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불길, 신냉전이 온다
이언 윌리엄스 지음 | 반니
용의 불길, 신냉전이 온다
이언 윌리엄스 지음
반니 / 2023년 2월 / 440쪽 / 20,000원
타이완해협 -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타이완이 지배하는 작은 섬 샤오진먼의 바닷가에는 적군이 상륙하지 못하게 막으려고 박아둔 쇠말뚝이 녹슬고 따개비에 뒤덮인 채 줄줄이 늘어서 있다. 바다 쪽으로 비스듬히 박힌 쇠말뚝이 가리키는 곳은 썰물 때 겨우 3km 거리인 중국 해안이다. 1958년, 전쟁사학자들이 치열하기 그지없는 대규모 포격전으로 손꼽는 진먼 포격전이 바로 이곳 샤오진먼에서 벌어졌다. 그해 8월 23일, 중국군이 진먼을 ‘해방’하겠다며 섬을 봉쇄한 뒤 44일 동안 포탄을 무려 47만 발 넘게 퍼부었다. 이 기습공격이 타이완 침공에 앞선 사전 단계일까 염려한 미국이 엄청난 무력시위로 맞대응했고, 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가 ‘대량 보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바다에서는 미국 전함이 타이완해협을 가로지르는 타이완군 보급선을 호위했고, 하늘에서는 미국 공군이 타이완의 제공권 장악을 도왔다. 급기야 핵무기를 사용할 계획까지 나왔다. 다행히 중국군의 탄약이 동난 덕분에 진먼 포격전은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 뒤 양측이 서로 하루걸러 선전물 폭탄을 퍼붓는 희한한 일상이 자리 잡았고, 이 비공식 합의가 20년 동안 이어졌다.
진먼은 이미 1954년~1955년에도 중국과 대치했다. 이후 중국과 타이완 사이에 직항로가 열린 2008년부터 중국 정부는 진먼에 여행객을 쏟아붓는 정책을 펼쳤다. 그 뒤 이 기이하고 작은 타이완 기지에 관광객이 떼로 몰려왔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관광이 중단된 2020년 전까지 연락선이 반 시간 거리인 진먼과 샤먼을 날마다 44회씩 오갔다. 관광객들은 진먼 시내의 좁은 거리를 거닐고, 옛날 요새를 꼼꼼히 둘러보고, 고배율 망원경으로 중국 쪽을 찬찬히 살펴보고, 해무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이들이 진먼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중국의 ‘애국 교육’과 정치 선전이 주장하는 핵심 원칙에 따르면 타이완은 중국에서 이탈한 타이완성, 즉 중국 영토다. 그렇게 따지면 진먼은 푸젠성에 속하니, 머잖아 중국이 변절자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본토로 송환할 것이다.
한편 1996년은 타이완뿐 아니라 중국, 미국, 타이완해협 주변의 복잡한 관계에 분수령이 된 해였다. 그해 타이완은 처음으로 총통 직접선거를 치렀고, 이 선거를 계기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신흥 민주국가로 인정받는 길로 들어섰다. 중국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셈으로 타이완 가까이에 미사일을 쏘고 군사훈련을 진행했고, 이에 질세라 미국도 두 항모전단을 파견해 군사력을 과시했다. 중국의 으름장은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다만 방향이 반대였다. 중국공산당이 질색한 후보의 지지율이 오히려 올라갔다. 그런데 이 경험이 중국이 군사력을 빠르게 확장하고 현대화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1996년 당선자는 타이완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인정받는 리덩후이였다. 그는 타이완이 중국과 별개인 정체성을 기르도록 애썼고, 그만큼 중국이 질색하는 인물이 되었다. 리덩후이는 타이완이 독립을 공식 선언해 베이징의 적의를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오랫동안 유지했지만, 말년에는 독립을 강하게 옹호했다. 타이완이 이미 주권국가라고 봤기 때문인데, 타이완인 사이에는 이런 견해가 흔하다. 타이완을 둘러싼 두루뭉술한 임시방편의 토대는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하나의 중국 정책’이다. 모든 관계자가 지지했다고 할 만하지만, ‘하나의 중국’은 정책이라기보다 서로 다르게 해석한 협정에 가까웠다. 그 바람에 여러 해에 걸쳐 용어가 크게 왜곡되고 혼동이 커졌다. 이 정책의 근본 개념은 중국은 하나뿐이고 타이완은 중국에 속한다는 것이다. 베이징과 워싱턴이 처음으로 하나의 중국에 동의했을 1972년에는 딱히 모호한 구석이 없었다. 당시에는 양안 모두 자기네 정부가 중국 전역을 지배해 마땅한 정통 정부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중국 정책은 ‘하나의 중국’이 실제로 무슨 뜻이냐는 물음을 외면해 통일의 시기, 방식과 관련한 세부 논의가 모두 빠져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묻는다. 처음 전제했던 사항이 이제는 대부분 유효하지 않으니 그 목표가 더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거나 실현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혹시 처음부터 바람직하지도 않고 실현할 수도 없는 목표가 아니었느냐고. 이후 양안은 점점 멀어졌다. 민주국가 타이완의 국민 대다수는 자신을 중국인으로 여기지 않고, 시진핑이 고삐를 죄는 디스토피아 국가와 정치적으로 엮이지 않기를 바란다.
