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운명을 듣던 20대
양귀자 선생님의 젊은 시절은 어땠을까요?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뵈었던 1994년에는 선생님의 나이도 벌써 불혹에 다가서고 있었더랬습니다. 스무 살 계집애의 청순함은 찾을 수 없었지요. 잠시 웅진출판사에서 펴낸 《양귀자의 문학앨범》을 살핍니다. 지금은 《초록물고기》나 《박하사탕》을 만든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이창동 선생님이 양귀자 선생님의 젊은 시절을 적고 있군요. 다른 부분은 대충 지나치더라도 아침마다 베토벤의 《운명》을 크게 틀어놓고 들었다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쾅쾅쾅 쾅! 그 벼락소리를 틀어놓고 스물 몇 살의 선생님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셨던 걸까요?
제가 양귀자 선생님의 작품을 직접 접한 것은 소설보다 먼저 《원미동 시인》이라는 'MBC 베스트극장'에서였습니다. 드라마의 주연배우나 감독은 잊었지만, 원미동 시인이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읊조리던 시 중에는 제가 좋아하던 작품들이 들어 있었더랬습니다. 그리고 또 지금은 이인화라는 필명으로 이름을 날리는 류철균 선생님이 쓴 〈양귀자론 - 유황불의 경험과 리얼리즘의 깊이〉라는 평론을 통해서도 선생님의 작품 세계를 접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문학청년인 제게 양귀자 선생님은 섬세한 감성과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단편작가 정도로만 자리매김되었지요.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운명
자, 이제는 작가의 그 빌어먹을 운명에 대해 말해볼까요? 우리가 곧 살필 《금지된 말》에서 양귀자 선생님은 작가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들일랑 책상 앞에 앉아 있느라 다 놓쳐버리게 숙명지어진' 존재라고 하셨지요. 작가가 세상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곧 책상머리에 앉아서 끄적여대는 작품뿐이라는 고백입니다. 물론 작가 주위에는 많은 이들이 머무르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지요. 우선 작가의 가족들이 있을 테고, 또 작가의 친구들과 이웃들이 있을 테고, 또 작가의 책을 출판하는 사람과 작가의 작품을 비평하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읽어주는 독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작가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 자신의 글을 읽어주는 독자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삶을 지나치는 것, 그것이 곧 작가의 삶일 것입니다.
1990년대에 양귀자 선생님의 작가적 궤적은 곧 이런 작가의 운명을 몸소 실천해 보인 것이겠지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부터 《천년의 사랑》을 거쳐 최근의 《모순》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되셨습니다. 물론 독자가 많다고 해서 그 작가의 세계가 반드시 넓고 깊은 것은 아니겠지요. 허나 우리는 적어도 20년이 넘도록 소설만을 써온 한 인간의 어떤 '변화'를 보여줄 때 그 변화의 원인과 결과를 차분히 따져보는 배려를 해야 합니다.슬픔의 물줄기 흐르는 작품세계
우선 저는 양귀자 선생님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물줄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슬픔'입니다. 선생님은 작품은 어느 것이나 펼쳐 읽어도 슬픔이 묻어나지요. 선생님의 작품 《슬픔도 힘이 된다》를 읽었을 때가 떠오릅니다. 1987년의 함성도 사라지고 소비에트 붕괴의 소용돌이 속에서 헷갈려하던 그 저녁, 선생님은 우리들 가슴 속에 밀물처럼 부풀어오르던 그 슬픔을 하나의 '힘'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총이나 칼, 짱돌이나 화염병이라면 힘이 될 수 있겠으나 슬픔이 힘이 되다니요? 슬픔이란 나약함, 용기 없음, 소부르주아의 비겁함과 연결되는 단어였거든요. 삶의 굴절을 살피기에는 그때 제 나이가 너무 어렸던 탓입니다. 곧이곧대로 주먹을 내밀면 악의 무리가 와르르 무너질 것이라는 유치한 발상에 머무르고 있었으니까요.
