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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에밀 졸라 지음 | -
목로주점(L'Assommoir)

에밀 졸라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제르베즈: 파리 빈민가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여인. 하지만 환경은 그녀를 타락시킨다.

랑티에: 제르베즈의 첫 남편. 제르베즈를 버리고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와 그녀를 완전히 몰락시킨다.

쿠포: 제르베즈의 두 번째 남편. 처음엔 착실한 함석공이였으나, 사고 후 점차 술로 자신을 망쳐간다.

구제: 제르베즈네 이웃집 대장장이. 제르베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실한 청년이다.

에티엔, 클로드: 랑티에와 제르베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나나: 제르베즈와 쿠포 사이에서 얻은 딸





새로운 출발

바람이 불 때마다 악취와 함께 도살된 가축들의 피비린내가 풍겨오는 허름한 봉쾨르 여관. 그 안의 침침한 방에서 제르베즈는 밤새도록 마음을 조이며 남편 랑티에를 기다린다. 이들은 결혼식 같은 것도 없이 철부지 사춘기에 눈이 맞아 동거생활에 접어든 젊은 부부다. 스물두 살의 제르베즈는 오른쪽 다리를 약간 절지만 화사한 얼굴에 가냘픈 인상을 주는 아리따운 여인이며, 스물여섯 살인 랑티에는 진한 갈색머리에 예쁘장한 얼굴 그리고 얄팍한 콧수염을 기른 사내이다.

아침이 되어서야 나타난 랑티에는 대뜸 제르베즈에게 집에 있는 옷 몇 벌을 던져주며 전당포에 가서 돈을 마련해오게 한다. 사실상 이 돈은 랑티에가 그 건물에 세들어 있는 비르지니 자매 중 애교 만점인 동생 아델과 도망칠 마차 삯이었다. 제르베즈는 아무것도 모른 채, 돈을 마련해주고 빨래터로 향한다. 그리고 빨래터에서 만난 건물 수위인 보슈 아줌마를 통해서 랑티에가 비르지니 자매와 곧잘 어울려다닌다는 얘기를 듣는다. 때마침 그 빨래터에 비르지니가 나타나 제르베즈를 비웃는 바람에 그들은 구경꾼들을 울타리 삼아 뒤엉켜 싸운다. 빨래터에서 텅 빈 집으로 돌아온 제르베즈는 두 아이들(여덟 살짜리 클로드와 네 살바기 에티엔)과 함께 배반당한 허탈감과 동시에 이 가난의 뒷거리에서 영영 못박혀버릴 것 같은 예감에 휩싸인다.

그로부터 3주 후, 콜롱브 영감의 목로주점에서 만난 함석공 쿠포는 평소에 제르베즈를 마음에 두고 있던 터라 그녀에게 넌지시 그들의 관계가 발전될 수 있을지를 묻는다. 그러나 제르베즈는 자신이 버림당한 경험과 주위의 시선 때문에 쉽게 승낙하지 못한다. 그녀는 그 앞에서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한다. 착실하게 일하는 것, 세 때 끼니를 거르지 않으며, 아담한 집에서 잠자는 것, 그리고 아이들을 착하게 기르는 것, 마지막으로 새로 살림을 차리게 된다면 남자에게 매맞지 않는 일이라고, 단지 그것뿐이라고...

그 뒤로 그들의 만남은 계속되었고 서로가 많은 일을 도와가기 시작했다. 쿠포는 우유를 찾아다주기도 하고, 심부름도 하면서 세탁물 꾸러미를 전달해주기도 했다. 제르베즈 역시 쿠포의 옷을 빨고 손질도 해주면서 그들은 더욱 가까워졌다. 쿠포에게 샹송이나 파리 외곽지의 얘기를 들을 때면 그녀는 참으로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날 밤 쿠포는 제르베즈를 찾아와 다시 한 번 그녀를 설득시킨다. 그는 병에 걸린 사람 같았다. 그만큼 그녀를 기다리느라 지쳤던 것이다. 제르베즈는 항상 아이 딸린 여자가 총각에게 시집가는 걸 두고 주위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면서 늘 신경을 쓰곤 했다. 그런 그녀를 쿠포는 열심히 설득했다. 제르베즈는 착하고 총각인 데다가 수입도 괜찮은 함석공, 다른 노동자들처럼 거칠거나 술 취하는 일이 없는 성실한 사내 쿠포에게 마음이 움직였다. 쿠포는 그녀를 데리고 작은누이면서, 금사슬 세공업자인 로리외 부부에게 결혼식 보증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러 간다. 그러나 누이는 그 결혼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오로지 제르베즈의 구두 밑에 금가루가 묻어갈까봐 그게 걱정인, 아주 인색한 사람이었다. 자신감을 잃은 제르베즈와는 달리 쿠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결혼식을 추진한다.

