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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말

양귀자 지음 | -
금지된 말

양귀자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나: 화자로서 소설가.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다



누렁이: 화자가 북한산에서 만난 강아지



편지: 정체불명의 인물로부터 날아드는 네 통의 편지





「금지된 말」에는 화자인 소설가 나(작가 자신의 분신)와 누렁이 한 마리가 유일한 등장인물로 그 내용 또한 작가와 개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 전부다. 마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망망대해에 낚싯대를 드리운 노인과 물고기가 전부인 것처럼. 그리고 작가에게 날아오는 편지 네 통이 있다.

북한산 산책길의 누런 산개 한 마리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북한산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그 길에서 우연히 산개를 봤다. 그 개는 전에 살던 동네에서 키웠던 우리집 뽀삐와 닮았다. 밤늦게까지 글을 쓰면 밤새 지켜주던 고마운 개였지만 이사올 때 보신탕용으로 팔아버려 마음 깊이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놀랄 만큼 예전에 사랑했던 개를 닮았긴 했어도, 어쩌다 가끔씩은 예전의 그 뽀삐가 우리 가족을 찾아 먼 곳에서부터 달려와 북한산에 거처를 정한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있어도, 모든 것은 다 내 감정의 장난일 뿐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 웃을 사람도 있겠지만, 뽀삐의 마지막을 알고 있는 먼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은근히 그때의 상황을 탐색한 것도 사실은 그 감정 한 자락에 혹여 덧이라도 날까 염려해서였다.”

그런데 그 누렁이는 언제나 외톨이였다. 먹을 것을 줘도 꼬리를 흔드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내게만은 마음을 열고 다가와서 몸을 기댄 채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발신인을 알 수 없는 편지가 도착했다. “처음에 긴가민가했다가 어제와 오늘에 걸쳐서 선생님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편지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누군가 숨어서 자신을 훔쳐보았다는 불쾌함 때문에 소설가는 북한산 산보를 그만뒀다. 그리고 근 한 달 만에 편지가 잊혀질 무렵 다시 산에 올랐는데, 두 번째 편지를 받았다.

“거의 한 달 만에 다시 산에 오신 것을 뵙고 몹시 반가웠습니다. 하마터면 스스로의 존재도 잊고 선생님 앞에 나타나 인사를 할 뻔했답니다.” 스스로를 ‘산지기’라고 소개한 것으로 봐 편지를 보낸 사람은 여전히 산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생애의 모든 부분마다 항상 무언가를 굳게 지키기 위하여 산다고 스스로를 정리하면서 살았습니다. 십대에는 포기할 수 없는 상위권의 성적을 지키기 위해서 분투했고, 이십대에는 너무나 선명해서 도저히 등질 수 없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삼십대에는, 아, 그 오욕의 삼십대에는 온갖 번민 끝에 자신을 지키기로 작정했었지요. 결국 끝까지 지켜내야 할 것은 나 하나, 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 사십대에는, 북한산을 지키는 사람으로 남았습니다.”나는 편지의 주인공에게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그가 누구일까 산책길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후 세 번째 편지가 날아들었다. “지난번 편지에서도 강조한 기억이 납니다만 저는 결코 정체불명의 인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다 저의 존재증명을 너무도 많이 떨구어놓아서 괴롭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하여 어떻게든 행방불명이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그를 왜 찾으려 했나. 그것은 ‘연대감’ 때문이었다. 그에게서 광풍의 시대를 살아낸 우리들 모두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런데 네 번째 편지가 날아들었다. 눈길을 끄는 건 본문보다 긴 추신이었다.

“혹시 스리랑카의 성지 ‘스리파다’를 아십니까. 수천 수만 개의 계단이 있고 그것을 밤새워 오르면 신이 남긴 왼쪽 발자국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우연히 그 이야기를 듣고 남은 생애 동안 지켜야 할 새로운 무엇이 행여 스리파다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곳에 가면 절대 깨뜨려선 안될 금기가 하나 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입 밖에 꺼내선 안될 말이 있다고 합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결코 해선 안될 말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얼마나 더 가야 신이 남긴 발자국을 볼 수 있나요.“

다음날 나는 어김없이 북한산 산책길에서 누렁이를 만났다. 그런데 그 누렁이의 왼발에는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시인 이성복은 그의 시집 『그 여름의 끝』을 ‘마음속의 스승들에게 바친다’고 하였습니다. 살다보면 우연이든 필연이든 영혼의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법이지요. 이미 오래 전부터 함께 호흡을 해왔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존재, 행복이나 충만감의 다른 이름. 시인 이성복은 그런 존재를 ‘마음속의 스승’이라고 부른 것이겠지요. 제게도 마음속의 스승이 몇 분 있습니다. 양귀자 선생님도 그분들 중 한 분이지요.

