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로주점

목로주점

저자: 에밀 졸라
출판사: -
등록일: 2000-07-04
쿠데타도 잠재워버린 《목로주점》의 외설 논쟁

《목로주점》은 발표 즉시 프랑스 문단에 일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당시의 제3공화국은 도덕적 질서를 강조하는 시대였기에, 노동자들의 삶을 역겨울 정도로 저속하게 그려놓은 이 작품을 비난, 단죄했다. '외설스럽다'는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치는 바람에 1876년 6월 5일 공화주의 계열 신문인 《공익 Le Bien public》은 마지막 13장까지 마무리짓지 못하고 6장 말미에서 게재를 중단하고 만다. 그러나 주간지 《문학공화국 La Republique des lettres》은 나머지 부분을 게재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목로주점》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자 논쟁은 더욱 크게 일어났다. 사람들은 '병적인 지속 발기증'. '동물적 악취'등의 수사를 동원하여 《목로주점》을 비난하는 데 여념이 없었고, '동족을 경멸함으로써 연간 3천 프랑을 벌어들일 기술'을 발견했노라고 졸라를 비아냥대기도 하였다. 1877년 5월 16일, 막마옹 Mac-Mahon 원수가 의회에서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 때문에 정치적 소동이 야기됐지만, 그마저 이 논쟁의 폭풍우에 슬그머니 묻혀버릴 정도였으니 《목로주점》에 연관된 논쟁의 영향력이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성공은 스캔들에 비례했다. 플로베르의 표현에 따르자면 아무튼 이 소설은 '광적인 성공'을 이루었다. 출간된 1877년 한 해 동안 38판을 거듭하고 1881년에는 10만부 출간에 도달했다고 하니 19세기 당시 정황으로 미루어보면 놀라운 상업적 성공을 거둔 셈이다. 졸라는 마침내 《목로주점》의 인세로 '메당Medan의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여기서 졸라를 주축으로 모인 청년학파를 '메당의 그룹'이라 하였고, 이후 이들은 자연주의 소설이론을 주창한다.

유전과 환경의 소설 《루공 마카르》총서

졸라는 실험적 방법만이 허위와 오류의 세계로부터 소설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하듯, 인물과 그 인물이 처한 환경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소설의 임무라 여겼던 그는, 실험적 방법론에 의거하여 환경결정론과 유전론을 끌어들였다. 자신의 소설이론을 실천에 옮긴 것이 바로 총 20권으로 이루어진 《루공 마카르 Rougon-Macquart》다. 이 작품은 부제가 보여주듯이, '제2제정하의 한 가족의 자연적, 사회적 역사'를 작중인물들의 수대에 걸친 혈통과 유전의 법칙을 연구, 적용해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목로주점》의 알콜 중독자 쿠포와 제르베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랑티에가 술 한 방울만 마셔도 살의를 느끼는 유전자를 가진 채 《제르미날》의 주인공이 되고, 엄마의 부도덕한 성관계를 자주 목격한 딸 나나는 곧 매춘부로 살아가는 《나나》의 주인공이 된다.

이 방대한 창작 욕망은 발자크의 총서 《인간희극 La Comedie Humaine》으로부터 받은 영향과 자극이라 할 수 있다. 발자크의 《인간 희극》이 제정 말기의 왕정복고시대와 7월 왕정 치하의 사회상을 그려냈다면, 졸라의 《루공 마카르》는 제2제정하의 사회의 모습을 그려냈다. 두 개의 가지를 통해 내려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인 《루공 마카르》는 인간의 육체에 대한 자연적 탐구이면서 동시에 인간 사회에 대한 사회적 탐구이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아델라이드 푸크라는 여인이다. 그녀는 처음에 루공이라는 건강한 농부와 결혼하고, 그가 죽은 후 마카르라는 술주정뱅이와 결혼한다. 푸크로부터 출발하는 유전은 후손의 기질, 환경, 그리고 다른 피와의 결합 등의 요인으로 인해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유전과 환경의 축에 따라서 제2제정 사회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정의의 수호자, 시대의 양심 졸라

졸라는 노동자들의 삶을 그대로 드러낸 시대의 증인이기도 하지만, 그를 더욱 정의의 투사로 만든 직접적 역할을 한 것은 아마도 '드레퓌스Dreyfus 사건'일 것이다. 그 사건은 프랑스군 수뇌부가 군부의 위신과 장군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죄없는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 대위를 독일의 간첩으로 몰아 무기징역을 선고한 데서 연유한다. 광기어린 여론은 무조건 군부의 편을 들어 드레퓌스의 재심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군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국가 안보를 해치는 자들로 몰아붙였다.

이에 졸라는 1898년 1월 31일자 《여명 L'Aurore》지에 "나는 고발한다 J'accuse"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을 발표하여 드레퓌스 사건의 진상, 군부의 음모 등을 만천하에 폭로했다. 프랑스 전국은 이 사건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에 빠졌고, 국민 전체가 재심요구파와 재심반대파로 양분되었다. 재심요구파에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적, 진보적 지식인들이 앞장섰고, 재심반대파에는 왕당파, 국수주의자, 가톨릭교도, 반유대주의자 들이 한편이 되어 싸웠다. 후에 결국 드레퓌스가 결백하다는 사실이 천하에 밝혀졌음에도 그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제, 드레퓌스 사건은 정치적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 양심의 문제였다. 그리고 이 양심의 선두에 졸라가 있었다. 결국 드레퓌스는 석방되었고, 그것은 바로 프랑스 양심의 진정한 승리를 확인시켜준 셈이 되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거짓과 협잡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진정한 지식인의 역사적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제르베즈는 어린 나이에 랑티에를 만나, 클로드와 에티엔을 낳고 파리 북부 빈민가에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랑티에는 다른 여자와 달아나버리고, 제르베즈는 자신에게 닥친 생활고에 맞서 세탁부 일을 해나가면서 열심히 살아간다. 성실하고 예쁜 제르베즈에게 반한 함석공 쿠포는 주저하는 그녀에게 계속 청혼하여 마침내 결혼에 성공한다. 결혼 이후 부부는 열심히 일해 약간의 경제적 여유도 생겼고 딸 나나도 얻었다. 그러나 쿠포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이후부터 그는 노동자의 일에 회의를 느끼고 나태와 술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 때문에 저축한 돈은 계속 새나가지만, 이웃남자 대장장이 구제의 도움으로 제르베즈는 소원하던 세탁소를 차려 그것을 번창시킬 수 있었다. 돈도 조금씩 모아지고 남편도 곧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세탁소가 한창 잘 되고 있을 무렵, 하지만 그녀에게는 불행의 그림자가 엄습해오고 있었다. 바로 랑티에가 다시 나타난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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