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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살림살이 경제학

강수돌 지음 | 인물과사상사



행복한 살림살이 경제학

강수돌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7년 6월 / 375쪽 / 17,000원





세월호 참사와 부패 네트워크



세월호 참사 3년

2017년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3주기였다.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와 연관된 많은 보고와 토론, 현장 기록과 논평, 책이 나왔다. 여기에 또 하나의 생각을 보태는 것은, 한편으로 목숨을 잃은 304명의 영혼을 달래는 의미이며, 한편으로는 우리 마음을 정리해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세월호 참사의 정치경제학

세월호는 1994년에 일본에서 최초 건조되었고, 청해진해운이 2012년 10월에 구입했을 때는 이미 18년이 된 배였다. 일본은 배의 사용 연한이 20년이기에 2014년에 폐기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시한이 2년밖에 남지 않은 배를 사서 참사 이전까지 운항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양한 정치ㆍ경제적 변수가 존재한다. 한국도 예전에는 배의 사용 연한이 20년이었으나 기업의 이윤 증대를 위한 ‘규제 완화’ 맥락에서 해상운송사업법(해운법)을 개정하여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3월에 25년으로 늘려주었고, 이어 2009년 1월에는 다시 5년을 더 연장해 30년이 되었다.

참고로 2006년 한국해운조합의 의뢰로 작성된 「현행 여객선 선령제한의 적정성 판단 및 개선방안 연구」보고서에는 “선령제한으로 여객선업계가 선박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노후 선박도 안전성 확보가 가능하므로 굳이 선령제한을 할 필요가 없으나, 인명을 수송하는 여객선의 특성상 최대 35년까지 선령을 연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토대로 해운조합은 2007년 해양수산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 선박 사용 연한을 늘려줄 것을 요구한다.

이제 공은 해양수산부와 정부로 넘어간다. 그리고 2008년 국토해양부의 용역 의뢰로 작성된 「연안여객선 선령제한제도 개선 연구 최종보고서」는 ‘선령의 증가에 따라 안전성 수준이 완만하게 떨어지지만 급격하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선령제한제도는 국제적으로 일부 국가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등의 근거로 선령 연장이 필요하다고 결론짓고, 기준 선령을 20년 이하로 하되 최대 10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완화하는 안을 제안했다. 결국 이 보고서의 제안대로 2009년 1월, 「해운법 시행규칙」이 개정되어 선령 기준이 30년까지 완화되었다. 당시 주무부처였던 국토해양부 장관에 따르면, 선령과 해양 사고와는 직접적으로 무관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선령제한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 고가의 선박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선령 기준을 확대해준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여기서 우리는 법률은 국회에서, 그 시행령은 대통령이, 시행규칙은 해당 장관이 만든다는 점을 알아야 하지만, 크게 보면 국민의 대표인 헌법기관들(국회ㆍ대통령ㆍ장관)이 과연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제대로 수호하고 있는지, 아니면 정반대로 해운 자본을 둘러싼 ‘부패 네트워크’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좀먹고 있는지 하는 차원에서 이러한 법제를 재평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적 로비나 뇌물 등 윤리적 문제 역시 철저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부패 네트워크와 유병언이라는 인물

청해진해운이 소속된 세모그룹의 대표 유병언 일가는 탈세, 배임, 횡령 등 불법은 물론, 자사에 유리하도록 해운법을 개정하기 위해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권을 상대로 광범위한 로비를 해왔다. 로비 자금은 유병언이 ‘아해’라는 이름으로 찍어 전시한 사진들을 청해진해운(모회사 천해지) 등 15개 계열사에 고가로 판매해서 조달한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들이 낸 사진값이 총 446억 원에 이를 정도다.

특혜 금융과 세월호 증개축

세월호 구입 과정에도 정치ㆍ경제적 변수가 도사린다. 원래 세월호의 구입 가격은 116억 원이었다. 그런데 청해진해운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서 100억 원을 대출 받아 세월호(구입 시가 116억 원)를 담보로 이 배를 구입했다. ‘특혜 금융’ 시비가 이는 대목이다. 또 구입 뒤에 30억 원을 들여 증개축을 하고 운항 직전 선박보험에 들었는데, 이 보험금 규모가 무려 113억 원(메리츠화재 77억 원, 한국해운조합 36억 원)이다. 100억 원을 대출받아 116억 원짜리 배를 산 뒤 113억 원 규모의 보험에 든 것은, 세월호 사업이 거의 ‘공짜’ 장사에도 ‘알짜배기’를 빼먹을 수 있는 엘도라도(황금의 제국)나 마찬가지였다는 말이다.

