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승화된 비행체험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생 텍쥐페리는 1900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미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비행기를 탔으며, 조종사가 되기 위해 해군사관학교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나 갑자기 사관학교 시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험을 거부하고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그 뒤 군에 입대해 스트라스브루그의 제2전투기 연대에서 복무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수리 공장에 배속되었다가 나중에 조종사가 되었다. 제대 후 그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에어프랑스의 전신인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생 텍쥐페리는 자신의 작품 속의 주인공들을 만났다. 이때부터 그의 생애는 그의 여러 작품에 단편적으로 소개되었다. 우편 비행을 담당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틈틈이 글을 써온 생 텍쥐페리는 1928년에는 《남방 우편기 Courrier-Sud》를 출판하고, 1931년에는《야간비행 Vol de Nuit》을 발표해 페미나문학상을 받았다. 1934년 에어프랑스에 입사한 후부터는 선전부원으로 외국을 자주 드나들었으며 〈파리 수아르〉지의 특파원으로 사이공, 스페인 등지에 파견되었다.
생 텍쥐페리는 자신의 시문기로 파리-사이공간을 비행하려 하다가 사막에 불시착하는 바람에 기관사와 닷새 동안을 걷다가, 갈증으로 죽기 직전 베두인 대상에게 발견되어 구조된 적도 있었다. 이 일화는 《인간의 대지 Terre des Hommes》에 자세히 기록되어 인간의 의지력과 책임감이 얼마나 투철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도 조금도 굽히지 않고, 여러 차례 장거리 비행을 시도하다 1938년 중상을 입고 프랑스로 돌아와, 조종사로 일하는 틈틈이 써놓은 대표작 《인간의 대지》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바람과 모래와 별들 Wind, Sand and Stars》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발간돼 '이 달의 양서'로 선정되었고, 프랑스에서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했다.
그렇게 모험을 좋아했던 생 텍쥐페리는 2차 대전 발발과 동시에 전쟁에 동원되었다. 전시에도 집필을 계속했던 그는 전쟁경험을 토대로 《전시 조종사 Pilote de guerre》, 《어린 왕자》를 발표하고는, 1944년 7월 그르노블-안시 지구 출격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작품《성채 Citadelle》는 유작이 되고 말았다.
문학에 상상력은 필요없다
생 텍쥐페리는 작가이기에 앞서 행동인이었다. 삶을 통해 비행기를 다루는 책임의 중대성을 인식하였고, 이러한 인식에서부터 작가로서의 무책임한 글 한 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물질적, 정신적으로 유해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생 텍쥐페리는 어려서부터 작가라는 지위에 대해서 거의 종교적이라고 할 만큼 지대한 동경과 경의를 품고 있었으며, 또한 글쓰는 행위는 매우 중요한 책임을 수반한다는 신념을 평생 지니고 있었다.
그는 비행기처럼 문학도 문명의 한 '연장'으로 단정하였다. 생 텍쥐페리의 글쓰기는 상상력이 아닌, 확실성이나 진실성에 근거한 것이었고, 작가로서보다 행동가로서 더 많을 정력을 소모했다. 생 텍쥐페리는 보다 건실하고 적절한 표현으로, 문장 속에 현실을 담으려 노력했다. 내용 없는 문학을 혐오했던 그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사실만을 고집했으며, 상상력이 사실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자신에게는 인색하면서 독자를 교화시키려는 작가들이 빠지기 쉬운 자기모순을 경계했기 때문에, 항상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생 텍쥐페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희생의 고귀함을 체험적으로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왕자처럼 지구 너머의 세계로 사라진 작가
생 텍쥐페리와 어린 왕자의 죽음에는 몇 가지 유사점이 있다. 첫번째로 어린 왕자가 '나'에게 자신의 죽음을 예고했던 것처럼, 생 텍쥐페리 또한 자신이 사라지기 전에 많은 암시를 남겼다. 두 번째, 어린 왕자는 자신이 지구에 온 지 딱 1년이 된 날, 즉 자신의 생일날 사라진다. 생 텍쥐페리는 1900년 6월 29일에 태어났고, 1944년 7월 31일 죽는다. 태어난 날과 죽은 날 사이에는 한 달 정도의 격차가 나지만, 날짜상으로 보면 단지 사흘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44회 때 생일날도 그는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는데, 이것은 그가 억지로 우겨서 이루어진 출격 중에 일어난 사고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음은 두 인물의 죽음의 장소이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혹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죽는다. 그런데 그 죽는 장소는 바로 태어난 장소이다. 이 지구에 태어난 장소는 넓게는 고향, 조국이겠고, 좁게 말하면 모태다. 이 탄생과 죽음의 장소는 어머니로서의 대지 혹은 어머니 그 자체, 어느 것이든 모성적 이미지와 연관된다. 그런데 어린 왕자가 자신이 죽을 곳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작가도 지상에 떨어진 장소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것 같다. 미국에서 북아프리카로 떠날 때 이미 사라질 거라는 암시를 주었던 작가는, 프랑스 상공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을 때마다 항상 자신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지방으로 보내주기를 간청했다. 실제로 생 텍쥐페리가 사라진 안느시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끝으로 어린 왕자는 뱀의 독 때문에 죽음을 맞는다. 생 텍쥐페리는 독일군 전투기에 격추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그는 《전시 조종사》에서 독일 전투기를 독사에 비유했다고 한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이해심이 부족한 어른들 때문에, 어린 시절 화가의 꿈을 버리고 조종사가 된 '나'는 6년 전 사하라 사막에 비행기 고장으로 불시착한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있던 내 앞에 갑자기 양 한 마리를 그려달라는 어린 왕자를 만난다. 어린 왕자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순수를 그려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어린 왕자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에게서 사랑과 삶을 배우게 되는데.....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생 텍쥐페리는 1900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미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비행기를 탔으며, 조종사가 되기 위해 해군사관학교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나 갑자기 사관학교 시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험을 거부하고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그 뒤 군에 입대해 스트라스브루그의 제2전투기 연대에서 복무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수리 공장에 배속되었다가 나중에 조종사가 되었다. 제대 후 그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에어프랑스의 전신인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생 텍쥐페리는 자신의 작품 속의 주인공들을 만났다. 이때부터 그의 생애는 그의 여러 작품에 단편적으로 소개되었다. 우편 비행을 담당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틈틈이 글을 써온 생 텍쥐페리는 1928년에는 《남방 우편기 Courrier-Sud》를 출판하고, 1931년에는《야간비행 Vol de Nuit》을 발표해 페미나문학상을 받았다. 1934년 에어프랑스에 입사한 후부터는 선전부원으로 외국을 자주 드나들었으며 〈파리 수아르〉지의 특파원으로 사이공, 스페인 등지에 파견되었다.
