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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우석훈 지음 | 메디치미디어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우석훈 지음

메디치미디어 / 2018년 6월 / 236쪽 / 14,000원





1장 - 빛의 속도로 쉰이 되었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50대는 한국 사회를 분석할 때 하나의 축이 된다. 예를 들어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쓰거나 연구를 할 때는 대부분 여론조사를 참고한다. 그때 여론조사를 읽는 여러 축 가운데 하나가 직업별 구분이다. 그리고 한국 보수를 대표하는 세 가지 직업군은 농민, 전업주부 그리고 자영업이다. 여기에 연령별 축을 하나 더 하는데, 그 기준점이 바로 50대다. 40대에서 50대로 넘어가면 진보와 보수가 바뀐다. 윗세대는 아주 보수적이고 아랫세대는 진보적이거나 덜 보수적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던 2012년 12월 대선에서 50대 투표율은 82퍼센트였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투표율이다. 크게 아프거나 급히 해외에 나가는 등 긴박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 빼고는 거의 전원이 투표한 것이다. 2012년까지 한국 사회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50세를 경계로 두 개 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한국 정부와 여야가 가장 먼저 합의해 시행한 일은 55세였던 정년을 60세로 올리는 것이었다. 58년 개띠들이 55세가 되던 해였다.

각자 직장에서 정년을 맞은 58년 개띠를 비롯한 50대는 한국을 움직였다. 한국에서 여당과 야당이 이렇게 금방 합의에 도달한 안건은 세비 인상안 외에 처음이었다. 그리고 급행열차처럼 속전속결로 행정기구들이 움직였지만 정작 58년 개띠들이 혜택을 보지는 못했다. 시행을 위해서 다소 시간이 필요했고 민간 기업까지 기준을 적용하려면 더 다양한 협의가 필요했다. 하지만 공기업 등 많은 기구의 정년이 더 위로 올라갔다. 당시 50대는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리고 다시 5년이 흘렀다. 공교롭게도 내가 50세라는, 전혀 준비하지 않은 나이를 맞았을 때 정권이 다시 바뀌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져 나왔고 촛불집회가 열렸다. 정치적으로는 한국의 50대 성향이 변했다. 시간이 흘러 다들 나이를 먹으면서 50대의 구성원이 바뀐 것이다. 그사이에 나와 내 친구들이 50대가 되었다. 일방적으로 박근혜를 찍는 5년 전의 50대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 그 사람들은 이제 60대가 되었다.

스물에서 쉰이 될 때까지 대충 살았고 친구들도 그다지 열심히 산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열심히 사는 듯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까 우리가 진짜로 열심히 했던 것은 술 마시는 일뿐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했던 모든 일들은 결국 술 마실 때 벌어지는 ‘아무 말 대잔치’의 영웅담을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렇더라도 우리가 전두환을 승계한 자유한국당에 투표할 것 같지는 않다. 그 이유는 우리가 워낙 강렬한 한순간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9일은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날이다. 그날 많은 이들의 운명이 바뀌었다. 한열이가 쓰러지던 순간, 나는 몇십 미터 뒤에 있었다. 1년 넘게 같이 생활하던 친구가 불과 몇십 보 앞에서 최루탄 파편을 맞고 눈앞에서 죽어가던 순간을 잊기는 어렵다. 그 시절에 한열이와 같은 나이로 그 사건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이제 50대가 되었다. 한국 정치에서 연령에 따른 세대 효과가 강력해졌고, 그에 따라 50대는 ‘핫코너’ 격의 사회경제적 분류 기준이 되었다. 불과 5년 전에는 난공불락 같던 50대가 이렇게 크게 변한 것은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냥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내 나이 쉰, 이제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경계선에 들어가게 되었다.

잔인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한국의 50대는 변동성이 거의 없는 나이다. 직장에서 더 위로 올라갈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직장에서 나와서 다른 삶을 살아야 할지가 거의 결정이 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더 위로 올라갈 수도 있고, 언제든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변동의 확률이 가장 낮은 나이가 50대다. 될 놈은 이미 되어서 더 높은 데로 가버렸고, 안될 놈은 이미 가망이 없다.

