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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링허우

양칭샹 지음 | 미래의창



바링허우,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자본주의를 살아가다

양칭샹 지음

미래의창 / 2017년 8월 / 311쪽 / 14,000원





바링허우, 어찌할 것인가?



실패의 느낌: 1980년대 영화 〈평범한 세계〉에 등장하는 쑨샤오핑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지만 자신의 노동에 의지하여 존엄을 회복하고 사회적인 성공을 거둔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당대 개혁에 대한 낙관적인 생각을 잘 담아낸 작품이다. 오늘날 우리는 쑨샤오핑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 더 이상 올라갈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본이 이들의 성장에 불리한 방식으로 분배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3년에 출간된 중편소설 『투즈챵의 개인적 비극』에서 가난한 집안 출신인 바링허우 청년 투즈챵은 자발적 노력을 통해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이를 운명의 비약적 발전으로 여길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자신은 이제 인생의 새로운 길을 가게 될 것이며 성공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의 마음은 삶에 대한 신자유주의식 감사로 가득 찬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 실제로 그의 삶은 처음부터 상대적으로 고정적이고 정형화된 사회 질서 안에 있었다. 투즈챵은 엄청난 인내심과 자기 학대에 가까운 ‘개인적 분투’의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한 달 생활비 지출 명세는 다음과 같았다. ‘집 월세 및 전화, 수도료: 140위안(약 25,000원) / 식비: 300위안(약 50,000원) / 교통비 및 통신비: 120위안(약 20,000원) / 생활 잡비: 40위안(약 7,000원) / 계절에 따른 의복 및 신발 구입: 50위안(약 8,000원) / 총계: 650위안(약 11만 원)’

이렇게 근근이 생활해도 실패를 피할 수 없었다. 연애도 할 수 없었고 안정된 직업과 수입도 보장되지 않았다. 기본적인 생활 수준과 의료 혜택도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불치병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투즈챵은 하는 수 없이 ‘본인에게 죄를 묻는 방식’으로 곤혹스러운 자신의 처지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내게 이 세상은 어디가 잘못되어 있는 것일까? 어디가 왜곡되어 있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나의 원죄일까? 내게 죄가 있다면 그게 도대체 무엇일까? 산에서 태어난 것이 죄일까?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것이 죄일까? 이 세상에 의지하고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 죄일까? 설마 이런 것들이 나의 원죄요, 고통이란 말인가?’ 이런 투즈챵의 모습은 현재 중국 빈민층 청년들이 마주한 운명의 축소판이자 은유가 아닐 수 없다.

“내 아버지는 OOO이다.”라는 표현이 최근 여러 매체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 자본과 권력의 독점이 이미 중국 사회의 일상적인 모습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즈챵처럼 선재자본이 없는 사람들의 실패는 거의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절대다수의 실패는 소수의 ‘성공’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공을 진짜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실패’는 보다 복잡한 본질을 갖는 게 아닐까?

개인적 실패의 느낌은 강렬하고 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수반한다. 하지만 우리는 개인에게서 실패의 원인을 찾을 수 없다. 사회가 모든 것을 관리하려고 시도할 때 상황은 오히려 더 난감한 상태로 빠져든다. ‘실패’와 ‘실패자’를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실패자들은 극단적인 절망과 오갈 데 없는 두려움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패의 원인을 사회 또는 타자에게 전가하게 된다. 즉, 실패의 느낌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실패의 본질은 상호작용 속에서 생성된다. 실패는 이렇듯 이미 개인의 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일이 되었다. 오늘날 중국 젊은이들에게 드리운 실패의 그림자는 너무 커서 이미 정상적인 가치 기준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어려울 지경이다.