그런데 산업은행은 청해진해운에 100억 원만 융자한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돈을 융자해주었다. 증개축에 필요한 30억 원이나 보험 가입에 필요한 돈도 결국 남의 돈으로 결제한 셈이다. 청해진해운이 거액을 융자받을 당시인 2012년 10월 청해진해운의 부채비율은 약 400퍼센트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기업의 건전성이나 리스크 분석이 제대로 되었다면 거액의 대출은 결코 불가능했다는 말이다.

사실상의 민영화 - 공공성의 부재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과 그에 대한 책임을 민간 사업자에게 넘기거나 민간 사업자의 재량에 의존하는 ‘사실상의 민영화’가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것은 정치ㆍ경제적 기득권 세력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적인 이해관계 동맹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만 해도, 겉으로는 국가기관 책임 아래 안전 운항과 관련된 역할 분담이 체계적으로 되어 있는 듯이 보였다. 실제로 한국선급은 해수부 위탁으로 선박 구조 안전검사를, 해수부는 운항 허가를, 해운조합 소속의 운항 관리자는 해경 위탁으로 운항 안전 감독과 과적ㆍ과승 점검을, 해경은 안전 관리와 구조를 담당한다. 또, 해수부와 해경 관할의 VTS(교통관제센터)는 운항 선박과 교신하면서 관리ㆍ감독을 수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공공성보다는 사적 이해관계가 해운 관련 조직들을 움직이는 근본 동인이었음이 명백하다. 일례로 청해진해운이 낡은 배(세월호)를 도입해 불법으로 개조한 뒤 한국선급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주요 체크포인트는 배의 복원성, 화물 적재량, 구명 설비 등이었다. 그런데 원래 한국선급은 정부기관인 해수부의 위임을 받아 선박 구조 안전검사를 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결코 수익사업을 해서는 안 되는 조직이다. 그럼에도 2013년부터 ‘경영 악화’를 이유로 안전 관리는 도외시한 채, 에너지ㆍ환경 기술검사나 해상 설비 설계 평가 등 ‘비(非) 선급’ 분야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선급의 연간 수입은 1,100~1,200억에 이르렀고, 그 수입의 90퍼센트 정도는 한국 정부에서 허용한 선박 안전검사 수수료에서 나왔다. 한마디로 한국선급은 해수부의 보호 아래 독점이윤을 얻고 있었다.

한국선급의 역대 회장과 이사장 12명 중 8명이 해수부 등 관료 출신이고, 임원 중 해양 관련 기관 출신이 많았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해진해운은 세월호 증개축 뒤 선박 검사 때 실제 개조와는 다른 도면을 제출했다. 한국선급은 이것을 알고도 묵인했고, 참사 이후 국정조사가 시작되자 법적 책임 전가에만 바빴다. 이런 식으로 공공ㆍ민간부문 간 경계가 흐려지면서 인적ㆍ물적 교환과 거래가 활발해지는 것은 얼핏 상호 발전을 도모하는 듯하지만, 실은 병리적 유착 관계가 공고해지는 것이다. 특히 공공 영역 본연의 사명인 ‘공동선’을 위한 활동은 유실되고, 그 대신 사적 이해관계 동맹과 부패 네트워크가 강화되면서 윤리적 퇴행이 일상화하고, 마침내 대형 참사를 예비한다.