그럼 우리가 가장 평등했던 때는 언제일까? 처음 태어나서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 그때 우리는 평등했다. 그리고 점점 평등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된다. 21세기 한국에서 경제적 삶은 전혀 평등하지 않다. 60세가 지나 은퇴를 하면 우리는 다시 조금 평등해진다. 경제적 평등이 아니라 육체적 평등이다. 영구치가 사라지기 시작하고, 흰머리가 늘거나 아예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버린다. 물론 꾸준히 관리한 육체와 그렇지 못한 육체 사이에는 조금 차이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격차는 그야말로 돈밖에 남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우리는 다시 완전히 평등해진다. 대학병원에서 죽든, 집에서 죽든, 아니면 작은 요양원에서 쓸쓸히 죽든, 죽음 앞에서 우리 모두는 공평하게 평등하다.

평등하게 태어나서 결국 평등으로 돌아가는 그 한가운데서, 격차가 가장 큰 시대를 살았고 여전히 그렇게 사는 이들이 현대 한국의 50대다. 성공한 이와 그러지 못한 이의 격차가 가장 큰 나이이기도 하고, 앞으로 좋아질 일만 남은 사람과 나빠질 일만 남은 사람이 같은 나이로 분류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이미 많이 온 사람은 지금까지 온 탄력으로 더 멀리 갈 것이다. 그리고 해놓은 게 거의 없는 사람은 그 흐름대로 이제 더 나빠질 일만 남았다. 방향을 바꾸기 어렵고, 잘 바뀌지도 않는다. 그리고 바꾸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50대는 성년식과 환갑 사이의 무의미한 어느 시기다. 별것 아닌 나이다. 누가 50대가 되었든 말든, 가정에서나 사회적으로나 아무 사건도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 놀랄 만한 일은 그렇게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 내가 힘들거나 어렵거나, 관심 가져줄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대신 많은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그걸 못 하거나 안 하면, “자기밖에 몰라.” 하고 욕을 먹는다.

그러나 개체로서 50대의 소소함에도 불구하고 집체로서 50대에 의미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50대는 집체로서 언제나 보수그룹의 핵심이었다.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던 자도 바보지만. 나이 들어서 마르크스주의자로 남는 자는 바보다.”라는 철학자 칼 포퍼의 말에서 ‘마르크스주의자’를 ‘좌파’로 치환해보자. 한국 50대에 이보다 알맞은 품평이 없다. 50대, 이건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고 한국 사회에서 불변의 나침반 같은 것이었다. 50대의 성향을 파악하고, 위와 아래 세대를 살피고, 각 직업별 선호도 같은 것들을 가감하면 대체로 한국 사람들의 선호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보수의 기준점은 언제나 50대였다.

