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보수 이재명
홍대선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진짜 보수 이재명
홍대선 외 지음
메디치미디어 / 2025년 5월 / 224쪽 / 18,000원
우리는 이미 이재명을 알고 있다: 실용적 결과주의자의 미래 설계 _홍대선
흙수저들이 세운 나라: 이재명은 1964년 경상북도 안동의 작은 산촌 마을에서 일곱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가난은 가족의 일상이었다. 어린 시절 이재명은 5킬로미터에 달하는 등굣길을 맨발로 뛰어가야 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유년기를 보낸 사람은 일찍 철이 든다. 이재명은 ‘왜 우리 가족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린 시절 가난을 겪은 것으로 이재명과 견줄 만한 정치인이 또 있다. 바로 박정희다. 집안이 너무나 빈한해 국민학교를 맨발로 다녔다는 노태우도 떠오른다. 노무현, 이명박의 처절한 성장기도 딸려 나온다. 꼭 대통령들뿐 아니라 국민 전체로 봐도 대한민국은 흙수저가 일으켜 세운 나라다.
이재명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의 가족은 경기도 성남으로 이주했다. 많은 산업화 세대에게 그랬듯이 이재명의 가족에게도 도시에서의 삶은 가혹했다. 이재명은 중학교 진학 대신 노동자의 길을 가야만 했다. 이재명은 13세의 나이에 성남 공단의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어려 정사원 노동자도 아닌 비공식적인 신분이었다. 일하던 중 프레스 기계에 왼쪽 팔이 끼이는 산업재해를 당해 신체적 장애를 갖게 되었다. 그 와중에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 후 전액 장학금과 월 20만 원 지원을 보장한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여 대학 4학년 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이재명과 박정희의 닮은꼴: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이재명은 판사나 검사가 아닌 변호사의 길을 선택해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 보호에 힘썼다. 특히 성남 지역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제공하며 시민들과의 접점을 넓혀갔다. 이러한 이력 때문에 그를 사회주의자라거나 좌파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재명은 약자로서 권익을 보호받지 못하며 자라났기에 과거의 자신과 같은 약자들을 지원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이게 어떻게 ‘빨갱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는가. 오히려 가난한 농군의 자식으로 자라나 문경보통학교 교사 시절 농민의 가난을 없애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방학과 휴일 때마다 제자들의 가정을 방문해 농촌 실태조사를 행한 박정희와 닮았다.
포퓰리즘?: 이재명의 정치적 여정은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본격화되었다. 비록 첫 도전에서는 낙선했지만 2010년 재도전에 성공하며 성남시장에 당선되었다. 시장 재임 기간에 그는 복지 확대와 행정 혁신을 통해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주력했다. 특히 청년 배당, 산후조리비 지원, 무상 교복 등 파격적인 복지 정책을 도입해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정책들은 당시 보수 진영으로부터 ‘포퓰리즘’이라고 규정당했지만, 그는 이를 ‘시스템 개혁’으로 규정하며 근거 없는 비난에 맞섰다.
2018년에는 경기도지사로 당선되어 더 큰 무대에서 행정 능력을 발휘했다. 도지사를 맡아 일하는 동안 그는 지역화폐 도입, 공공건설 원가 공개, 계곡 불법시설 정비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변화를 ‘실험’했다. 그의 모든 도전은 미래를 위한 실험이다. 그 미래란 ‘지속 가능한 사회’ 혹은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이다.
흔히 오해받지만 이재명은 분배주의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성장주의자도 아니다. 왜냐하면 둘 다이기 때문이다. 실용주의자 이재명으로서 어느 하나만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장 없는 분배는 불가능하다. 분배를 통한 터 닦기 없이 미래의 성장도 불가능하다. 최근 이재명이 성장주의를 이야기하는 모습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친기업적인 행보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성장이 필요한 때다. 그는 경제 성장이 민생 회복의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이재명은 비록 흙수저 출신이지만, 아니 흙수저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기 때문에 성장과 대기업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어린이가 어떻게 자라서 어른이 되었는지 잘 아는 것이다.