제르베즈는 식을 올리는 것이 이웃사람들에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쿠포는 이웃과 함께 식사 정도도 안 하고는 결혼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라며 그녀를 설득시켰다. 결국, 물랭다르 목로주점에서 연회를 열기로 하고, 참석자들도 모으고, 반지도 준비하고, 미사를 할 사제도 결정하고, 옷도 마련했다. 마침내 그들은 결혼식을 올렸다. 참석자들은 연회장에서 떠들고 먹고 마신 후에, 미술관 구경도 갔다온다. 저녁식사를 위해 다시 물랭다르에 모인 일행은 음담패설과 직업 얘기와 정치 얘기도 하면서 신나게 먹고 마셔댔다. 어쨌든, 신랑신부는 하루종일 요란하고 고달픈 식을 잘 치러낸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들이 결혼한 지도 4년이 지났다. 4년 동안 그들은 성실하게 생활했다. 제르베즈는 포코니에 부인의 세탁소에서 매일 열두 시간씩 일하면서도 집안식구들의 식사며 뒷바라지를 잊지 않았고, 남편 쿠포는 반 달씩마다 받아오는 품삯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아내에게 갖다주었다. 뿐만 아니라 술을 마시러 다닌다거나 술에 취해 주정하는 일이라곤 없었다. 일요일은 아이들과 산책을 하며 오붓하게 지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 부부의 착실함과 선량함은 곧잘 다른 부부간의 본보기로 내세워지기도 하였다. 그들은 결혼식 때문에 진 빚을 청산하고 하루빨리 그 칙칙한 봉쾨르 여관을 떠나고 싶어했다. 때마침 플라상 마을의 한 노신사가 큰아들 클로드의 낙서그림을 보고 감탄해서는 자기 마을의 중학교에 클로드를 넣어주겠다고 하여, 돈을 더 저축할 수 있었다. 마침내 얼마 후, 그들은 빨래터 바로 건너편에 있는 자그마한 2층집으로 이사했다. 하나 둘씩 멋진 가구들도 장만했다. 바로 그 집에서 그들은 예쁜 딸, 나나를 얻는다. 제르베즈 부부는 너무도 행복했다.

이웃집에는 구제 모자(母子)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레이스 수선을 하고, 아들은 대장장이로 볼트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그 어머니에게서는 귀족다운 면모가 풍겼고, 아들 구제는 노란 수염을 가졌기에 친구들 사이에서 괼르도르(황금의 입)라고 불렸다. 잘생긴 구제는 늠름한 체격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성품 또한 아주 진실하고 온화했다. 구제와 제르베즈는 한동안 서먹해하다가 곧 친해지고, 쿠포 역시 처음엔 그를 남자답지 못하다고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나 곧 우정이 깊어졌다. 언젠가 폭동을 구경하다가 쿠포가 끌려갈 뻔한 것을 구제가 난폭한 군중에서 빼내 도망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그가 빠져나오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참혹하게 살해되었을 것이다.

제르베즈는 그동안 착실히 모아온 돈으로 조그만 가게를 내고 싶었다. 그래서 쿠포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과 조심스레 상의를 해보았다. 다행히도 모두 대찬성이었다. 제르베즈는 그 다음날로 당장, 자신의 가게로 물색해놓은 잡화상 셋집을 쿠포와 함께 가보기로 하고는 일터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약속대로 다음날, 그녀는 나나를 데리고 새건물 4층에서 지붕을 손질하던 남편 쿠포를 찾아간다. 사실 그녀는 높은 곳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기가 너무도 두려워서 단 한 번도 일터에 온 적이 없었다. 차마 일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나가 아빠를 부르는 소리에 쿠포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발이 그만 미끄러져 버렸다.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그는 높은 곳에서 내던진 빨래 보따리처럼 둔한 소리를 내며 한길 복판에 내동댕이쳐졌다. 제르베즈는 목이 찢어져라 절규하며 팔을 허공 중에 올린 채 정신을 잃고 서 있었지만, 이미 그는 떨어졌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그는 사경을 헤맸다. 다행히 제르베즈의 정성어린 간호와 애정으로 조금씩 차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쿠포는 점차 몸이 나아짐에도 일을 하기 싫어하고, 그 전까지 보였던 직업에 대한 자부심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을뿐더러, 이제는 오히려 자신을 그렇게 망쳐놓은 일에 대해 저주를 퍼부으면서 극도로 사고가 비약되고 있었다. 그러면서 목로주점에 맛을 들여 이젠 취해서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 같은 쿠포에 비해, 제르베즈는 남편에게 아무런 불평도 없이 줄곧 일만 계속했다. 저축했던 돈을 쿠포의 치료비로 다 써버렸기 때문에 뼈가 부스러질 정도로 더 열심히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제르베즈 역시 남몰래 우울증이 쌓일 것은 당연했다. 그녀는 여전히 그 구트도르 거리에 세놓은 그 가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가게에 대한 집념이 거듭거듭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구제가 찾아와 자신의 결혼비용을 빌려주마고 조심스레 제안한다. 어머니와 이미 상의해놓은 일이었던 터라, 제르베즈는 구제 어머니를 찾아뵙고 감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드디어 이튿날, 당장에 제르베즈는 그 가게를 빌려 세탁소를 운영하게 된다.