돌이켜보면 70년대와 80년대는 그야말로 슬픔의 시대였습니다. 선생님의 첫 창작집 《귀머거리 새》나 두 번째 창작집 《원미동 사람들》을 읽어보세요. 우리 상처받고 지친 영혼들이 그 속에 있습니다. 때로는 한숨으로 때로는 눈물로 자신의 삶을 비관하면서도 하루하루를 버팅기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 양귀자 선생님은 그들 곁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표정을, 손짓을 하나씩 옮기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고단한 청춘이기도 했겠지요. 선생님은 그렇게 10여 년을 헤맨 다음에 《잘 가라 밤이여 ('희망'의 원제)》를 출간하셨습니다. 밤과 함께 슬픔도 눈물도 분노도 좌절도 모두 보내버리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셨지요. 그러나 밤이여 잘 가! 한다고 그 밤이 갑니까? 희망을 아무리 원해도 희망이 아무 곳에서나 옵니까? 선생님은 제목을 《희망》으로 바꾸시면서까지 새로운 꿈을 노래하셨지만, 세상은 선생님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요.
자기 독자를 끌고 한 시대를 살다
그래서 선생님은 계간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비평가들의 평가를 받으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의 '작가'에서 벗어나 독자와 직접 호흡하는 '작가'의 길로 나선 것입니다. 일찍이 헤밍웨이와 카뮈, 발자크와 도스토예프스키가 나섰던 바로 그 길이지요. 감성 어린 '여류작가'란 호칭도, 소시민의 애환을 그리는 '단편작가'란 수식어구도 떼어버리고 그냥 '작가'로 남겠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렇게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나는 경우, 그 작가에게 '대중작가'라는 애매모호한 명칭을 붙여왔습니다. 박범신, 최인호, 한수산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그렇게 불리셨지요. 이 '대중작가'란 명칭에는 대중의 속된 취향을 쫓는 작가란 비판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판은 곧 양귀자 선생님께도 날아들었지요. 원미동 시절로 돌아가라는 비평이 나오는가 하면, 소설책의 글자 크기나 장정까지 문제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한 번 정한 길을 끝까지 가셨지요. 선생님 곁에는 선생님의 작품에 감동한 독자들이 보낸 엽서와 편지들이 그득했습니다. 선생님은 세련되고 지식이 많은 호사가들보다 순박하지만 삶의 진실을 아는 독자들의 '진심'을 믿기로 한 것이지요.
작가란 무엇인가 누가 물어온다면, 저는 스스럼없이 '자기 독자를 끌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그 전범으로 양귀자 선생님을 들지요. 1980년대가 이문열의 시대였다면 1990년대는 양귀자의 시대가 아니었을까요?
음식점 주인과 서점 주인
90년대를 보내고 21세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생겼지요. 양귀자 선생님은 홍익대학교 근처에서 《어머니가 차려주는 식탁》이란 음식점을 경영하시면서 전주의 《홍지서림》까지 맡으셨습니다. 평창동에 멋진 집도 지으셨지요. 《부엌신》이란 최신작은 음식점을 경영하시면서 겪은 삶의 애환들을 풀어놓으신 것입니다.
이제는 그렇게 자주 선생님을 찾아뵙지는 못하지요. 그러나 마음은 늘 선생님과 함께 있습니다. 소설을 쓰다가 힘이 들 때면, 문득문득 선생님의 글들을 꺼내 읽지요. 아 여기 작가의 운명이 있구나! 하며 혼자 미소짓습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금지된 말》의 내용은 간단하다. 소설가인 나는 정체불명의 편지를 네 통 받는 것으로 사건은 시작한다. 거기에 대해 화자는 늘 다니던 북한산 산보를 중단하기도 하고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을 찾아헤매기도 한다. 그런데, 북한산 산보 도중 산개인 누렁이를 만나게 된다. 마지막 네 번째 편지에서 편지를 보낸 사람은 왼손등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는데, 화자는 그날 누렁이의 왼발에서 편지에서 말한 것과 같은 깊은 상처를 발견한다. 그 우연한 일치에 소설가는 깜짝 놀라는데...
