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에 남자가 있다 ?
서영은은 자신 속에 남성을 지니고 있어서 여성에게 잘 반한다고 한다. 그녀의 남성성은 여느 남성들처럼 아름답고 섹시하고 돈 많고 총명한 여성에게 이끌리기보다는 그녀의 소설 〈먼 그대〉에 나오는 문자처럼 삶에 상처 입어 우둔해지고 멍청해진 여성들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는 그런 여성들을사랑하되, 아픔과 상처를 절대로 주지 않는 사람이고 또한 믿음직한 혈육이 되어 그녀들이 맞는 시련과 고통을 함께 짐지는 사람이다. 만약에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이 여자들을 그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면 세상은 훨씬 살 만 하고 슬픔도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여성의 삶이 이렇게밖에 안될까 하는 안타까움을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체득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오빠와 서커스를 보러간 적이 있는데, 무대에서 통 굴리기 곡예를 하던 한 아주머니의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 아주머니는 짙은 화장을 하고 있는데도 몹시 나이가 들어 보였고 몸에 착 달라붙은 곡예복 치마는 너무 짧아서 그녀의 살찐 허벅지를 조금도 가려주지 못했다. 그날 밤그녀는 통 굴리는 아주머니의 환영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그 후 운명으로부터 여성이 입은 상처에 대해 유난스러운 감정을 갖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먼 그대〉를 비롯한 그녀의 소설들을 보면 운명의 질곡에서 신음하는 여성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돋보인다. 이처럼 여성의 비극적 삶을 응시하는 그녀의 시선은 단지 메마른 허무주의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우리를 아름답게 행복하게 그냥 놔주지 않는 삶, 곧 시간을 난폭한 폭군이라고 정의한 다음 이러한 삶에 대한 자신의 치열한 대응방식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시간의 폭력을 뛰어넘어, 신처럼 자비로운 손길을 뻗쳐, 삶이 벗겨놓은 이 세상 나의 모든 '누님들'의 시린 허리통을 어루만져주는 것을 꿈꾼다. 다시는 그녀들이 아파서 우는 일이 없도록." 자기 속의 남성을 발현시켜 '누님'들의 '시린 허리통'을 어루만져주겠다는 서영은씨. 그녀의 발언은 위로받지 못하는 많은 여성들에게 용기를 줄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나서서 여성의 아픔을 보살펴야 한다는 그네들의 연대의식을 일깨워 준다. 시간의 폭력이 남녀를 가리지 않는 것처럼 아무튼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남녀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공동 운명체이다. 여자들이 자기 속의 남성들을 끌어내기 전에 혹은 남자들이 자기 속의 여성들을 끌어내기 전에 현실의 남녀가 먼저 나서서 서로의 시린 상처를 위로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의 중심을 향한 초월의 미학
서영은은 1960년대 후반에 등단한 이후 30년 가까이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소설가다. 그녀는1943년 5월 18일 강원도 강릉시 남문동 205번지에서 아버지 서장일과 어머니 신봉진의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서영은의 아버지는 신학교를 졸업한 지방지주의 아들로 자식을 낳지 못하는 첫째 부인과이혼하고, 실천여학교 졸업생인 12세 연하의 어머니와 재혼하였다. 유년시절 서영은의 집안은 전답을 많이 소유하고 있어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누렸다. 열한 살 때 그녀는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에 재학 중이던 오빠에게 매를 맞아 가며 영어를 배웠고 그 덕분에 1955년 강릉여자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영어를 잘하는 학생으로 교사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그녀의 병적인 수줍음과 비사교적인 성격은 다소 교정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그녀는 새로 부임해 온 국어교사로부터 특별한 총애를 받았는데, 다른 학생에게로 사랑이 옮겨가자 크레졸을 마시고 자살소동을 벌였다. 그 무렵 그녀는 정비석, 김래성, 김말봉 등의 소설을 탐독했다. 1958년 강릉사범학교에 입학했다.
사범학교 시절 시를 쓰는 선생님을 흠모했는데, 그때 체험은 후에 〈황금깃털〉에 반영되었다. 1959년 어머니의 민주당 부녀부장 활동으로 아버지가 직장을 잃으면서 가계가 기울어졌다. 1961년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한 서영은은 교사 임용 시험을 거부하고 대학입시를 준비했다. 같은 해 아버지가 사망하고 그녀의 가족들은 서울로 이사했다. 1962년 경희대학교 영문과에 합격했으나 등록금이 없어 진학을 포기했다. 다음해인 1963년 건국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는데, 한일협정반대데모로 휴강이 연속되었고 그 무렵 그녀는 두번째 자살을 기도했다. 1965년 학교를 자퇴하고 서울시 수도국에 취직했다.
