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규 지음
메이트북스 / 2026년 3월 / 224쪽 / 17,500원
▣ 저자 강현규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대학 졸업 후에 30년간 줄곧 출판기획자의 길을 걸어왔다. 출판 현장에서 ‘고전 다시 읽기’라는 취지로 고전들을 원전의 가치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흥미롭게 재구성해왔다. 엮은 책으로 『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 『괴테의 인생 수업』, 『몽테뉴의 수상록』, 『니체의 인생 수업』, 『에픽테토스의 인생을 바라보는 지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등이 있다. 최근에는 역사 속 인물들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 Short Summary
최근 한국 사회에 단종 신드롬이 불고 있다. 단종의 비극을 다룬 영화에 1천만 관객이 몰렸고, 영월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단종이라는 이름이 600년 만에 다시 뜨거워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권력의 비정함, ‘패배한 왕’의 슬픈 죽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비정한 시대를 버텨낸 사람들의 ‘온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온기의 정체를 추적한다.
역사는 대개 승자의 기록이거나 찬란하게 산화한 이름들의 서사로 남는다. 단종의 비극을 떠올릴 때 우리가 먼저 부르는 이름도 대개 ‘사육신’이다. 죽음으로 충절을 증명한 그들의 의리는 숭고하지만, 이 책의 첫 장을 그들로 열지 않기로 했다. 이 책이 붙잡고 싶은 것은 단판 승부의 절개가 아니라, 끝내 저버리지 않았던 ‘의리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두 개의 마당으로 나누어 배치했다.
첫째 마당은 ‘사람 사이의 신의를 끝까지 살아낸’ 사람들이다. 엄흥도는 왕의 시신을 수습하면 삼족이 멸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을 사람답게 보내는 도리를 택했다. 정순왕후는 모두가 왕을 잊어야 산다고 말할 때 홀로 기억하는 방식으로 64년간 존엄을 붙들었다. 살아서 돌아가는 것이 자신의 의리였던 매화는 동료 궁녀들이 강물로 뛰어드는 것을 지켜보며 정업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환관 안신은 사약 사발을 건네는 손으로 동시에 쓰러지는 주군을 받쳐 들었다. 이들의 의리는 화려하지 않으나 호흡이 길고, 끝내 지워지지 않는 사람의 온기를 담고 있다.
둘째 마당은 ‘부당한 권력에 맞서 자기 자리를 지킨’ 사람들이다. 사육신은 단순히 추상적인 충성에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직분과 문장, 심지어 녹봉으로 받은 쌀 한 톨까지도 부당한 권력에 내어주지 않음으로써 저항했다. 그들이 지킨 것은 거창한 명분만이 아니었다. 박팽년은 장계의 글자 한 획을 고쳐 씀으로써 권력을 부정했고, 이개는 빈 벼루를 갈며 부정한 명령을 거부했다. 그들에게 의리는 관념이 아니라 뒤틀린 국가의 질서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실천이자 주군에 대한 의리였다.
두 마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에 답했다. 각자의 방식은 달랐으나 이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하나였다. 권력이 강요하는 망각에 맞서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600년 전의 단종 이야기에 다시 귀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 안 어딘가에 여전히 그 온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엄흥도가 차디찬 강물로 뛰어든 것은 대의가 아니었다. 사람이기에 할 수 없었던 것을 끝내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 의리가 지금 우리에게도 어딘가에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이 책은 『세조실록』의 건조한 기록 위에서 시작되었으나, 영월 일대에 전해오는 민초들의 전승과 시대를 건너온 이름 없는 이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다. 역사는 승자의 문장으로 기록되지만, 의리는 민초들의 기억으로 전승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일부는 공식 기록인 실록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흔적은 6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다. 이 책은 주군의 마지막 온기를 지키려 했던 그 잊힌 이름들에게 바치는 뒤늦은 헌사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정직하고도 결연했던 11인의 삶을 통해 독자들은 결과만 중시하는 세속적인 시선을 잠시 거두고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차례
지은이의 말 _ 역사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뜨거운 의리
프롤로그 _ 1457년, 가장 고독했던 소년의 장례식
첫째 마당 - 사람 사이의 신의를 끝까지 지킨 사람들
1장 엄흥도: 밤의 강물에서 왕의 시신을 건져 올리다
2장 매화: 왕의 부탁을 품고 왕비의 64년을 지키다
3장 안신: 사약을 앞에 둔 왕의 곁에서 눈물을 닦아주다
4장 정순왕후: 잊으라는 세상에서 기억을 끝까지 붙들다
5장 금성대군: 조카를 홀로 두지 말라는 유언을 받들다
둘째 마당 - 부당한 권력에 맞서 목숨을 던진 사람들
6장 유응부: 쇠꼬챙이가 살을 뚫어도 입을 열지 않다
7장 성삼문: 인두가 살을 지져도 문장은 흔들리지 않다
8장 박팽년: 글자 하나로 부당한 권력과 맞서 싸우다
9장 이개: 찬양의 시 대신 벼루에 물 한 방울만 담다
10장 하위지: 녹봉으로 받은 쌀을 썩혀 신하이길 거부하다
11장 유성원: 권력의 국문을 거부하고 자신을 삭제하다
에필로그 _ 역사가 흐르는 한 신의는 패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