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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위기

백승욱 지음 | 생각의힘


연결된 위기

백승욱 지음

생각의힘 / 2023년 9월 / 416쪽 / 22,000원





프롤로그 - 위기는 연결되어 있다



심각한 국제정세


국제정세가 심상치 않다. 한국 사회가 심각한 여러 위협으로부터 비켜나 있던 시대가 끝나고 위기의 핵심 장소로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라는 방식으로 세계질서를 관리하면서도 열강 사이의 전쟁을 억제해온 얄타체제가 해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얄타체제가 무너지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이 갖는 함의는 우리 사회에도 분명하다. 먼 곳에서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우리와는 무관한 것으로,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각자의 일상을 이어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멀어 보이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국의 지정학적 위기와 연결되어 평온한 일상을 무너뜨리는 시작이 될는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국의 대만 점령, 나아가 한반도 핵위기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 어느 곳보다 한국이 이 얄타체제 해체가 촉발한 연결된 위기의 위협적 공간이 되고 있다.

이 책의 주장


이 책에서 강조하려는 주장을 먼저 간단하게 제시하고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 첫째, 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드러낸 세계적 동요를 ‘얄타체제의 해체’로 부를 것이다. 얄타체제는 2차 세계대전을 종결짓는 과정에서 미국의 루스벨트, 소련의 스탈린, 영국의 처칠이 1945년 크림반도의 얄타에 모여서 합의한 전후 질서의 기본 틀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대표되는 다자주의 구도를 전제로 하여 식민주의를 배격하고 독립국가의 발전주의적 길을 바탕으로 삼은 이 새로운 세계질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단순한 진영 대립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후 세계질서의 기본 틀인 얄타체제가 무너지고 있고 자칫 세계가 2차 세계대전 이전, 1차 세계대전 시대로 되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토 확장이나 경제적 이익을 위해 강대국 사이의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시대로 말이다.

둘째, 얄타체제의 동요와 해체는 동아시아 지정학적 질서에 심각한 위협을 가중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점령할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것과 맞물리며, 이는 또한 남한에 대한 북한의 핵도발 위협을 증폭시킨다. 세계질서의 동요가 한반도에 새로운 위협을 야기하는 이유는 동아시아 지정학의 급변 때문이고, 그중 중요한 요인은 중국의 위상 변화이다. 중국의 변화가 한반도에 미치는 함의는 대만과 관련해 동아시아에 새로운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고, 그와 맞물려 그간의 한반도 전쟁 억지 역할이 약화되고 북한의 핵위협이 커질 수 있는 배경이 된다는 점이다. 북한 또한 미국 본토 타격용 핵무기 개발을 통해 대미 협상력을 높이고 자국 안보를 유지하려는 수준을 넘어, 2021년 이후부터는 전술핵 개발을 통해 확전 역량을 키우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의 역사에 근거해 미래를 투사하고, ‘내가 알던 중국’, ‘내가 알던 북한’ 등의 단편적 경험이나 지식으로 현실의 급박한 변화를 무시하려는 태도는 제대로 된 대응을 가로막는다. 따라서 동아시아 지정학적 변동의 주요인으로서 시진핑 체제 이후의 중국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이와 연결 지어 북한의 전환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남한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왜 예전과 같은 관점에서 설명되기 어려운지, 남한 사회가 왜 예전과는 다른 심각한 군사적 위협에 노출되는지를 이해하려면 얄타체제의 해체라는 관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부터 중국을 거쳐 한반도까지 이어지는 위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반도 핵위기까지



얄타체제의 해체로 나아가는 세계


신냉전이라는 오독: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과 성격] 이 전쟁을 어떻게 볼지를 놓고 크게 세 가지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첫째로 미국 주도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동진’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미국 책임론, 둘째로 러시아의 무모한 영토주의적 팽창에 책임을 묻는 러시아 책임론, 셋째로 미국-서유럽과 러시아 쌍방의 책임을 함께 묻는 양비론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입장 차에 따라 전쟁의 해결책 또한 나뉘는데, 첫째 미국 책임론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 중지, 나토 팽창의 중단,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 중단,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영향 지역을 확대하고 점령지역의 독립성을 유지·인정하는 등의 내용을 포괄한다. 둘째 러시아 책임론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더욱 강력한 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 무기 지원을 바탕으로 전쟁 이전 상태로 러시아의 철군을 강제하는 것이 중요한 내용이 된다. 셋째 양비론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무기 지원을 중단하고 현 상태에서 즉각 휴전할 수 있도록 국제적 개입을 늘리는 것이 주요한 논점이 된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이 대립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현 세계정세를 ‘신냉전’이라고 규정하고 냉전의 선입견에 비추어 현 상황을 재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냉전’이라는 시각은 미중 무역 갈등에 이어진 미국(과 유럽) 대 러시아-중국의 대립을 보면서, 탈냉전 이후 세계가 다시 냉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체제와 이념 대립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참고로 러시아의 침공 직후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이 전쟁의 성격을 한층 확장해 향후 중국과의 대립까지 염두에 두고서 민주주의 대 독재라고 규정했는데, 이 또한 신냉전이라는 인식을 증폭하는 데 힘을 보탰다.