2010년 대단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연애 프로그램 〈진심이 아니면 방해하지 마세요〉에서 결혼은 이미 노골적인 상품의 교환으로 변질되어 있다. 집과 자동차, 수입이 한 사람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 것이다. 몸을 상품화하여 가장 좋은 기회에 자신을 파는 것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젊은이들의 지극히 솔직한 생각이었다. 높은 도덕적 기준을 앞세워 이런 물질만능주의적 타락을 지적하는 것은 이미 지나치게 단순화한 접근으로 매도된다. 사회가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과 발전을 고무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젊은이들이 몸의 상품화로 이익을 얻는 것은 부득이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개혁개방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의 역사적 기술에 따르면, 건강한 몸은 줄곧 개혁자들이 갖춰야 할 자랑스러운 자본으로 여겨졌다. 예컨대 장편소설 『신성』의 리샹난이나 영화 〈평범한 세계〉의 쑨샤오핑 등은 하나같이 신체적ㆍ정신적 힘을 발휘하여 중국 경제ㆍ사회의 발전을 추진하는 주역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렇듯 한 세대 사람들의 긍정적인 사고에 기여했던 몸이 불과 수십 년 뒤에는 돈으로만 평가받는 상품이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몸은 더 이상 상상과 창조, 발전이 아닌 소비와 교환, 향락에만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진보일까, 아니면 실패일까?

현재 베이징과 상하이, 선전 등 대도시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젊은이들은 거대한 성공의 환호성 속에 시대적 고통이 담겨 있음을 실증하고 있다. 이 고통 가운데는 견딜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의 것들도 있다. 개인이 본인의 실패를 전적으로 사회적인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사회 역시 개인의 실패를 완전히 각 개인의 탓으로만 돌려서도 안 된다.

2008년의 나는 어떻게 사회와 국가에 대한 상상과 나를 일치시킬 수 있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당시 나는 1년에 750위안만 내면 되는 학생 아파트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학습과 업무에 필요한 자원을 누렸다. 다소 누추하긴 했지만 안정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2009년 6월부터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녀야 하는 생활이 시작되면서 스스로 유기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감정이 실패의 느낌과 뒤얽히자, 나 자신과 나처럼 살고 있는 보다 많은 젊은이를 위해 역사의 제 위치를 찾아야 할 때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개인으로서의 나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나의 실패는 계산에 넣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세대 전체가 실패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면 우리는 실패자로서 어떤 자각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실패 속에서 뭔가를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바링허우들에게는 보편적인 철학의 문제라기보다 역사의 문제에 가깝다. 이는 바링허우들이 처음부터 자신들의 역사를 점검하고 그 기원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원은 생리적인 사실인 동시에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생리적인 사실은 절대 다수 바링허우들의 부모가 노동자와 농민이라는 두 가지 계급에 속한다는 것이다. 10년 전이라면 강조할 필요가 없었던 이 문제가 오늘날에는 특별히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30년 동안 진행된 시장자본주의의 발전을 거치면서 중국에는 이미 은밀하면서도 거대한 계층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니라 취엔꾸이(권력을 바탕으로 사회의 상층부를 장악한 신흥 귀족) 계층이다.

이들은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거대한 정치자본과 경제자본을 축적하고 있다. 중국에서 바링허우들의 성장과 동시에 전개된 것이 바로 이 취엔꾸이 계층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역사 과정이다. 이에 수반된 현상 가운데 하나가 전체 사회질서와 도덕질서, 미학질서에서 노동자와 농민 계급의 지위가 크게 하락했다는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는 자신의 아들이 노동자인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 1980년대 가정연산승포책임제가 실행되기 시작했을 때도 우리는 ‘저 희망 찬 들녘에서’라는 노래 가사를 소리 높이 불렀다. 그러나 2000년에 이르러 중국 내에서 가장 유행했던 오락 프로그램들은 보통 노동자와 농민 계층에 대한 조롱을 주요 내용으로 삼았다. 이러한 대조 속에서 바링허우들은 부득이하게 출생과 동시에 모든 우선권을 상실하는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바링허우들은 시작에서부터 뭔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렇게 외치게 된다. “우리가 얻은 것은 쇠사슬이요, 잃은 것은 세계 전체다.”