양귀자 선생님의 젊은 시절은 어땠을까요?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뵈었던 1994년에는 선생님의 나이도 벌써 불혹에 다가서고 있었더랬습니다. 스무 살 계집애의 청순함은 찾을 수 없었지요. 잠시 웅진출판사에서 펴낸 《양귀자의 문학앨범》을 살핍니다. 지금은 《초록물고기》나 《박하사탕》을 만든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이창동 선생님이 양귀자 선생님의 젊은 시절을 적고 있군요. 다른 부분은 대충 지나치더라도 아침마다 베토벤의 《운명》을 크게 틀어놓고 들었다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쾅쾅쾅 쾅! 그 벼락소리를 틀어놓고 스물 몇 살의 선생님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셨던 걸까요?
제가 양귀자 선생님의 작품을 직접 접한 것은 소설보다 먼저 《원미동 시인》이라는 'MBC 베스트극장'에서였습니다. 드라마의 주연배우나 감독은 잊었지만, 원미동 시인이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읊조리던 시 중에는 제가 좋아하던 작품들이 들어 있었더랬습니다. 그리고 또 지금은 이인화라는 필명으로 이름을 날리는 류철균 선생님이 쓴 〈양귀자론 - 유황불의 경험과 리얼리즘의 깊이〉라는 평론을 통해서도 선생님의 작품 세계를 접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문학청년인 제게 양귀자 선생님은 섬세한 감성과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단편작가 정도로만 자리매김되었지요.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운명
자, 이제는 작가의 그 빌어먹을 운명에 대해 말해볼까요? 우리가 곧 살필 《금지된 말》에서 양귀자 선생님은 작가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들일랑 책상 앞에 앉아 있느라 다 놓쳐버리게 숙명지어진' 존재라고 하셨지요. 작가가 세상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곧 책상머리에 앉아서 끄적여대는 작품뿐이라는 고백입니다. 물론 작가 주위에는 많은 이들이 머무르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지요. 우선 작가의 가족들이 있을 테고, 또 작가의 친구들과 이웃들이 있을 테고, 또 작가의 책을 출판하는 사람과 작가의 작품을 비평하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읽어주는 독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작가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 자신의 글을 읽어주는 독자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삶을 지나치는 것, 그것이 곧 작가의 삶일 것입니다.
1990년대에 양귀자 선생님의 작가적 궤적은 곧 이런 작가의 운명을 몸소 실천해 보인 것이겠지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부터 《천년의 사랑》을 거쳐 최근의 《모순》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되셨습니다. 물론 독자가 많다고 해서 그 작가의 세계가 반드시 넓고 깊은 것은 아니겠지요. 허나 우리는 적어도 20년이 넘도록 소설만을 써온 한 인간의 어떤 '변화'를 보여줄 때 그 변화의 원인과 결과를 차분히 따져보는 배려를 해야 합니다.슬픔의 물줄기 흐르는 작품세계
우선 저는 양귀자 선생님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물줄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슬픔'입니다. 선생님은 작품은 어느 것이나 펼쳐 읽어도 슬픔이 묻어나지요. 선생님의 작품 《슬픔도 힘이 된다》를 읽었을 때가 떠오릅니다. 1987년의 함성도 사라지고 소비에트 붕괴의 소용돌이 속에서 헷갈려하던 그 저녁, 선생님은 우리들 가슴 속에 밀물처럼 부풀어오르던 그 슬픔을 하나의 '힘'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총이나 칼, 짱돌이나 화염병이라면 힘이 될 수 있겠으나 슬픔이 힘이 되다니요? 슬픔이란 나약함, 용기 없음, 소부르주아의 비겁함과 연결되는 단어였거든요. 삶의 굴절을 살피기에는 그때 제 나이가 너무 어렸던 탓입니다. 곧이곧대로 주먹을 내밀면 악의 무리가 와르르 무너질 것이라는 유치한 발상에 머무르고 있었으니까요.