누가 대한민국을 재건할 수 있을까: 이재명은 가난한 시골 소년에서 시작해 도시에서의 고된 노동을 거쳐 성공한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실용주의와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책들은 그가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자임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미 이재명을 알고 있다. 이재명은 우리가 추억하는 진짜 보수 지도자의 ‘쓸모’를 가지고 있다.
이재명을 ‘진보’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가 기본소득을 말했고, 무상복지를 외쳤으며,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뿌리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쉬운 프레임은 그를 오독한다. 그는 복지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동시에 언제나 “돈 쓸 땐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포퓰리즘이 아니라 시스템을 주장하며, 단기적 인기보다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중시한다. 그는 복지주의자라기보다는 미래의 기획자라고 할 수 있다.
이재명은 성남시장 시절 “내가 시장이니까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시민이 나를 고용한 고용주니까 지갑의 용도를 시민이 정해야 한다”고 했다. 시장과 기업의 논리를 정확히 이해한 발언이다. 정치란 대의가 아니라 계약이고, 계약의 본질은 비용과 책임이다. 그의 정치 철학은 감성이 아니라 구조이고, 그 구조 안에서 돈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기획의 도구다. 이재명은 포퓰리스트라며 공격당할 사실을 뻔히 알고도 정책을 몰아붙였다. 자기 일에 진심이라는 뜻이다. 인기몰이용 선물을 뿌릴 거였으면 정말로 싼 값에 인기를 사들였을 것이다.
이재명의 쓸모: 이재명은 돈 버는 사람들의 적이었던 적이 없다 _서상윤, 홍대선
알아볼 필요가 있는 정치인: 포퓰리스트, 반기업·반시장주의자, 대책 없는 분배주의자, 나라 살림 거덜낼 사람, 심지어는 종북좌파까지…. 근거도 없이 이재명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다. 이재명은 재정이 파탄나 사실상 부도 직전에 몰린 성남시를 맡아 흑자 경영으로 전환했고, 경기도지사 시절에도 살림을 거덜내기는커녕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도움과 보탬이 되는 것을 늘 고민하며 도정을 운영했다.
이재명은 시장의 적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는 자신이 ‘친노동이지만 반기업은 아니다’라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는 노동자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제시하면서도 기업의 존속과 성장, 시장의 원리를 긍정한다. 그는 시장의 작동 원리를 부정한 적이 없다. 대신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시장이 지속 가능하려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지를 가장 집요하게 물었던 정치인이다.
기본소득, 재난지원금, 청년배당 등 그가 내놓은 정책은 ‘목소리 큰’ 반대 세력의 공격과 민주당의 허술한 홍보 탓에 대중에게 ‘퍼주기’라는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그러한 정책들이 등장한 배경은 정반대다. 이재명은 성장이 멈춘 시대에 ‘경제 순환’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본소득을 꺼내들었다. 그에게 기본소득은 단순한 분배 정책이 아니라 성장의 엔진을 다시 돌리기 위한 점화장치였다. 그는 기본소득을 ‘자유와 기회의 토대’로 정의하며, 일정 수준의 소득 보장을 통해 사람들에게 소비 여력을 회복시키고, 중소 상공인의 매출을 유지시켜 시장 자체를 다시 굴러가게 하려는 구상인 것이다.
이재명은 경제적으로 보수다. 이승만의 제1공화국 시절, 농지개혁을 통해 수많은 소작농이 자영농으로 변모했다. 농부들이 비로소 잉여생산물을 확보하고, 그렇게 남는 돈으로 공부시킨 자식 세대가 바로 산업화세대다. 그들이 박정희의 제3공화국에 이르러 팽창하기 시작한 산업 분야에 ‘산업역군’으로 투입되면서 생산과 소비의 주역이 되었다. 이재명은 드라마틱한 성공을 거둔 대한민국 경제사의 흐름을 이어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경제와 관련한 이재명의 모든 정책은 두 가지 단어로 설명 가능하다. ‘지속 가능성’ 그리고 ‘성장 가능성’이다.