1967년부터 서영은의 문학적 여정은 본격적 궤도에 접어든다. 이 해《현대문학》창작실기강의를 통해 알게 된 박경리로부터 그녀가 쓴 최초의 습작 〈교(橋)〉를 보여주고 칭찬을 들었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1968년《사상계》신인작품모집에 입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데뷔 이후 〈야만인〉(《한국문학》,1974),〈사막을 건너는 법〉(《문학사상》, 1975) 〈유리의 방〉(《한국문학》, 1976) 등의 문제작들을 발표했고, 1983년 제7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그녀의 대표작 〈먼 그대〉(《한국문학》, 1983)로 대중적 인지도를 넓혔다. 1987년 서영은은 74세의 원로 소설가 김동리와 30살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결혼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후에도 〈사다리가 놓인 창〉 (《현대문학》, 1989 - 제3회 연암문학상 수상), 〈꿈길에서 꿈길로〉(《현대문학》, 1994) 등의 수작들을 발표하였는데, 1995년 남편 김동리의 사망으로잠시 침체기에 빠졌다. 최근에는 장편 〈그녀의 여자〉(문학사상사, 2000)를 출간하면서 다시 창작의욕을 다지고 있다. 현재 10년 전부터 구상해온 장편《꽃들은 어디로 갔나》를 집필 중이다. 서영은의 소설들은 대체로 일상으로부터 탈피하려고 노력하는 인물들의 절박한 욕망 위에서 출발한다.그녀의 작품들에서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빈번하게 나타나는 일상성, 속물근성, 타성, 상식적 세계의 부정적 성격은 그 반대편에 긍정적인 그 무엇을 가정하고 있다. 1983년 이상문학상 수상 연설문에서 서영은은 작가를 가리켜 '더 높은 곳'에 도달하고자 하는 그의 영혼은 자신을 '가족과 이웃의 곁'에 머물도록 놔두지 않으며, '지워진 짐'이 무겁고 홀로 가는 길이 외롭더라도 언젠가는 '생의 중심'에 이르는 자라고 자신의 작가관을 피력했다. 이 말은 일상에 도사린 허망함과 무의미를 거부하고 절대적 세계를 지향하는 그녀의 초월적 미학을 잘 나타낸다. 특히 서영은의 소설은 여성적 삶의 방식을 통해 이러한 인식을 드러내는데, 이를테면 여성의 실존확인 과정을 진지하게 보여준 〈살과 뼈의 축제〉, 고통에 굴하지 않고 자기 속에서 불굴의 힘을 이끌어내는 여성의 절대적 사랑을 그린 〈먼 그대〉, 남성적 폭력과 그 속의 희생양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자각이 보이는 〈사다리가 놓인 창〉, 내재한 남성성으로 가파른 삶의 여로를 열어가는 여성성을 그린 〈꿈길에서 꿈길로〉 등의 일련의 여성성 탐구 소설들을 들 수 있다. 최근작〈그녀의 여자〉에서 서영은은 다소 파격적 소재인 동성애에 도전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가차없는 세상의 공허함과 겨루는 사랑을 통해 그녀의 문학적 성찰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H출판사에서 십 년째 교정일을 보는 문자는 마흔 살을 바라보는 노처녀이다. 동료들은 항상 유행에 뒤떨어진 옷차림에 말석에서 궂은 일도 마다 않는 그녀를 불쌍하게 또는 우습게 생각한다. 사실 그녀에게는 십년 전부터 알게 된 유부남 한수와의 사랑으로 얻은 딸 옥조가 있다. 문자를 자신에게 영원히 묶어두기 위해 한수는 아내를 부추겨 문자에게서 옥조를 빼앗아 간다. 한수는 매우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사람으로문자에게 많은 고통과 시련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수가 불우한 시절에도, 출세를 했을 때도, 몰락해서 돌아왔을 때도 문자의 사랑은 한결같이 순종적이고 맹목적이다. 문자는 그런 한수를 더욱 사랑함으로써 복수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서영은은 자신 속에 남성을 지니고 있어서 여성에게 잘 반한다고 한다. 그녀의 남성성은 여느 남성들처럼 아름답고 섹시하고 돈 많고 총명한 여성에게 이끌리기보다는 그녀의 소설 〈먼 그대〉에 나오는 문자처럼 삶에 상처 입어 우둔해지고 멍청해진 여성들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는 그런 여성들을사랑하되, 아픔과 상처를 절대로 주지 않는 사람이고 또한 믿음직한 혈육이 되어 그녀들이 맞는 시련과 고통을 함께 짐지는 사람이다. 