중단할 수 없는 물음들

이제 우리는 ‘마음 정리’를 위해서라도 계속 물어야 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공무원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친기업적 정책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기업은 어떻게 경영되어야 하는가?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한국 경제와 대안적 구조조정



구조조정 vs. 경제위기 - 원인과 책임의 문제

바야흐로 IMF 경제위기(1996~2001)에 버금가는 구조조정 혹은 경제위기가 도래했다고 온 나라가 난리다. 2016년 초부터 중국 발 증시위기(폭락)가 문제라고 떠들더니, 최근에는 해운ㆍ조선업 위기가 도래해 울산, 거제, 통영의 지역경제가 위태로워졌다. 유일호 부총리는 조선 3사 구조조정은 규모가 큰 만큼 기업을 합치거나 버리는 ‘빅딜(대규모 사업 맞교환)’이 아니라, 개별 사업 분야를 조정하는 ‘스몰딜(소규모 사업 매각ㆍ통합)’ 방식이 가능하다고 시사했다. 동시에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 실업 우려에 대해 “재취업을 지원하는 데 정책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면서 “파견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주시면 재취업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금융위원회나 경제부총리의 입장을 보면 구조조정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러나 과연 구조조정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른 말로 경제위기다. 경제위기가 도래했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정책 당국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구조조정을 당연시하면서 그 규모나 방법만 쟁점으로 삼는다. ‘담론의 주도권(지배력) 행사’를 통한 권력 유지 전략이다. 바로 이 점이 구조조정을 비판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까닭이다. 우리의 질문은 이렇다. 구조조정이 필요한 근본 원인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과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제대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

구조조정의 전제 - 한국 경제구조 진단

구조조정을 올바로 하려면 한국 경제의 구조에 대한 정직한 진단이 필요하다. 첫째, 한국 경제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강화하는 구조다. 자산의 측면에서도 그러하고 소득의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자산의 측면이란 부동산(집, 땅)이나 동산(현금, 예금, 채권, 주식 등)이 극히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며, 소득의 측면이란 잘 버는 이와 못 버는 이 사이의 격차가 지나치게 크다는 말이다. 둘째, 한국 경제는 농업을 경시하고 희생시켜 공업이나 서비스업을 장려해왔다. 50년 이상 농민과 농촌은 경제발전의 이중적 희생양이었다. 한편으로 농민의 자녀들은 도시나 공장의 노동력으로 갔고, 다른 한편으로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은 헐값에 거래되어 값싼 노동력(인건비)을 유지하는 토대가 되었다. 심지어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아래서도 농업은 경시되었고 헌법 제121조의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다.

셋째, 한국 경제는 민초들의 인간적 욕구 충족보다 수출 지향적인 구조를 정착시켰다. 무역의존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세계 경제의 변수들이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갈수록 경제주권은 약화하고 세계 자본의 힘이 강해졌다. 경제구조 차원에서 ‘자발적 종속’이 이루어졌다. 넷째, 한국 경제는 중소ㆍ영세기업을 희생시켜 재벌 중심의 경제를 키워낸 구조다.

다섯째, 한국 경제는 삶의 질이 아니라 삶의 양을 강조하는 구조를 강화해왔다. 박정희 식 경제개발 초기인 1960년 1인당 국민소득은 약 80달러였지만, 2015년에는 약 2만 7,000달러다. 그러나 이것은 전반적 소득이나 물질적 부의 수준, 즉 ‘삶의 양’을 의미할 뿐이다. 그것도 개인, 기업, 국가 등 모든 차원에서 부채의존도가 급상승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반면에 ‘삶의 질’은 어떠한가? 나는 삶의 질을 평가하는 네 가지 기준으로 건강과 여유, 존중과 평등, 인정이 넘치는 공동체, 조화로운 생태계를 중시한다. 그런데 이런 측면에서 지난 55년간 삶의 질은 급속도로 하락해왔다. 그 결과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삶의 행복도가 지극히 낮은 편이고 자살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섯째, 한국 경제는 IMF 경제위기 이후 세계 자본에 문을 대폭 연, 신자유주의 구조를 구축했다. 이른바 ‘IMF식 구조조정’, 즉 개방화, 탈규제화, 민영화, 유연화 등을 추진한 정책들의 종합적 결실이다. 자본의 세계화 결과, 현재 한국의 상장기업 중 ‘순수’ 한국 기업은 거의 없으며, 자본구조상 외국 기업이 허다하다. 나아가, ‘투자’와 ‘투기’가 더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글로벌 투기 자본은 돈 되는 곳이면 지옥도 불사하고 좇아간다. 위기 국면을 이용해 자산을 헐값에 사들이고,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도 사람 자르는 구조조정을 단행한 뒤, 비싼 값에 팔고 또 다른 곳으로 간다.