생 텍쥐페리는 자신의 시문기로 파리-사이공간을 비행하려 하다가 사막에 불시착하는 바람에 기관사와 닷새 동안을 걷다가, 갈증으로 죽기 직전 베두인 대상에게 발견되어 구조된 적도 있었다. 이 일화는 《인간의 대지 Terre des Hommes》에 자세히 기록되어 인간의 의지력과 책임감이 얼마나 투철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도 조금도 굽히지 않고, 여러 차례 장거리 비행을 시도하다 1938년 중상을 입고 프랑스로 돌아와, 조종사로 일하는 틈틈이 써놓은 대표작 《인간의 대지》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바람과 모래와 별들 Wind, Sand and Stars》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발간돼 '이 달의 양서'로 선정되었고, 프랑스에서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했다.
그렇게 모험을 좋아했던 생 텍쥐페리는 2차 대전 발발과 동시에 전쟁에 동원되었다. 전시에도 집필을 계속했던 그는 전쟁경험을 토대로 《전시 조종사 Pilote de guerre》, 《어린 왕자》를 발표하고는, 1944년 7월 그르노블-안시 지구 출격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작품《성채 Citadelle》는 유작이 되고 말았다.
문학에 상상력은 필요없다
생 텍쥐페리는 작가이기에 앞서 행동인이었다. 삶을 통해 비행기를 다루는 책임의 중대성을 인식하였고, 이러한 인식에서부터 작가로서의 무책임한 글 한 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물질적, 정신적으로 유해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생 텍쥐페리는 어려서부터 작가라는 지위에 대해서 거의 종교적이라고 할 만큼 지대한 동경과 경의를 품고 있었으며, 또한 글쓰는 행위는 매우 중요한 책임을 수반한다는 신념을 평생 지니고 있었다.
그는 비행기처럼 문학도 문명의 한 '연장'으로 단정하였다. 생 텍쥐페리의 글쓰기는 상상력이 아닌, 확실성이나 진실성에 근거한 것이었고, 작가로서보다 행동가로서 더 많을 정력을 소모했다. 생 텍쥐페리는 보다 건실하고 적절한 표현으로, 문장 속에 현실을 담으려 노력했다. 내용 없는 문학을 혐오했던 그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사실만을 고집했으며, 상상력이 사실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자신에게는 인색하면서 독자를 교화시키려는 작가들이 빠지기 쉬운 자기모순을 경계했기 때문에, 항상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생 텍쥐페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희생의 고귀함을 체험적으로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왕자처럼 지구 너머의 세계로 사라진 작가
생 텍쥐페리와 어린 왕자의 죽음에는 몇 가지 유사점이 있다. 첫번째로 어린 왕자가 '나'에게 자신의 죽음을 예고했던 것처럼, 생 텍쥐페리 또한 자신이 사라지기 전에 많은 암시를 남겼다. 두 번째, 어린 왕자는 자신이 지구에 온 지 딱 1년이 된 날, 즉 자신의 생일날 사라진다. 생 텍쥐페리는 1900년 6월 29일에 태어났고, 1944년 7월 31일 죽는다. 태어난 날과 죽은 날 사이에는 한 달 정도의 격차가 나지만, 날짜상으로 보면 단지 사흘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44회 때 생일날도 그는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는데, 이것은 그가 억지로 우겨서 이루어진 출격 중에 일어난 사고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음은 두 인물의 죽음의 장소이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혹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죽는다. 그런데 그 죽는 장소는 바로 태어난 장소이다. 이 지구에 태어난 장소는 넓게는 고향, 조국이겠고, 좁게 말하면 모태다. 이 탄생과 죽음의 장소는 어머니로서의 대지 혹은 어머니 그 자체, 어느 것이든 모성적 이미지와 연관된다. 그런데 어린 왕자가 자신이 죽을 곳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작가도 지상에 떨어진 장소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것 같다. 미국에서 북아프리카로 떠날 때 이미 사라질 거라는 암시를 주었던 작가는, 프랑스 상공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을 때마다 항상 자신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지방으로 보내주기를 간청했다. 실제로 생 텍쥐페리가 사라진 안느시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끝으로 어린 왕자는 뱀의 독 때문에 죽음을 맞는다. 생 텍쥐페리는 독일군 전투기에 격추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그는 《전시 조종사》에서 독일 전투기를 독사에 비유했다고 한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이해심이 부족한 어른들 때문에, 어린 시절 화가의 꿈을 버리고 조종사가 된 '나'는 6년 전 사하라 사막에 비행기 고장으로 불시착한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있던 내 앞에 갑자기 양 한 마리를 그려달라는 어린 왕자를 만난다. 어린 왕자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순수를 그려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어린 왕자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에게서 사랑과 삶을 배우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