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택한 선택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일생을 '광란의 여신들에게 쫓김'을 당하다가 끝내는 자살을 택한 독일의 천재 극작가다. 클라이스트는 독일문학사상 고전주의자와 낭만주의 시대를 걸쳐 살았다. 그렇지만 그는 어느 문학조류에도 속하지 않은 독특한 영역을 만들어냈다. 그의 문학세계처럼, 그는 현실과 꿈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한 채 불안정하고도 짧은 삶을 살다갔다.
청년시절의 클라이스트는 칼 같은 이성을 최후의 진리로 인정하는 계몽주의 철학에 매료된 적이 있다. 그러나 클라이스트는 본질적으로 결코 차가운 이성보다는 순수한 자연과 순수한 마음의 힘을 역설하는 루소의 사상에 더욱 매료되어, 그의 내면 깊숙이 자리했다.
그러나 클라이스트는 자신이 꿈꾸는 환상 속의 낙원과 현실에 존재하는 질서 사이의 모순을 쉽게 이겨낼 수 없었던 걸까? 그의 번뇌는 여기서 시작된다. 혼돈에 휩싸여 이중성을 띤 이 세상은 클라이스트에게 파멸상태로 보였다. 그는 증오스런 대도시를 떠나 스위스의 한적한 섬에서 살고 싶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농부가 되어서 루소가 말하는 소박한 마음과 몸으로 살고 싶다!'
그러나 스위스의 어느 한적한 섬에서조차도 그는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독일 바이마르로 돌아오지만, 이제 꿈꿀 것은 자살밖에 없었다. 한 차례의 자살기도, 그리고 이어지는 몸과 마음의 무너짐...작품의 창작과 친우들과의 교류도 그를 어느 한 세계에 정착시키지는 못했다. 34세의 일생을 그는 친구 헨리테 포겔과 함께 베를린의 반 호수에서 자살로 끝맺는다.
군인이 되기 싫은 청년
클라이스트의 집안은 명문 장교 가문이다. 1777년 그는 이복 형제를 포함한 일곱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막내로서 사랑을 독차지하는 가운데서도 특히 이복 누나인 울리케는 그에게 크나큰 사랑을 주었다. 군인의 집안답게 클라이스트는 프로이센 특유의 강직함과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는 그가 11살 되던 해에 돌아가시고 클라이스트는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목사 집에 기거한다.
15세가 되어서는 군대에 입대해서 전투에도 참전한 바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는 집안의 전통인 군인의 길을 포기한다. 음악성이 매우 뛰어났던 클라이스트는 본질적인 진리를 찾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엄격한 규율 속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하는 군대생활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국민경제와 법률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철학에도 매료되었다. 특히 루소의 자연철학은 그를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다.
젊은 클라이스트는 장군의 딸 벨헬미네 폰 쳉에와 열렬한 사랑에 빠지며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군대에 대한 환멸 그리고 그로 인한 의욕상실로 그는 군인관리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했고, 그 이유로 두 사람의 결합은 좌절된다. 사랑의 실패와 자신의 꿈과 현실세계의 괴리 속에서 그는 현실의 파국을 감지한다. 짧은 인생이 남긴 넓은 문학세계
작가로서의 길은 어쩌면 클라이스트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첫 희곡《슈로펜슈타인 가 Familie Schroffenstein》(1803)를 쓰면서 그는 글 쓰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천직임을 깨닫는다. 클라이스트가 증오했던 타락하고 추악한 현실 세계를 묘사한《깨진 항아리 Der zerbrochene Krug》(1811)를 비롯하여 극작가로서 그가 창조한 작품들의 목록을 살펴보면, 미완성 비극인《로베르트 귀스카르트Robert Guiskart》(1801),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24장으로 구성된 비극《펜테질리아 Penthesilea》(1808), 5막의 역사극인《하일브론의 처녀 케트헨 Das Kathchen von Heilbronn》(1810), 5막 비극으로 사후에 출간된《왕자 홈부르크 Prinzen von Homburg》(1821), 3막 희극《암피트리온 Amphitryon》(1807)이 있다. '지상에서는 아무런 휴식처'를 찾지 못했지만, 클라이스트는 희곡작가로서 눈부신 환상과 회화적인 형상을 추구하는 자신의 강렬한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그 저변에 흐르는 음악성과 자기 내면에 흐르는 감정을 하나로 일치시키고자 하였고,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
현실 세계 속에서 클라이스트는 모든 출구가 막혀 버린 가운데 현실과 꿈이라는 양극단 사이를 오르내리면서 낙원을 찾아헤맨다. 이러한 모습들은 단편〈성스러운 세실리아에 혹은 음악의 힘〉〈칠리의 지진〉〈도밍고 섬의 약혼〉 등에서 드러난다. 중편《미하엘 콜하스 Michael Kohlhaas》(1810)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타락한 현실 세계 속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모든 작품에서 보여지는 클라이스트의 문제는 "꿈의 현실과 현실세계의 허구 사이의 부조화, 그리고 성스러운 자기 감정과 보잘 것 없는 낯선 외부세계와의 부조화"로 특징지어진다.