악몽의 그림자

제르베즈가 새 가게를 막 차렸을 때, 보슈 부부도 구트도르가의 아파트 수위실에 들게 되었다. 제르베즈에게는 아주 든든한 일이었다. 제르베즈는 성실하기만 하면 모든 일이 올바르게 되어가리라 믿었기 때문에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새 가게는 동네에서 평판이 대단했다. 로리외 부인이 제르베즈를 모함해도 그녀의 인기는 날로 좋아지기만 했다. 제르베즈는 일솜씨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가게를 연 지 보름 만에 여공 두 사람과 견습공을 고용해야만 할 정도로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쿠포는 날이 갈수록 폭음이 심해지고 주정이 늘었다.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생활해서 자신의 가게까지 얻게 되었는데 정작 남편은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나나와 의붓자식인 에티엔을 차별하여, 걸핏하면 에티엔에게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이를 보다 못한 구제는 에티엔을 자신이 다니는 대장간, 볼트공장의 풀무견습공으로 데려간다.

매주처럼 세탁물을 배달하고 구제네 집에서 나오는 계단에서 제르베즈는 우연치않게 예전에 빨래터에서 싸웠던 비르지니를 만났다. 순간, 예상 외로, 비르지니는 이전 일에 대해서 먼저 사과하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날의 만남 이후 비르지니는 자주 제르베즈의 세탁소에 들르곤 했다. 어느덧 겨울이 다가오고 날씨가 추워지면서, 항상 불을 지펴야 하는 제르베즈의 세탁소는 동네 여인들의 만남터가 되었다. 비르지니 역시 자주 이곳을 들렀다. 제르베즈는 그녀와 얘기할 때면 언제나 랑티에의 얘기가 나올까봐 조금은 걱정이 됐다. 그런 걱정은 빗나가지 않았다. 비르지니는 아델과 랑티에가 1주일 전에 헤어졌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그뿐 아니라 며칠이 지나자 랑티에를 만났다고 전한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제르베즈는 갈수록 내심 불안해졌다. 랑티에라는 악몽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예전의 그 칙칙한 봉쾨르 여관에서 그가 들고 나갔던 트렁크를 다시 들고 나타날 것만 같았다.

여러가지로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녀는 마음의 안정을 구제에게서 찾았다. 세탁물을 배달하는 길에, 아들 에티엔을 본다는 핑계로 그 볼트공장에 들러 구제를 만나곤 했다. 구제도 제르베즈가 찾아오는 날은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제르베즈는 그를 만나면 평안을 되찾을 수 있었고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구제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그를 사랑해왔던 것이다. 그를 만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술에 취한 주정꾼 남편 쿠포였다. 취한 쿠포는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더듬고 만진다. 거의 망나니가 다 되어버린 쿠포였다. 언제나 술에 취해서 아내를 매질하는 윗방의 비자르 영감이나 주정뱅이 쿠포나 다를 바 없다고 제르베즈는 생각한다. 그녀에게는 희망이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6월 19일은 제르베즈의 축명일(祝名日)이다. 그녀와 잘 알고 지내는 주위사람들은 벌써부터 축하인사를 하면서 모두 축명일 잔치를 기대하고 있었다. 사흘 전부터 음식을 장만하면서, 거위도 아주 큰놈으로 두 마리 준비해두었다. 드디어 축명일! 쿠포가 나타나지 않는 소동이 잠시 있긴 했지만 잔치는 즐겁게 시작되었다. 모두들 멋지게 옷을 차려입고, 각양각색의 꽃들을 제르베즈에게 안겨주며 축하인사를 했다. 모두들 푸짐한 음식에 즐거워하며 누구한테 질새라 열심히도 먹어댔다. 어찌 보면, 노동자들에게 이런 축제는 먹는 축제다. 어느 정도 배가 채워지고 나서는 이제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한다.

