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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혁명하라

이재명 지음 | 메디치미디어


대한민국 혁명하라

이재명 지음

메디치미디어 / 2026년 3월 / 200쪽 / 18,000원





1부 이재명의 정치 혁명



역사 청산 - 새로운 출발선에 서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과 2항에 나오는 대한민국 정부의 제1원칙이다. 헌데 그 주권자인 국민은 끝없이 절망하고 분노하고 있다. 나라의 근본을 밝힌 이 원칙은 법전 속에만 존재할 뿐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몇 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일에만 주인의 자리를 확인할 뿐 국민 대다수는 지배 대상에 불과했다. 국민을 대상으로 거짓말을 일삼고 심지어 매수하고 위협하며 주인 행세를 해온 이들은 소수 기득권자들이었다.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야 마땅한 정치가 약자 약탈을 돕고 강자를 대변해왔다. 공평해야 할 법이 강자에겐 무기가 되었고 약자에겐 족쇄였다. 힘과 돈을 가진 소수 기득권 세력은 법과 질서를 위반하며 이익을 취했다. 법과 도덕을 위반할수록 더 크게 보호받았다. 자유롭고 평등하며 정의로워야 할 대한민국이 왜 이렇게까지 되고 말았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청산했어야 할 구악(舊惡)들을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해방 후 70여 년간 쌓인 적폐를 바로잡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단계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미군정을 등에 업은 이승만 정권은 친일매국 행위자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제에 빌붙어 봉사하며 백성을 수탈했던 친일매국 세력을 군, 경찰, 관료 요직에 중용했다.

1948년 9월 22일 어렵사리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을 공포했지만,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부와 친일매국 세력, 특히 일제 앞잡이였던 경찰 간부들의 방해로 누더기가 되었다. 반민특위법은 제헌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주도해서 만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이승만은 이 법의 적용을 견제하고 방해했다. 자신의 실질적 권력 기반이 친일매국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한국전쟁 당시 혼자 살겠다고 국민을 버리고 한달음에 대구까지 도주했던 인물이다. 그게 지나쳤다 싶었던지 대전으로 되돌아와서는, 서울에 남아 있는 것처럼 행세했다.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방송한 뒤에 한강철교를 폭파해버렸다. 이로써 피난길은 막혔고, 미처 탈출하지 못한 시민들은 인민군 밑에서 강제 부역을 하게 됐다. 그런데 이승만은 그 무고한 시민들에게 이적 행위 혐의를 씌어 학살했다.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를 빼앗은 자들:
독재와 부정부패로 연명하던 이승만 정권은 결국 국민의 투쟁으로 무너졌다. 1960년 4월 19일 대학생과 교수부터 중·고생,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거리에 몰려나와 민주주의를 외쳤다.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이승만은 퇴진했다. 그러나 혁명은 완수되지 못했다.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인데 박정희가 탱크를 앞세우고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강탈해버렸기 때문이다. 일본 왕에게 ‘개와 말처럼 충성을 바치겠다’는 혈서를 쓰고 일본군 장교로 출세해 독립군을 잡으러 다니던 박정희는 친일매국 세력을 청산하기는커녕 그 변종을 키워나갔다. 불균형 발전, 재벌 체제 형성 등 부패 기득권 세력을 확대하고 강화하면서 간첩 조작과 긴급조치를 이용해 철권통치를 이어갔다.

이후 박정희 군사정권은 김재규의 총탄에 무너졌지만 이번에도 역사는 청산되지 않았다. 이미 막강한 자본을 소유하고 정치, 군사, 행정, 사회, 문화 각 영역에서 확고히 자리 잡은 친일·독재·부패 세력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으로 힘을 키우고 결탁하면서 세력을 굳혔다.