대안적 구조조정의 필요성

박정희ㆍ전두환 시대의 부실기업 정리와 김대중 시대의 IMF식 구조조정으로 대변되는 기존의 구조조정은 독점 대기업이나 금융권의 위기 극복과 이윤율 증대를 위해 노동, 농민, 환경, 여성, 청년, 중소기업 등을 희생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오늘날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최고조에 이른 것이다. 최근 구조조정 논의에서 나오는 한국은행과 정부의 ‘정책 조합’이 아무리 잘된들, 정치ㆍ경제적 기득권 세력의 단골 메뉴인 ‘신 성장 동력’을 아무리 불러낸들, 천문학적 혈세를 요구하는 구조조정의 실효성은 금세 바닥이 날 것이며 따라서 위기 극복은 요원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기존 패러다임 안에서는 위기 극복이 불가능함을 솔직히 인정하는 일이다. 환자가 병을 고치려면 ‘아프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로 여기서 나는 ‘대안적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참된 구조조정은 포장만 바꾼 낡은 메뉴 속이 아니라 ‘패러다임 전환’ 혹은 ‘시스템 전환’ 속에 있다. 그것은 사람 잘라내는 ‘경쟁력’ 중심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사람을 살려내는 ‘삶의 질’ 중심의 구조조정이며, 소수 재벌 또는 자본 중심의 구조정이 아니라 민주적 복지 사회를 위한 구조조정이다. 또 농업을 희생시키고 식량자급률을 저하하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유기농 중심의 농업과 식량자급률을 드높이는 구조조정이며, 자유무역과 수출 지향적 구조조정이 아니라 민중무역과 필요충족적 구조조정이다. 이윤보다 사람을 챙기는 구조조정이다.

나아가 그것은 경제성장 중독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구조조정이며, 빈익빈 부익부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공생공락(共生共樂)의 구조조정이다. 이 대안적 구조조정은 우리 자신이 현재 행복하게 잘살기 위한 길일 뿐 아니라, 미래 후손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그 구체적 경로나 내용은 온 사회 구성원이 진정성 있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만들어나가야 한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후손에게 물려줄 1억이나 10억을 아등바등 모으는 일이 아니라, 설사 1억이나 10억이 없더라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와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물려주는 일이기 때문이다.타임 푸어, 평등한 시간은 어디에 있나?



왜 나는 늘 시간이 없을까?

모든 사람에게는 평등하게 하루 24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동일한 24시간이더라도 어떤 사람은 온종일 바쁘고 어떤 사람은 종일 한가하다. 하루 종일 바쁜 사람도 여러 갈래다. 돈을 버느라 스스로 심신을 갉아먹는 사람도 많고, 그런 세상을 바꾸려다 심신이 지치는 이들도 있다. 온종일 한가한 사람도 여러 부류다. 무엇을 할지 몰라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하고 싶은데도 일자리가 없어 겉으로는 한가해 보이나 실은 늘 초조한 이도 많다. 심지어 돈을 벌 만큼 벌었기에, 오전에는 골프를 치고 오후에는 영화를 보고 저녁이 되면 친구나 애인을 만나 술 한 잔 하고 노래방에 가서 춤추는 식으로, 매일 한량처럼 보내는 이들도 있다. 한량도 한량 나름이다. 나는 속물적 한량이 아니라 ‘소박한 한량’을 꿈꾼다. 소박한 한량의 일정은 대략 이렇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 등 기본 필요 시간을 12시간으로 잡으면, 의미 있게 활동하는 시간은 12시간이다. 이 12시간 중 생계를 위한 일은 하루 4시간만 하고 다음 4시간은 정말 하고 싶은 활동, 즉 사회운동이나 인문학 모임 등을 하며, 나머지 4시간은 친교를 나누는 데 쓰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매일 행복할 것이다. 물론 나는 아직 이렇게 살아본 적도 없고, 또 언제나 시간을 이렇게 기계적으로 나누어 정확히 지키며 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이에 대한 ‘길잡이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길잡이별이 있다 한들, 과연 현실에서 거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길잡이가 오히려 수많은 사람에게 좌절감과 절망감만 안겨주지는 않을까? 현실은 ‘시간 불평등’이나 ‘타임 푸어’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시간은 평등하다고 하지만, 우리네 현실은 불평등한 시간에 지배당한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고,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모두 비교적 평등한 시간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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