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정원오 지음 | 메디치미디어
성수동
정원오 지음
메디치미디어 / 2025년 11월 / 272쪽 / 20,000원
PART 1 성수동을 찾은 청년들과 기업
기업이 찾아오는 도시성수동의 역사는 ‘공장지대’에서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강 연안은 수운을 활용한 물류 요충지로 주목받았고, 성수동 또한 경성 도심과 연결되는 중간 지대로서 경공업 공장이 밀집된 지역이었다. 이곳에서는 구두, 섬유, 금속가공 등 다양한 제조업이 이루어졌으며, 물자가 유통되고 조립되어 다시 도시로 보내지는 과정을 통해 ‘만드는 사람들’의 터전이 형성되었다.
해방 이후부터 1980~90년대에 걸쳐 성수동은 서울 산업화의 현장이자 저임금 고밀도 노동의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구두, 인쇄, 기계금속 등 1차 및 2차 가공업이 혼재하며 ‘작은 공장’과 ‘작은 주택’이 어우러진 준공업 지역으로 성장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다세대 주택들은 낮에는 생산 활동의 공간으로, 밤에는 주거의 공간으로 활용되며 “공장 옆에 사람이 살고, 사람이 사는 곳이 공장이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되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제조업 기반이 급격히 약화되면서, 수많은 영세 공장과 소공인들이 폐업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다. 한때 활기 넘치던 골목은 정적에 잠겼고, 낡은 창고와 빈 상가만이 남아 도시 속 유휴지로 변모하며 ‘서울의 끝 동네’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쇠퇴는 이후 성수동이 새로운 방식으로 활력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버려진 공장과 창고에 청년 문화예술인, 스타트업체들이 유입되기 시작하며 카페, 갤러리, 공방, 사무실 등으로 재탄생했다. 이들을 시작으로 또 다른 청년층의 유입이 이어졌고,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성수동으로 모여들었다. 현재 SM엔터테인먼트, 큐브엔터테인먼트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산업, 무신사, 아이아이컴바인드와 같은 패션 산업, 클리오, 아모레퍼시픽과 같은 뷰티 산업, 그리고 쏘카와 크래프톤 같은 IT 기반의 스마트 산업들이 자리 잡고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들 기업은 대한민국 신성장 동력으로 손꼽히는 유망한 미래 산업 분야에 속한다.
성수동에 유수의 기업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그런 기업들을 유치했습니까? 비법이 무엇입니까?” 성동구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지식산업센터 활성화를 위한 용적률 인센티브, 지방세 감면, 중소기업 육성자금 융자 지원, 지역 특화 업종(수제화, 패션봉제 등) 클러스터 조성, 청년 맞춤형 창업 공간 지원 등 다각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과거 정미소와 창고로 쓰던 대림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갤러리 겸 카페로 운영하기 시작했고, 2024년부터 공간의 일부를 의류 매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은 대부분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유사하게 추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책의 명칭이나 추진 방식에 다소 차이가 있을 뿐, 사실상 같은 정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성동구청만의 독창적인 정책이 기업 유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일까?
성동구는 성동안심상가를 통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정책, 소셜벤처 육성을 위한 ‘사회적경제활성화기금’과 ‘성동임팩트펀드’ 조성, 전국 최대 규모의 ‘소셜벤처 허브센터’ 운영 등 독자적인 성과들을 이루었다. 이러한 노력들이 기업 유치에 일정 부분 기여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만으로 기업 유치를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오히려 기업들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성수동에 입주했다’는 분석이 더욱 정확하고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스스로 성수동에 찾아 들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성수동만의 매력 _ 입지와 자연, 그리고 청년: 첫째, 입지가 좋다. 성수동은 서울 강북의 중심부와 강남을 연결하는 한강축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하철 2호선 성수역과 수인분당선 서울숲역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어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다. 또한 동부간선도로와 강변북로가 인접하여 자가용을 이용한 접근성도 우수하며, ‘T자형’ 지하철 노선은 물리적 접근성과 보행자 동선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둘째, 풍부한 자연환경과 인적 자원이다. 도심 최대의 자연환경이라 할 수 있는 한강과 서울숲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인근에는 한양대학교와 건국대학교가 위치하여 콘텐츠 산업에 필수적인 창작자, 디자이너, 개발자, 마케터 등 풍부한 청년 인재풀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입지 조건들은 과거에도 존재했기에, 기업들이 현재 성수동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성수동에는 가로와 건물, 거리의 분위기 이상으로 더 본질적인 매력이 있었으니, 바로 ‘청년의 도시’라는 정체성이다. 성수동은 청년들의 감각과 기획, 창조와 실험이 응축된 ‘창조적 장소’였고, 기업들은 바로 이러한 역동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유입되었다.