"작가적 역량에 있어서 클라이스트와 비교될 만한 사람은 거의 없으며, 다시 없을 비극적인 운명을 타고난 점에 있어서도 그와 비교할 만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19세기 독일의 극작가 헤벨이 남긴 말처럼 클라이스트를 정확하게 평가한 말도 없을 것이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대대로 가보로 내려오는 항아리를 깬 진짜 범인은 누군가요?"
네덜란드의 작은 촌락의 법정. 항아리를 깬 범인을 찾는 법정 공방이 벌어진다. 혼자서 어여쁜 딸 이브를 키우며 살아가는 마르테 부인이 가보로 아끼던 항아리가 깨졌다. 늙고 탐욕스러운 재판관 아담, 그는 이 마을의 유일한 법관으로서 재판을 담당한다.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이브의 약혼자 루프레히트. 재판이 있기 전에, 그녀의 약혼자인 루프레히트가 장차 살아 돌아오기 힘든 곳에 징집될 것이라고 아담은 이브를 은근히 협박한다. 순진한 이브는 재판관 아담의 도움으로 어떻게 해서든 사랑하는 루프레히트를 구해주고 싶어한다. 아담은 가짜 진단서를 마련하여 병역을 면제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이브는 다음날 아침 일찍 그 증명서를 받으러 갈 예정이다. 전날 밤 아담은 진단서에 써넣을 루프레히트의 이름의 정확한 철자를 모른다는 이유로 한밤중에 그녀를 찾아온다. 한편 이브의 창가에서 잠시나마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루프레히트 역시 그녀의 집에 찾아오는데...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일생을 '광란의 여신들에게 쫓김'을 당하다가 끝내는 자살을 택한 독일의 천재 극작가다. 클라이스트는 독일문학사상 고전주의자와 낭만주의 시대를 걸쳐 살았다. 그렇지만 그는 어느 문학조류에도 속하지 않은 독특한 영역을 만들어냈다. 그의 문학세계처럼, 그는 현실과 꿈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한 채 불안정하고도 짧은 삶을 살다갔다.
청년시절의 클라이스트는 칼 같은 이성을 최후의 진리로 인정하는 계몽주의 철학에 매료된 적이 있다. 그러나 클라이스트는 본질적으로 결코 차가운 이성보다는 순수한 자연과 순수한 마음의 힘을 역설하는 루소의 사상에 더욱 매료되어, 그의 내면 깊숙이 자리했다.
그러나 클라이스트는 자신이 꿈꾸는 환상 속의 낙원과 현실에 존재하는 질서 사이의 모순을 쉽게 이겨낼 수 없었던 걸까? 그의 번뇌는 여기서 시작된다. 혼돈에 휩싸여 이중성을 띤 이 세상은 클라이스트에게 파멸상태로 보였다. 그는 증오스런 대도시를 떠나 스위스의 한적한 섬에서 살고 싶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농부가 되어서 루소가 말하는 소박한 마음과 몸으로 살고 싶다!'
그러나 스위스의 어느 한적한 섬에서조차도 그는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독일 바이마르로 돌아오지만, 이제 꿈꿀 것은 자살밖에 없었다. 한 차례의 자살기도, 그리고 이어지는 몸과 마음의 무너짐...작품의 창작과 친우들과의 교류도 그를 어느 한 세계에 정착시키지는 못했다. 34세의 일생을 그는 친구 헨리테 포겔과 함께 베를린의 반 호수에서 자살로 끝맺는다.
군인이 되기 싫은 청년
클라이스트의 집안은 명문 장교 가문이다. 1777년 그는 이복 형제를 포함한 일곱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막내로서 사랑을 독차지하는 가운데서도 특히 이복 누나인 울리케는 그에게 크나큰 사랑을 주었다. 군인의 집안답게 클라이스트는 프로이센 특유의 강직함과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는 그가 11살 되던 해에 돌아가시고 클라이스트는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목사 집에 기거한다.