만약에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이 여자들을 그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면 세상은 훨씬 살 만 하고 슬픔도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여성의 삶이 이렇게밖에 안될까 하는 안타까움을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체득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오빠와 서커스를 보러간 적이 있는데, 무대에서 통 굴리기 곡예를 하던 한 아주머니의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 아주머니는 짙은 화장을 하고 있는데도 몹시 나이가 들어 보였고 몸에 착 달라붙은 곡예복 치마는 너무 짧아서 그녀의 살찐 허벅지를 조금도 가려주지 못했다. 그날 밤그녀는 통 굴리는 아주머니의 환영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그 후 운명으로부터 여성이 입은 상처에 대해 유난스러운 감정을 갖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먼 그대〉를 비롯한 그녀의 소설들을 보면 운명의 질곡에서 신음하는 여성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돋보인다. 이처럼 여성의 비극적 삶을 응시하는 그녀의 시선은 단지 메마른 허무주의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우리를 아름답게 행복하게 그냥 놔주지 않는 삶, 곧 시간을 난폭한 폭군이라고 정의한 다음 이러한 삶에 대한 자신의 치열한 대응방식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시간의 폭력을 뛰어넘어, 신처럼 자비로운 손길을 뻗쳐, 삶이 벗겨놓은 이 세상 나의 모든 '누님들'의 시린 허리통을 어루만져주는 것을 꿈꾼다. 다시는 그녀들이 아파서 우는 일이 없도록." 자기 속의 남성을 발현시켜 '누님'들의 '시린 허리통'을 어루만져주겠다는 서영은씨. 그녀의 발언은 위로받지 못하는 많은 여성들에게 용기를 줄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나서서 여성의 아픔을 보살펴야 한다는 그네들의 연대의식을 일깨워 준다. 시간의 폭력이 남녀를 가리지 않는 것처럼 아무튼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남녀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공동 운명체이다. 여자들이 자기 속의 남성들을 끌어내기 전에 혹은 남자들이 자기 속의 여성들을 끌어내기 전에 현실의 남녀가 먼저 나서서 서로의 시린 상처를 위로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의 중심을 향한 초월의 미학
서영은은 1960년대 후반에 등단한 이후 30년 가까이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소설가다. 그녀는1943년 5월 18일 강원도 강릉시 남문동 205번지에서 아버지 서장일과 어머니 신봉진의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서영은의 아버지는 신학교를 졸업한 지방지주의 아들로 자식을 낳지 못하는 첫째 부인과이혼하고, 실천여학교 졸업생인 12세 연하의 어머니와 재혼하였다. 유년시절 서영은의 집안은 전답을 많이 소유하고 있어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누렸다. 열한 살 때 그녀는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에 재학 중이던 오빠에게 매를 맞아 가며 영어를 배웠고 그 덕분에 1955년 강릉여자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영어를 잘하는 학생으로 교사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그녀의 병적인 수줍음과 비사교적인 성격은 다소 교정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그녀는 새로 부임해 온 국어교사로부터 특별한 총애를 받았는데, 다른 학생에게로 사랑이 옮겨가자 크레졸을 마시고 자살소동을 벌였다. 그 무렵 그녀는 정비석, 김래성, 김말봉 등의 소설을 탐독했다. 1958년 강릉사범학교에 입학했다.
사범학교 시절 시를 쓰는 선생님을 흠모했는데, 그때 체험은 후에 〈황금깃털〉에 반영되었다. 1959년 어머니의 민주당 부녀부장 활동으로 아버지가 직장을 잃으면서 가계가 기울어졌다. 1961년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한 서영은은 교사 임용 시험을 거부하고 대학입시를 준비했다. 같은 해 아버지가 사망하고 그녀의 가족들은 서울로 이사했다. 1962년 경희대학교 영문과에 합격했으나 등록금이 없어 진학을 포기했다. 다음해인 1963년 건국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는데, 한일협정반대데모로 휴강이 연속되었고 그 무렵 그녀는 두번째 자살을 기도했다. 1965년 학교를 자퇴하고 서울시 수도국에 취직했다.