두 국면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거의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하나는 타이완에서 민주주의가 꽃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진핑이 중국에서 부채질한 민족주의가 맹목적 애국주의로 흘러 타이완 ‘수복’을 중국을 정의하는 원칙으로 본 것이다. 양안은 급격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타이완에서는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성장한 경제를 발판 삼아 민주주의와 다양성이 뚜렷한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타이완은 아시아에서 자유주의가 가장 발달한 곳이자 생활수준이 세계 최상위권인 곳이다.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도 부유해졌지만, 공산당을 비판하면 누구든 나락에 떨어지는 어둡고 위험한 곳이 되었다. 마오쩌둥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올라선 시진핑은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을뿐더러 신장 지역 위구르족을 탄압하는 데서 보듯이 중국 안에서는 다른 문화 정체성이나 민족 정체성을 용인하지 않는다. 시진핑도 첨단기술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세상이 지금껏 본 적 없는 감시 국가를 구축한 시진핑에게는 통치를 뒷받침할 수단인 첨단기술이 중요하다.
중국이 민주주의를 꽃피운 타이완과 통합하려면 2,300만 타이완인에게 양안 통합이 이익이라고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시진핑은 그동안 통합 상대로 영 마땅치 않은 모습을 보였다. 지금껏 시진핑이 보인 행동 탓에 타이완이 가까운 시일 안에 국민의 민주적 뜻에 따라 중국과 통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시진핑에게 타이완은 위협이다. 타이완이 지금의 중국을 대체할 대안, 즉 중국과 경쟁하는 가치관을 구현한 곳이자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미래를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과거 냉전 기간에는 타이완이 서베를린에 자주 비유되었고, 타이완을 한때 장벽이 쳐졌던 서베를린만큼이나 진지하게 방어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중국이 타이완을 기습한다면 영토 장악을 뛰어넘는 영향을 미칠 것이고, 타이완이 구현한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에는 도전장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실용주의자인 덩샤오핑은 타이완을 미래 세대가 대처할 수 있는 문제로 보고 경제발전에 집중했다. 덩샤오핑의 뒤를 이은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타이완에 발언 수위는 높였어도 타이완을 위협할 군사력은 쥐지 못했다. 하지만 시진핑은 타이완을 위협할 수단과 이념을 모두 손에 쥐었다. 시진핑이 내세운 ‘중국몽’은 역사에서 비롯한 불만과 중화민족 우월주의를 바탕으로 민족의 부흥을 이루겠다는 꿈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는 현대 타이완의 특징인 복잡한 정체성 따위나 주권, 통치권 같은 상충하는 개념이 끼어들 틈이 없다. 타이완 ‘수복’은 시진핑의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중국은 오랫동안 타이완에 강압과 설득을 결합한 당근과 채찍 정책을 펼쳤다. 진먼섬이 이를 잘 보여준다. 중국은 경제, 문화, 사회 분야에서 타이완과 결속을 다지려 노력하는 중에도 틈틈이 타이완을 위협했다. 다시 말하면, 타이완 사람들의 마음과 지갑에 호소하면서도 타이완이 중국에 흡수되기를 공식적으로 거부한다면 끔찍한 결과를 맞으리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당근도 채찍도 효과가 없자, 시진핑은 강압 쪽으로 확고하게 방향을 틀었다. 중국은 타이완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 했고, 타이완을 더 큰 목소리로 더 거칠게 겁박했다. 타이완이 중국 영토라는 주장을 따르지 않을 때는 국가와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유명인사에게도 으름장을 놓았다. 중국공산당은 타이완을 상대로 군사력을 과시하고 거친 표현을 쏟아내면서도 ‘회색지대 분쟁’ 전략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이 전략은 경제 강압, 사이버 공격, 허위 정보, 영향력 행사를 포함해 다양한 형식을 띤다. 중국이 전 세계에서 자국의 이익을 늘리려 하면서 지구 곳곳에서 중국을 상대하는 사람들이 이 수단에 갈수록 길들고 있다. 중국의 앞마당 남중국해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북극부터 디지털세계까지 - 중국의 신냉전 전선세계에서 가장 큰 섬 그린란드의 남쪽 끝에 자리 잡은 나사크는 눈과 얼음 때문에 날씨가 궂은 겨울에는 개 썰매가 가장 좋은 이동 수단이다. 그런데 최근 이곳 축구장에 많은 헬리콥터가 이착륙하고 있다. 나사크에 새 역할이 생겼기 때문이고, 이제 나사크는 중국과 서방의 지정학적 화약고가 되었다. 나사크에 있는 쿠아너수이트산은 미개발 희토류 매장량이 많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곳이다. 희토류는 성질이 비슷한 17가지 광물로, 자성과 전도성을 띠어 현대의 디지털 생활에 거의 빠짐없이 다양하게 활용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의료기기, 충전식 배터리, 자석부터 미사일 유도장치, 전투기, 최신 무기까지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 조금씩은 사용되기 때문에 현대의 전자산업에 무척 중요한 자원이다. 친환경 에너지를 주도하는 기술도 희토류가 있어야 가능하다.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우려가 커지고 여러 나라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 하므로 앞으로 희토류 수요가 치솟는 것은 정해진 일이다.