박정희 체제가 급작스럽게 무너졌을 때, 국민은 새로운 정치질서를 꿈꾸고 민주적인 미래에 대한 기대로 들떠 있었다. 하지만 1976년 12월 12일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과 신군부는 또다시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1980년 5월 신군부는 광주에서 총칼과 몽둥이로 무고한 국민 수백 명을 학살하며 지배자로 당당히 귀환했다. 1987년 6월에는 다시 군사독재에 대한 항쟁이 거세졌다. 6월 전국의 거리 곳곳에서 최루탄과 백골단에 맞서며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하고 온 국민이 투쟁한 대가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이 또한 기만적인 6·29선언으로 미완의 혁명에 그치고 말았다.

친일·독재·부패 세력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그 실체가 바로 정치 기득권 세력이고, 그들에게 끊임없이 자양분을 제공하는 뿌리는 경제권력, 즉 재벌이다. 한때 정치권력에 기생했던 경제권력은 신자유주의 사조를 만나면서 확실하게 중심 권력의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부침을 거듭하는 정치권력을 조종하는 영구적인 지배권력에 등극한 것이다.

국면마다 얼굴을 바꾸며 세를 확장해온 친일·독재·부패 세력은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와 얼룩진 진실을 영원히 지우고 미화하기 위해 애써왔다. 그들은 헌법이 명시한 3·1독립만세혁명 그리고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온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의 ‘건국일’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시대착오적인 조치를 추진해서 5·16 군사쿠데타를 칭송하고 독립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축소하는 역사 왜곡을 자행했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부역하며 국가에 반역한 이들을 아직도 추적하여 처벌한다. 나치 부역자가 그 대가로 지위와 명성, 권력과 부를 누리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우리 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친일 부역자들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며 화려하게 복귀하는 중이다. 대한민국은 오욕과 부정의 역사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될 수 없다. 이대로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대한민국’은 영원히 멀어지고 만다.

국가는 소수 기득권자를 위한 것인가?:
국민이 곧 국가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국가의 제1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전쟁과 질병, 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막대한 혈세를 투입하는 것 아닌가. 국민들이 목숨을 바치는 까닭도 우리 공동체를 수호하고 궁극적으로는 나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국가는 국민이 최소한의 인권과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해주고, 구성원들이 합리적이고 공정한 경쟁을 거쳐 각자의 자질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인 억강부약의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 사람의 욕망은 한이 없다. 강자가 약자를 약탈하는 것을 막고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정치와 행정의 역할이다. 역사를 돌아봐도 정치와 행정, 다시 말해 권력이 가진 자의 수탈을 방치하고 나아가 수탈에 가세하면 그 체제는 위기를 맞거나 심지어 종말을 고했다.

우리 나라는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 해방 후 우리가 합의했던 민주공화국의 가치가 살아 숨 쉬는 나라를 만들자. 모든 국민이 실질적으로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공정한 경쟁 속에서 기여한 만큼 분배가 보장되는 정의로운 나라, 인권과 복지가 보장되고 평화롭고 안전하며 통일된 나라를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은 희망과 꿈을 되찾고 열정을 바칠 것이며, 자원과 기회와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해 국가도 발전하게 된다. 출산을 포기하고 인구 감소 끝에 종족 절멸을 걱정해야 하는 나라가 아니라 부푼 마음으로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활력이 넘치는 나라를 만들려면 반칙과 특권, 불법과 편법이 난무하는 부당한 기득권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 그 뿌리인 친일·독재·부패 세력을 청산하고 공정한 새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70년간 쌓인 폐단을 청산하고 새로운 70년을 준비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2부 이재명의 경제 혁명



공정 경제 - 함께 잘사는 나라를 위한 재벌 개혁


모든 정치인들이 ‘○○성장’을 경제 화두로 제시한다. 부자가 돈 벌면 빈자도 혜택을 본다는 낙수효과에 기대거나, ‘성장이냐 분배냐’의 프레임에 빠져서 분배가 아닌 성장을 중시한다며 기업과 기득권층에 기대고 있다. 그런데 경제의 최종 목적은 과연 성장 자체인가? 경제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줄임말이고, 그 목적이 모두가 함께 잘사는 데 있다. 성장이 중시되는 것은 절대빈곤을 벗어나야 하는 시기에 불가피했던 선택이거나, 혹은 성장의 과실이 고르게 분배될 경우에만 옳다고 할 수 있다. 성장은 하되 그 과실이 소수에게 독점되어 전체 구성원의 삶은 점차 나빠지고, 급기야 유효수요 부족으로 경제환경 자체가 나빠져 기업에도 손실이 올 지경이라면 이미 그런 성장은 경제에 해악이다.