15세가 되어서는 군대에 입대해서 전투에도 참전한 바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는 집안의 전통인 군인의 길을 포기한다. 음악성이 매우 뛰어났던 클라이스트는 본질적인 진리를 찾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엄격한 규율 속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하는 군대생활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국민경제와 법률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철학에도 매료되었다. 특히 루소의 자연철학은 그를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다.
젊은 클라이스트는 장군의 딸 벨헬미네 폰 쳉에와 열렬한 사랑에 빠지며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군대에 대한 환멸 그리고 그로 인한 의욕상실로 그는 군인관리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했고, 그 이유로 두 사람의 결합은 좌절된다. 사랑의 실패와 자신의 꿈과 현실세계의 괴리 속에서 그는 현실의 파국을 감지한다. 짧은 인생이 남긴 넓은 문학세계
작가로서의 길은 어쩌면 클라이스트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첫 희곡《슈로펜슈타인 가 Familie Schroffenstein》(1803)를 쓰면서 그는 글 쓰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천직임을 깨닫는다. 클라이스트가 증오했던 타락하고 추악한 현실 세계를 묘사한《깨진 항아리 Der zerbrochene Krug》(1811)를 비롯하여 극작가로서 그가 창조한 작품들의 목록을 살펴보면, 미완성 비극인《로베르트 귀스카르트Robert Guiskart》(1801),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24장으로 구성된 비극《펜테질리아 Penthesilea》(1808), 5막의 역사극인《하일브론의 처녀 케트헨 Das Kathchen von Heilbronn》(1810), 5막 비극으로 사후에 출간된《왕자 홈부르크 Prinzen von Homburg》(1821), 3막 희극《암피트리온 Amphitryon》(1807)이 있다. '지상에서는 아무런 휴식처'를 찾지 못했지만, 클라이스트는 희곡작가로서 눈부신 환상과 회화적인 형상을 추구하는 자신의 강렬한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그 저변에 흐르는 음악성과 자기 내면에 흐르는 감정을 하나로 일치시키고자 하였고,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
현실 세계 속에서 클라이스트는 모든 출구가 막혀 버린 가운데 현실과 꿈이라는 양극단 사이를 오르내리면서 낙원을 찾아헤맨다. 이러한 모습들은 단편〈성스러운 세실리아에 혹은 음악의 힘〉〈칠리의 지진〉〈도밍고 섬의 약혼〉 등에서 드러난다. 중편《미하엘 콜하스 Michael Kohlhaas》(1810)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타락한 현실 세계 속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모든 작품에서 보여지는 클라이스트의 문제는 "꿈의 현실과 현실세계의 허구 사이의 부조화, 그리고 성스러운 자기 감정과 보잘 것 없는 낯선 외부세계와의 부조화"로 특징지어진다.
"작가적 역량에 있어서 클라이스트와 비교될 만한 사람은 거의 없으며, 다시 없을 비극적인 운명을 타고난 점에 있어서도 그와 비교할 만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19세기 독일의 극작가 헤벨이 남긴 말처럼 클라이스트를 정확하게 평가한 말도 없을 것이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대대로 가보로 내려오는 항아리를 깬 진짜 범인은 누군가요?"
네덜란드의 작은 촌락의 법정. 항아리를 깬 범인을 찾는 법정 공방이 벌어진다. 혼자서 어여쁜 딸 이브를 키우며 살아가는 마르테 부인이 가보로 아끼던 항아리가 깨졌다. 늙고 탐욕스러운 재판관 아담, 그는 이 마을의 유일한 법관으로서 재판을 담당한다.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이브의 약혼자 루프레히트. 재판이 있기 전에, 그녀의 약혼자인 루프레히트가 장차 살아 돌아오기 힘든 곳에 징집될 것이라고 아담은 이브를 은근히 협박한다. 순진한 이브는 재판관 아담의 도움으로 어떻게 해서든 사랑하는 루프레히트를 구해주고 싶어한다. 아담은 가짜 진단서를 마련하여 병역을 면제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이브는 다음날 아침 일찍 그 증명서를 받으러 갈 예정이다. 전날 밤 아담은 진단서에 써넣을 루프레히트의 이름의 정확한 철자를 모른다는 이유로 한밤중에 그녀를 찾아온다. 한편 이브의 창가에서 잠시나마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루프레히트 역시 그녀의 집에 찾아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