭한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당통의 죽음》에서는 이러한 그의 미학관 뿐만 아니라 민중들이 고통받는 현실에서 성립된 그의 정치적인 입장도 엿볼 수 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당통의 죽음'은 급진적이고 과격한 혁명정부 지배하인 1794년 3월 24일부터 4월 5일까지의 약 2주간에 걸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다룬 드라마다. 프랑스 혁명가로서 군주제를 무너뜨리고 프랑스 제 1 공화국 (1792, 9. 21)을 세우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당통과 역시 프랑스 혁명의 주요인물이자 그의 동지였던 로베스피에르는 서로 다른 정치적 노선을 걷는다. 공포정치를 반대하고 혁명을 청산하려는 온건파 당통과, 권력을 장악하고 공포정치의 강화를 주장하는 로베스피에르는 날카롭게 대립한다. 당통은 로베스피에르의 정책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로베스피에르는 당통을 뇌물사건과 부패한 생활, 각종 음모사건, 반역행위 등의 혐의로 당통파를 처형하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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