나와 친구들의 50대는 어영부영 왔지만 의미가 없지는 않다. 이것은 지금까지 한국을 쥐고 흔들었던 보수진영이 보수의 중심지에서 소멸하는 길을 걷게 될 커다란 흐름의 첫 신호다. 한 세대는 보통 30년씩을 기점으로 잡는다. 하나의 세대가 지나가면 정치는 이전과 전혀 다르게 흐르게 된다. 한국에서 정권을 넘기는 것은 10년에 한 번 정도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격 중인 보수의 몰락은 전처럼 10년 정도로 끝날 일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현대 한국의 경제구조와 소득양극화는 소소한 집단적인 부패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많은 이들은 이미 50년을 살았지만 앞으로 50년을 더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평균 기대 수명이 그렇단다. 그래서 더 많이 가지고 더 크게 누리고 싶어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욕심은 자녀를 향하는데, 그것이 현재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지금이야 출생률이 절벽으로 치닫고 있지만 우리 세대는 아이를 낳고 키웠다. 이혼도 많이 했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아이를 낳았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부모는 자녀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어 할 것이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탐욕이 시작되고, 앞으로 10년 동안 아직 직장을 다닐 50대들은 한 푼이라도 더 긁어모으려고 할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 보수진영은 영구집권을 꿈꿨다. 그들은 박근혜가 그토록 무능할지, 최순실이 그렇게 황당할지 미처 몰랐을 것이다. 한국의 보수는 자기 주머니에 들어가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다가 뿌리까지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 현재 50대 386세대의 경제적 구조와 미래도 박근혜를 지지한 5년 전 50대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20대가 되기 위해서 10대를 살았다. 우리 사회는 지금도 10대를 20대가 되기 위한 번데기처럼 만들고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아니 태어나는 순간부터 대부분의 한국인은 대학생이 되기 위해서는 살아가는 구조로 편입된다. 이런 구조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환갑잔치 바라보고 사는 50대가 있을까?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왜 10대에게는 20대 대학생으로 살기 위한 시간을 강요하는가?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서, 나중에는 마침내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언젠가 있을 행복을 찾아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행복도 연습이고 습관이다. 행복을 미루다 보면 행복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50대, 더 이상 미룰 시간도 없다. 지금 행복해야 한다. 나는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2장 - 21세기, 꼰대들의 잔치는 끝났다



일생의 과업 따위를 믿는 바보들에게



살면서 지켜본 아내는 대충 살아온 나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인간이었다. 아이들은 더 강했다. 그리고 인정사정없다. 부모 사정 따위 알 바 아니다. 이제 일곱 살이 된 큰아이는 이것저것 해달라는 게 너무 많아졌다. 그리고 말도 잘 안 듣는다. 다섯 살 둘째는 말을 듣는다는 개념 자체가 정립하지 않았다. 두 아이가 같이 있으면 2배가 아니라 3제곱 아니 4제곱 힘들다.

얼마 전이다. 아내가 엉엉 소리를 내며 크게 울기 시작했다. 아내는 30분이 넘게 울었다. 두 아이는 결국 손들고 벌을 섰다. 아이들도 울기 시작했다. ‘행복한 우리 집’의 화목했던 일요일 밤은 순식간에 거대한 울음바다가 되었다. 아내가 이렇게 우는 걸 보기는 처음이다. “엄마가 너희에게 뭘 잘못했니?” 울다가 아내가 꺼낸 말이다. 애들은 영문도 모른다. 나도 울고 싶은 적이 몇 번 있기는 했다. 그러나 운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었다. 그리고 아내가 별일 하지도 않고서 티낸다고 놀릴 것도 무서웠다.

왜 나는 이 나이에 아이들을 돌보고 있을까? 별다른 선택이 없어서 그렇다. 물론 장모님이 여러모로 도와주신다. 그래도 숨이 턱턱 막힌다. 둘이 아이를 보면 둘이 다 뻗고, 셋이 보면 셋이 뻗고, 넷이 보면 한 명이 좀 쉴 여유가 생길까? 결코 그렇지 않다. 국가도 더 이상 도와주지는 않는다. 도우미를 쓰기에는 내가 돈이 없다. 그리고 마을 공동체 혹은 육아 공동체, 그런 건 너무 멀리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성숙해가는 느낌보다는, 때때로 내가 해체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그걸 왜 하고 있을까? 안 하면 방법이 없다. 정말 하루하루 내 자신이 해체되는 것 같았다.

