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 않은 쌍둥이
프란츠 카프카, 에곤 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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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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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
한 사람은 자기 그림이 타는 것을 보았다.
다른 한 사람은 자기 몸이 벌레로 변하는 것을 썼다.
1912년, 같은 제국, 같은 언어, 다른 도시에서.
문학과 예술을 한 권에 묶는 시리즈, 모티브 세계문화전집 2권
1912년 봄, 빈의 한 법정에서 에곤 실레(1890-1918)의 그림이 촛불에 태워졌다. 같은 해 가을, 프라하에서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거대한 벌레로 변한 외판원의 이야기를 단숨에 썼다. 한 사람은 법정 양초 위에서 자기 그림이 타는 것을 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거대한 아버지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매일 확인했다.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 편지에 서로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같은 독일어로, 같은 모티프를 다루고 있었다. 거대한 권위 앞에 선 작은 인간, 검열당하거나 불태워진 작품, 그리고 자기 몸이 자기 것이 아니라고 평생 의심한 사람의 자화상.
내 몸은 정말 내 것인가, 아니면 가족과 사회와 국가에 점령당한 영토인가?
이 책은 카프카의 『변신』,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관찰』 18편, 「법 앞에서」, 『팔절판 노트』의 잠언 10편을 평역으로 수록했다. 에곤 실레는 산문시 「나, 영원한 아이」와 시·편지 4편, 유화·드로잉 68점이 함께 들어간다. 7장에서는 카프카의 잠언 10편 옆에 실레의 그림 10점이 한 쌍으로 마주 선다. 만난 적 없는 쌍둥이가 처음으로 한 페이지 위에 함께 선다.
소설가이자 엮은이인 홍선기의 미발표 단편소설 「청진」이 함께 수록되었다. 두 거장이 프라하와 빈에서 던진 질문이 오늘의 한국 독자에게 어떤 모습으로 도착하는지, 한 편의 단편으로 보여준다.
[ 저자 소개 ]
프란츠 카프카
1883년 7월 3일 프라하 구시가지에서 태어났다. 한 살 무렵 어느 밤, 물을 달라고 칭얼대던 어린 카프카를 아버지는 잠옷 차림으로 안마당 발코니에 내놓고 문을 잠갔다. 30년 뒤 카프카는 그 발코니의 기억을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 정확히 적었다. 그 발코니에 선 아이가 『변신』의 그레고르가 되고, 『심판』의 요제프 K가 되고, 『성』의 K가 된다.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재해보험공단에 입사해 14년간 일했다. 오후 2시 퇴근. 이 한 가지 조건이 카프카에게 글 쓰는 시간을 돌려주었다. 낮에는 부러진 손가락의 보상금을 계산했고, 밤에는 벌레로 변한 외판원에 대해 썼다. 펠리체 바우어와 두 번 약혼하고 두 번 파혼했다. 1917년 폐결핵을 진단받은 뒤 펠리체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결핵을 ‘하나의 무기(eine Waffe)’라 불렀다. ‘내가 살아 있는 한 그 절대적 필요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둘 다 살아남을 수는 없습니다.’
1924년 6월 3일, 빈 근교 키얼링 요양원에서 굶어가듯 숨졌다. 만 40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있었다.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모든 원고를 태워 달라고 부탁했다. 브로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에곤 실레
1890년 6월 12일 오스트리아 툴른의 기차역 관사 2층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매독으로 정신착란에 빠진 어느 밤, 가족의 전 재산이었던 철도 채권을 거실 난로에 던져 모두 태웠다. 열두 살 실레는 어머니의 절규 속에서 그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열일곱 살에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해 주임교수 그리펜케를에게서 ‘악마가 내 교실에 똥을 싸 놓았네’라는 말을 들었다. 같은 해 당대 빈 화단의 황제 구스타프 클림트를 직접 찾아가 물었다. ‘선생님, 제게 재능이 있습니까?’ 클림트의 대답은 한 마디였다. ‘물론, 너무 많네!’
1912년 4월, 노이렝바흐의 한 법정에서 판사는 실레의 압수된 누드 드로잉 한 점을 법정 안 촛불에 태웠다. 채권을 태운 밤의 재현이었다. 실레는 24일을 감옥에서 보냈다. 1915년 발리 노이질을 떠나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했다. 결혼 4일 만에 입대했다. 1918년 10월 28일 임신 6개월의 에디트가 스페인 독감으로 숨졌고, 사흘 뒤 실레도 같은 병으로 그 뒤를 따랐다. 만 28세였다.
28년의 짧은 생애 동안 자기 자신을 그린 그림이 100점이 넘는다.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예쁘게 그린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