바링허우의 계급적 속성을 규정한다면 가장 적합한 호칭이 ‘샤오즈(小資)’일 것이다. 모든 바링허우의 마음속에는 이런 샤오즈의 꿈이 자라고 있다. 2009년 이전에만 해도 이런 꿈은 백일몽이 아니었다. 그런 꿈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이상이자 추구였기 때문이다. 샤오즈의 꿈은 모호하지만 대체로 독립과 자유, 존엄이 있는 삶을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삶은 물질생활과 정신생활의 이중 보장 속에서만 가능하다. 이는 기본적인 요구로 들릴지 모르지만 1990년대 이후의 중국에서 샤오즈는 궁극적인 유토피아적 존재를 대표했다. 때로는 이러한 샤오즈의 꿈이 일종의 과장과 변형된 방식으로 배출되거나 읽히기도 했다.

2000년 겨울 안휘의 작은 도시에 있는 한 서점에서 웨이후이의 『상하이 베이비』를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가에 서서 단숨에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 이것이야말로 대도시 샤오즈들의 생활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자유롭고 반항적인 여러 모험이 담겨 있었다. 심지어 『상하이 베이비』에 나오는 수많은 서양 저작물 제목을 모조리 메모했다. 이 책들을 전부 읽으면서 나만의 ‘샤오즈’ 관련 총서로 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비교적 인상이 깊었던 책 두 권을 고르라면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이다. 하지만 두 작품은 내게 그 어떤 감동이나 깨우침도 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웨이후이가 만들어낸 취향과 분위기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을 계기로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또, 이런 회의 속에서 스스로 샤오즈 계급의식이 좀 더 강화되었다. 당시에는 샤오즈 생활이 보다 넓은 세계로 통하는 입구라고 생각했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샤오즈 의식’의 출현은 정치 경제에서의 신자유주의와 역사 관념에서의 허무주의, 그리고 개인적 도덕행위에서의 실존주의 등 90년대 이데올로기가 반복적으로 생산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광범위한 전파와 심화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국의 대처 수상이 말한 “또 다른 선택은 없다.”는 역사적 상황을 조성하게 된다. 이 같은 상황은 냉전 종식 이후 포스트자본주의의 오만한 자기 기만을 수반하고 있다. 좀 더 정확한 말로 표현하자면 ‘이윤이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사회관계이고, 시장이 민주의 유일한 보장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가 항상 철판처럼 견고한 것은 아니다.

2009년의 굴욕적인 이사를 포함하여 내게 닥친 일련의 시련들은 실제 역사에는 항상 위기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러한 위기는 1990년대 이후의 중국 역사에 적어도 두 번 출현했다. 첫 번째는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때였고, 두 번째는 2008년의 글로벌 금융 위기 때였다. 왕후이는 금융 위기가 과도한 투기나 관리감독의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내재된 본질적인 모순이자 자본주의의 자기순환 과정에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문제는 현재의 위기로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90년대의 이데올로기는 끝났다는 것이다. 왕후이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신자유주의의 절대적인 지위가 쇠락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보다는 오히려 샤오즈 계급의식이 깨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쪽이 더 맞을 것 같다. 이상의 토론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링허우들의 꿈인 샤오즈도 세계화와 자본 질서가 우리에게 더해준 일종의 기획이자 상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숙명’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이러한 현실은 칼비노의 고전 작품인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연상하게 한다. 남자는 꿈에서 본 여인을 쫓지만 끝내 얻지 못하자 꿈속에서 본 것과 똑같은 도시를 건설한다. 칼비노는 여인들이 이런 방식으로 남자를 만든다고 말한다.

샤오즈의 꿈이 바로 그 여인이다. 결국 우리는 샤오즈의 꿈을 실현할 수 없고 그 꿈은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환상으로 변하게 된다. 우리는 몸이 그 안에 있으면서도 인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환상은 심지어 우리가 갖는 실패의 느낌을 치유하기도 한다. 부드럽고 우아한 면사포를 현실에 씌워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이 그래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원초적인 원인과 시작을 잊고 미래와 단절되게 만드는 것이다. 이리하여 바링허우들은 허공에 걸린 세대가 되어 하늘로 오르지도 못하고 땅에 내려앉지도 못한 채 역사의 진공상태 속에서 깃털처럼 떠다니게 된다.