나이 오십, 이제 내 위에 아무도 없고, 내 밑에 아무도 없다. 굳이 따지자면 어머니, 아버지 등등 내 위에도 한참 많다. 내 밑, 굳이 따지자면 고등학교 후배, 대학교 후배, 기타 등등 엄청나게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50대가 된 지금, 그들이 내 밑일까?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 밑에 있을까? 그런 위계가 새삼 의미가 있지는 않을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가족같이 지내던 같은 편들이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형식적으로는 위아래를 칼같이 지키는 세계에 속해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이제 문자 그대로, 내 위에도 아무도 없고 내 밑에도 아무도 없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의도적으로 주체적으로 이러한 삶을 만든 것은 아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산다. 그리하여 21세기 들어서 나는 처음으로 평등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평등 속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평등 안으로 밀려들어갔다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우리 모두에게는 누구나 적당히 세 끼 먹고 살다가 때가 되면 떠나게 되는 그 존재론적이면서도 본질적인 평등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20대 이후로 계속해왔다. 나는 그런 질문이 매우 중요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남자아이 둘을 데리고 오십 줄에 들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가는 지금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몇 시에 어린이집에 갈 것인가, 토요일 저녁 식사는 뭘로 할 것인가, 일요일 점심은 뭘 만들 것인가, 이런 것만 중요하다. 나머지는? 일단 아이들 저녁에 재워놓고 생각하자.

가끔 ‘일생의 과업’이라는 게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근대를 만들면서 서양에서는 소명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이게 한국에 들어와서는 근대 공장식 교육의 적성 같은 개념과 결합되면서, 마치 신이 우리에게 준 고유한 능력과 영역 같은 게 있다는 미신이 되었다. 이 아이는 어떤 과업을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업을 일찍 발견하고, 빨리 영재로 키우려 한다. “이 소중한 아이가 자신의 적성과 소명을 찾아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하길!”

나는 고등학생 때 육군사관학교, 그것도 싫으면 공군사관학교라도 가라는 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나는 군인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눈이 나빠서 어른들은 결국 그 꿈을 포기했다. 그리고 내가 끝끝내 행정고시도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아버지와 어른들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50대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나에게 일생의 과업 따위는 없다. 신은 나에게 개떡 같은 시력과 엉망진창인 기억력을 주었고, 이제 그 시력과 기억력도 노안과 알코올성 치매로 거의 무의미해지기 직전인데 신은 남자아이 둘을 던져놓았다. 나에게 신이 준 마지막 소명이 있다면? 설거지와 밥하기? 하나 더 있다. 어린이집 보내고 데리고 오기.

물론 일생의 과업이 없다는 생각이, 대충 살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두 아이들과 함께 하루에 세 끼, 간식 두 번 먹고 낮잠 한 번이라도 제대로 자려면 입에 단내가 나도록 뛰어야 한다. 일생의 과업이 없다는 말이, 아무 일이나 하고 아무 돈이나 받고, 적당히 부패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래도 가슴 안에 작은 가치 한 조각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끝나면? 나는 60대가 되어 있을 것이고, 일생의 과업이 있느냐 없느냐, 이런 성립되지도 않는 명제 가지고 고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생의 과업은 20~30대에게만 유효한 말이다. 아직 살날이 많기 때문에, 그의 일생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충분히 무게 있는 말이다. 그러나 쉰이 넘은 사람의 일생은 어차피 남은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에 일생이든 이생이든 혹은 반생이든 별 의미는 없다. 객관성을 보여주는 저울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행여 50년을 더 살게 된다면? 혹은 100세가 되어도 그 영혼이 탐나서 메피스토펠레스가 유혹하는 파우스트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난 파우스트급은 아닌 것 같다. 평생을 바쳐서 해야 할 일, 그런 게 불행히도 내게는 없다. 그렇다고 소명이 있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평생 할 일이 있어야만 삶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기어코 그 일을 완수해야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니다. 물론 소명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명은 21세기적이지는 않다. 우리가 지금부터 살아갈 21세기에는 소명 받은 사람은 열심히 자기 소명대로 일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재미있게 살아가면 된다.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자신에게 일생의 과업이 있지 않다는 것을 쉰에 아는 것이 예순에 아는 것보다는 낫다는 점이다. 육십이 되면, 이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 그러나 오십 살, 아직 10년은 남아 있다. 소명 같은 것 없어도, 평생의 과업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고, 즐겁고, 의미 있게 살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도 추구할 수 있다. 서로 어깨싸움을 하라고 신이 세상에 우리를 보낸 것 같지는 않다. 예수의 말을 빌리면,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소명이 있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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