이재명의 접근은 좌파의 전형적인 분배 지향적 관점과는 구별된다. 그는 ‘성장 없는 복지는 없다’는 명제를 반복했고, ‘복지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고 말했다. 그는 복지를 위한 복지를 말한 적이 없다. 어디까지나 시장이 유지되는 조건을 위해 복지와 소비의 기반을 유지하고자 했을 뿐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경제와 복지, 아니 그냥 간단히 말해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에 이렇게까지 깊게 접근한 정치인은 없다. 그의 2025년 슬로건인 ‘성장과 회복’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그런데 어쩌다 이재명은 ‘퍼주기’ 포퓰리스트가 된 걸까. 한국 정치가 여전히 1980년대의 문법으로 아군을 포장하고 적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적진에서는 이재명을 나라를 거덜낼 사회주의자라며 삿대질한다. 민주당은 여전히 가치 일변도로 그를 포장하려고 한다. 약자와 노동자, 민족주의자, 독립운동가의 편이라고만 한다. 그게 전부가 아닌데도 말이다. 이러한 관성이 수십 년 그대로 이어져오면서 이재명이 어떤 정치인인지 상대편은 물론 지지자들에게도 제대로 전달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는 굳이 ‘알아볼 필요가 있는’ 정치인이다.
‘진짜’ 성장주의자 이재명: “나는 시장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들고 싶다.”: 이재명은 반시장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자신을 ‘진보적 실용주의자’라고 불렀지만, 사실 그의 실용주의는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선을 가로지른다. 그는 세금을 늘리자는 진보의 방식에도, 세금을 줄이자는 보수의 방식에도 조건을 붙인다. 이재명은 섬뜩할 정도로 비이념적이어서, 나는 그의 사상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일 뿐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의 경제정책은 본질적으로 성장 지향적이다. 그가 경기도지사 시절 추진했던 ‘경기도형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내수 진작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했다. 이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 개발 논리와 맥이 닿아 있다. 소비 촉진을 통해 생산을 자극하고, 이를 통해 고용을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재명은 경기도지사 시절 ‘규제 샌드박스’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기업들의 혁신 활동을 지원했다.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신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이재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강조하면서도, 대기업에 대한 무조건적인 규제보다는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기업이 돈을 벌어야 일자리가 생기고 세금이 걷힌다.”
경기도지사 시절 이재명의 말이다. 이재명은 원래부터 친기업적인 정치인이었다. “세계 5강, 국민소득 5만 불, 주가 5,000 시대”를 주장하는 이재명은 경제에 관한 한 언제나 보수적인 성장주의자였다. 그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논하면서 경제·안보 분야에서는 ‘중도, 보수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발언까지 한 적이 있다. 실용주의자는 항상 현실적 결과를 위한 판단을 한다. 방향보다 방책, 이념보다 결과를 보는 태도. 이재명은 그 점에서 가장 이념으로부터 멀고, 가장 생활에 가까운 정치인이다.
이 책의 독자 중 많은 이들은 여전히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 “그래도 그는 기본소득을 주장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그는 민주당 사람이지 않는가?”질문에 답하려면 그가 왜 기본소득을 주장했고, 왜 민주당이라는 틀 안에서 활동했는지 봐야 한다. 기본소득은 그에게 있어 복지가 아니라 소비 기반 복원의 도구였고, 민주당은 그의 정치적 인큐베이터였을 뿐이다. 이재명은 오히려 당내 기득권과 끊임없이 갈등했고, 시장에 대해서 언제나 당보다 유연한 입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위의 질문에 대해 그의 답을 듣지도 않고 등을 돌려왔다. 이쯤 됐으면 답을 한 번 들어볼 차례다.
