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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중국에 묻는 네 가지 질문

노영민 지음 | 메디치미디어
2025 중국에 묻는 네 가지 질문

노영민 지음

메디치미디어 / 2025년 1월 / 256쪽 / 20,000원





1장 중국의 반패권주의는 유지되고 있는가?



만리장성은 중화사상의 울타리


광활한 중원에서 중국의 힘을 대표할 만한 역사 유산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만리장성을 꼽겠습니다. 만리장성에는 총연장 6,350km에 이르는 경이적인 규모에다, 진시황이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직후부터 명대에 이르기까지 근 2,000년 동안 개·보수와 연장을 거듭한 세월의 무게까지 온전히 더해져 있습니다. 최고의 문명국을 자처하며 한때는 세계 경제력의 1/3을 차지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국가 경쟁력을 갖췄던 중국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상징물이 바로 만리장성일 것입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만리장성의 존재가 역대 중국의 왕조 및 정부가 펼친 대외 정책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징표라고 생각합니다. 변방의 여러 민족을 정벌해 자국 영토로 편입시킬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졌던 시기에도 중국은 만리장성 밖의 땅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중원의 통일이라는 내부 패권의 확립이 더 중요한 관심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점은 영토 확장으로 바람 잘 날 없었던 고대 동서양의 제국이나 유목국가, 근대 이후 제국주의로 치달았던 서구의 경로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중국만의 역사적 경로였습니다. 한마디로 근대 이전의 중국은 하나의 완결된 배타적 세계로서 자신만의 고유한 역사를 만들어나갔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국제관계에 관한 한 중국사의 많은 부분은 ‘비패권적’ 경향을 보였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런 중국의 ‘비패권적 경향’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왕조 시대의 대외 정책은 주변국들과 ‘조공과 책봉’으로 맺어진 외교 관계였습니다. 주변국을 무력으로 병합하는 대신 상하 관계를 맺어 국가의 독립을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직접 통치하지는 않지만 형식적인 군신 관계를 맺어 세력권에 편입시키는 방식이었지요.

중국의 전통적 비패권적 외교 정책의 배경에는 주변국을 압도하는 국력에 기반한 ‘중화사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 즉 황제)가 직접 통치하는 나라로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상입니다. 이런 사상을 가진 중국인들에게 만리장성은 문명과 야만을 나누는 경계이자 자족적이고 자기 완결적인 중화 세계의 상징 그 자체였습니다.

중국 외교의 ‘비패권적’ 전통은 이어질까


역대 중국 외교의 비패권적 특징은 사회가 급격하게 변한 현대에 들어와서도 변함없이 이어졌습니다. 5,000년 중국 역사에서 과거의 낡은 유산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최초의 ‘무산자’의 권력을 표방한 신중국의 공산당 정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신중국도 외교 정책만큼은 고래의 ‘비패권적’ 전통을 출발선으로 삼았습니다. 공산당 정부는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반패권주의’라는 보다 확고한 외교 정책의 원칙을 정립했습니다.

특히 공산당 권력의 2인자인 저우언라이 총리가 1955년의 반둥회의에서 제3세계의 비동맹 노선을 주도했던 일은 신중국 외교 정책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두 축으로 급속히 재편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중국은 같은 사회주의권인 소련의 편에 서지 않음으로써 반패권주의의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신중국의 성립 초기, 거대 중국의 국가 전략은 생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소련으로부터 동유럽의 위성국가 정도의 대접을 받는 형편이었습니다. 게다가 미·소 초강대국의 각축은 냉전의 형태로 점점 가열되고 있었습니다.

‘심알동 광적량 불칭패(深?洞 廣積糧 不稱覇; 굴을 깊게 파고, 식량을 비축하며, 패권자라 칭하지 말라)’는 마오쩌둥 주석의 교시가 당시 중국의 상황을 잘 말해줍니다. 개혁·개방을 추진하던 1980년대에도 중국 외교의 방향은 ‘불칭패’의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1989년 덩샤오핑은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를 제창하면서 “100년간 이 기조를 유지하라”고 특별히 당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쩌민 주석의 3세대와 후진타오 주석의 4세대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덩샤오핑의 당부와는 달리 외교 노선이 공세적인 외형을 띠기 시작합니다. 그 출발은 1997년 장쩌민 국가주석이 천명한 ‘유소작위(有所作爲; 필요한 역할은 한다)’ 노선이었습니다. 뒤이은 후진타오 주석의 시기는 ‘화평굴기(和平?起; 평화롭게 우뚝 선다)’를 대외 전략의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이어서 시진핑 주석의 시대에 들어서는 대국굴기(大國?起; 큰 나라로 우뚝 선다)로 발전했습니다.

국제사회는 거대한 중국의 변신에 대해 불안과 우려의 시선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국제사회가 가진 이런 시선의 기저에는 중국의 급속한 부상에 대한 서방의 경계심이 깔려 있습니다. 특히 일부 서방 언론은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력을 배경으로 군사 대국화하여 세계의 패권을 도모하게 될 것이라는 ‘중국위협론’을 공공연히 퍼트리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불안감을 증폭시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이겠지요.