샤오즈 계급은 바링허우에게 마지막 구원의 지푸라기다. 이데올로기의 기획도 이 점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갖가지 노력과 학습, 발전의 개념이 모두 샤오즈 꿈의 마지막 실현에 의존하고 있다. 내 친구 하나는 자신의 가장 큰 꿈이 주말 저녁에 자신의 승용차 조수석에 아내를, 뒷좌석에는 아이들을 태우고서 밖에 나가 푸짐한 외식을 한 다음, 함께 예술영화를 한 편 보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꿈이 계속 연기되다가 결국에는 잔혹한 형식으로 깨지고 만다. 갈수록 고착화되고 있는 현재의 사회 구조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것이 실제 상황이다. 바링허우들의 유일한 출구는 아마도 빈털터리가 되는 것, 새로운 도시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실패는 거의 예정된 듯하다. 게다가 이 길은 세계사의 숙명적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실패는 단순한 세대의 구분을 뛰어넘는다. 중국의 모든 세대가 똑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현실은 우리를 다시 19세기의 중요한 명제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 현대 논리의 시발점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우리는 두 개의 거대한 현상을 마주하고 있다. 하나는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자본의 약탈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갈수록 고착화되는 특권계층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 바링허우들이 처한 세계사적 위치다.

이러한 위치는 특정 세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간단히 거부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종의 자각적인 의식과 견실한 주체가 있어야만 제대로 수용해낼 수 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 가운데 하나가 대형 금융회사에서 한 달 동안 인턴으로 일하고 나서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저는 마침내 샤오즈의 꿈에서 깨어나는 느낌을 체험했습니다.” 샤오즈의 꿈에서 깨어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역사는 여전히 모호하고 애매하며 눈앞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혼돈 그 자체다. 부패한 언어와 천편일률적 생활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자각적인 의식과 강인한 주체는 이 역사의 폐허 위에서 어떻게 성장해 나갈 것인가?

한 가지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느 세대, 어느 지역이건 간에 사회와 역사를 떠나서는 자기 기만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개인의 실패감과 역사 허무주의, 거짓과 허장성세가 사회와 역사로부터의 일탈의 구실이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샤오즈의 백일몽에서 깨어나 모든 실패감을 초월하고 다시금 역사의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강의와 서술, 글쓰기로 그칠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이런 행위들을 현실적인 사회 실천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바링허우가 자신들의 계급을 명확히 인식하고 역사적 위치를 바로잡으며, 길이 없는 곳에서 한 가닥 갈 길을 찾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가 그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바링허우를 만나다



공평한 대우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인터뷰 대상 : Y. 여. 1981년생. 고등학교 졸업. 현재 둥관의 한 소규모 가공 공장에서 일하고 있음 / 시간 : 2014년 4월 19일 / 장소 : 광동성 둥관시 청안진 모 가공 공장 수발실>

[양] 고향이 어디신가요? [Y] 후베이 수이저우에요. 저의 고향집은 농촌에 있어요. [양] 가정형편에 대해 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Y] 집안 사정은 그리 좋은 편이 못 돼요. 아버지는 규모가 작은 장사를 하고 계세요. 딸만 셋이에요. 제가 맏딸이지요. [양] 그럼 공부는 어디까지 하셨나요? [Y]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전부에요. 결국 저는 일하는 쪽을 택했어요. 아버지와 함께 두 여동생이 진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요. [양] 맨 처음에 어디에서 일을 시작하셨나요? [Y] 둥관 창안진에서 공장 작업라인에서 일했어요. 당시 우리가 주로 했던 일은 디지털카메라를 조립하는 것이었지요. 반 년 정도 일했던 것 같아요. 저는 조장까지 하다가 다른 데로 옮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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