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보(殉愛譜)

순애보(殉愛譜)

저자: 박계주
출판사: -
등록일: 2002-02-28
식민지 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순애보』

박계주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장편소설 『순애보』는 1938년 10월 당시 「매일신보」가 그 때 돈으로는 엄청난 거금이었던 1천 원을 상금으로 걸고 기성작가나 신인을 가리지 않고 현상모집했을 때 당선된 작품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1939년 1월 1일부터 6월 17일까지 신문에 연재된 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1939년 10월 15일에 초판을 찍은 작품 『순애보』는 보름만에 매진되었다. 그 해 11월에 재판을 찍은 이래 해를 거듭할수록 그 인기가 높아져 1945년 8월에는 47판을 찍고 해방 후에도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듭하여 우리 나라 출판 역사상 기록적인 베스트셀러 소설로 군림하였다. 게다가 연극와 영화로도 만들어져 해방 이후까지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박계주는 『순애보』 외에는 뚜렷하게 인기를 얻거나 문단의 주목을 받은 작품을 쓰지 못해 작품 하나로 지금까지 그 이름이 알려진 희귀한 경우다. 그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하기 직전인 196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작품활동을 했으나 박계주는 언제나 『순애보』의 작가로만 알려졌다. 이런 까닭에 그의 생애나 작품활동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리고 연구자들도 박계주의 『순애보』에만 주목할 뿐 그의 생애나 다른 작품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순애보의 「매일신보」 연재본과 작가가 많은 장면을 첨삭하여 전면적으로 수정한 해방 후 간행본 사이에는 내용상으로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해방 후 간행본은 인물의 내력이나 사건을 독립운동과 연관시키거나 문선이 지은 소설이라는 명목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삽화를 삽입하는 등 어설픈 민족주의적 색채로 윤색되어 있다. 거기에 인물의 심리묘사가 약간 보강되어 있고, 종교적·도덕적 설교의 경향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선정적인 표현의 농도 역시 더욱 강화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박계주는 시대에 순응하면서 독자들의 입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통속 소설가라고 할 수 있다. 단행본이나 한국문학전집 등에 수록되어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순애보』의 텍스트는 모두 해방 후 발간된 수정본이다. 기본 줄거리는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해방 후 간행된 책으로 내용을 정리할 것이다.

통속작가로서의 일생

해방 전후를 통하여 공전의 베스트셀러 소설로 큰 인기를 누린 장편 『순애보』의 작가 박계주는 1913년 간도 용정에서 태어났다. 아호는 서운이라 하였다. 어렸을 때 부친을 잃고 용정중학교를 졸업한 후 만주 각지를 방랑하며 지냈다. 1933년에 상경하여 서울 감리교 신학교에 들어가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였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한때는 수도원에서도 지냈고, 월간 「예수」의 주간을 하며 30여 편의 종교와 관련된 논문도 썼다.



그 후 「새사람」, 「박문」 등의 잡지를 편집하는 가운데 1938년 「매일신보」가 현상금 1천 원의 거금을 걸고 모집한 장편소설에 박진(朴進)이라는 필명으로 응모하여 『순애보』가 당선되었다. 박계주가 문명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순애보』를 쓰면서부터였지만 그가 등단하여 문학활동을 한 것은 훨씬 전의 일이었다. 그는 이미 1929년 「간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적빈」이 당선되었으며, 1931년에는 「잡초」, 「두만강」, 「기도」, 「북망산」, 「중추소곡」, 「소하의 세레나데」, 「엿장수」 등의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박계주는 이처럼 1929년부터 여러 단편 소설과 시를 발표하면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던 중 『순애보』의 당선으로 일약 인기 소설가의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1940년부터는 「삼천리」, 「신시대」 등의 월간지의 편집장을 하면서 작품 발표를 계속하였다.

해방이 되자 문우들과 고려문화사를 조직하여 「민성」이라는 잡지의 주간을 하다가 이어서 「한성일보」의 취체역 겸 편집고문을 지냈다. 6·25 사변이 발발한 후 납북되어 연행되던 도중 필사적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돌아오기도 했다. 이후부터는 작품 집필에 전념하면서 자유문학가협회의 초대 사무국장을 지내며 수많은 장편과 단편을 발표하였다. 1962년에는 「동아일보」에 「예수」를 연재하던 도중 필화사건으로 집필이 중단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 1963년 5월에 연탄가스 중독으로 와병생활을 하다가 불행하게도 1966년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최문선은 어느 날 원산 송도원 해수욕장에서 익사할 뻔한 인순이라는 여인을 구출하게 되는데, 인순은 문선을 생명의 은인으로 알고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던 중 문선은 같은 해수욕장에서 어렸을 때 헤어진 윤명희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문선과 명희는 어렸을 때부터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는 사이였고, 헤어진 후에도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며 살아온 터였다. 다시 만난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그 뒤 서울로 돌아와 야학교사로 활동하던 문선은 그에게 접근하는 인순의 열렬한 구애를 뿌리치지 못하고 고민하던 중 인순의 저녁 초대를 받고 망설이던 끝에 인순을 방문한다. 그러나 인순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문선은 정체불명의 사내에게 습격을 받고 정신을 잃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문선은 실명하게 되고 게다가 인순을 살해한 강간살인범으로 누명까지 쓰게 된다. 사건이 있은 뒤 문선은 병실에 누워 있던 문선은 범인의 방문을 받고 범인으로부터 직접 범행을 자백받지만 그의 딱한 사정을 들은 문선은 그를 용서하고 스스로 범행을 시인하여 결국 사형언도를 받는다. 그러나 가책을 느낀 진범이 경찰에 자수하게 되자 문선은 누명을 벗고 풀려나게 된다. 출옥한 문선은 눈 먼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게 될 명희를 염려하여 그녀의 행복을 위해 서울을 떠나 함경도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는 친구 영호의 집에 몸을 의탁한다.



한편 명희의 친구 혜순의 남편인 철진은 아내의 친구인 옥련과 눈이 맞아 착한 아내인 혜순을 모함해서내쫓고 옥련과 육체적 애정행각을 벌인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후 우연히 그녀의 재능을 발견한 선교사 멜폰 여사의 도움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성악가로 성장한 혜순은 친구 명희, 멜폰 여사와 함께 휴가 도중 교통사고를 당하는데 마침 그들이 탄 차와 부딪친 차에는 남편 철진과 옥련이 타고 있었다. 혜순은 사고로 목숨이 위험해진 그들에게 자신의 피를 나누어 줌으로써 원수를 사랑으로 갚는다. 이 사건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고 이타적인 삶을 살기로 맹세한 철진은 수해지구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익사할 뻔한 사람을 구해내고 죽는다. 옥련 역시 철진의 죽음 후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수녀원으로 들어간다.



한편 명희는 문선의 무고함과 석방소식을 전해 듣고 즉시 그의 행방을 찾았으나 문선은 이미 떠난 뒤였다. 그 후 명희는 여러 차례 다른 남자들로부터 청혼을 받지만 모두 거절하면서 문선을 애타게 찾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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