사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몇 번이나 망설였습니다. 순전히 제 개인적인 문제들 때문이지요.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양귀자 선생님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거리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몇 번 거리두기를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더군요. 빗대어 몇 마디 언급할 수는 있겠지만 정면에서 그 작품의 잘잘못을 따지기에는 제가 너무 선생님 가까이 들어가버린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코스모스쪽에서 주관적인 글이라도 상관없다며 강권하셨고 더이상 시간을 늦추는 것은 실례이겠기에, 이렇게 두서없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글은 비평이 아니고 감상문은 더더욱 아니며, 지난 6년 동안 양귀자 선생님을 만나면서 느끼고 감동했던 삽화들에 불과합니다.

창작에 대한 열망 품어준 넉넉한 품

개인적으로 1994년은 제게 혼돈의 시기였습니다. 1월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지만 아직 군복무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고 대학원 박사과정도 1년만 다니면 수료였습니다. 8년 동안 문학 언저리를 맴돌았지만 제대로 아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길을 모색할 수도 없었던 시절이었지요. 더욱 힘든 문제는 창작에 대한 열망이었습니다. 1992년부터 간간이 습작을 해왔지만, 그때부터는 소설가가 나의 ‘운명’이 아닐까 하는 예감에 휩싸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머리만 크고 눈만 높았지 손발은 전혀 단련되지 못한 시절이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비평이랍시고 세상에 선보이면서도 내가 공격하는 그 칼날에 그대로 가슴을 베이는 형국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전자우편이 발달되지 못한 시절이었습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저는 진해에서 해군으로 군복무를 하였지요. 밤마다 습작을 해서 단편소설이 완성되면 양귀자 선생님께 팩스로 보냈습니다. 어떤 때는 종이가 뒤엉켜 팩스기가 고장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화가 먹통이라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지요. 거기에는 저의 성급함, 소심함, 우유부단함, 신경질 등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습니다. 대학교 선생이 되어 학생들의 작품을 손질해주는 요즈음, 화들짝 얼굴이 달아오를 때가 있지요. 그렇게 무작정 작품을 보내오는--그것도 제대로 잘 쓴 작품이 아니라, 욕망만이 뚝뚝 떨어져내리는--것을 일일이 읽어보기란 힘겨운 일입니다. 그때 양귀자 선생님은 그냥 내버려두셨지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도록 그냥 두셨단 뜻입니다. 그리고 두 달 혹은 석 달 만에 선생님을 뵈면 짧게 몇 마디 그 작품들의 약점을 예리하게 짚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가 잘 나서 지금처럼 된 줄 알지만, 따지고 보면 주위 사람들의 큰 도움이 있는 법, 양귀자 선생님의 그 넉넉한 품이 없었더라면, 저는 습작 시절을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누렁이를 바라보는 소설가

자, 이제 「금지된 말」로 돌아가볼까요? 우선 산개 누렁이를 바라보는 소설가의 시선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소설가는 누렁이로부터 원미동 시절 데리고 있던 개 뽀삐를 떠올립니다. 뽀삐는 소설가의 글쓰기를 밤새 지켜주던 고마운 개였지요. 그러나 원미동에서 서울로 이사를 올 때, 보신탕용으로 팔아버렸습니다. 소설가는 내내 뽀삐에 대한 미안함을 가슴에 두고 있었지요. 그런데 산개 누렁이를 보는 순간, 뽀삐를 떠올린 것입니다. 뽀삐의 환생이 아닐까? 그러나 소설가는 그런 추측을 스스로 물리칩니다.

그런데 그 누렁이는 언제나 외톨이입니다. 언제나 혼자 다니지요. 사람들이 먹을 것을 주어도 꼬리를 흔드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소설가에게만은 마음을 열고 다가와서 몸을 기댄 채 깊은 잠에 빠집니다. 둘 사이에 마음이 통했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소설가는 누렁이와 만나고 헤어지며 찾고 찾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또 소설가의 마음을 끄는 것이 바로 편지입니다. 수신인은 소설가이고 발신인은 미상입니다. 처음 편지를 받고 소설가는 북한산 산보를 그만둡니다. 누군가 숨어서 자신을 훔쳐보았다는 불쾌함 때문이지요. 그 섬뜩한 느낌은 당신도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근 한 달 만에 다시 산에 오르고 나서 두 번째 편지가 왔습니다. 장황하게 적어내린 발신자의 삶을 읽고 소설가는 흥미(동질감)을 느낍니다.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은 삶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소설가는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을 찾아나섭니다. 그러나 보기좋게 실패하지요. 그리고 항의 섞인 세 번째 편지를 받게 됩니다. “이 세상에 대해 어떻게든 행방불명이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편지를 받고 소설가는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리고 왜 발신인을 찾아나섰는지 스스로를 분석하지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연대감’ 때문입니다. 그에게서 광풍의 시대를 살아낸 우리들 모두의 그림자를 보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드디어 왼손등을 다쳤다는 그 네 번째 편지가 날아듭니다. 그 편지에는 본문보다도 길게 이어져있는 ‘금지된 말’에 대한 추신을 보게 됩니다.