시진핑 주석은 2014년 3월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중국은 역사상 오랫동안 세계 최강국에 속했지만, 타국을 침략하거나 식민지로 만든 적이 없다”면서 ‘중국 위협론’이라는 색안경을 낀 서방의 공세를 반박했습니다. 이 같은 발언은 중국 대외 정책의 반패권주의 전통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그 함의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성장가도에 있는 중국 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국내외 환경이 필수적이고, 중국의 발전 경로가 국제 질서를 위협하는 방향이 아닌 호혜·상생의 길이 될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는 지금 중국이 반패권주의 전통을 실제로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회의를 나타내며 중국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번득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기저에는 ‘경제 공룡’ 중국의 부상에 초조해하는 서방의 견제 심리가 깔려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중국판 마셜플랜’인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지향점


물론 중국에 대한 서방의 의심을 확신으로 굳어지게 만드는 중국 내부의 정책적 요인이 없지 않습니다. 저는 그 요인을 ‘일대일로’, ‘중국제조 2025’, ‘전랑 외교’의 세 가지 정책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의 제안으로 시작된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중국 주도로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서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잇는 내륙 및 해상 경제 벨트를 구축하고자 하는 ‘현대판 실크로드 전략’입니다. 중국이 개발도상국에 자본을 투자해 대규모 사회 기반 시설을 짓거나 경제·외교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정책이란 점에서 ‘중국판 마셜 플랜’이라고도 불리지요.

2023년 현재 세계 150여 국이 참여한 가운데 총 9,620억 달러의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된 현재진행형 프로젝트입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국가들에는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다수의 국가가 포함됩니다. 일대일로가 사실상 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한 전 세계 대륙을 아우르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자리잡은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은 ‘일대일로’가 상호 교류와 협력을 통해 경제적 공영을 추구하는 구상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서구 세계는 이것이 대외 팽창을 위한 중국의 노림수라는 불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물론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한 이런 서방의 의구심과 불신은 팩트의 과장이나 왜곡에 근거한 경우가 많습니다. 주로 사업 초기에 드러났던 미숙한 사업 방식이 서방의 의구심과 공세를 불러일으킨 빌미가 되었던 셈입니다.

서방에서는 이런 사업 과정의 취약점을 파고들어 일대일로를 ‘부채의 함정(Debt Trap)’으로, 여기에 투자된 중국 자본을 ‘악덕 사채업자’로 폄하하면서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일대일로의 과도한 인프라 개발로 인해 상대국이 빚을 지고, 그 대가로 중국이 정치·안보적 이익을 얻어간다는 미국의 공세는 바로 이 지점을 조준하고 있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부채를 제공한 뒤, 상대국을 ‘부채의 함정’에 빠지게 해 사실상의 경제적 속국으로 만들려는 게 중국의 숨겨진 속셈이라는 공격입니다.

이런 서방의 악의적인 공격 논거로 흔히 거론되는 사례가 스리랑카의 디폴트 선언과 파키스탄의 국가 부도 위기, 앙골라의 산업 붕괴입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사례는 일면일 뿐, 많은 일대일로 사업이 순항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합니다. 현재 150여 개에 이르는 참가국 숫자와 세계 인구의 75%가 포함된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 12월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의 전략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기존 일대일로 사업의 중심이었던 차관을 통한 인프라 건설을 줄이는 대신, 유망한 현지 기업에 중국 기업이 직접 자본을 투자하도록 정책 기조를 바꾼 것입니다. 불꽃 뛰는 미·중 경제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새롭게 변신한 일대일로 정책이 공동 번영이라는 본래의 목표를 향해 순조롭게 나아갈지 지켜볼 일입니다.

미·중 경제 전쟁의 도화선이 된 ‘중국제조 2025’


