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지음
메디치미디어 / 2018년 6월 / 236쪽 / 14,000원
▣ 저자 우석훈
경제학자, 두 아이의 아빠. 성격은 못됐고 말은 까칠하다. 늘 명랑하고 싶어 하지만 그마저도 잘 안 된다. 욕심과 의무감 대신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보람으로 살아가는 경제를 기다린다. 저서로 『88만원 세대』, 『나와 너의 사회과학』, 『모피아』,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왜 고개를 숙이느냐.” 아시아축구연맹 23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아쉽게 패한 베트남 선수들이 고개를 숙이자 박항서 감독이 한 말이다. 그는 이어서 “당당하게 고개를 들어라.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라고 제자들을 위로했다. 박 감독의 말은 베트남 전역을 울렸다. 나도 울었다. 내가 최선을 다해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했는데 왜 고개를 숙이느냐는 말을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서로 최선을 다하라고 할 뿐, 고개를 숙이지 말라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회에서 살아왔다.
특히,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있는 사람들은 50세를 전후로 인생관이 크게 한 번 변한다. 승승장구하여 조직에서 성과를 낸 사람일수록 그 변화의 폭도 크다. 직장 생활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앞으로 더 위로 올라갈 것인지, 아니면 못 갈 것인지 어느 정도 판가름이 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50대가 되어서도 최선을 다하고자 스스로 “내 인생 파이팅!”이라고 외친다. 이 길이 맞는지 잠시 갈등에 빠지다가도 다시금 ‘하던 일을 더 열심히’ 하려 한다. 이게 한국의 50대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 방법이다. 나도 그 세계에서 살았다. 치열한 어깨싸움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서로를 밀어댔던 것 같다.
결혼하고 9년 만에 첫째 아이가 태어났고, 연이어 태어난 둘째는 폐렴으로 연거푸 입원을 했다. 나는 두 아이를 전보다 가까이서 더 오래 돌봐야 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한국보다 복지 수준이 높은 나라에 태어났으면 굳이 안 해도 되는 여러 고민에 빠졌다. 눈이 핑핑 돌아가는 역동적인 한국 사회에서 나는 한 발을 뒤로 빼고 살아가게 되었다. 무시하면 그냥 무시당하고, 누군가 욕하면 그냥 욕먹고, 손가락질해도 그냥 손가락질당했다. 나를 기분 나쁘게 한 사람을 굳이 뒤쫓아 가서 화를 내는 것도 실은 매우 열심히 사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내 성깔을 건드렸다고 전화를 걸어 따진다면 오히려 내 인생이 더 불편해질 것 같았다. 혹시라도 내가 불만을 말하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휴대폰 주소록에서 그들의 연락처를 지웠다. 그러면 잠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나는 내 삶과 세상을 대하는 자세를 바꿨다. 그때 처음 한 생각은 지난 40대의 시간을 너무 함부로 보냈다는 것이었다. 나도 나름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고 자부해왔다. 그런데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정말 최선일까? 그러자 문득 내가 지금까지 속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 대한 질문 같은 것은 하지 않고 지금처럼 사는 게 최선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앞으로도 짧으면 30년, 길면 50년을 더 살아야 한단다. 저 길어 보이는 시간을 더욱 최선을 다해서 살라고? 정말 더 이상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지금까지도 너무 힘들게 살았다. 그래서 그냥, 살살 살기로 했다.
내가 박항서 감독처럼 “왜 고개를 숙이느냐”고 위로해줄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살살 살자.”고 말해줄 수는 있다. 다른 선진국의 50대들은 대부분 살살 산다. 지금 우리만 이렇게 궁상떨고 있는 것 아닌가? 그 동안 쓴 글들을 살펴보다 “분노는 짧게, 즐거움은 길게, 행복은 가득”이라는 문장에 문득 눈이 멈췄다. 20대의 내 모습은 ‘분노는 가득, 즐거움은 필요 없고, 행복 따위는 꺼져’였던 것 같다. 그 시절에 우리는 그런 모습이 사랑의 실천이고 정의의 구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우리는 21세기에 와 있다. 과연 그렇게 처절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고, 필사적이지 않으면 정의를 생각할 수 없는 걸까?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살고 싶지 않다. 이대로 살다가는 ‘꼰대’나 ‘개저씨’라는 말을 듣고,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때 어색하긴 하지만 심하게 오글거리지는 않는다. 조금은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20대에 가졌어야 할 감정을 제대로 못 가졌던 듯하다. 하지만 괜찮다. 지금 이 순간 이후로도 삶은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인생은 전쟁이 아니고, 삶은 전쟁터가 아니다. 세상이 전쟁터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라고 배웠던 한국의 어느 50대가 이제 비로소 그 전쟁터에서 걸어 나오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식으로 살고 싶지 않다. 그것은 과거적 방식이다. 성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대신, ‘분노는 짧게, 즐거움은 길게, 행복은 가득’을 위해서 정성껏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쉰 살이란 돈이나 지위 혹은 재능 같은 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는 나이다. 최선과 정성의 차이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분노는 짧게, 즐거움은 길게, 행복은 가득하길 빈다.
▣ 차례
프롤로그_ 우리를 위한 임시대피소
1장 - 빛의 속도로 쉰이 되었다
2장 - 21세기, 꼰대들의 잔치는 끝났다
3장 - 내려놓기의 기술
4장 - 매운 인생, 이제는 달달하게
에필로그_ 야망이 없어도 웃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