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사회의 문제와 『오발탄』의 우여곡절
이범선은 전쟁 직후의 현대 한국 사회를 잘 반영한 불후의 명작 『오발탄』을 발표한다. 1959년에 발표하여 한국 문단에서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오발탄』은 1961년에 영화 『잃어버린 청춘』의 감독인 유현목에 의해 각색되어 영화화된다. 당시 우리 나라 제일의 감독이었던 유현목은 현대 한국의 절망적인 상황을 그린 사실주의 문학의 특성을 살려 진지하게 영화를 만들었다.
상영되자마자 영화는 국제 수준의 문제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한국일보」 1961년 2월 18일자에서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 특파원 일야계삼(日野啓三)은 영화 『오발탄』은 한국의 최첨단적인 작품일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루이 말, 아스트뤽, 미국의 큐브릭 등과 같은 현재 세계 영화사의 최전선에서 영화예술의 방법적 혁신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젊은 감독들의 새로운 모든 작품과 등등하게 논의될 만하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 말기에 착수해서 5·16 혁명 직전에 개봉되었던 영화는 쿠데타 혁명 정부에 의해 상영금지 당한다. <오발탄>의 내용이 쿠데타 세력의 정치적인 감정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오발탄>은 절망적인 현실, 인물들의 방향 없는 방황과 희망 없는 현실을 철저하게 묘사한다. 그 중에서 특히 '가자! 가자!' 하는 미친 어머니의 외침과 주인공의 '아무 데나 갑시다!' 하는 대사가 문제가 되었다. 어머니의 '가자!'는 '북으로 돌아가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아무 데로나 가자고 하는 대사는 현실에서 갈 곳이 없는 절망을 의미한다. 어머니의 대사는 혁명 정부의 반공 사상에 어긋나고, 주인공의 대사는 현실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혁명 정부의 개혁 의지와 상반된다. 이런 이유로 5·16 쿠데타 세력은 극기야 예술의 자유 의지를 꺾고 상영을 금지한다.
영화 상영이 금지되자 내외의 영화 관련 인사들은 항의했다. 한국을 찾아온 외국의 저명한 영화인사들은 <오발탄>을 볼 기회를 요청했고, 작품의 문제성과 예술성을 격찬했다. 그들은 유현목을 세계 수준의 영화감독으로 평가했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국제 영화제에서는 <오발탄>을 초청했다. 1963년 여론에 밀려 마침내 혁명 당국은 공개 상영을 허락했다.
『오발탄』의 작품성은 문학과 영화 양쪽 모두에서 인정받았다. 영화 <오발탄>이 현실의 어두운 부분을 세밀히 묘사했다는 점에서 상영을 금지 당하는 고난을 맛보기도 했다. 『오발탄』의 내용에 깃들어 있는 현실과 인간의 갈등은 영화 상영 문제로 이어진다. 정치 세력의 이념과 예술성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굴곡들은 우리의 예술사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었다.
비극적인 사회인식과 서정적인 인간사랑
이범선은 현대사회의 굴곡을 체험하면서 한 시대를 살아간 소설가이며 대학교수였다. 그는 1920년 평남 안주군 신안주면 운학리에서 아버지 이계하(李癸夏)니 유심건(劉心健)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렇게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비교적 풍족하게 유년기를 보낼 수 있는 지주 집안 태생이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풍족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아주 큰 혜택이었다.
그는 열 여덟 살에 진남포 공립상공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에서 은행에 근무하는 등 화이트칼라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1938년 일제 말기에 평북 풍천 탄광에 징용되었다. 이후 해방이 되고 삼팔선이 그어지자 그의 일가는 자유를 찾아 월남을 하게 된다. 월남 다음해인 1946년에 이범선은 동국대학교 전문부에 입학해 1949년에 국문과를 졸업하면서 문학에 대한 지식과 다양한 문학 작품을 접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전쟁이 터지자 피난을 떠났고 피난 중에 거제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한다.