[‘신냉전’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초래된 세계질서의 변동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이 ‘신냉전’이라는 규정이 적절한지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 냉전의 진영 대립이 지금까지 계속된다는 관성적 전제는 국제정세의 새 변화를 포착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해보자. 첫째, 현재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냉(冷)전’이 아니라 폭격과 살상이 전개되는 ‘열(熱)전’이며, 이는 오히려 냉전의 전쟁 억제 기제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냉전 시기에도 서구의 냉전은 아시아의 열전과 결합되었지만, 과거 아시아의 열전이 냉전의 공고화로 가는 과정에 발생했던 것과 달리, 현재 마주한 혼란은 냉전의 공고화와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현재의 대립은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체제 대립이 아니다. 신냉전 류의 해석은 과거 체제 대립의 그림자를 불러냄으로써 핵심적 질문을 회피하고 특정 체제 우위론과 그에 대한 반박으로 논쟁을 끌고 갈 위험을 안고 있다. 또 현재의 대립은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의 대립도 아니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통합 때문에 초래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도 더는 자본주의 진영과 대립하는 사회주의 진영의 종주국이 아니며, 지금 대립이 그런 체제 대결 때문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셋째, 신냉전의 구도는 은연중에 민주주의 대 독재의 대립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나토 자체가 ‘독재’나 일부 극우 세력까지(튀르키예, 헝가리,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토에 가입한 나라의 위협이 모두 외부로부터만 오는 것도 아니다. 또 나토라는 배에 올라탄 국가들은 나토가 ‘민주주의 진영’이어서가 아니라 현실적·실용적 판단에서 이 선택을 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나토에 가입했다고 해서 모두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다.