대한민국 경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생산증가분 중 가계(노동)와 정부의 몫이 정체되어 총소득 중 가계 및 정부 몫의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노동소득분배율이 80% 선에서 60%대 초반으로 떨어지고 소수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급증하면서 경제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상태로 치닫고 있다. 공정한 시장질서 속에서 공정한 경쟁이 보장될 때 비로소 자원과 기회 역량이 효율적으로 쓰인다. 그리고 참여하는 경제주체의 의욕이 자극돼야 최선의 결과를 빚어낼 수 있다.

성장은 강자에게 약자를 약탈하는 것을 허용한다거나, 또는 서민들에게 빚을 권장함으로써 억지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잠깐의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언 발에 오줌 누기처럼 경제환경을 악화시킬 뿐이다. 기회와 자원의 공평한 배분, 공정한 경쟁, 기여에 합당한 배분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경제 체질을 튼튼하게 하고, 장기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함께 잘사는 경제를 만드는 방법이다. 경제 정책의 목적은 ‘성장’이 아니라 ‘공정’이어야 한다.

재벌 횡포에 “이게 나라냐”고 항의하는 시민들:
광장의 수백만 촛불은 부정한 권력의 퇴진만을 외친 게 아니다. 촛불 민심 속에는 정권에 대한 분노만큼 한국 사회의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경제구조에 대한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공평한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고, 경쟁은 공정하지 않았다. 기여한 만큼 분배받지 못한 데 따른 분노 또한 크다.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격차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 경제문제의 핵심은 재벌이다. 혁명적 열기로 타오른 촛불광장에서 박근혜 퇴진, 새누리당 해체에 이어 시민들은 재벌 해체와 재벌총수 구속을 외쳤다. 재벌과 그들의 엄호 세력에게 “이제 그만 횡포를 멈추라”고 요구했다. 부패한 정치권력의 뿌리가 다름 아닌 재벌권력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구했다. 소수 특권층이 부와 권력을 독점한 나라가 아니라, 공평하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라고!

전 세계적으로 부의 편중과 양극화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각자도생하느라 현실을 외면하거나 도피하던 시민들의 분노가 조직되고 있다. 분노의 원인은 명확하다. 초국적 기업과 특정 소수가 엄청난 부와 기회를 한 손에 틀어쥐고 있다는 데 있다. 국가의 부는 늘었는데, 국민의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기회와 자원의 독점, 불공정한 경쟁 탓에 부가 정당하게 분배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우리 사회의 부를 모조리 빨아들이고 있는 재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청년들에게 ‘열정 페이’를 강요하고, 회사를 위해 일생을 바친 중년들에게 조기 퇴직과 임금 삭감을 강요한다. 애써 개발한 중소기업의 기술을 약삭빠르게 훔쳐서 성장 기회를 봉쇄하고 있다. 코 묻은 돈 뺏는 격으로 중소기업 납품업체가 어렵사리 생산성을 향상시키면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그 성과를 다 빼앗는다. 서민들의 삶터인 골목상권까지 침투해 중소자영업자를 무너뜨리고, 인건비 절감으로 더 많은 이윤을 얻겠다고 비정규직을 양산한다. 재벌은 우리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주범이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며 눈웃음치던 그들은 ‘또 하나의 공범’이었다. 국민들의 피 같은 노후자금이 재벌3세 편법승계에 쓰였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때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면서 이재용 부회장은 편법승계의 퍼즐을 한 단계 더 맞췄다. 정권이 재벌에게서 뇌물을 받고, 국민의 노후자금을 까먹으면서까지 재벌 편을 들어 세금 없이 재벌 상속하는 것을 도왔다. 국가는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수구 정권 10년에 국민들은 절망을 넘어 “이게 나라냐”고 분노하고 있다.

