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 그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400년 전, 그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다나카 이치로 | 사람과나무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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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 400년 동안 베일에 감춰져 있던 ‘갈릴레오 재판 기록’이 오롯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다 근대물리학의 기초를 닦은 물리학자이자 아인슈타인?뉴턴과 함께 인류 과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위대한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그는 과연 과학을 탄압하는 가톨릭교회와 로마 교황청에 용감히 맞서 싸운 영웅이었을까? 또한, 그는 오늘날 평범한 초등학생도 알 정도로 유명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실제로 했을까? 도서출판 사람과나무사이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관한 일본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는 학자인 다나카 이치로 교수가 ‘갈릴레오 재판’의 진실을 낱낱이 밝힌 책 『400년 전, 그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가 출간되었다. 163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니콜라 코페르니쿠스를 지지하며 지동설을 주창했다는 죄목으로 로마 교황청의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았다. 그리고 역사적인 재판에서 갈릴레오는 ‘무기한 투옥’이라는 무거운 형벌을 선고받았다. 이튿날 바로 감형되기는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엄격하고 가혹한 이 판결을 두고 오늘날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어떤 이는 ‘명백히 잘못된 재판’이라 규정했고, 또 어떤 이는 ‘갈릴레오가 누명을 썼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이는 ‘로마 교황청과 갈릴레오 둘 다 잘못이 없다’는 양시론까지 폈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오늘날 갈릴레오 재판에 대한 수많은 주장과 억측이 난무하고 음모론까지 종종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18세기 계몽주의자들과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영향이 컸다. 이 점에 대한 저자의 논지를 간략히 살펴보자. 1798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로마를 침공했다. 나폴레옹은 교황 비오 6세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로마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그리고 10여 년 뒤인 1810년에 그는 로마 교황청에 보관돼 있던 대다수 문서를 약탈하여 프랑스로 가져갔다. 당시 나폴레옹이 약탈한 문서의 양은 총 3,239상자, 책으로는 10만 2,435권에 달했다. 그 방대한 문서들 중에는 ‘갈릴레오 재판 기록’도 포함돼 있었는데, 나폴레옹은 다른 어떤 문서들보다 그것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왜 갈릴레오 재판 기록을 약탈했을까? 저자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갈릴레오 재판 기록을 책으로 엮어 출간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는 과학 진보를 가로막고 진리를 왜곡한 가톨릭교회의 무지몽매함과 비합리성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한 도구로 갈릴레오 재판 기록을 활용할 속셈이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런 생각을 품은 데는 당대의 사회 분위기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의 자리에 올라 전 유럽을 제패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 프랑스는 계몽주의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계몽주의자들은 당시 프랑스를 지배하던 귀족과 성직자들을 거세게 비난했다. 그들은 또 마땅히 과학적 합리주의에 따라 국가를 운영해야 하며, 신학 역시 과학의 합리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구체제를 대표하는 가톨릭과 성직자들에 대항하고자 했던 계몽주의자들에게 갈릴레오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로 받아들여졌다. 정복자 나폴레옹의 마음에도 계몽주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런 터라, 그는 이탈리아반도 침략과 이집트 원정 시 당대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과학자들을 거느리고 갔다. 이런 맥락에서, 계몽주의를 신봉하는 나폴레옹에게 갈릴레오가 겪어야 했던 모진 수난과 수모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은 가톨릭교회의 추잡함과 치부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정의로운 일이었다. 다시 말해, 나폴레옹의 갈릴레오 사랑에는 당대의 프랑스 지식인 사회가 공유하는 과학적 합리주의에 대한 신봉과 구체제 계급에 대한 반감과 증오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계획은 수많은 장애물에 막혀 의도대로 실행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가 실각하고 엘바섬에 유배당하게 되면서 귀중한 갈릴레오 재판 기록 중 상당수가 소실되어 진실을 정확히 알기가 더 어려워졌다. 아무튼, 로마 교황청의 집요한 노력과 프랑스 정부의 협조에 힘입어 일부 문서나마 반환된 뒤 서고에 보관되어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다. 그렇게 갈릴레오 재판 기록은 200년 가까이 로마 교황청의 서고 깊숙한 곳에서 잠자고 있다가 운명적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1979년 11월 10일, 당시 로마 교황이던 요한 바오로 2세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위대함을 만인이 알게 하라」라는 제목의 강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바티칸 궁전에서 열린 아인슈타인 탄생 100주년 축전 도중 있었던 강론이었다. 이 강론을 계기로 이듬해인 1980년에 갈릴레오 사건 조사 위원회가 조직되었고, 10년이 남는 길고 긴 조사 끝에 1992년 10월 31일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갈릴레오 재판 기록’의 진실이 마침내 베일을 벗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 책 『400년 전, 그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는 그 기록에 근거해 집필되었다. 400년 전, 위대한 천문학자?물리학자?수학자이며 독실한 가톨릭교도였던 갈릴레이를 피고인으로 이단 심판을 벌인 그 법정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저자 소개 ] 다나카 이치로 고베시에서 태어나 고베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으며, 도쿄대학교 대학원 이과계 연구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근대 유럽의 특허제도 기원과 기술혁신 연구 - 1474년 베네치아 특허법 성립을 중심으로」라는 긴 제목의 학술논문으로 가나자와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과학 기술사다. 니혼대학교 이공학부 조교수로 일했으며, 이후 가나자와대학교 이학부 자연과학 연구과 교수로도 재직했다. 2012년에 가나자와대학에서 정년퇴임했으며, 현재 명예교수이자 가나자와 의과대학 초빙교수로 활동하며 집필에 전념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관한 일본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는 학자로, 『갈릴레오 비호자들의 그물 속에서』를 비롯한 과학사 서적을 다수 집필하고 번역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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