결과적으로 성수동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것은 바로 ‘새로움을 갈망하는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정형화된 상업 공간이나 기존 브랜드가 주는 피로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실험할 수 있는 무대를 찾아 나섰고, 성수동은 그런 청년들에게 낡고 비어있는 공간을 하나의 백지처럼 제공했다. 버려진 공장과 창고, 인쇄소와 철제문 사이에는 무한한 가능성과 해석의 여지가 있었고, 이러한 여백은 창작자와 창업가를 끌어들였다. 브랜드의 서사와 공간의 감성이 일치하고, 창작과 창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이곳은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하나의 ‘경험지’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자발적으로 형성된 청년 문화의 집적은 점차 ‘차별적 경험’을 추구하는 더 많은 청년과 소비자를 끌어들였고, 흐름을 읽은 기업들이 성수동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인재가 모인 곳에 기업이 따라온다: 기업들이 성수동으로 유입된 현상은 도시사회학자 리처드 플로리다의 이론을 통해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플로리다는 저서 『창조계급의 부상(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에서 “기업이 있는 곳에 인재가 몰리는 것이 아니라, 인재가 있는 곳에 기업이 따라간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전통적인 도시 발전 방식, 즉 산업 인프라를 기반으로 인재를 유인하려던 방식과는 대조적으로, 오늘날에는 창조적인 사람들과 감각적인 소비층, 그리고 활발하게 연결된 커뮤니티가 존재하는 곳에 산업이 형성되며 기업은 그러한 흐름에 합류한다는 관점이다.
성수동은 이러한 이론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성수동은 단순히 임대료가 저렴하거나 교통이 편리한 입지 조건만을 갖춘 곳이 아니었다. 도시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고 확산시킬 수 있는 감각 있는 청년들이 있었고, 이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낸 공간과 브랜드들이 있었다. 대림창고, 카우앤독, 헤이그라운드 같은 복합공간은 그 대표적인 예시다. 이러한 공간들은 단순히 부동산 임대업의 결과물을 넘어, 창작자와 사회혁신가, 스타트업이 서로 교류하고 연결되는 커뮤니티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곳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전시를 관람하고, 사회 혁신 워크숍이 진행되며, 저녁에는 재즈 공연이 펼쳐지는 등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문화적 경험이 제공되었다.
이런 흐름을 읽어낸 기업들은 성수동을 주목했다. 단순히 사무실을 이전하는 것을 넘어, 이미 조성된 문화·창의 생태계에 편입되어 브랜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려는 전략을 추구했다. 특히 성수동에는 MZ세대를 비롯한 젊은 소비층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골목과 공간이 풍부하여, 기업 입장에서는 광고나 캠페인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타깃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성수동에 입주한 기업들은 이 지역의 물리적 공간보다 ‘여기에서 일한다’라는 상징성이 주는 무형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청년들 사이에서 성수동은 ‘힙한 동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실험하는 무대’로 인식되고 있으며, “성수에서 일한다”라는 표현은 또래 집단에서 자신을 차별화하고 창의성과 감각을 인정받는 일종의 상징 자본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기업의 채용 경쟁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창의적인 인재들이 선호하는 동네에 회사를 두는 것은 곧 좋은 인재를 끌어들이는 환경을 갖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성동구에 기업들이 모여든 이유는 행정이 성수동을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만든 결과라기보다는, 성수동을 ‘청년이 머무르고 모이는 도시’로 만든 결과였다. 청년들이 이곳에 머물며 자신들의 감각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새로운 도시 문화를 형성했고, 그 흐름을 따라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입주한 것이다. 다시 말해 성동구가 유치한 것은 기업이 아니라 청년들이었고, 기업들은 성수동이라는 물리적 공간 자체보다 이곳에 모여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청년들을 향해 들어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PART 2 붉은 벽돌로 도시를 디자인하다
성수동표 도시재생
흐름에서 규칙으로: 예전부터 성수는 ‘소비의 무대’가 아니라 ‘생산의 현장’으로 살아왔다. 성수역과 뚝섬역 사이, 연무장길과 성수이로를 따라 이어지는 지역은 도시 계획상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이는 대규모 중화학 공장처럼 환경 부담이 큰 산업을 위한 공간이 아닌, 소규모 제조업, 연구개발, 유통, 판매가 한데 어우러져 돌아가는 도심형 산업 생태계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었다.
