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뚝

엄마의 말뚝

저자: 박완서
출판사: -
등록일: 2000-07-25
'꿈의 세계'에서 '무수한 은화'를 보았던 외톨이

'시골뜨기' 소녀 박완서는 동무가 없었다. 초등학교 육 년 동안 험한 산길을 혼자 넘어 통학하면서도 무서운 줄 모르고 오히려 혼자인 것을 즐긴 아이였다. 이 당시의 이야기는 소설 〈엄마의 말뚝 1〉의 배경이 되었다.

박완서는 엄마가 해주는 무궁무진한 옛날 이야기를 좋아했다. 문장력이 좋은 어머니는 시골에선 마을 부녀자들의 편지를 대필해 줄 정도였고,〈박씨부인전〉,〈사씨남정기〉,〈구운몽〉,〈수호지〉,〈삼국지〉등 어린아이에겐 어려운 이야기까지 아이 수준에 맞춰 이야기하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박완서는 자기 이야기의 근원을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찾으려 한다. 박완서는 자신의 이야기 능력이 엄마로부터 유전된 것임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엄마는 당신의 이야기 재주로 딸을 이야기를 좋아하도록 길들여만 놓고, 의당 그 다음에 나타날 욕구에 대해서는 전혀 무책임했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다음에 나타날 욕구'란 또 다른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를 향한 욕구, 결국 독서에 대한 욕구로 이어졌다. 도서관에서 친구와 본 책들은 이미 초등학교 상급생이 된 박완서에게는 '어린 날의 찬란한 빛'이 되었다.

'꿈의 세계'(도서관의 어린이 열람실), '무수한 은화'(열람실 창 밖의 미루나무 잎), '위대한 의지'(미루나무의 힘찬 가지), 사물의 '낯섦'에 대한 황홀한 희열(책을 읽다가 문득 올려다본 창 밖의 하늘이나 녹음) 등 독서와 관련되어 묘사된 단어들은 이렇듯 최대의 찬사와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있다.

박완서는 자신이 겪은 것을 잊지 않았다. 어떻게든 진상을 규명하려는 집요한 고집을 문학정신의 뼈대로 삼았다. 박완서는 〈엄마의 말뚝 2〉로 수상한 제5회 이상문학상 시상식장 수상소감에서 그것을 '소설이기 이전에 한바탕 참아내지 못한 통곡 같은 거'였다고 밝힌 바 있다.

"아물었으되 피 흘리고 있음을, 딱지 앉았으되 곪고 있음을, 잘 차려입었으되 벌거벗었음을, 춤추고 있으되 몸부림치고 있음을 보고 느끼고 말하는 게 문학이 숙명처럼 걸머진 형벌이자 자존심이라면 잠시 한낱 비통한 가족사를 폭로한 것 같은 수치감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박완서, 〈미처 못 다한 통곡〉, 《문학사상》, 1981, 11)

자신의 인생을 소설로 삼은 늦깎이 대형소설가

박완서는 1970년 마흔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수많은 단편 및 수필들과 함께,《휘청거리는 오후》(1976),《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서있는 여자》(1985),《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등의 장편소설을 썼는데, 이 작품들은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베스트셀러였다. 장편을 제외하면 박완서는 특히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많이 썼다. 더군다나 1992년에서 95년까지 펴낸 두 편의 자전적 소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의 이야기를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서 썼다. 이 두 작품을 엿보면 그의 삶의 초상을 그려볼 수 있다. 박완서는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박적골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자신보다 열 살 많은 오빠와 엄마, 그리고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던 숙부 아래서 자랐다.

1944년에는 숙명여고에 입학하여 그곳에서 소설가 박노갑 선생에게 고전과 문학개론 등을 배우며 큰 영향을 받았다, 1950년 6월에는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하지만, 곧 전쟁이 나서 학교 생활은 거기서 끝이 난다. 난리 통에 오빠와 숙부가 죽었다. 사상적 대립으로 희생된 오빠와 숙부의 죽음은 작가에게 오랫동안 악몽으로 남아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피해가 커서 그는 노모, 올케, 조카 등 오빠가 남긴 유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미군부대를 전전해야만 했다.

1953년 결혼해서 1남 4녀를 두었는데, 소설가 한말숙이 가끔 찾아와 살림에만 파묻힌 작가에게 더러 자극이 되곤 하였다. 1970년《여성동아》에 장편소설 현상모집《나목(裸木)》(노모, 올케, 조카의 생계를 위해 당시 미군부대를 전전해야 했던 상황을 반추한 작품)이 당선되었다.《나목》은 그가 미군부대 PX의 초상화부에 근무하면서 만난 화가 박수근의 전기를 써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가, 거짓말을 덧붙이는 데 재미를 느껴 소설로 전환하게 된 첫 작품이다. 그후 발표한 대표작으로는〈어떤 나들이〉(71),〈부처님 근처〉(73),〈배반의 여름〉(76),〈엄마의 말뚝 1〉(1980),《그해 겨울은 따뜻했네》(83),《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89),《미망》(1990) 등 다수가 있으며, 그 후 제5회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등 여러 차례 수상경력이 있다.

〈엄마의 말뚝〉은 일정 기간을 두고 발표된 세 편의 연작소설로 이뤄져 있다. 〈엄마의 말뚝 1〉은 박적골이라는 시골에 살던 여덟 살짜리 계집아이가 서울로 상경하여 낯선 도시에서 겪는 갈등과 성숙의 과정을 그렸다. 〈엄마의 말뚝 2〉와 〈엄마의 말뚝 3〉은 몇 십년이 흐른 뒤 화자가 어머니의 부상과 그에 따른 죽음의 과정을 그리면서, 그 가운데 감추어졌던 전쟁의 상처를 드러낸 작품이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네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엄마와 오빠가 공부하러 서울로 떠난 뒤 박적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숙부, 숙모 밑에서 자라난다. 어느날 엄마는 딸도 서울로 데려가 '신여성'으로 키우겠다고 시골로 내려온다. 나는 '신여성'이 뭔지는 몰랐지만 막연히 오빠가 성공해야 한다는 것과 비슷한, 엄마가 대처와 공모해서 나에게 씌운 올가미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날 머리를 빗기는 척하다가 엄마가 나 몰래 댕기 머리를 단발머리로 쌍둥 자르고 나자 나는 왠지 발버둥치며 마다하지 않았다. 송도에서 부닥치게 된 대처의 모습, 심심찮게 눈에 띄는 양복쟁이들, 번듯한 기와집, 가게마다 즐비한 울긋불긋하고 신기한 물건들. 대처의 풍경은 나를 주득 들게 했지만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하고, 엄마는 서울 풍경을 이야기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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