이제 정치권력은 경제권력의 하수인이 됐다. 소수 기득권을 위한 규칙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국민들은 새로운 규칙, 새로운 세상을 원한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간 카르텔을 깨야 한다. 국민이 맡긴 권력을 이용해 국민의 피와 땀을 빨아먹으며 카르텔을 유지하고 있는 범죄자들을 찾아내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불평등과 불공정을 용인하지 말고 엄격한 법 적용으로 재벌 체제를 해체해야 한다.

재벌기업 해체 아닌 재벌 체제의 해체:
재벌기업을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형식적으로 말하자면, 사유재산제도 속에서 재벌 대기업은 주주들의 것이다. 그러나 재벌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국민 모두의 것, 도로나 항구 또는 한국은행처럼 일종의 공공재와 유사한 속성을 지닌다. 해방 이후 온갖 특혜와 국민의 희생 속에서 성장해 온 재벌은 재벌가(家)의 노력만으로 성장한 게 아니다. 재벌, 즉 우리 사회의 대기업 집단은 국민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 놓은 국민 모두의 자산과 마찬가지다.

물론 재벌을 지배하는 재벌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재벌을 송두리째 없애버릴 수는 없다. 실질적으로 국민의 재산인 대기업을 소수의 지분이 일방적으로 과도하게 지배하는 지금의 재벌 체제를 정정하자는 얘기다. 재벌이 지금처럼 재벌가 소유물이 되는 것이 국민경제에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는 한진해운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허리띠를 졸라맨 국민을 뒤로하고 세계 수위의 해운사로 성장해봤자, 총수라 불리는 소수에 의해 무책임한 경영 판단이 이뤄지면 그동안 쌓아온 우리 국민의 노력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린다. 그렇다면 대기업들의 경쟁력은 유지하고 더 발전시키는 한편, 우리 국민과 경제를 이롭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정하게 경쟁하고, 기여만큼 배분받고:
처방은 의외로 간단하다. 재벌가의 비정상적인 지배구조를 바로잡으면 된다. 방법은 많다. 상속세를 정확하게 부과해 거둬들인 상속세로 공공 부문이 대기업 집단의 지분을 구입하거나, 연기금이 가지고 있는 대기업 지분을 활용하는 것이다. 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을 일종의 국부펀드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대기업 지배구조를 ‘공공화(公共化)’하려면 경영 내부구조를 바꿀 필요도 있다. 유럽은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이사 중에서 대개 3분의 1 또는 절반 이상이 노동자들로 선출된다. 기업 내부를 잘 아는 노동자가 기업경영에 참여하게 되면 이사회가 함부로 부당한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된다. 경영자와 노동자가 이익을 공유하게 하면 더욱 그럴 것이다. 당장 경영 참여가 어렵다면 이들이 경영진의 결정을 정기적으로 감독하는 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공공화하면 좋은 점이 많다. 해외의 투기적 금융자본의 먹잇감이 되기 어려워진다. 일명 ‘먹튀’를 하려고 해도 공공, 즉 국민과 나라가 뒤에 수호천사처럼 버티고 있으니 초국적 자본이라도 함부로 하기 어렵다. 또 재벌가가 일가친족에게 일감을 몰아주거나 재벌가만의 이익에 부합하는 경영 활동을 할 경우, 사전적으로 때로는 사후적으로 교정해 회사의 수익성과 경쟁력을 더 높일 수 있다. 납품 중소기업 하청업체에 대한 부당한 단가 후려치기나 범죄적 기술 탈취 등도 쉽지 않게 될 것이다. 부당 내부거래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고, 노동자들도 정당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대기업은 대기업다운 위신과 경쟁력을 확보하고, 성과를 빼앗기지 않게 된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생산성 향상에 힘쓰며 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기업에 기여한 만큼의 알맞은 대우를 받게 되어 의욕을 갖고 생산성 향상에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경제주체들 간에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경제, 모든 참여자가 열심히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경제의 틀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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