지리적 입지 역시 생산의 흐름을 강화했다. 한강과 중랑천이 맞닿아 있어 원자재와 완제품의 이동이 용이했고, 성수대교를 비롯한 교통축과 지하철 2호선이 교차하면서 서울 전역과 외부 시장을 잇는 연결망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입지적 조건은 원자재가 쉽게 들어오고, 완성품이 빠르게 나가는 순환을 자연스럽게 형성했다. 더불어 성수동의 토지는 서울 외곽 산업단지에 비해 잘게 나뉜 필지와 저층 공장·창고들이 연속된 특유의 물리적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이는 대규모 단일 공장이 아니라, 다종다양한 소규모 제작자들이 각자의 전문 공정을 담당하며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생태계를 가능하게 했다.
실제로 골목 단위로 수제화 공방, 인쇄소, 금속·목공소, 패션 의류 가공업체 등이 촘촘히 이어져 있어, 설계에서 제작, 후공정, 도매에 이르기까지 도시형 생산 네트워크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성수동은 단순한 소비 공간을 넘어, 생산의 전 과정이 일상에 함께 있는 독특한 상권으로 자리 잡았다. 쇼핑과 관광 위주의 일반적인 상권과 달리, 이곳은 기획부터 제작, 후공정, 유통이 한 동네 안에서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도시형 밸류체인’이 확립된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를 지나면서 성수의 도심 제조 생태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전통 제조업 기반이 축소되는 동시에, IT·디자인·패션·문화 산업이 교차하며 산업 생태계 자체가 재편되기 시작한 것이다. 디지털 기술과 창의적 상상이 만나면서, 성수는 단순한 제조의 거점을 넘어 브랜드를 생산하는 지역으로 탈바꿈해 갔다.
흐름을 ‘규칙’으로 만들어 ‘투자’를 이끌다: 과거 골목 곳곳에서 이어지던 공방과 소규모 공장은 이제 크리에이터, 스타트업, 글로벌 기업의 협업 공간으로 진화했다. 수제화 장인의 기술 위에 3D 프린팅과 패션 테크가 더해지고, 전통 목공과 금속 가공의 맥락 위에 라이프스타일 콘텐츠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겹쳐졌다. 이 과정에서 성수는 생산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 성격을 확장해 ‘첨단과 창의가 결합된 도시형 산업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제도적 틀로는 담아내기 어려웠다. 성수 일대가 속한 준공업지역은 본래 경제 개발 시대의 산물로, 단순 제조업을 수용하기 위해 설계된 공간이었다. 급변하는 산업 구조와 창의 산업의 집적을 뒷받침하기에는 너무 협소하고 제약이 많았다. 산업 생태계의 흐름이 지속 가능하게 이어지려면, 도시 계획 차원에서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성동구는 IT, 디자인, 유통, 콘텐츠 산업의 진화를 담아내기 위해 2021년 성수 IT산업·유통개발진흥지구를 확대 지정했다. 기존 53만 9,406㎡ 규모를 205만 1,234㎡로 약 4배 확장하며 새로운 산업 상상력을 담아낼 공간적 기반을 마련했다. 동시에 용적률은 최대 560%, 건축물 높이는 120m까지 허용하여 기업들이 더 넓고 높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스타트업, 중소기업, 글로벌 기업이 한 건물 안에서 연구, 제작, 유통하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성수동이 도시형 제조의 실험실에서 창의 산업의 플랫폼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기업이 가장 먼저 묻는 것은 언제나 똑같다. “허가는 얼마나 빨리 내줄 수 있습니까?”, “계획이 틀어질 일은 없나요?” 이를 보장하기 위해 성동구는 허가·민원 전담제를 도입했다. 