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도 거부당한(?) 영혼
예순을 넘긴 루소는 1776년 2월 어느날 격앙되고 혼란스런 상태에서 노트르담사원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대화록》원고를 신에게 바친다는 생각으로 사원의 제단에 두고 올 생각이었다. 루소는 원고 봉투 위에 '저는 인간들에게 모욕과 거짓말과 배반밖에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영원한 섭리여, 제가 믿을 곳은 당신뿐입니다'라고 적어두었다.
그러나 사원은 때마침 창살 문으로 닫혀 있었다. 제단으로 나갈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원고를 담은 봉투를 들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루소는 신의 섭리가 자신을 거부한다는 표시로 받아들여 두 번 다시 노트르담 사원에 가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루소는 노인답지 않게, 억측 같은 성급한 판단으로 단지 사원의 문이 닫혀 있을 뿐인 것을 두고 신이 자신을 거부한 것으로까지 확대해석해 받아들였을까? 오늘날 우리에게는 《에밀》《사회계약론》등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자 사상가인 루소는 실제로 그런 명성에 걸맞지 않게 여리고 나약한, 평범한 인물이었다. 그는 병적일 정도로 사람들과 만나기를 꺼렸고, 갖은 비난과 박해로 정신질환을 앓기도 했으며, 그 누구보다도 고통과 불행 속에 괴로운 삶을 살다가 조용히 세상을 등진 사람이었다.
《플루타크 영웅전》을 즐겨 애독한 소년
루소는 1712년 제네바에서 프랑스 국적의 프로테스탄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삭은 시계 제조업자로 성마르고 괴상한데다 방랑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어머니 쉬잔 베르나르는 상당한 부를 지닌 수공업자의 딸이었는데, 두 번째 아이인 장 자크를 낳은 지 9일 만에 산욕열로 사망했다. 이런 어머니의 죽음을 두고 루소는 심한 죄책감을 느껴 "나는 어머니의 목숨을 빼앗았다. 내 출생은 나의 첫 불행이었다"라고 토로했다. 이후, 루소는 어머니 없이 편부 슬하에서 고모와 유모의 도움으로 성장한다. 아버지는 그의 독특한 성격만큼 아들의 교육에 있어서도 남달랐다. 그는 어린 루소와 함께 많은 소설을 읽었는데, 이 때문인지 루소는 이미 대여섯 살 때부터 대단한 독서광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번갈아 책을 읽다가 밤을 새기 일쑤였다. 특히, 두 사람은《플루타크 영웅전》을 즐겨 애독하곤 했는데, 루소는 삶의 예지외 풍부한 일화가 담긴 영웅들의 이야기들을 접하며 풍부한 상상력과 감수성을 키워나갔다.
외톨이 소년의 방황과 첫사랑
루소가 11세 때 아버지 이삭은 한 퇴역장군과 사소한 말다툼으로 싸운 뒤 제네바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때부터 어린 루소는 사촌의 손에 길러졌고, 이후 어느 목사의 기숙학생으로, 또 수습서기, 조각가의 견습공, 귀부인의 하인, 성가대원 양성학교의 기숙생, 음악교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떠돌아다니는 방랑생활을 하게 된다. 고되고 적성에도 맞지 않은 일을 해야 했던 소년 루소에게 유일한 위안거리는 독서였다. 하인으로 일하면서 루소는 일이 서툴러 자주 욕설을 듣고 매질을 당하기도 했고, 그런 가운데 점차 말수가 적어지고 폐쇄적인 소년으로 변해갔다. 그럴수록 그는 독서를 통해 불행한 현실을 보상받고자 했다.
17세 되던 해에 루소는 평생 연인이 될 바랑 부인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이후 루소는 바랑 부인을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그녀는 방황하고 있던 소년 루소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그녀는 솔선해서 직업을 알선해주는 등 충고와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루소는 바랑 부인의 저택에 함께 살면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며 여유롭게 문학과 학문에 깊은 관심을 키워나갔다.
문필가로서 얻은 명성, 그 덧없음
루소의 나이 38세 되던 1749년 10월 어느날이다. 루소는 파리 근교의 뱅센감옥에 갇혀 있던 디드로를 만나러 가는 길에 우연히 한 문예잡지에서 디종 아카데미가 현상 공모 주제로 내건 〈학문과 예술의 재건이 도덕의 정화에 도움을 주었는가?〉를 접하게 된다. 순간 루소는 주체할 수 없는 격정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 쓰러졌고, 대환희와도 같은 황홀감을 체험한다. 이 '깨달음'의 순간부터 루소의 삶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문필가로서의 진면목이 발휘되어 결국 다음해 《학문과 예술에 관한 담론》으로 디종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대략 10년 남짓한 기간에 루소는《에밀》,《사회계약론》,《인간불평등기원론》등 대표 저서들을 발표한다.