성공한 사람이 존경받는 나라: 상속세 정책에 있어 이재명만큼 실용적인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존부터 민주당이 상속세율 인상과 공제 축소를 주장한 것과 달리, 이재명은 “중소기업과 가업 승계에 있어서는 상속세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건전한 기업 생태계 유지와 일자리 보전을 위해 가업상속공제제도를 현실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라는 전통적 가치와 기업 경쟁력 유지라는 현실적 필요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실용주의적 태도다. “상속세 제도가 재벌의 부의 대물림을 막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과도한 상속세로 인해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거나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이재명의 입장을, 그의 말을 빌어 짧게 축약하면 다음과 같다.“감세가 아니다. 조세 정의의 회복이다.”
특히 상속 공제를 기존 5억 원에서 8억 원으로, 배우자 공제를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은 단순히 부자 감세가 아니다. 이는 오히려 중산층 보호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재명은 대한민국이라는, 멈추면 쓰러지는 자전거의 바퀴를 계속해서 굴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 그는 보수 진영이 자주 강조하는 ‘정상 과세’와 손을 맞잡는다. 세금은 정당하게 부과되어야 할 뿐 아니라, 예측 가능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납득 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이재명은 그 지점을 겨냥해 시장의 지속성을 위한 세제 조정을 꺼내 들었다. 그는 “과세표준 18억 원까지는 상속세를 면제해 집 한 채 소유자가 사망해도 상속세 때문에 집 팔고 떠나지 않게 하려 한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재명은 부자는 나쁘다고도, 착하면 가난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재명은 자산을 갖게 된 사람을 징벌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자산을 정당하게 축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과도한 세금으로 기회의 박탈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 기반을 설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성공한 사람이 존경받게 해야 나라가 건강하다. 지금은 잘된 사람을 처벌하자는 정서가 있다.”
성장이 있어야 분배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재명은 성장의 연료가 되는 자본에 ‘원래부터’ 친화적이었다. 그는 자본주의자이면서도 공산주의자라고 손가락질받았다. 그가 자본의 자유와 권리에 얼마나 천착하는지 알려주는 예는 차고 넘친다. 먼저 이재명은 증권거래세 폐지를 추진한다. 현재는 주식을 매도할 때 이익이 발생하는지와 상관없이 증권거래세가 기계적으로 부과된다. 증권거래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그의 공약은 일단 세금 부담을 완화한다. 더 나아가서는 단기매매를 포함한 거래 비용을 절감해 보다 많은 이들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국익과 국운을 지키는 사람, 진짜 보수주의자: 테러와 계엄 사이 이재명의 선택 _홍대선
대한민국의 첫 번째 막차: 선진국으로 가는 길: 한국은 선진국 진입의 ‘막차’를 아슬아슬하게 탄 나라다. 1950년대 한국 노동인구의 80% 이상이 농민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가난한 소작농이었다. 이승만 정권이 단행한 농지개혁 이후 자영농이 된 농민은 드디어 잉여생산물로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었다. 아들 하나라도 중고등학교를 졸업시키는 시대가 되었다. 그들은 학교라는 공장에서 산업전사가 될 준비를 마친 완제품으로 찍혀 나왔다. 그러나 산업의 규모를 키우지 않으면 그들을 받아낼 ‘산업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 양질의 직장이 쏟아져나오지 않는다면 예비 산업전사는 공급과잉 상태가 되어 한정된 농토에 갇히게 될 판이었다.
사실 한국의 사정은 굉장히 다급했다. 광복 직후 12세 이상 인구에서 무려 78%였던 문맹률을 4.1%로 떨어트리고 수많은 중고등학교 졸업자를 배출했어도, 젊은이들에게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각자의 가정과 국가 경제를 좀먹는 존재로 빠르게 전락했을 것이다. 한국의 산업화는 10년만 늦었어도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