1967년부터 서영은의 문학적 여정은 본격적 궤도에 접어든다. 이 해《현대문학》창작실기강의를 통해 알게 된 박경리로부터 그녀가 쓴 최초의 습작 〈교(橋)〉를 보여주고 칭찬을 들었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1968년《사상계》신인작품모집에 입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데뷔 이후 〈야만인〉(《한국문학》,1974),〈사막을 건너는 법〉(《문학사상》, 1975) 〈유리의 방〉(《한국문학》, 1976) 등의 문제작들을 발표했고, 1983년 제7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그녀의 대표작 〈먼 그대〉(《한국문학》, 1983)로 대중적 인지도를 넓혔다. 1987년 서영은은 74세의 원로 소설가 김동리와 30살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결혼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후에도 〈사다리가 놓인 창〉 (《현대문학》, 1989 - 제3회 연암문학상 수상), 〈꿈길에서 꿈길로〉(《현대문학》, 1994) 등의 수작들을 발표하였는데, 1995년 남편 김동리의 사망으로잠시 침체기에 빠졌다. 최근에는 장편 〈그녀의 여자〉(문학사상사, 2000)를 출간하면서 다시 창작의욕을 다지고 있다. 현재 10년 전부터 구상해온 장편《꽃들은 어디로 갔나》를 집필 중이다. 서영은의 소설들은 대체로 일상으로부터 탈피하려고 노력하는 인물들의 절박한 욕망 위에서 출발한다.그녀의 작품들에서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빈번하게 나타나는 일상성, 속물근성, 타성, 상식적 세계의 부정적 성격은 그 반대편에 긍정적인 그 무엇을 가정하고 있다. 1983년 이상문학상 수상 연설문에서 서영은은 작가를 가리켜 '더 높은 곳'에 도달하고자 하는 그의 영혼은 자신을 '가족과 이웃의 곁'에 머물도록 놔두지 않으며, '지워진 짐'이 무겁고 홀로 가는 길이 외롭더라도 언젠가는 '생의 중심'에 이르는 자라고 자신의 작가관을 피력했다. 이 말은 일상에 도사린 허망함과 무의미를 거부하고 절대적 세계를 지향하는 그녀의 초월적 미학을 잘 나타낸다. 특히 서영은의 소설은 여성적 삶의 방식을 통해 이러한 인식을 드러내는데, 이를테면 여성의 실존확인 과정을 진지하게 보여준 〈살과 뼈의 축제〉, 고통에 굴하지 않고 자기 속에서 불굴의 힘을 이끌어내는 여성의 절대적 사랑을 그린 〈먼 그대〉, 남성적 폭력과 그 속의 희생양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자각이 보이는 〈사다리가 놓인 창〉, 내재한 남성성으로 가파른 삶의 여로를 열어가는 여성성을 그린 〈꿈길에서 꿈길로〉 등의 일련의 여성성 탐구 소설들을 들 수 있다. 최근작〈그녀의 여자〉에서 서영은은 다소 파격적 소재인 동성애에 도전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가차없는 세상의 공허함과 겨루는 사랑을 통해 그녀의 문학적 성찰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H출판사에서 십 년째 교정일을 보는 문자는 마흔 살을 바라보는 노처녀이다. 동료들은 항상 유행에 뒤떨어진 옷차림에 말석에서 궂은 일도 마다 않는 그녀를 불쌍하게 또는 우습게 생각한다. 사실 그녀에게는 십년 전부터 알게 된 유부남 한수와의 사랑으로 얻은 딸 옥조가 있다. 문자를 자신에게 영원히 묶어두기 위해 한수는 아내를 부추겨 문자에게서 옥조를 빼앗아 간다. 한수는 매우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사람으로문자에게 많은 고통과 시련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수가 불우한 시절에도, 출세를 했을 때도, 몰락해서 돌아왔을 때도 문자의 사랑은 한결같이 순종적이고 맹목적이다. 문자는 그런 한수를 더욱 사랑함으로써 복수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