건축물 사용 승인까지 최장 한 달 걸리던 절차를 5일 이내로 줄여, 빠른 처리 속도와 예측 가능성을 제공했다. 기업은 그 신뢰를 바탕으로 투자 계획을 세웠고, 그 투자는 결국 더 많은 일자리와 성과로 돌아왔다. 재정 인센티브도 함께 설계했다. 지식산업센터 취득세·재산세를 기본 35% 감면하고, 조건을 충족하면 50%까지 확대했다. 여기에 중소기업 육성자금을 2022년 80억 원, 2023년 75억 원, 2024년 75억 원으로 끊기지 않게 이어갔다. 기업의 숨이 막히지 않도록, 지원의 지속적인 흐름을 유지했다. 이런 정책의 결과는 숫자로 증명된다. 지식산업센터는 2013년 32개에서 2025년 73개로 늘었다. 입주 기업은 1,816개에서 6,163개로, 종사자는 7만 7천 명에서 12만 4천 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단순한 양적 증가를 넘어 산업 생태계의 질적 전환을 보여준다.
세상의 산업이 바뀌면, 도시도 그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파리 역시 전통적 유통과 시장 기능을 지녔던 도심 공간을 크리에이티브 산업과 패션·디자인의 클러스터로 탈바꿈시켰다. 생산과 소비가 공존하는 공간을 창출함으로써, 브랜드와 문화가 자생하는 생태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성수의 변화는 이들과 궤를 같이 한다. 도시의 흐름을 억누르지 않고, 흐름을 규칙으로 만들며 규칙을 지속 가능하게 지켜낼 때 도시는 새로운 산업의 무대가 된다.
성수 IT산업·유통개발진흥지구는 그 과정을 제도화한 장치였다. 숫자가 증명하듯 성수의 산업 생태계는 이미 도약했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산업적 변화에 발맞춘 도시 계획이 있어야 기업은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할 수 있고, 도시는 그 투자로 성장의 동력을 이어갈 수 있다. 성수의 경험은 서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흐름에서 규칙을 만들고, 규칙 위에서 투자를 이끌어내는 도시만이 세계의 변화 속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소비도시를 넘어서: 성수동의 초창기 재생은 소수의 젊은 창작자들과 예술가, 디자이너, 스타트업이 만들어낸 실험적 공간에서 시작되었다. 붉은 벽돌 창고를 개조한 갤러리, 공장 터를 리모델링한 카페, 공동 작업장을 중심으로 골목마다 개성 있는 문화상업 공간이 들어섰고,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힙한 동네’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2020년대에 들어서며 성수동은 또 한 번의 전환기를 맞았다. 문화와 상업이 융합된 공간에서 2040세대 청년들이 새로운 도시 문화를 소비하고, 공유하고, 재해석하기 시작하자, 이 흐름을 읽은 기업들이 성수동으로 몰려들었다. 무신사, 아더에러, 탬버린즈, Kith, 디올 등 국내·외 패션 브랜드가 성수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고, 이들은 단순 판매 공간이 아닌, 브랜드 정체성이 담긴 콘텐츠를 만드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설계되었다. 또한 SM엔터테인먼트, 큐브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들이 성수동에 창작자 커뮤니티와의 교류 거점을 마련하면서, K-컬처의 현장성과 대중문화 생산의 거점으로서 기능이 강화되었다. 특히 이러한 흐름은 카페, 전시장, 쇼룸, 스튜디오가 결합된 공간 구조 안에서 나타났고, 이는 성수동만의 복합적 장소성으로 정착되고 있다. 성수동의 곳곳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 문화와 산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동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