그후 소설가는 누렁개를 만나고 누렁개의 왼발에 상처를 발견한 다음 당혹감에 사로잡히는 것이지요. 그 당혹감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자 우리는 이 문제에 답을 내리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것은 곧 ‘운명’이라고도 불리우는 ‘신이 남긴 발자국’에 대한 물음이겠지요? 소설가는 누렁이와 뽀삐와 편지를 보낸 발신자를 모두 하나의 존재로 파악하였던 것입니다. 이게 사실일까요? 아니 이렇게 상상하는 것 자체가 가능한 일일까요? 한 마리의 개가 사람처럼 편지를 써서 소설가에게 보낸다고 한다면 초등학교 학생도 웃을 일입니다. 그러나 신(神)의 섭리라면, 운명이라면, 이것은 결코 우화가 아닌 현실일 수도 있지요.

소설가는 금지된 말을 끊임없이 던지는 존재

다시 돌아보면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얼마나 더 가야 신이 남긴 발자국을 볼 수 있나요? 라는 물음이 금지된 말이었지요. 그런데 소설가란 족속이란 결국 이 물음을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향해 던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의식의 자리, 예술가의 운명이라고 불리는 자리. 그러니까 이런 가정을 하게 됩니다. 뽀삐든, 누렁이든, 편지든 모두 제거해버리고 나면, 소설가 혼자만 남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문제는 소설가가 얼마나 소설가로서 자기의 길을 바르게 가고 있느냐(인간이 얼마나 인간으로서 자기의 길을 바르게 가고 있느냐) 이지요. 그것을 살펴보는 매개항으로 뽀삐도 누렁이도 편지도 등장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소설가에게 환원된다는 뜻이지요. 즉 소설가는 금지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존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전까지는 금지되었던 신의 영역, 그 성역을 깨어버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과연 누가 소설가를 여기까지 끌어올렸을까요? 뽀삐일까요? 누렁이일까요? 아니면 편지를 보낸 정체불명의 독자일까요?

금지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소설가의 운명이라는 새로운 명제가 등장합니다. 양귀자 선생님은 이 부근을 맴돌고 계십니다. 금지된 말을 앞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이 땅 소설가들 모두가 앓고 있는 병이겠지요.




▣ 양귀자의 생애와 작품

1955 전라북도 전주 출생

1972 전주여고 재학 시절 원광대 문예작품 현상모집에 소설 당선

1976 문예장학생으로 원광대 국문과 입학

1977 숙명여대 주최 ‘범대학문학상’에 단편 「두 개의 신」이 당선. 기성작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뛰어난 소설이라는 평과 함께 「문학사상」에 특별게재

1978 단편 「다시 시작하는 아침」, 「이미 닫힌 문」으로 「문학사상」 신인상 수상

1980 「문학사상」에 「무언극 1」, 「무언극 2」 발표

1981 「문학사상」에 「갑」, 「쥐」 발표

1982 「현대문학」에 「들꽃」, 「문학사상」에 「이웃들」, 「종이꽃」 발표

1983 「소설문학」에 「의치」, 「문학사상」에 「3인칭의 바다」 발표

1984 「문학사상」에 「유빙」, 「덩굴풀」, 「학원」에 「유황불」, 「소설문학」에 「다락방」발표

1985 「세계의 문학」에 「갇혀 있는 섬」, 「공중 위의 집」, 「희망」 , 「녹」을, 「한국문학」에 「얼룩」, 「외국문학」에 「좁고 어두운 거리」, 「문예중앙」에 「방울새」, 「문학사상」에 「밤의 일기」 등 발표

소설집 『귀머거리 새』(민음사) 출간

1987 「문학정신」에 「산꽃」, 「문학사상」에 「지하생활자」, 「한국문학」에 「한계령」, 「우리세대의 문학」에 「일용할 양식」 발표, 창작과비평사 『매운 바람 부는 날』에 「찻집 여자」 수록

연작소설집 『원미동 사람들』(문학과지성사) 출간

1988 장편소설 『따뜻한 내 집 창밖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 출간

「문예중앙」에 「정호 엄마」, 「현대문학」에 「천마총 가는 길」 발표

1989 「문학과사회」에 「기회주의자」, 「창작과비평」에 「슬픔도 힘이 된다」 발표

1990 인물소설집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 (살림) 출간

「한국일보」 연재소설 『희망』(살림) 단행본 출간

1992 「숨은 꽃」으로 제16회 이상문학상 수상

장편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살림) 출간

1993 소설집 『슬픔도 힘이 된다』(문학과지성사) 출간

인물소설집 『길 모퉁이에서 만난 사람』(살림) 출간

1994 장편동화 『누리야 누리야 뭐 하니』 (한양출판) 출간

1995 장편 『천년의 사랑』(상․하)(살림) 출간

1996 「곰이야기」로 현대문학상 수상

1998 장편 『모순』(살림) 출간

1999 「21세기문학」에 발표한 「늪」으로 제4회 21세기문학상 수상

2000 산문집 『부엌신』(살림) 출간






▣ 글쓴이 김탁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건양대학교 문학영상정보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먼저 평론가로 문단에 나왔고 곧 소설가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이야기』『불멸』『누가 내 애인을 사랑했을까』『허균, 최후의 19일』과 비평집 『소설중독』『진정성 너머의 세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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