넷째, 그래서 세계를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는 ‘신냉전’ 사고와 달리 현재 또 향후의 구도는 냉전 시기처럼 분명한 두 개의 진영 대립으로 전개되리라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상을 미국 대 러시아-중국의 두 축으로 나눈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강대국들 사이에서조차 모호한 ‘회색지대’가 광범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프랑스, 독일 등은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때문에서라도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대응하고 유럽과 기타 지역을 구분하려고 한다. 다섯째, 신냉전이라는 사고의 근원인 냉전 시기를 되돌아보더라도, 당시가 과연 실제 전쟁 중의 적대가 상시화한 세계였는지에 대해 다시금 근본적으로 질문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거를 현재의 시각으로 해석하기 쉽다. 이런 점에서 현재 우리가 냉전체제의 지속인 ‘신냉전’이 아니라, 그 냉전체제가 딛고 서 있던 세계질서의 기초 틀이 해체되는 과정에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야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강대국 중심 질서로의 회귀:
[강대국 중심의 대결 질서로 회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는 나토 동진을 넘어서는 근본적 쟁점이 있다. ‘나토 동진’이 문제이고 러시아에 대한 ‘정권 교체 위협’이 증가했다고 하더라도 나토에 가입한 것도 아니고 가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기 때문이다. 이번 침공은 그레나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 대한 과거 미국 주도의 개입전쟁이나 1970년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유사하게 주권 원리를 침해하는 전쟁이라는 점에서 연속성이 있지만, 그와 동시에 완전히 다른 측면이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바로 자신의 ‘영토적 온전성(territorial integrity)’을 이유로 전쟁을 개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배타적 영향력 행사의 공간인 ‘세력권’ 논리에서 더 나아가 영토 지배에 대한 주장을 2차 세계대전 이전 시기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질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주장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유엔총회와 안보리 중심으로 관리되어왔는데, 이 전쟁은 이런 질서가 깨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강대국’들은 직접적인 자국의 영토 확장은 암묵적·상호적으로 제약한다는 원칙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양상은 강대국들이 영토적 온전성에 집착하던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독일 팽창 시기 ‘레벤스라움’(Lebensraum, 생존공간으로 번역되며 국가와 민족의 생존과 발전에 필요한 공간적 영역을 뜻하는 용어로, 양차 대전 당시에 독일 등에서 식민지 확장을 뒷받침하는 개념으로 사용됨)의 그림자가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러시아의 비판적 지식인 알렉산더 부즈갈린도 우크라이나-러시아의 대립이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의 동일한 경제적 이해관계로부터 상이한 정치적 지향의 대립으로 갈라진다는 점에서 1차 세계대전 시기와 유사해 보이며, 규모가 작고 ‘소극(笑劇)’이라고 2015년에 강조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그 소극이 참담한 비극으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정당화에 동원된 논리가 19세기 말 20세기 초 영토 팽창의 논리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도 현 시기 위기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토 동진, 무능력하고 위험한 우크라이나 지도부, 자국 국민을 위협하는 신나치 세력의 등장을 이유로 점령 전쟁을 정당화하는 방식은 한 세기 전의 전형적인 강대국 팽창주의 주장이다. 이 논리를 19세기 말의 한반도에 적용해본다면, 이는 당시 ‘정한론’을 내세운 일본 팽창주의 세력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의 남진에 따라 일본이 갖게 된 국가 생존(주권선)에 대한 위협, 이를 제어할 수 없는 무능력한 조선 왕조와 신하들, 조선에 살고 있는 일본인의 신분 안전이라는 세 가지 명분을 내세워 조선을 병합했던 것이다. 이렇게 자국에 대한 위협이 존재한다는 근거로부터 선제적으로 영토 병합을 추진했던 것이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세계였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는 이를 최대한 규제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차 세계대전 이전 후발 강대국이 영토적 온전성을 추구하던 시대에나 있을 법한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대결의 시대가 된다면 위협에서 벗어나 생존할 수 있는 것은 ‘대국’ 규모의 핵보유 국가들과 유럽-나토로 결합한 제국적 규모의 준연방적 기구에 속한 지역뿐이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를 단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지역분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미국과 나토 주도로 진행된 주권침해적 전쟁이 주로 세계체계 주변부의 위협적 세력에 대해 전개되었다면, 이번 전쟁은 바로 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긴밀하게 통합된 중심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더욱이 그 세계경제 질서 자체에 대해 도전하거나 이탈하면서 촉발된 것도 아니라, 그 질서에서 좀 더 안정적인 큰 몫을 차지하고자 하는 경합이 지속되면서 발생한 것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을 통해 유럽 경제에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으며,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은 이 때문에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할 수 있다고 보고 경제통합을 강화해왔다. 그런데도 전쟁은 발발했다. 그런 점에서 이런 국제정세를 두 체제 사이의 ‘외적 진영 대립’의 외양을 띠던 냉전 시대의 구도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영토적 온전성을 추구하며 세계질서를 흔드는 상황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태도와 유사한 입장을 대만에 대한 중국의 태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급박한 국제정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민경제를 단위로 한 발전주의 시대가 종식되고 금융세계화에 의해 추동되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들어섰으며, 이 신자유주의가 세계적 통합을 강화하는 대가로 개별 국민국가의 통합과 문제해결 역량을 상당히 손상시켰다는 점부터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세계체계 외곽으로부터의 국가 간 체계의 균열은 지난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드러난 바 있고(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수단,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 등), 이제는 질서의 수립자들인 중심부로 균열이 확산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영토적 온전성’ 문제를 놓고 얄타체제의 수립자들 사이에 균열이 생겼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균열에서 나아가 해체로 이어질 수 있는 현재의 위기는 상당히 근본적 의미의 위기일 수 있는데, 이는 “자유주의적 세계질서 자체를 뒷받침하는 논리에 대한 의문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의 헤게모니적 팽창처럼 보이는 이 ‘신냉전’적 현실은 오히려 자유주의 헤게모니 쇠퇴와 ‘보호주의 진영화’의 현실일 수도 있다.



다시 보는 얄타체제의 형성과 동아시아



루스벨트의 새로운 자유주의 구상 - 단일 세계주의라는 잊힌 출발점
진영론과는 다른 단일 세계주의라는 얄타구상: 현 정세가 얄타체제의 동요를 드러내고 있다면, 과연 그 얄타체제란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얄타체제의 형성기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전후의 세계질서를 냉전이라는 단순 구도로만 보는 인식에서 우선 벗어나야 하고, 이 단순 구도를 벗어나려면 냉전에 의한 세계 분할의 기본 틀로 알려져 있는 ‘얄타체제’가 실제로 진영 대립을 기반으로 설계된 것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얄타체제를 구상하던 시기와 그 이후 냉전이 공고화되던 시기를 구분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냉전’이라는 구도 아래에서도 미국과 소련은 외형적으로는 대립하면서도 사실 현실적으로는 공조하지 않았던가? 그래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얄타체제의 동요에 대해서도 ‘신냉전’식 설명과는 다른 접근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점을 살펴보기 위해 여기에서는 강대국 주도의 유엔 안보리와 냉전의 세력권 형성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통상적인 얄타체제와 구분해 ‘얄타구상’을 ‘단일 세계주의(One Worldism)’라는 관점에서 논의해보려 한다. 얄타체제는 당연히 얄타구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여러 복잡한 국제정세의 변화를 반영하고 굴절되면서, 최초의 구상대로 귀결되지는 않았다. 얄타협정으로부터 냉전의 공고화로 가는 길은 루스벨트의 ‘단일 세계주의’가 두 개의 진영을 분리하는 트루먼의 ‘자유세계주의’(두 세계주의)로 전환되고 이를 통해 냉전이 제도화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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