그런데 중국은 희토류 시장의 지배자다. 비용과 오염 부담이 큰 희토류 채굴 시장과 가공 시장을 무려 80%와 90%씩 차지하고, 갈수록 그 힘을 더 서슴없이 사용하고 있다. 2010년에는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제한했다. 동중국해의 영토분쟁 지역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해상보안청 순찰선이 충돌하자 나온 조처였다. 2019년에는 미국과 벌인 무역전쟁에서 희토류를 무기로 삼겠다고 위협했다. 2021년 초에는 ‘국가안보 보호’를 위한 수출 규제 대상에 희토류를 추가할지 검토했다. 중국이 희토류 시장을 장악한 토대는 공격적인 산업정책이다. 중국은 막대한 보조금과 보호정책으로 자국의 관련 기업을 지원하고 화학약품으로 희토류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독성물질의 환경오염을 용인했다. 다행히 희토류는 그리 희소하지 않다. 알려진 바로는 중국,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베트남, 인도, 미국에 상당히 많은 희토류가 묻혀 있다. 그린란드도 빼놓을 수 없는데, 한 추산에 따르면 세계 가채광량 4분의 1이 그린란드에 매장되어 있다. 그린란드는 중요한 자원이 풍부한 땅을 서방 민주국가가 방치한 사례다. 미국, EU, 덴마크는 북극의 외딴 구석이지만 아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인 땅에서 중국에 선수를 빼앗겼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런데 중국이 미래 기술에 중요한 공급망을 장악하는 동안 서방이 스스로 구경꾼이 되기를 자처한 사례는 그린란드만이 아니다.
재충전할 수 있는 리튬 배터리는 ‘청정에너지’의 필수 요소인데, 휴대전화와 노트북 같은 가전제품은 물론 전기자동차에도 전력을 공급한다. 따라서 리튬 배터리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는데, 이 시장도 중국의 손아귀에 있다. 한 추산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첨단 배터리용 원자재의 생산량 80%를 중국 기업들이 차지했다. 중국 기업들은 희토류, 리튬, 흑연, 망간, 니켈, 코발트를 포함해 첨단 배터리 제조에 매우 중요한 광물 대다수를 정제·가공한다. 중국은 세계 곳곳에서 리튬 광산도 사들였고, 세계 리튬 공급량의 60%를 정제한다. 망간도 채굴량에서는 6%를 차지할 뿐이지만 정제량은 93%를 차지한다. 세계 곳곳에 골고루 분포하는 니켈도 화학 처리는 중국이 3분의 2를 장악하고 있다. 앞으로는 주요 광물을 확보해 안정되게 공급하는 능력, 그런 공급망을 통제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희토류와 배터리용 니켈의 공급이 빠듯하리라고 예측한다. 또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줄이겠다는 기후변화 목표에 맞춰 에너지를 전환한다면 기존 광산과 개발 중인 광산의 예상 공급량으로 충족할 수 있는 수요는 리튬과 코발트는 절반에 그칠 것으로 추산한다.