한국전쟁은 그의 문학작품의 원체험이 되었다. 그는 피난 중에 우물가에 물을 길러 간 적이 있었다. 두레박이 없는 우물에서 사람들은 제각각 헌 깡통에 줄을 매달아 물을 길렀고, 물을 다 채우면 자신들의 두레박을 보물처럼 감싸고 가져갔다. 이범선은 사람들에게 깡통 두레박을 빌려달라고 부탁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옆에 자신과 함께 물을 기르지 못한 청년이 잠시 사라졌다가 가게에서 깡통과 불을 사서 깡통 두레박을 만들어 왔다. 청년은 물을 기르고 나서 우물에 기둥을 세워 깡통 두레박을 매달고 사라졌다. 이범선은 말없이 돌아서는 청년을 따라나서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는 전쟁이 끝나자 대광고등학교 교사로 부임 받는다. 1955년 생활이 제 궤도를 찾게 되자 이범선은 자신이 겪은 한국전쟁의 비극을 토대로 한민족의 삶을 적나라하게 표출하고자 했으며, 단편 『암표』와 『일요일』이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문단에 본격적으로 데뷔하였다. 초기 작품들은 비교적 사실주의 작품으로 서민의 소외된 삶에 대한 연민과 반공 이데올로기로 인한 인간성 말살에 대한 분노,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몰락과 그에 따른 정신적 가치의 혼돈상에 대해 파헤치고 있다. 이런 경향은 그 어떤 것을 초월한 인간 자체에 대한 보편적 사랑에서 비롯된다. 1958년에 창작된 단편 『학마을 사람들』과 『갈매기』는 사실주의적 면모 외에 서정적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전쟁 체험들을 그대로 흘려보내기 아까운 마음에 수필을 남기기도 했다.
1962년 이범선은 외국어대학 전임 강사가 된 이후 별세하기 전까지 꾸준한 작품 활동을 편다. 1982년 소설가 협회의 대표의원 중 한 사람으로 있다가 자택에서 3월 13일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
월남하여 해방촌에 살고 있는 송철호는 한국전쟁의 충격으로 미쳐서 '가자!'만을 외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철호는 양심을 지키면서 성실하게 살려고 하지만, 현실은 그와 그의 가족에게 극도로 궁핍한 가난만을 남겨준다. 어머니는 고향인 북쪽에서의 부유한 삶을 잊지 못하고 철호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말만 한다. 철호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를 아무리 설명해도 어머니는 이해하지 못한다. 남동생 영호는 제대 후 저녁마다 술을 마시며 한탕으로 돈을 벌어 남 못지 않게 살기를 꿈꾼다. 누이동생은 생계를 유지하고자 양공주가 되어 미군에게 몸을 판다. 철호는 두 동생들의 생활상이 못마땅하다. 어느 날 영호는 철호에게 양심적인 삶이 오히려 가족의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을 뿐이라면서, 윤리와 법률, 관습 등을 모두 벗어버리고 살겠다고 말한다. 철호는 영호의 말에 불안해하면서 출근을 한다. 철호가 사무실에서 굶주린 배를 보리차로 때우고 있을 때 경찰서에서 전화가 오는데...
이범선은 전쟁 직후의 현대 한국 사회를 잘 반영한 불후의 명작 『오발탄』을 발표한다. 1959년에 발표하여 한국 문단에서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오발탄』은 1961년에 영화 『잃어버린 청춘』의 감독인 유현목에 의해 각색되어 영화화된다. 당시 우리 나라 제일의 감독이었던 유현목은 현대 한국의 절망적인 상황을 그린 사실주의 문학의 특성을 살려 진지하게 영화를 만들었다.
상영되자마자 영화는 국제 수준의 문제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한국일보」 1961년 2월 18일자에서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 특파원 일야계삼(日野啓三)은 영화 『오발탄』은 한국의 최첨단적인 작품일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루이 말, 아스트뤽, 미국의 큐브릭 등과 같은 현재 세계 영화사의 최전선에서 영화예술의 방법적 혁신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젊은 감독들의 새로운 모든 작품과 등등하게 논의될 만하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 말기에 착수해서 5·16 혁명 직전에 개봉되었던 영화는 쿠데타 혁명 정부에 의해 상영금지 당한다. <오발탄>의 내용이 쿠데타 세력의 정치적인 감정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오발탄>은 절망적인 현실, 인물들의 방향 없는 방황과 희망 없는 현실을 철저하게 묘사한다. 그 중에서 특히 '가자! 가자!' 하는 미친 어머니의 외침과 주인공의 '아무 데나 갑시다!' 하는 대사가 문제가 되었다. 어머니의 '가자!'는 '북으로 돌아가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아무 데로나 가자고 하는 대사는 현실에서 갈 곳이 없는 절망을 의미한다. 어머니의 대사는 혁명 정부의 반공 사상에 어긋나고, 주인공의 대사는 현실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혁명 정부의 개혁 의지와 상반된다. 이런 이유로 5·16 쿠데타 세력은 극기야 예술의 자유 의지를 꺾고 상영을 금지한다.
영화 상영이 금지되자 내외의 영화 관련 인사들은 항의했다. 한국을 찾아온 외국의 저명한 영화인사들은 <오발탄>을 볼 기회를 요청했고, 작품의 문제성과 예술성을 격찬했다. 그들은 유현목을 세계 수준의 영화감독으로 평가했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국제 영화제에서는 <오발탄>을 초청했다. 1963년 여론에 밀려 마침내 혁명 당국은 공개 상영을 허락했다.