돌이켜보면 70년대와 80년대는 그야말로 슬픔의 시대였습니다. 선생님의 첫 창작집 《귀머거리 새》나 두 번째 창작집 《원미동 사람들》을 읽어보세요. 우리 상처받고 지친 영혼들이 그 속에 있습니다. 때로는 한숨으로 때로는 눈물로 자신의 삶을 비관하면서도 하루하루를 버팅기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 양귀자 선생님은 그들 곁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표정을, 손짓을 하나씩 옮기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고단한 청춘이기도 했겠지요. 선생님은 그렇게 10여 년을 헤맨 다음에 《잘 가라 밤이여 ('희망'의 원제)》를 출간하셨습니다. 밤과 함께 슬픔도 눈물도 분노도 좌절도 모두 보내버리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셨지요. 그러나 밤이여 잘 가! 한다고 그 밤이 갑니까? 희망을 아무리 원해도 희망이 아무 곳에서나 옵니까? 선생님은 제목을 《희망》으로 바꾸시면서까지 새로운 꿈을 노래하셨지만, 세상은 선생님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요.
자기 독자를 끌고 한 시대를 살다
그래서 선생님은 계간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비평가들의 평가를 받으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의 '작가'에서 벗어나 독자와 직접 호흡하는 '작가'의 길로 나선 것입니다. 일찍이 헤밍웨이와 카뮈, 발자크와 도스토예프스키가 나섰던 바로 그 길이지요. 감성 어린 '여류작가'란 호칭도, 소시민의 애환을 그리는 '단편작가'란 수식어구도 떼어버리고 그냥 '작가'로 남겠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렇게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나는 경우, 그 작가에게 '대중작가'라는 애매모호한 명칭을 붙여왔습니다. 박범신, 최인호, 한수산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그렇게 불리셨지요. 이 '대중작가'란 명칭에는 대중의 속된 취향을 쫓는 작가란 비판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판은 곧 양귀자 선생님께도 날아들었지요. 원미동 시절로 돌아가라는 비평이 나오는가 하면, 소설책의 글자 크기나 장정까지 문제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한 번 정한 길을 끝까지 가셨지요. 선생님 곁에는 선생님의 작품에 감동한 독자들이 보낸 엽서와 편지들이 그득했습니다. 선생님은 세련되고 지식이 많은 호사가들보다 순박하지만 삶의 진실을 아는 독자들의 '진심'을 믿기로 한 것이지요.
작가란 무엇인가 누가 물어온다면, 저는 스스럼없이 '자기 독자를 끌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그 전범으로 양귀자 선생님을 들지요. 1980년대가 이문열의 시대였다면 1990년대는 양귀자의 시대가 아니었을까요?
음식점 주인과 서점 주인
90년대를 보내고 21세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생겼지요. 양귀자 선생님은 홍익대학교 근처에서 《어머니가 차려주는 식탁》이란 음식점을 경영하시면서 전주의 《홍지서림》까지 맡으셨습니다. 평창동에 멋진 집도 지으셨지요. 《부엌신》이란 최신작은 음식점을 경영하시면서 겪은 삶의 애환들을 풀어놓으신 것입니다.
이제는 그렇게 자주 선생님을 찾아뵙지는 못하지요. 그러나 마음은 늘 선생님과 함께 있습니다. 소설을 쓰다가 힘이 들 때면, 문득문득 선생님의 글들을 꺼내 읽지요. 아 여기 작가의 운명이 있구나! 하며 혼자 미소짓습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금지된 말》의 내용은 간단하다. 소설가인 나는 정체불명의 편지를 네 통 받는 것으로 사건은 시작한다. 거기에 대해 화자는 늘 다니던 북한산 산보를 중단하기도 하고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을 찾아헤매기도 한다. 그런데, 북한산 산보 도중 산개인 누렁이를 만나게 된다. 마지막 네 번째 편지에서 편지를 보낸 사람은 왼손등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는데, 화자는 그날 누렁이의 왼발에서 편지에서 말한 것과 같은 깊은 상처를 발견한다. 그 우연한 일치에 소설가는 깜짝 놀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