중국 전통의 비패권주의에 대한 서방의 의구심을 유발한 두 번째 정책 요인은 ‘중국제조 2025’입니다. 사실 이 ‘중국제조 2025’가 중국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려 한다는 서구 세계의 우려와 견제 심리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가장 핵심적인 요인입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서방이 괜한 시비를 걸어온 것이라면, ‘중국제조 2025’는 중국에서 먼저 서방을 자극한 전략이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2015년 봄 중국 정부가 발표한 ‘중국제조 2025’는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던 중국 경제의 질적 성장을 위한 산업 전략입니다. 중국이 제조업을 4차 산업혁명의 첨단 기술과 결합해, 노동 집약적인 저부가가치 산업에서 기술 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중국제조 2025’ 전략의 핵심은 미래 성장 동력이 될 10대 첨단산업을 육성하고, 이를 통해 핵심 기술 및 기초 소재의 국산화율을 2025년까지 7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데 있었습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중국제조 2025’는 주권국가인 중국의 정당한 정책 추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을 국가 주도로 공세적으로 진행한다는 데 있습니다. 일례로 ‘중국제조 2025’ 전략 발표 당시, 반도체의 중국 자급률은 10%에 불과했습니다. 이 비율을 10년 만에 70%까지 올리려면,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적극적인 개입이 필수적입니다. 중국 정부는 실제 ‘중국제조 2025’ 전략에 입각해 자국 기업에는 각종 보조금과 혜택을 주며 지원하는 우대 정책을,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는 핵심 기술의 이전을 요구하는 규제 정책을 펴왔습니다. 중국의 이런 차별 정책은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재편된 오늘날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심각한 불공정 행위로 치부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중국이 자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중국제조 2025’를 밀어붙이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의 반발과 희생을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과 일본, EU 등이 반발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중국의 세계적 통신 장비 제조업체 화웨이는 역설적이게도 ‘중국제조 2025’의 최대 수혜자인 동시에 최고 피해자였습니다. 중국 정부의 정책에 발맞춘 공격적인 투자로 5G 시장을 선점했던 이 회사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첫 타깃으로 삼은 중국 기업이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2019년부터 미국 기업과 미국의 기술 및 장비를 사용하는 해외 반도체 기업들을 대상으로 화웨이에 대한 판매 금지 및 납품 제한 조치를 내린 바 있습니다. 명목은 국가 안보상의 위협이었지만, 실제로는 화웨이 관련사들의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미국 정부는 중국산 제품과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에 돌입하면서, 이 공격이 ‘중국제조 2025’ 정책을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렇듯 ‘중국제조 2025’는 그 반작용으로 미국의 무역 보복을 불러와 표류하고 있습니다. 핵심 사업의 하나였던 반도체 굴기에도 급제동이 걸렸습니다. 2020년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5.9%에 그쳤습니다. 당초 목표했던 40%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수치입니다.

그러나 미·중 충돌 요인을 ‘중국제조 2025’ 정책에서만 찾는 것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방향이 잘못됐으면 바로 잡으면 되고, 잘못이 있으면 고치면 되는 게 세상사의 이치입니다. 저는 중국이 그런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전랑(늑대전사) 외교’라는 공세적 외교 스타일의 부작용


2022년 연말 전임 왕이 외교부장의 뒤를 이어 주미 중국대사였던 친강이 외교부장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50대인 친강은 ‘중국 외교가의 총아’였지만, 임명 207일 만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해임되었습니다. 중국 외교가에서 친강은 이른바 ‘전랑(늑대전사) 외교’의 원조라 불리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외교부 대변인 시절부터 거칠고 직설적인 언사로 유명했습니다.

비록 단기간에 낙마하긴 했지만, 10년 만에 이뤄진 외교 수장의 교체를 외부에서는 중국이 ‘전랑 외교’의 강화에 나선 신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중국의 공격적인 외교 행보가 외부 세계에서는 일대일로 및 ‘중국제조 2025’와 겹쳐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 말은 ‘전랑 외교’가 유구한 비패권주의의 전통을 지닌 중국이 이제 패권 추구의 길로 들어섰다는 인식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늑대전사’라는 말에서 보듯, 전랑 외교는 점잖고 부드러운 외교 방식을 지양(止揚)하고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배경으로 경제 보복과 무력시위를 마다하지 않는 공세적인 외교 방식을 지향(志向)합니다. 관련국과의 갈등을 공격적이고 강경하게 처리하려는 시진핑 시대의 외교 전략인 셈이지요. 그 일선에 직설적인 화법과 과감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다수의 외교 전사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국의 전랑 외교의 실제 사례를 여러 차례 목도한 바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는 2016년 사드 사태로 홍역을 치른 바 있고, 이때 내려진 중국 정부의 한한령은 오래도록 잔명을 유지해왔습니다. 2020년 말에는 호주가 중국에 코로나 19의 기원 조사를 요구했다가, 호주산 석탄과 쇠고기, 와인 등 10여 개 제품의 수입을 제한당하는 보복 조치를 당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만 문제와 남중국해나 인도 접경 지역 등 영토 분쟁 지역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여전합니다.

국제 질서의 재편 과정에 선 중국과 미국의 선택


중국의 대외 정책 기조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2024년도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의 결정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시진핑 지도부는 미국과 서구 중심의 국제 질서가 쇠퇴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러시아, 브릭스, 상하이협력기구 및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와 중동 사태로 인해 국제 질서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으며, 미국 및 서구 중심의 기존 질서 변화를 추동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은 에너지 및 소비재 시장 확보의 차원에서 러시아 및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한편 2024년 11월, 미국의 제47대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와 공화당의 의회 석권은 미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미국 내 정치·경제 패러다임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하겠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지난 수십 년간 미국 경제와 정책을 지배해온 주요 이념이었지만, 트럼프 당선은 이를 재검토하고 수정하려는 미국 사회의 욕구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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