한참 축제가 무르익을 무렵, 제르베즈는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때 건너편 보도에서 축제를 구경하는 인파들 속에 랑티에가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제르베즈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순간, 쿠포도 랑티에를 보았다. 그는 욕지거리를 하며 당장이라도 죽일 기세로 랑티에에게 달려나갔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구제는 곧 친구라는 이름으로 나란히 들어와서는 그에게 술을 따라준다. 제르베즈는 숨이 막힐 듯했지만, 축제의 노랫소리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축제가 끝날 무렵에는 모두 다 취해서 돌아갔고 제르베즈를 비롯해서 아무도 그 잔치가 어떻게 끝났는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절망의 끝

축명일이 지난 다음 토요일. 쿠포는 랑티에를 데리고 들어와서 제르베즈와 악수를 시켰다. 제르베즈를 버리고 도망가서 최근 8년 동안 모자공장을 경영했지만, 지금은 근사한 일을 진행 중이라고 하면서 랑티에는 이 거리에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랑티에는 동네사람들의 환심을 끌기 위해 여념이 없었고, 모두들 점차 그의 계획대로 움직여주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랑티에를 가리켜 멋지고 좋은 신사라고 말했다. 그의 거리가 된 셈이다. 이제 랑티에는 마음놓고 제르베즈의 가게를 들락거렸다. 하지만 제르베즈는 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이 거리에서 좋은 집을 물색하던 랑티에는 보슈 부인이 좋은 방을 소개해도 맘에 들어하지 않고 쿠포에게 당신네 집 만한 데가 없다고 얘기한다. 이 말에 쿠포는 아예 랑티에를 자기 집에서 같이 살자고 하며 데리고 들어왔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랑티에는 제르베즈와 동거인이 된 것이다.

제르베즈는 예전과 다름없이 세탁일을 했지만 놀고먹는 두 남자를 먹여살려야 했기 때문에, 갈수록 가계가 어려워져가고 있었다. 여직공들마저 랑티에와 어울려 노느라고 일의 능률도 떨어져갔다. 결국, 몇 달이 채 못가서 외상값에 허우적대고, 일거리도 떨어졌으며, 직원을 쓸 여력마저도 없게 되었다. 거의 파산상태나 다름없는 처지임에도 쿠포와 랑티에는 그저 세탁소에 돈이 들어오는 족족 파먹기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거인 셋에 대한 이상한 소문까지 떠돌기 시작했다. 누구랑 누구랑 잔다, 셋이 같이 잔다더라는 둥... 물론 소문이 사실은 아니었지만, 제르베즈는 랑티에가 계속 심상찮게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을 느꼈다. 이런 분위기에서 견디기 힘들어하는 제르베즈를 마음속 깊이 생각하는 구제는 그녀에게 어렵사리 같이 멀리 떠나자는 제안을 꺼낸다. 그래야 둘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제르베즈는 그를 사랑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한편, 매일 주점을 돌며 술 마시기에 바쁜 쿠포는 랑티에를 좋은 친구로 생각하면서 그가 시키는 대로, 가게 안의 돈을 계속 가져다준다. 랑티에는 손끝하나 안 대고 제르베즈의 돈을 착취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은 돈으로 둘은 목로주점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11월의 어느밤, 랑티에와 쿠포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거나하게 술을 마셨다. 끊임없이 부어대는데, 무슨 꿍꿍이 속인지 랑티에는 취한 척만 할 뿐이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계획적이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쿠포를 만들어놓은 다음, 집에 돌아와 제르베즈에게 수작을 부리려는 속셈이었다. 돈을 착취하고 이제는 몸마저 착취하겠다는 것이다. 제르베즈가 반항해도 이미 그녀의 몸은 드러나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의 침대에 끌려가고 있었다.

이제 매일 밤 랑티에의 침대로 제르베즈가 기어든다는 소문이 금세 퍼지고, 동네는 온통 제르베즈를 비방하는 말들로 가득 찼다. 처음에는 자기혐오감에 한동안 빠져 있었으나, 회수가 거듭될수록 그녀는 차츰 예사로운 일쯤으로 여기게 되었다. 쿠포 역시 암묵적으로 그들의 관계를 인정해주었다. 이제는 습관처럼, 당연하게, 제르베즈는 한 집에서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여인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전락해가는 그녀의 생활 역시 나태해졌다. 점차 손님의 발길이 끊기면서 가게는 망하기 일보직전이었고, 굶지 않기 위해 집안에 있는 살림도 전당포에 하나둘씩 잡혔다. 제르베즈를 공유하면서부터 랑티에는 살림에서도 쿠포와 대등하다고 생각하고 가게에 눌러앉아 조금이라도 돈이 들어오면 그것을 쥐고 나갔다. 그 두 사내는 여자나 가게는 어찌되든 신경쓰지도 않고, 그들 입맛대로, 그들 기분대로 뭐든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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