한편 시진핑이 추구하는 ‘실크로드’ 가운데 흥미로우면서 중국이 가장 은밀하게 장악한 영역은 디지털 실크로드다. 일대일로의 다른 요소를 갈수록 탄탄히 뒷받침하는 디지털 실크로드는 중국공산당의 야심이 얼마나 크고 본질이 무엇인지 생생히 보여준다. 서방이 오랫동안 무시했으나 이제 ‘중국의 두 번째 대륙’이라 불리는 아프리카를 예로 들어보자. 중국은 아프리카 최대의 투자자이자 교역국이자 원조국이다. 경제 의존도가 이처럼 큰 탓에 중국의 사이버 간첩들이 아프리카 55개국을 대표하는 아프리카연합(AU) 본사에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무려 5년 동안 자료를 훔쳐낸 사실이 밝혀졌을 때도 AU가 이의를 제기하기는커녕 쉬쉬하기 바빴다. AU는 후원자인 중국에 항의할 여력이 없었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본사 건물도 중국이 건설해 기증한 것이다. 중국은 이 건물의 컴퓨터시스템에 백도어를 설치했다. AU 본사 말고도 아프리카 대륙 곳곳의 수많은 의회 건물과 공공건물이 중국이 기증한 것이다. 통신 기반시설도 대부분 중국의 거대 통신기업 화웨이와 중싱(ZTE) 두 곳이 구축했다. (그래서 ‘디지털 실크로드’라고 부른다.) 통신망뿐이 아니다. 화웨이는 스마트폰, 컴퓨터, 다양한 감시 장비를 공급한다. 화웨이 제품은 값싸면서도 튼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광산업체와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에서 거의 무제한으로 판매 지원금을 받는다. 디지털 실크로드와 관련해 중국이 현재 개발 중인 다른 요소는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디지털화폐인 디지털 위안화다. 디지털 위안화는 여러모로 궁극의 감시 수단이다. 개인의 모든 거래 내용, 달리 말해 누가 어디서 무엇을 얼마에 얼마만큼 사고파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디지털 위안화를 중국이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수단으로 본다. 일대일로로 형성된 중국 의존국에서는 디지털 위안화 사용이 중국과 거래하는 조건이 될 것이다. 중국은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 때 관광객과 참가 선수들에게 디지털 위안화 사용을 유도하려고 행사에 앞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디지털화폐와 더불어, 중국은 신생 기술의 보안과 상호 운용성을 결정할 중요한 국제 기술 표준을 선점하는 데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통신망의 기술 규칙인 표준은 엄청난 힘과 영향력의 원천이다. 중국은 기술 표준을 제정하는 데 관여하는 200개 남짓한 기구와 단체의 토론회에 매우 활발히 참가한다. 이를테면 2016년~2019년에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제출된 얼굴 인식 기술 표준안 20건이 모두 중국에서 나왔고, 대부분 기록된 영상과 음성을 저장하고 분석하는 방법이었다. 국제 표준은 의무 사항이 아니지만, 중국의 핵심 시장인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의 개발도상국들이 대체로 이런 표준을 채택하는데, 다른 나라가 중국의 기술 표준을 채택하면 중국은 기술과 상업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설 수 있다. 그런데 실제 효과는 그보다 훨씬 더 크다. 기술은 중립적이기 어렵다. 같은 기술이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목적에 사용될 수 있다. 표준은 정치와 경제, 더 넓게는 도덕과 윤리의 가치관을 구현한다. 이를테면 인권단체들은 ITU가 얼굴 인식 표준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사생활 보호나 표현의 자유에 어긋나는 규칙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안전장치를 도입할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항의했다.
중국은 늘어나는 해외 자산과 수익을 보호할 방법을 더욱 열심히 찾고 있다. 그중 하나는 중국의 안보 역량을 키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외에 기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2022년 4월, 중국이 태평양에 자리 잡은 솔로몬 제도와 안보협정을 맺었다. 솔로몬 제도에서 “중국 인력과 주요 사업시설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목적을 내세운 협정이지만, 이를 위해 중국이 군, 경찰, 무장 요원을 파견할 수 있고 때에 따라 “해군 함정이 기항”할 수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미국이 반발했지만, 중국이 태평양과 그 너머에서 미국의 군사 지배력에 도전하는 시도는 이 협정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다. 한편 지리경제학은 격렬한 군사 충돌에 이르지 않고 다양한 강압 수단을 사용하는 전쟁의 한 영역으로 평가받는다. 사이버 무기도 그런 수단 중 하나다. 중국은 지금껏 오랫동안 사이버 정탐 활동에 뛰어난 역량을 보였고 영역도 넓혔다. 사이버공간의 가장 어두운 구석으로 역량을 넓혀 온라인 허위 정보를 기꺼이 이용할 뿐만 아니라 필요할 때는 사이버 범죄자들과 협력하고 사보타주로 발을 넓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