《에밀》은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로 행정당국과 교회로부터 금서조치를 받았고, 루소도 추방명령을 받아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도피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 때부터 루소는 세상사람들의 편견과 몰이해에 깊은 상처를 받게 되고 평생 스스로를 그들로부터 '만장일치로 추방된' 고독한 영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세인들의 박해를 피해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고, 심지어 어느곳에서는 돌팔매질까지 당하는 상황에 이르자 지나치게 섬세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던 루소는 모든 이들로부터 쫓기고 있다는 추적망상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타고날 때부터 앓았던 신장병이 재발해 시도 때도 없이 소변이 마려워 평생 카테터 같은 기계장치를 몸에 지니고 다녀야 했다. 이 때문에 그는 특수한 복장(루소는 기계장치를 매달고자 특별히 고안한 아르메니아식 의상에 털모자를 하고 다녔다)을 해야 했는데, 이같은 기이한 차림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더 주시하곤 했다.
"식물을 사랑하는 은둔자"
노년에 접어든 루소에게 삶은 여전히 고되고 고통스러웠다. 문필가로서 얻은 명성은 존경보다는 악의에 찬 것이었고, 생계수단이었던 악보 베끼는 일도 글씨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더 이상 주문도 없었다. 그가 받는 빈약한 연금으로는 물가가 비싼 파리 생활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해인 1778년에 다행히 한 후작의 도움으로 파리 북부의 에름농빌로 이사한다. 그곳에서 루소는 모처럼 만에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사한 지 6주가 지난 7월 2일, 평소 습관대로 산책을 하고 아침식사를 한 후, 루소는 갑작스런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루소의 사망 직후, 파리에서는 그가 의기소침함을 못이겨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다는 풍문이 떠돌았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의도적으로 사람 만나는 일을 기피한 말년의 루소. 그에게 유일한 행복이자 위안거리는 식물채집을 하며 홀로 산책하는 가운데 내면의 자기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었다. 루소에게는 어머니와도 같았던 자연은 세파에 시달린 상처받은 영혼을 따스하게 보듬어주었다. 고독한 은둔자가 된 말년의 루소는 인생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파란 많았던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루소는 지나온 인생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고독하게 산책하는 가운데 떠오른 단상들을 생각날 때마다 메모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적어놓은 메모들을 그의 사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어 펴낸 것이 바로《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그가 속한 세상에서 이방인이라고 느낀 '고독한 은둔자' 인 '나(장 자크 루소)'는 자연 속에서 산책하는 가운데 저절로 떠오르는 몽상들을 그 자신을 위해 그리고 후대인들에게 전하려는 의도로 메모를 시작한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나는 자신의 생애를 뒤돌아보며 진정 내가 추구한 삶은 어떤 것이었는지 성찰하려 한다. 왜 이 글을 쓰게 되었고, 내가 말하는 진리를 위해 살아온 삶이란 어떤 것이었으며,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이란 과연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예순을 넘긴 루소는 1776년 2월 어느날 격앙되고 혼란스런 상태에서 노트르담사원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대화록》원고를 신에게 바친다는 생각으로 사원의 제단에 두고 올 생각이었다. 루소는 원고 봉투 위에 '저는 인간들에게 모욕과 거짓말과 배반밖에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영원한 섭리여, 제가 믿을 곳은 당신뿐입니다'라고 적어두었다.
그러나 사원은 때마침 창살 문으로 닫혀 있었다. 제단으로 나갈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원고를 담은 봉투를 들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루소는 신의 섭리가 자신을 거부한다는 표시로 받아들여 두 번 다시 노트르담 사원에 가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루소는 노인답지 않게, 억측 같은 성급한 판단으로 단지 사원의 문이 닫혀 있을 뿐인 것을 두고 신이 자신을 거부한 것으로까지 확대해석해 받아들였을까? 오늘날 우리에게는 《에밀》《사회계약론》등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자 사상가인 루소는 실제로 그런 명성에 걸맞지 않게 여리고 나약한, 평범한 인물이었다. 그는 병적일 정도로 사람들과 만나기를 꺼렸고, 갖은 비난과 박해로 정신질환을 앓기도 했으며, 그 누구보다도 고통과 불행 속에 괴로운 삶을 살다가 조용히 세상을 등진 사람이었다.
《플루타크 영웅전》을 즐겨 애독한 소년
루소는 1712년 제네바에서 프랑스 국적의 프로테스탄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삭은 시계 제조업자로 성마르고 괴상한데다 방랑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어머니 쉬잔 베르나르는 상당한 부를 지닌 수공업자의 딸이었는데, 두 번째 아이인 장 자크를 낳은 지 9일 만에 산욕열로 사망했다. 이런 어머니의 죽음을 두고 루소는 심한 죄책감을 느껴 "나는 어머니의 목숨을 빼앗았다. 내 출생은 나의 첫 불행이었다"라고 토로했다. 이후, 루소는 어머니 없이 편부 슬하에서 고모와 유모의 도움으로 성장한다. 아버지는 그의 독특한 성격만큼 아들의 교육에 있어서도 남달랐다. 그는 어린 루소와 함께 많은 소설을 읽었는데, 이 때문인지 루소는 이미 대여섯 살 때부터 대단한 독서광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번갈아 책을 읽다가 밤을 새기 일쑤였다. 특히, 두 사람은《플루타크 영웅전》을 즐겨 애독하곤 했는데, 루소는 삶의 예지외 풍부한 일화가 담긴 영웅들의 이야기들을 접하며 풍부한 상상력과 감수성을 키워나갔다.