『오발탄』의 작품성은 문학과 영화 양쪽 모두에서 인정받았다. 영화 <오발탄>이 현실의 어두운 부분을 세밀히 묘사했다는 점에서 상영을 금지 당하는 고난을 맛보기도 했다. 『오발탄』의 내용에 깃들어 있는 현실과 인간의 갈등은 영화 상영 문제로 이어진다. 정치 세력의 이념과 예술성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굴곡들은 우리의 예술사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었다.
비극적인 사회인식과 서정적인 인간사랑
이범선은 현대사회의 굴곡을 체험하면서 한 시대를 살아간 소설가이며 대학교수였다. 그는 1920년 평남 안주군 신안주면 운학리에서 아버지 이계하(李癸夏)니 유심건(劉心健)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렇게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비교적 풍족하게 유년기를 보낼 수 있는 지주 집안 태생이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풍족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아주 큰 혜택이었다.
그는 열 여덟 살에 진남포 공립상공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에서 은행에 근무하는 등 화이트칼라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1938년 일제 말기에 평북 풍천 탄광에 징용되었다. 이후 해방이 되고 삼팔선이 그어지자 그의 일가는 자유를 찾아 월남을 하게 된다. 월남 다음해인 1946년에 이범선은 동국대학교 전문부에 입학해 1949년에 국문과를 졸업하면서 문학에 대한 지식과 다양한 문학 작품을 접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전쟁이 터지자 피난을 떠났고 피난 중에 거제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한다.
한국전쟁은 그의 문학작품의 원체험이 되었다. 그는 피난 중에 우물가에 물을 길러 간 적이 있었다. 두레박이 없는 우물에서 사람들은 제각각 헌 깡통에 줄을 매달아 물을 길렀고, 물을 다 채우면 자신들의 두레박을 보물처럼 감싸고 가져갔다. 이범선은 사람들에게 깡통 두레박을 빌려달라고 부탁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옆에 자신과 함께 물을 기르지 못한 청년이 잠시 사라졌다가 가게에서 깡통과 불을 사서 깡통 두레박을 만들어 왔다. 청년은 물을 기르고 나서 우물에 기둥을 세워 깡통 두레박을 매달고 사라졌다. 이범선은 말없이 돌아서는 청년을 따라나서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는 전쟁이 끝나자 대광고등학교 교사로 부임 받는다. 1955년 생활이 제 궤도를 찾게 되자 이범선은 자신이 겪은 한국전쟁의 비극을 토대로 한민족의 삶을 적나라하게 표출하고자 했으며, 단편 『암표』와 『일요일』이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문단에 본격적으로 데뷔하였다. 초기 작품들은 비교적 사실주의 작품으로 서민의 소외된 삶에 대한 연민과 반공 이데올로기로 인한 인간성 말살에 대한 분노,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몰락과 그에 따른 정신적 가치의 혼돈상에 대해 파헤치고 있다. 이런 경향은 그 어떤 것을 초월한 인간 자체에 대한 보편적 사랑에서 비롯된다. 1958년에 창작된 단편 『학마을 사람들』과 『갈매기』는 사실주의적 면모 외에 서정적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전쟁 체험들을 그대로 흘려보내기 아까운 마음에 수필을 남기기도 했다.
1962년 이범선은 외국어대학 전임 강사가 된 이후 별세하기 전까지 꾸준한 작품 활동을 편다. 1982년 소설가 협회의 대표의원 중 한 사람으로 있다가 자택에서 3월 13일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
월남하여 해방촌에 살고 있는 송철호는 한국전쟁의 충격으로 미쳐서 '가자!'만을 외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철호는 양심을 지키면서 성실하게 살려고 하지만, 현실은 그와 그의 가족에게 극도로 궁핍한 가난만을 남겨준다. 어머니는 고향인 북쪽에서의 부유한 삶을 잊지 못하고 철호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말만 한다. 철호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를 아무리 설명해도 어머니는 이해하지 못한다. 남동생 영호는 제대 후 저녁마다 술을 마시며 한탕으로 돈을 벌어 남 못지 않게 살기를 꿈꾼다. 누이동생은 생계를 유지하고자 양공주가 되어 미군에게 몸을 판다. 철호는 두 동생들의 생활상이 못마땅하다. 어느 날 영호는 철호에게 양심적인 삶이 오히려 가족의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을 뿐이라면서, 윤리와 법률, 관습 등을 모두 벗어버리고 살겠다고 말한다. 철호는 영호의 말에 불안해하면서 출근을 한다. 철호가 사무실에서 굶주린 배를 보리차로 때우고 있을 때 경찰서에서 전화가 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