외톨이 소년의 방황과 첫사랑
루소가 11세 때 아버지 이삭은 한 퇴역장군과 사소한 말다툼으로 싸운 뒤 제네바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때부터 어린 루소는 사촌의 손에 길러졌고, 이후 어느 목사의 기숙학생으로, 또 수습서기, 조각가의 견습공, 귀부인의 하인, 성가대원 양성학교의 기숙생, 음악교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떠돌아다니는 방랑생활을 하게 된다. 고되고 적성에도 맞지 않은 일을 해야 했던 소년 루소에게 유일한 위안거리는 독서였다. 하인으로 일하면서 루소는 일이 서툴러 자주 욕설을 듣고 매질을 당하기도 했고, 그런 가운데 점차 말수가 적어지고 폐쇄적인 소년으로 변해갔다. 그럴수록 그는 독서를 통해 불행한 현실을 보상받고자 했다.
17세 되던 해에 루소는 평생 연인이 될 바랑 부인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이후 루소는 바랑 부인을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그녀는 방황하고 있던 소년 루소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그녀는 솔선해서 직업을 알선해주는 등 충고와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루소는 바랑 부인의 저택에 함께 살면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며 여유롭게 문학과 학문에 깊은 관심을 키워나갔다.
문필가로서 얻은 명성, 그 덧없음
루소의 나이 38세 되던 1749년 10월 어느날이다. 루소는 파리 근교의 뱅센감옥에 갇혀 있던 디드로를 만나러 가는 길에 우연히 한 문예잡지에서 디종 아카데미가 현상 공모 주제로 내건 〈학문과 예술의 재건이 도덕의 정화에 도움을 주었는가?〉를 접하게 된다. 순간 루소는 주체할 수 없는 격정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 쓰러졌고, 대환희와도 같은 황홀감을 체험한다. 이 '깨달음'의 순간부터 루소의 삶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문필가로서의 진면목이 발휘되어 결국 다음해 《학문과 예술에 관한 담론》으로 디종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대략 10년 남짓한 기간에 루소는《에밀》,《사회계약론》,《인간불평등기원론》등 대표 저서들을 발표한다.
《에밀》은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로 행정당국과 교회로부터 금서조치를 받았고, 루소도 추방명령을 받아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도피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 때부터 루소는 세상사람들의 편견과 몰이해에 깊은 상처를 받게 되고 평생 스스로를 그들로부터 '만장일치로 추방된' 고독한 영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세인들의 박해를 피해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고, 심지어 어느곳에서는 돌팔매질까지 당하는 상황에 이르자 지나치게 섬세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던 루소는 모든 이들로부터 쫓기고 있다는 추적망상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타고날 때부터 앓았던 신장병이 재발해 시도 때도 없이 소변이 마려워 평생 카테터 같은 기계장치를 몸에 지니고 다녀야 했다. 이 때문에 그는 특수한 복장(루소는 기계장치를 매달고자 특별히 고안한 아르메니아식 의상에 털모자를 하고 다녔다)을 해야 했는데, 이같은 기이한 차림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더 주시하곤 했다.
"식물을 사랑하는 은둔자"
노년에 접어든 루소에게 삶은 여전히 고되고 고통스러웠다. 문필가로서 얻은 명성은 존경보다는 악의에 찬 것이었고, 생계수단이었던 악보 베끼는 일도 글씨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더 이상 주문도 없었다. 그가 받는 빈약한 연금으로는 물가가 비싼 파리 생활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해인 1778년에 다행히 한 후작의 도움으로 파리 북부의 에름농빌로 이사한다. 그곳에서 루소는 모처럼 만에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사한 지 6주가 지난 7월 2일, 평소 습관대로 산책을 하고 아침식사를 한 후, 루소는 갑작스런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루소의 사망 직후, 파리에서는 그가 의기소침함을 못이겨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다는 풍문이 떠돌았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의도적으로 사람 만나는 일을 기피한 말년의 루소. 그에게 유일한 행복이자 위안거리는 식물채집을 하며 홀로 산책하는 가운데 내면의 자기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었다. 루소에게는 어머니와도 같았던 자연은 세파에 시달린 상처받은 영혼을 따스하게 보듬어주었다. 고독한 은둔자가 된 말년의 루소는 인생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파란 많았던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루소는 지나온 인생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고독하게 산책하는 가운데 떠오른 단상들을 생각날 때마다 메모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적어놓은 메모들을 그의 사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어 펴낸 것이 바로《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그가 속한 세상에서 이방인이라고 느낀 '고독한 은둔자' 인 '나(장 자크 루소)'는 자연 속에서 산책하는 가운데 저절로 떠오르는 몽상들을 그 자신을 위해 그리고 후대인들에게 전하려는 의도로 메모를 시작한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나는 자신의 생애를 뒤돌아보며 진정 내가 추구한 삶은 어떤 것이었는지 성찰하려 한다. 왜 이 글을 쓰게 되었고, 내가 말하는 진리를 위해 살아온 삶이란 어떤 것이었으며,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이란 과연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